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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청 대지진

1668년 산둥성 대지진에서 넘어옴
<colbgcolor=#3d5f7e><colcolor=#fff> 1668년 탄청 대지진
1668年 郯城大地震
<nopad> 파일:郯城大地震的烈度图.jpg
탄청 대지진의 추정 진도분포, 가장 어두운 부분이 진도 XII 구역이다.
발생 UTC+00 1668년 7월 25일 19시경
(강희7년 6월 17일)
진앙 북위 34.8°, 동경 118.5°
진원 깊이 22-28km 추정
규모 Mw8.5
최대진도 XII
피해
사망자 최소 43,000명 ~50,000명 이상
재산 피해

1. 개요2. 상세
2.1. 지질학적 배경 및 구조2.2. 지진2.3. 지진의 피해와 영향
3. 미래의 지진 위험성4.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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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668년 7월 25일, 강희제 시대 청나라 동부 지역 산둥성에서 발생한 규모 8.5의 대지진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1668년 산둥성 지진(1668 Shandong earthquake)이라고도 한다. 2025년 현재까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내에서는 1950년의 규모 8.7의 아삼지진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지진이다. 아삼지진이 티베트인도 아삼 경계에서 발생한 지진임을 감안하면, 오로지 중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탄청 지진이 가장 강력했다. 육상에 진원역이 포함되는 내륙지진으로 국한하자면, 인류의 기록된 역사상 가장 강한 지진 중 하나이다.

2. 상세

2.1. 지질학적 배경 및 구조

파일:Reginal_geology_of_Korean_Peninsula.jpg
탄루 단층대를 포함한 한반도와 중국 화둥 지역의 지질도. [출처1]
중생대 트라이스기에서 쥐라기로 넘어갈 때, 북중국 강괴의 남동쪽 경계에서 일어난 양쯔판(남중국 강괴 일부)의 충돌로 현 장강에서 쓰촨성까지 거대한 충돌대가 형성되기 시작됬다. 이렇게 형성된 충돌대를 친링-다비-술루 충돌대라고 한다. 이 충돌에서 수많은 조산운동이 일어났고, 산둥성의 가장 높은 태산도 이렇게 생성되었다.

이 충돌대 동쪽 끝에서 양쯔판이 북동방향으로 음직이면서 좌수향의 주향이동단층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탄루 단층대(탄청-루장 단층대)이다. [2] 이 단층대는 중생대 이후에도 지질학적 환경의 변화, 인도판의 북상으로 인한 히말라야, 티베트 고원 형성 충돌과 서태평양의 섭입으로 인하여 우수향 주향이동단층으로 바뀌었다. [출처2]
파일:dqwlxb-59-11-4022-1.jpg
탄루 단층대 근방에서 발생한 역사적 지진.
중앙의 1668-07-25 지점이 탄청지진 진원지이다.
이렇게 안후이성에서 산둥성, 발해만을 지나 랴오닝성, 만주를 거쳐 러시아 연해주 근방 오호츠크해까지 이어지는 최대 2,400km의 연장의 거대 단층대인만큼 역사적으로 많은 지진이 발생하였다. 태산이 근방에 위치한 만큼,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지진의 기록인 태산진 역시 탄루 단층대 근방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실제로 탄루 단층대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지진은 기원전 70년의 안추시 지진으로, 규모는 약 7.25-7.5 로 추정한다. 그리고, 기록된 탄루 단층대의 역사지진 중에서 가장 강력한 지진이 탄청지진이다.

