#!if 넘어옴1 != null
''''''{{{#!if 넘어옴2 == null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2 != null
, ''''''{{{#!if 넘어옴3 == null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3 != null
, ''''''{{{#!if 넘어옴4 == null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4 != null
, ''''''{{{#!if 넘어옴5 == null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5 != null
, ''''''{{{#!if 넘어옴6 == null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6 != null
, ''''''{{{#!if 넘어옴7 == null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7 != null
, ''''''{{{#!if 넘어옴8 == null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8 != null
, ''''''{{{#!if 넘어옴9 == null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9 != null
, ''''''{{{#!if 넘어옴10 == null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10 != null
,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D7A3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if 설명 == null && 리스트 == null
{{{#!if 설명1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if 설명1 != null
{{{#!html 가정교육과에서 받는 교육}}}에 대한 내용은 [[가정교사]] 문서{{{#!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를}}}{{{#!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가정교사#s-|]]번 문단을}}}{{{#!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가정교사#|]] 부분을}}}}}}{{{#!if 설명2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를}}}{{{#!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3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를}}}{{{#!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4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를}}}{{{#!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5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를}}}{{{#!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6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를}}}{{{#!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7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를}}}{{{#!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8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를}}}{{{#!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9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를}}}{{{#!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10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를}}}{{{#!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 == null
{{{#!if 리스트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if 리스트 != null
{{{#!if 문서명1 != null
* {{{#!if 설명1 != null
가정교육과에서 받는 교육: }}}[[가정교사]] {{{#!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가정교사#s-|]]번 문단}}}{{{#!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가정교사#|]] 부분}}}}}}{{{#!if 문서명2 != null
* {{{#!if 설명2 != null
: }}}[[]] {{{#!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3 != null
* {{{#!if 설명3 != null
: }}}[[]] {{{#!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4 != null
* {{{#!if 설명4 != null
: }}}[[]] {{{#!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5 != null
* {{{#!if 설명5 != null
: }}}[[]] {{{#!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6 != null
* {{{#!if 설명6 != null
: }}}[[]] {{{#!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7 != null
* {{{#!if 설명7 != null
: }}}[[]] {{{#!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8 != null
* {{{#!if 설명8 != null
: }}}[[]] {{{#!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9 != null
* {{{#!if 설명9 != null
: }}}[[]] {{{#!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10 != null
* {{{#!if 설명10 != null
: }}}[[]] {{{#!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 부분}}}}}}1. 개요
사전상의 의미: 가정의 일상생활 가운데 집안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주는 영향이나 가르침.
사전상의 용례(네이버 사전 참조)
● 가정교육도 못 받은 사람처럼 왜 이렇게 막되게 구니?
● 가정교육의 소홀로 말미암아 청소년들의 일탈이 늘고 있다.
家庭敎育사전상의 용례(네이버 사전 참조)
● 가정교육도 못 받은 사람처럼 왜 이렇게 막되게 구니?
● 가정교육의 소홀로 말미암아 청소년들의 일탈이 늘고 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가정교육이 이루어지는 '가정'은 1차 사회화 기관이자 비공식적 사회화 기관에 속하며, 공동사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녀는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말투, 태도, 생활습관, 인간관계 방식 등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의 인성과 태도, 사회성, 감정표현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태도를 보이려는 책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1]
다만 대한민국에서 이 단어의 쓰임새가 독특한 것은 이 단어가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서' 쓰인다는 점이다.[2] 예를 들어 ‘가정교육을 못 받은 티가 난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나 보다’ 같은 표현이 있다. 사실 나이가 들어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성인에게 '가정교육'을 들먹이는 것은 실례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잘못된 행동은 비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배경이나 부모의 인격까지 함께 묶어 평가하는 것은 정당한 지적을 넘어선 공격일 수 있고 불필요한 감정 갈등만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싸움나면 종종 튀어나오는 단어이며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 되어서도 질리게 들을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가 전통적으로 가정과 부모에 대한 존중을 중요하게 여겨왔던 배경이 있기 때문에 '가정교육' 운운은 더 모욕적일 수 있다.
