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운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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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창단 | → | 허운 (1982~1985) | → | 이철성 (1986) |
허운 許云 | Heo Woon | |
출생 | 1959년 8월 18일 ([age(1959-08-18)]세) |
인천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동산고 - 중앙대 |
포지션 | 내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멤버 |
소속팀 |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 (1982~1985) |
경력 | KBO 심판위원 (1987~2007) KBO 경기운영위원 (2008~2019) KBO 상벌위원 (2010~2011) KBO 규칙위원 (2010~2012, 2020~2023) KBO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 (2014~2019) KBO 심판위원장 (2020~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심판위원 (2006) |
[Clearfix]
1. 개요
전 삼미-청보 소속의 야구선수이자 KBO리그 심판위원 및 경기운영위원, 전 KBO리그 심판위원장.2. 선수 경력
선수시절 허운.
동산고등학교를 거쳐 중앙대에서 아마 시절을 지냈다. 70년대 당시 동산고나[1] 중앙대나 별 볼일 없는 팀이었고, 허운도 레귤러로 있긴 했지만 별 주목을 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멤버로 선발되었다. 원년 삼미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으나 성적은 타율 2할 초반 언저리로 좋지 못했다. 82시즌 이후 정구선, 이선웅, 이영구와 같이 탄탄한 내야 자원들이 들어오면서 허운이 설 자리는 없어졌고, 83시즌 10경기 출장, 84시즌 4경기 출장으로 아예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84시즌 이후 부상을 당한 후 85시즌엔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시즌후 방출당했다.
3. 심판 경력
2006년의 어떤 경기가 개시되기 전에 공인구 규격을 보는 허운. 왼쪽 사람은 최규순이다.[2]
은퇴 후 1987년 팀 선배 김호인과 같이 KBO 심판위원에 합격하여 최초의 프로 선수 출신 심판위원이 되었다. 1987년부터 2007년까지 20년 동안 통산 1955경기에 출장하여 베테랑 심판으로 활약하였다.
옛날부터 이상하게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일이 많았는데, 주로 해태 타이거즈와 악연이 많았다. 1990년 판정에 불만을 품은 김봉연 해태 코치에 뺨을 맞은 적이 있고, 1996년 한국시리즈 당시 현대 유니콘스와 맞붙은 해태 측에서 인천 출신인 허운과 김호인의 심판 출장을 기피하는 일도 있었다. 1999년에는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김성근이 허운 심판을 폭행하여 12경기 출장 정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예로부터 공정성 측면에서 별로 좋은 소리는 못 들은 모양이다.
2007년 김호인과의 심판 파벌 싸움 논란으로 허운과 같이 심판위원직을 사직하였다.[3]
심판 퇴출 이후 경기감독관,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 등을 거쳐 2020년 KBO리그 심판위원장으로 심판계에 복귀하였다. 참고로 파벌싸움으로 인해 같이 나간 김호인도 2017년 KBO 비디오판독센터 단장으로 부임하였다.
심판위원회장 부임 이후 2020시즌 개막 3경기만인 5월 7일 문학 한화-SK전에서 오심을 한 1군 심판조 5명을 전격적으로 퓨처스리그로 내리는 강수를 두었던 적도 있지만[4], 심판의 원칙없는 스트라이크존 판정에 대해 여전히 옹호하면서 링크 결국 심판들 감싸기가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 있다.
2022년 9월 16일 잠실 kt-LG전에서 우천 노게임을 LG 측에만 고지한 것에 대해 kt 이강철 감독이 항의하자 설명할 의무가 없다고 해명하였다. 이에 대해 그렇다면 왜 LG측에만 편향적으로 설명하였느냐는 반박이 제기되고 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82 | 삼미 | 63 | .225 | 38 | 4 | 0 | 2 | 11 | 16 | 0 | 6 | 25 | .251 | .284 | .536 |
1983 | 9 | .308 | 4 | 0 | 0 | 0 | 1 | 0 | 0 | 1 | 2 | .357 | .308 | .665 | |
1984 | 4 | .200 | 2 | 0 | 0 | 0 | 0 | 1 | 0 | 2 | 1 | .333 | .200 | .533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장타율 | 출루율 | OPS |
1985 | 삼미 / 청보 | 1군 기록 없음 | |||||||||||||
KBO 통산 (3시즌) | 76 | .229 | 44 | 4 | 0 | 2 | 12 | 17 | 0 | 9 | 28 | .264 | .281 | .545 |
5. 관련 문서
[1] 77년도 청룡기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70년대에선 이 기록이 전부이다.[2] 최규순은 대표적인 허운 파벌의 심판으로 통하였다.[3] 김호인이나 허운이나 파벌 의혹을 부인하고 있으며, 매스컴에서 이간질을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향 출신에 형동생 하는 사이인데 파벌이라는 게 있겠냐고... 하지만 당시 KBO의 심판 퇴출 조치 당시 파벌로 나뉜 심판들끼리 단체행동도 불사한 정황이 정확히 드러난다. 사실 김호인vs허운 간의 싸움이라기 보단 하일성 당시 KBO 사무총장 부임 이후 심판계의 판을 다시 짜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KBO vs 심판진 간의 이권 다툼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가장 큰 심판 파벌 집단인 김호인과 허운의 심판 집단이 수면에 드러났을 뿐.[4] 다만, 이 시즌부터 심판조가 6개조로 늘어나 1개조씩 돌아가면서 퓨처스 리그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변경되어서 로테이션을 살짝 조정시킨 것이지 큰 징계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로 2주만에 해당 심판조원들은 1군으로 복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