2.2. 지진

1668년 7월 25일 저녁, 산둥성 남부 탄청현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현재 진원지의 위치는 산둥성의 린이시탄청(郯城)현, 린수(临沭)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 탄루단층의 거의 360km 구역이 파열된 것으로 보이며, 음직인 단층의 거리는 평균 8-9m로 본다. 탄루 단층대가 현재 평균적으로 한해에 2.2mm, 최대 2.8mm 정도 이동하는 것을 보면, 매우 오랬동안 누적된 변형이 한번에 음직였다. 파열된 160km× 32km 크기의 단층면 부위는 남북의 주향의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파일:v2-fd3a266f737009529d33c87179c1d61d_1440w.jpg
탄청지진의 진원역부터 진도 분포,
진원역의 가장 가까운 진도는 XII이며, 가장 먼 진도는 V이다.
지진은 410개 이상의 현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중 중앙의 탄청, 린수현을 포함한 29개 현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으로도 진원지인 산둥성을 넘어, 장쑤성 , 저장성 , 안후이성 , 장시성 , 후베이성, 허난성, 허베이 , 산시성 , 랴오닝성, 푸젠성에서도 지진동을 뚜렷히 느껴졌다. 진원지에서부터 감진반경은 무려 1000km에 달하였고, 심지어 서해를 건너 한반도 서북쪽인 황해도, 평안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평안감사 서목의 보고에 따르면 평양·철산 등지에서 지진을 느꼈다고 하며, 황해감사 서목은 해주 등 7개 읍에서 지진동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4]

거대한 규모의 지진이 내륙에 발생하여 매우 강력한 지진동이 발생하였다. 진원지 근방에는 무려 수정 메르칼리 등급으로 진도 XII를 기록하였다. [출처4] 진도 X의 지진동은 성경계를 넘어 장쑤성 신이시까지 이어졌다. 진도 IX 지점은 산둥성 북쪽의 칭저우시까지, VIII 지점은 칭다오시까지 이르렸다. 건물이 붕괴할 수 있는 VIII 지진동을 느낀 지역은 무려 1만 6800k㎡ 이 넘었다. 이는 경기도 영역의 수도권보다 1.4배 더 넓은 지역이다. 상하이시정저우시, 톈진시에서도 진도 VI의 지진동을 느꼈고, 베이징시과 한반도 평안도에서는 진도 V의 지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본진 이후에도 매우 활발한 여진 활동이 있었다. 다음날 7월 26일에 규모 6.8의 가장 큰 여진이 있었고, 이후 몇년간 규모 6.5 이상의 지진이 5회 더 발생하였다. 1672년과 1688년에도 규모 6 이상의 여진이 있었다.

2.3. 지진의 피해와 영향

지진의 피해는 광범위하고 심각했다. 진앙지 근방인 주현에서만 보고된 사망자가 2만명이 넘었다고 기록되었다. 모든 관공서와 주요 건물들이 붕괴되었고, 최대 길이가 7.5km에 달하는 균열도 발생하였다. 우물과 평지에서 물이 1m 넘게 치솟고, 액상화 현상으로 꺼지며 15-20m 폭의 구덩이가 생겼다. 건축물들은 붕괴되어서 주변 100리에 온전한 집이 없이 평평했다는 기록도 있다.

탄청현에도 거의 모든 집이 무너졌으며, 이로 인해서 기록된 숫자로만 8,700명이 사망했다. 사람이 뛰어 넘을 수 없는 수많은 균열이 생겼고, 땅에서 물이 10m 넘게 치솟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또 린이시에서는 액상화현상으로 주택이 완전히 땅속으로 꺼지기도 했다. 장쑤성 렌원강시에서도 심각한 건축물 붕괴, 액상화 현상이 일어나 가축들이 파묻혀서 폐사하였다. 또한 저수지를 막던 댐이 붕괴하여 홍수가 발생, 최소 10개현의 마을에 침수가 발생했다.

또한, 이 지진으로 인하여서 쓰나미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도 있다. 화동지방의 황해에 인접한 마을에서 바닷물이 넘쳐서 인근 해안의 마을이 침수되었고, 조석, 밀물이 들어쳐서 강으로 넘쳐흘린 기록이 있다. [출처5]

이렇게 산둥성과 주변 성에서의 사망자는 무려 기록된 것만 최소 4만 3천여명이 사망했고, 종합해보면, 5만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자료에서는 11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주장하기도 한다.[출처6] 이에 따르면 중국 역사상 5번째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지진이다.

당시 황제였던 강희제는 각료에게 최우선으로 구호활동을 집중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진앙 근방의 40여개 현의 세금을 일시적으로 면제하였다. 또한, 은 22만7300냥을 구호자금으로 투입하였다.