가정교육은 한 사람이 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출발점이다. 건강한 가정에서 좋은 가정교육을 받은 자녀는 자기자신을 존중할 줄 알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따뜻함과 배려를 실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자녀가 또 다른 가정을 꾸릴 때에도 이어지며, 건강한 가치관이 세대를 넘어 전달되게 한다.
이처럼 좋은 가정이 많아질수록 사회 전반도 점점 더 밝고 자유롭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가정교육은 그만큼 개인과 사회를 키우는 조용하지만 깊은 뿌리다.
2. 한국 가정교육의 부실화
한국 사회는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높은 편이며, 가정교육의 중요성 또한 오랫동안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가정교육의 부실화’를 우려하거나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맞벌이 가정의 증가나 자녀와 보내는 시간의 감소, 디지털 환경 속 자극적인 콘텐츠 노출, 자율성과 방임 사이의 혼란, 입시·취업 위주의 교육관 등이 자녀와의 관계와 일상 속 교육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기고 있는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예절이나 말투 등 기본적인 태도를 지키지 못하는 사례를 들어 ‘가정교육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노키즈존이 생겨난 배경도 이와 연관이 있다.가정교육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에는 다양한 배경이 있다. 첫째는 맞벌이 부부의 증가이다.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요구로 인해 맞벌이 부부가 크게 늘어났다. 이는 부모가 자녀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가정이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부모가 바빠지니 아이의 돌봄과 양육이 외부기관에 맡겨지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정서적 안정감을 얻거나 가정교육을 배우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이런 환경은 부모-자녀 간 유대감을 약화시키고, 아이가 감정이나 태도를 배우는 데 필요한 경험이 부족해질 수 있다.
둘째, 디지털 환경의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기기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나며, 인터넷이나 미디어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특히 짧고 강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집중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고 감정이나 욕구를 즉시 표현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 이로 인해 언어 표현, 행동 양식, 감정조절 방식에서도 과도하게 자극적이거나 미성숙한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 부모의 관심과 적절한 개입 없이 아이가 스스로 디지털 환경을 접하게 되면, 자기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 제한이나 미디어 사용 규칙을 세워주는 부모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
셋째로는 ‘친구처럼 지내는 부모’가 늘어난 점도 있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억지로 통제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분명 소중한 태도다. 하지만 아이가 아직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우기 어려운 시기에, 부모가 아무런 기준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혼란을 겪게 된다. 자율은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는 말이지, ‘아무렇게나 두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이가 진짜 자율성을 키우려면, 그 안에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리더십이 함께 있어야 한다. 결국 부모는 가까이에서 길을 보여주는 존재여야 한다. 손을 놓고 ‘네가 알아서 해’만 외치는 건 자율이 아니라 회피일 수 있다.
넷째, 입시나 취업 성과에만 집중하는 교육 분위기도 한 가지 문제로 지적된다. 아이의 가능성과 성장 과정보다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지면, 아이는 결과나 외적 평가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거나, 자존감과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나답게 살기’보다 ‘비교해서 이기기’를 먼저 배우게 된다면, 결국 내면은 텅 비어버릴 수 있다. 진짜 교육은 성적표로 다 보여지지 않는다. 때로는 조용히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법,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힘, 삶의 균형을 잡는 태도가 더 깊고 오래가는 가르침이 될 수 있다.
