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2:01:38

협보


파일:고구려 군기.svg
고구려 대보 및 좌·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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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대보
협보 | 陜父
<colbgcolor=#191970> 국적 부여고구려
주군 동명성왕유리명왕
직위 대보(大輔)
이름 협보(陜父)
생몰연도 ?~3년 이후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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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구려개국공신.

2. 생애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부여에 살았던 시절부터 오이, 마리 등과 더불어 그의 친구였다고 전한다. 이후에 부여왕자 대소에게 위협을 당하던 동명성왕이 오이, 마리 등과 함께 부여에서 탈출할 때 동행하였으며, 훗날 고구려 건국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함께 동명성왕을 따라 나섰던 친구인 오이나 마리 등과는 달리 전쟁에 참전해서 활약한 기록이 전무하며, 때문에 장수였던 오이, 마리 등과는 달리 무관이 아닌 행정 관료나 학자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동명성왕이 죽고 유리명왕이 왕위를 이어받은 후에도 관료로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유리왕 대에는 아마도 내정을 관장하는 대보의 직위까지 오를 정도로 큰 비중을 지닌 인물이었다.[1]

그런데 서기 3년(유리왕 22년)에 협보가 유리왕에게 "정사를 소홀히 하니 바로잡으소서"라고 간하자 분노한 유리왕이 협보를 대보에서 파하고 관원(官園)[2]의 일을 보게 했다고 나온다. 개국공신에게는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토사구팽에 실망한 협보는 그대로 고구려를 떠나서 남쪽의 한(南韓)으로 가버렸다고 전한다. 이후의 행보는 기록에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협보 이후 대보에 대한 기록이 없고 좌보와 우보로 분할된 점을 보면 유리왕이 국정 개편을 했을 가능성도 있는 듯.[3]

위서 고구려전에 실린 고구려 건국기사에서는 오이, 마리, 협보가 아닌 오인(烏引)·오위(烏違) 2인이 주몽과 남하했다고 적고 있다.

내정의 요직을 맡고 있던 개국 공신을 관청의 정원 관리인으로 강등시킨 걸로 보면 유리왕과 협보 사이에 상당히 험악한 기류가 흘렀던 것으로 보이고 이후 협보는 고구려에 실망해 그대로 고구려를 떠나 남쪽의 삼한으로 이주한 걸로 보인다. 고구려 건국 이후 체제를 굳혀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지배 계층 간의 갈등을 상징, 또는 조선 개국 이후 왕족개국 공신 세력 간의 권력 싸움과 유사한 경우로 보기도 한다. 마치 권력이 강해진 공신 세력을 대거 숙청하여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조선 태종이나 고려 광종처럼 유리왕 입장에서도 선제의 큰 신임을 받은 개국 공신이 부담되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3. 여담

파일:협보(주몽).jpg* 사극 주몽에서도 등장한다. 배우는 임대호. 오이와 마리 등과 함께 부여에서 무뢰배 생활을 하다가 주몽과 의형제를 맺고 고구려 건국의 공신이 된다. 작중에서는 삼국지연의장비를 오마주한 듯 산적처럼 험악한 외모의 장사로 묘사되었고 고구려가 건국하면서 호위총관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 고구려본기의 초기 기록을 보면 협보는 오히려 문관 내지는 학자로, 오이와 마리 등과는 달리 군사적으로 활약한 이야기가 전무하다.재미있게도 작중에서 소서노의 심복인 행수 사용과 동성 연인으로 묘사되는데, 코믹하면서도 애잔한 묘사 덕분에 당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라스’ 임대호, 배수빈이 꼽은 ‘설레는 상대역’ 1위임대호 “배수빈과 멜로신 힘들었다” 고충토로배수빈, “임대호와 멜로 나도 모르게 설렌다” 깜짝 고백
  • 드라마의 영향 때문에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에서도 장비와 같은 수염이 우락부락한 싸움을 좋아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 위서인 환단고기에는 협보가 다파나국[4]을 세웠다고 되어 있다. 물론 위서이니 사실일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유리왕 재위 시기까지 고구려의 신하였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석탈해 출신국의 건국자가 되는 건 연대상으로 불가능하다.

[1] 중국의 벼슬로 치면 재상에 해당하며 대보는 이들 재상들 중에서도 우두머리 격인 인물로 중국 사극에서 왕 바로 밑의 벼슬이라 할 수 있는 승상에 해당하는 매우 비중이 높은 자리로 같이 건국 주역인 오이, 마리가 장수, 장군의 기록은 있어도 무장을 아우른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더 높은 벼슬에 올랐다고 보면 된다. 협보 개인의 능력이 매우 비범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이다.[2] 관청의 동산을 말하는 것으로, 요즘으로 치면 국무총리, 그것도 그냥 총리가 아니라 초대 총리에게 정원사 일을 보게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3] 다만 중국에서도 확인되는 좌보/우보와 달리 대보는 한국 측 기록(고구려, 신라)의 초기 관직으로만 나와 좌/우보 이전의 위치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신라에서는 신라에서 태어난 김알지를 제외한 외부인이던 호공석탈해에게 이 관직을 수여했기 때문에 외부인 집단에게 주는 관직이라는 설도 있다.[4] 신라의 석탈해가 출생했다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