3. 미래의 지진 위험성

탄루단층은 아직도 많은 지진을 발생시키고 있다. 탄청지진처럼 산둥성 내륙 근방에서 발생한 6이상의 강진은 1829년의 11월 19일 규모 6.5-6.8의 지진이 마지막이지만, 산둥성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많은 지진의 기록이 있다. 현재까지 탄청지진을 제외하고도 18세기 이후 탄루단층대에서 규모 7 이상의 지진은 최소 4회 더 발생하였다. 이들은 1888년과 1955년, 1969년에 발해만(보하이만)에서 발생한 지진들과, 랴오닝성에서 발생한 1975년 하이청 지진이다. 물론, 규모 8급 이상의 탄청 지진이 빠른 시일(인간의 일생)내로 산둥성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만,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이미 규모 6-7 정도의 지진은 탄루 단층대 근방 어디더라도 수십년 내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는 더 많은 도시가 형성되어 인구가 청나라 시절보다 많으므로, 지진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규모 6이상의 지진으로도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2020년대 현재에도 꾸준히 지진은 탄루 단층대에서 발생하고 있다. 2024년 9월 18일, 허페이시 근방에서 규모 4.9의 지진이, USGS 탄루 단층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2023년 10월 지난시 근방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USGS

그리고 무엇보다도, 탄루단층대를 넘어 북중국강괴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한반도의 지질환경과 큰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일단, 이 지진이 발생한지 불과 6일만인 7월 31일, 평안도 철산군 근해가 진원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은 추정진도 VI로, 지붕과 기와가 기울어지고, 바닷물이 넘쳤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현종 9년 6월 23일[8] 물론, 이 지진이 탄청지진과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황해에서 지진해일(쓰나미)를 일으킨 거대지진이 같은 지질인 북중국강괴에서 일어난 것을 보면, 유발지진일 가능성도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17세기(1600년대)부터 18세기(1700년대)초반까지의 북동아시아의 지질환경은 매우 활발한 편이였다. 중국에서는 탄청지진 뿐만 아니라 1604년 푸젠성 지진, 1679년 랑팡시 지진, 1695년 산시 지진등 대규모의 지진이 많이 발생하였다. 또한 일본 역시 1611년 게이초 산리쿠 지진, 1662년 휴가나다/돈도코로 지진, 1677년 보소해역 지진,1703년 겐로쿠 대지진, 1707년 호에이 대지진등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도 1643년 울산 대지진, 1681년 양양 대지진을 포함한 규모 7이상의 지진이 여러번 발생하였던 시기였다. 큰 규모의 지진외에도 현재 지진 활동이 잠잠한 개성과 서울, 강화도에도 규모 6급 지진이 연달아 발생하였다. 백두산 역시 이 시기에 1654년, 1668년, 1673년, 1702년 분화하였고, 특히 1668년과 1702년은 확실하게 강한 분화가 발생한 해이다. 물론, 한,중,일의 지질학적 활동성이 서로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을 볼 때, 동북아시아의 유사한 지질학적 환경에 있는 인접국의 지질학적 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활동적인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은 흥미롭다.

4. 참고자료

한국어 위키백과 문서:탄청지진
바이두 백과: 탄청지진








[출처1] 위키미디어 공용 [2] 탄루 단층은 단층이 이어진 북쪽의 산둥성 탄청시의 탄, 남쪽의 안후이성 루장현의 루를 따온 것이다.[출처2] “한반도 지진 특성 및 연관 현상 분석, 제3절 황해 북중국 지괴와 남중국 지괴 사이 충돌대의 지진학적 추정”. 연세대학교. 2015년 2월.[4] 승정원일기 현종(顯宗) 9. 6.[출처4] NOAA Natural Hazards Data, Images and Education[출처5] NOAA Tsuami database [출처6] (季同仁& 季爱东, 1994)[8] 김소구, 1982년, '한반도와 그 인접지역의 지진'에 따르면 규모 6.4로 추정한다. NOAA의 데이터에서는 이 바닷물이 넘친 해일 현상을 탄청대지진과 별개로 발생한 쓰나미 현상으로 보지만, 정말로 해일이 발생했는지는 확실하치 않다고 보고 있다. NO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