특히 일부 부모가 개인의 여가나 만족을 중시하면서 자녀를 방임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데, 이는 가정교육이 ‘기능’으로서 무너지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부모에게도 개인의 삶은 중요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책임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자녀 양육이 단순히 피곤한 일이 되어버리고, 최소한의 돌봄조차 부담으로 여겨 방임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경우, 가정교육은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아이는 부모의 책임 있는 관심과 일관된 양육 안에서 정서적 안정과 사회성을 길러가며 성장한다. 가정을 꾸렸다면 그 안에서의 역할과 책임도 함께 감당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진짜 '가정' 교육이 필요한 부분을 모조리 정부에다 해달라고 주장하며 자기 자식을 방치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는 더 큰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가정교육은 엄연히 학교교육, 사회교육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중요한 교육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들이나 올바른 인간을 만들고 사랑을 주는 일 등은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이 대신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공통된 이념이었던 유교의 영향력과 구속력이 줄어들면서 집집마다 가정교육을 최선을 다해 하더라도 세세한 가풍이 달라진 나머지 '예의 바른 행동'의 기준이 서로 달라 대화나 동거 중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유교가 통용되던 때와 사회상이 워낙 많이 달라져 세세한 행동 원리까지 규정해주지 않다 보니 '어떤 것이 한국에서 예의바른 행동인지'에 대해 더욱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세계화가 진행되어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수까지 늘면서 이러한 차이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외출복을 입은 채로 침대에 그대로 눕는다든가, 남의 집 냉장고를 허락 없이 열어본다든가[3] 하는 행동을 두고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가정교육의 부실화는 단순한 훈육 부족을 넘어, 자녀가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들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정이 여전히 자녀의 태도, 공감 능력, 예절, 자기 존중감 등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주요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실천 가능한 가정교육의 방향을 모색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3. 가정에서 행해져야 할 교육
가정교육은 한 개인이 살아가기 위한 가치관, 습관, 태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학교나 사회의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 아이는 가정에서 인간관계, 소통, 책임감, 감정 표현 등을 배우게 되며, 이는 이후 자녀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대표적으로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교육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 기본 생활습관과 자기관리 : 정리정돈, 위생관리, 식사예절, 시간 약속 등이 있다. 스스로 정리하고, 제시간에 움직이고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익히는 건 자기 조절력의 기초다. 이런 습관은 단순히 깔끔한 아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삶을 관리할 수 있다는 감각을 키워준다.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시키기보다는 “같이 해볼까?”, “지금이 정리할 시간이야” 같이 천천히 루틴을 만드는 게 좋다. 잘했을 때는 “네가 먼저 치우는 모습이 멋졌어”처럼 구체적으로 칭찬해주면 자기 효능감도 커진다.
- 감정 표현과 정서 교육 : 다양한 감정들을 말로 표현하고, 스스로 다룰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감정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에게 “그 마음을 말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주거나 잘 경청해준다면, 마음속 감정을 건강하게 처리하는 습관이 만들어진다. 감정을 억누르게하거나 너무 통제하면 감정이 폭발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어질 수 있다.
- 공감과 소통, 타인과 어울리기 : 경청, 공감, 말로 표현하는 능력은 아이가 좋은 친구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또, 사회는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능력도 중요한 곳이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로써 존중받고 이해받는 경험을 해야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대해줘야겠구나” 하고 배운다. 부모가 먼저 “네 얘기 들어볼게”하고 들어주고 아이가 친구 얘기를 할 때 “그 친구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같은 질문으로 타인의 입장도 상상하게 해보자. 이러한 교육이 잘 이루어지면 관계 갈등이 줄어들고, 소통과 협업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된다.
- 도덕성과 책임감 : 옳고 그름을 구별하고, 잘못에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교육이 잘 이루어지면 책임질 줄 알고, 잘못했을 때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으로 자란다.
- 다양성과 차이 존중 : 다른 외모, 문화, 능력, 성격을 존중하고 틀리다고 여기지 않는 태도를 알려주는 것이다. 요즘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선 ‘나와 다르다’는 걸 불편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 사람 이상해.”가 아니라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나보다.” 하는 유연한 시선을 길러주는 게 좋다.[4]
- 실수와 실패를 다룰 줄 아는 힘 : 실수와 실패는 누구나 겪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실수했다고 너무 자책하거나, “나는 안 돼”라는 식으로 자신을 미워하게 되면 삶이 점점 무거워진다. “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 같이 지지해주는 말이 아이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시도하는 모습을 지지해주는 게 중요하다.
- 부모와의 충분한 대화와 정서적 교류: 아이는 부모와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언어 능력과 표현력을 자연스럽게 익히며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도 배운다. 특히 어린 시기에는 부모의 말투, 관심, 반응 방식이 아이의 정서 안정과 사회성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화를 통해 부모와의 유대감이 깊어질수록 아이는 스스로를 더 안전하고 소중한 존재로 느끼게 되고, 이러한 안정감은 이후의 학교생활과 사회관계에서도 긍정적인 기반이 된다. 또 부모가 삶의 경험과 생각을 나눠줄수록, 아이는 더 넓은 시각과 판단력을 키울 수 있다.
아이는 처음부터 모든 걸 다 배울 수 없다. 아이가 사회에 나갔을 때 예의 바르고 책임감 있는 사람, 자기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 시작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가정교육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는 게 핵심이다.
3.1. 가정에서 행해지지 않아야 할 교육
가정은 아이가 처음으로 삶의 태도와 감정을 배우는 중요한 공간이다.하지만 모든 부모가 완벽할 수는 없고, 가정교육도 언제나 이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자신의 양육 방식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자녀를 훈육할 때,
경우에 따라 자녀의 자존감이나 정서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식이 반복되기도 한다.
다음은 가정에서 지양해야 할 대표적인 훈육 방식의 예시들이다.[5]
- 과도한 훈육[6]: 자녀의 실수나 잘못보다 훨씬 큰 강도로 혼내는 훈육 방식은 감정 배출처럼 보일 수 있으며, 교육적인 효과보다는 심리적인 상처를 남길 위험이 있다. 이런 방식은 아이가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인식하고 책임지는 기회를 막고, 오히려 공포나 수치심으로 인해 회피하거나 위축되는 행동만 반복하게 만들 수 있다.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는 훈육은 잘못을 명확히 짚되, 감정을 절제하며 일관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 잘못된 판단에 의한 훈육: 잘못 혼내는 것으로, 자기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혼나거나, 아니면 잘못은 했는데 엉뚱한 잘못으로 혼나고 있는 경우. 자녀가 실제로 잘못하지 않았거나, 충분한 사실 확인 없이 감정적으로 혼내는 경우는 아이에게 큰 혼란과 정서적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런 훈육은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억울함과 불신, 자존감의 손상으로 이어진다. 훈육은 감정이 아닌 사실에 근거해 이루어져야 하며, 아이의 말도 충분히 듣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뒤에 이루어져야 한다. 실수가 있었다면 그 책임을 분명히 하되, 오해였다면 그 또한 정정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 편애성 교육: 가정 내에서 공부를 잘하거나, 외모가 뛰어나거나, 부모가 선호하는 기질을 가진 자녀만 유독 예뻐하고, 다른 형제자매는 상대적으로 무시하거나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편애성 교육은 단순한 감정 표현 차원이 아니라, 형제 간 위계와 분열을 만드는 심리적 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 차별을 받는 아이는 자존감 저하, 소외감, 분노, 무력감 등을 느끼며, 편애받는 형제에게 질투심이나 경쟁심을 가지게 될 수 있다. 특히 "나는 덜 사랑받는 존재다"라는 왜곡된 자기 인식을 형성하게 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편애받는 아이 역시 부모의 기대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느끼거나, 형제와의 관계에서 죄책감 또는 우월감을 가지게 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형제 간 갈등, 비교, 감정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편애는 부모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녀 각자의 기질과 성향을 존중하고, 비교 대신 각자의 속도에 맞춰 장점을 인정하고 격려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모든 자녀에게 공평한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이 건강한 가족 관계 형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표현 억압형 훈육: 자녀가 자신의 입장을 말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려 할 때, “조용히 해”, “입 다물어”, “그냥 시키는 대로 해”와 같은 방식으로 말을 막는 훈육 방식이 있다. 이런 방식은 아이가 자기감정과 생각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기회를 빼앗고, 억울함과 분노를 내면에 쌓이게 만든다.[7]
- 협박에 가까운 훈육: 자녀가 부모의 지시나 훈육에 반응하지 않을 때, “용돈 안 줘”, “밥도 굶겨”, “다음엔 절대 안 도와줘”처럼 조건을 걸어 압박하거나 위협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방식은 아이의 자율성과 내면적 동기를 해치고, 부모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하면 자녀는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보다 ‘혼나지 않으려고’ 움직이게 되기 쉽다. 건강한 훈육은 아이가 스스로 이유를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조건을 내세우기보다는, 어떤 행동이 왜 중요한지 차분히 설명해주고, 아이의 생각을 함께 들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 정치적 편향 교육: 부모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 이념에 대해 무조건 옳다고 하거나, 반대 세력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며 자녀에게 정치적 관점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방식은 아이가 사회와 정치 현상을 스스로 이해하고 균형 있게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8] 자녀가 뉴스를 보거나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부모로써 다양한 관점을 소개해 주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대화가 필요하다. 정치적 견해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직접 정보를 접하고 스스로 판단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3.2. 초보적인 금융 교육
이 교육을 잘 받지 못하면 도박, 투기 등으로 재산을 낭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10] 수입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과도한 생활비를 지출하고, 수입이 부족할 때 생활비를 줄여서 살 생각보다는 빚을 낼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하는 등 피해가 정말 크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교육이다. 정말 극단적인 케이스로는 가족 몰래 빚을 내는 경우까지도 존재한다.빚을 안 갚았을 때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지 가정에서 교육하기는 힘들다. 제때 갚는 것을 여러 번 연습시키면 '어차피 외상 잘 받아 주니 외상 받아주는 곳에만 가면 된다, 잘 갚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다' 등의 이상한 관념을 갖게 되기 쉽다.
4. 관련 문서
[1] 부모가 막장이라면 그 부모의 자녀들은 성장 중에 막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당연히 높아진다. 그 길로 들어가지 않게 하려면 학교 교육이나, 본인이 스스로 여러 가지를 깨닫거나. 주변의 도움으로 부모와 차이를 벌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부모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2] 즉 패드립의 완곡표현이다.[3] 냉장고는 살림살이가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이를 멋대로 열어보고 뒤져보면 불쾌해하는 문화권이 많다. 다만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와 같은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식사 초대를 받았을 경우나 파티 당일만큼은 집안 식자재가 공공재 취급을 받아서 남이 냉장고를 열어보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해당 국가에서는 남을 집으로 초대할 정도면 사전에 먹을 것을 어느 정도 풍족하게 준비해 둔 경우가 대다수라 기분 나쁘게 여길 여지도 별로 없다. 이들에게는 자기가 먹을 음식을 가져오는 영미권/북유럽식 문화가 오히려 생소하고 정감 없게 느껴진다고 한다.[4] 부모가 아이 앞에서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금방 따라한다.[5] 참고로, 여기서 나오는 용어들은 사람들마다 부르는 게 다 다름을 알고 봐야 한다.[6] 사람마다 부르는 말이 다르다, 과잉 처벌, 과잉 징계, 과잉 체벌 등등으로, 이것 외에도 더 많다.[7] 반복될 경우 자존감 저하, 불안감, 부모에 대한 거리감 등 정서적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8] 아직 정치에 대한 기초 지식이나 판단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자녀에게 지나치게 한쪽 의견만 주입하면,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먼저 자리잡을 위험이 있다. 오히려 반발감 때문에라도 머리가 굵고 나면 부모와 정반대의 정치 성향을 갖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다.[9] 특히 부동산 거래.[10] 이게 주식이면 그나마 괜찮은데, 선물거래/코인 선물거래로 가면 원체 변동성이 심하고, 코인 선물은 125배 레버리지도 가능한 지라 진짜 과장 안 보태고 한강에 뛰어든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경험하게 된다.(5000만원만 해도 125배를 걸면 62억 50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