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0-23 21:54:24

해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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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가사4. 표절 피해?5. 리메이크6. 노래비

1. 개요

1975년에 발표해 송대관을 스타덤에 올린 전설적인 대중가요.

2. 상세

작곡은 데뷔초부터 송대관과 함께한 작곡가 신대성[1]이 하였으나, 작사는 송대관 본인이 하였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해뜰날 첫 앨범에 "쨍하고 해뜰날" 하는 부분의 여성 코러스 주인공이 아모르 파티로 유명한 김연자라는 것이다. 사실 송대관과 신대성은 여성 합창단의 녹음을 원했으나, 섭외비가 부족해서 한명만 하기로 했고 당시 비교적 몸값이 싼 김연자 한명을 섭외하는 걸로 대신했다고 한다.

1967년에 데뷔했지만 오랜 무명 시절을 지낸 송대관은 이 곡을 통해 최고의 대중가수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실제 1976년 1월 23일 경향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그 당시 송대관은 3, 4년 전에 흘러간 가수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동아일보 1972년 9월 21일 기사엔 TBC 가요대상 신인 부문 후보였다고 나온다.

무명으로 살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송대관은 어느 날 자신의 힘들던 청년기를 혼자 되돌아보다가 갑작스레 큰 감흥을 얻어, 아무 종이에 미친 듯이 가사를 써 버렸다고 한다.

다 쓰고 나서 다시 한번 본 뒤 느낌을 받은 송대관은 역시 자신처럼 가난한 무명 작곡가 신대성이 살던 종로 뒷골목 단칸방으로 뛰쳐가 그 종이를 주고 "신선생, 나도 좀 떠야겄어! 도와주쇼!"라 외쳤고, 가사를 보고 갑자기 머리가 쨍하면서 이건 되겠다고 느낀 신대성이 느낌을 살려 작곡했다고 한다.

대신 원래 송대관이 쓴 가사는 실제 가사보다 훨씬 거칠어 심의 통과를 못해 수정을 하였다고 한다.[2]

막상 앨범 녹음하면서는 엄청난 반향이 올 거라는 느낌까지는 못 받았으나, 막상 1975년 말 발매가 시작되자 당시 오일 쇼크에 지쳐있던 시대 분위기로 인해 대중들이 크게 호응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몇 달 안 가 1976년 초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했다. 당시 1위 곡을 부르려고 무대에 올라간 송대관은 전주가 끝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눈물을 줄줄 흘렸고, 다음날 신문들의 연예면은 "송대관의 해뜰날이 국민들을 울렸다"는 내용으로 도배되었다. 결국 송대관은 그해 말 가수왕이 되어 최고의 트로트 스타가 되었다.

당시 대마초 파동으로 다른 가수들이 활동 금지를 먹은 반사효과를 얻은 면도 있다고 위 기사에선 분석하지만, 노래가 좋지 못했다면 그런 반사효과를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노랫말과 음정 모두 희망적이면서도 가슴 찡한, 경제부흥기 한국만의 감성을 잘 표현하여 시대를 초월하여 50년 가까이 사랑받는 명곡.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거라 꿈꾸면서 경제 개발에 매진하던 당시 시대 분위기를 대표하는 음악이기에 당시에 히트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회자되는 음악이 될 수 있었다. 유튜브의 댓글을 봐도 노래에 감정이입돼 눈물이 났다느니 펑펑 울었다느니 하는 등의 댓글들을 볼 수가 있다.

3. 가사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뛰고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산뜻하게 맑은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4. 표절 피해?

J.Geils Band의 Centerfold
비교 영상

미국의 그룹 J.Geils Band가 1981년에 발표한 노래 Centerfold가 송대관이 1975년 발표한 해뜰날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다. 발표 당시부터 그런 의혹들이 강하게 나와 미국에 확인 편지도 띄웠다고 한다. 당시 기사 이후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불명이지만 당시 송대관 측이 표절 항의를 하였음에도 J. Geils Band 측이 무시하고 씹었다는 주장이 있다.[3] 출처 참고로 해당 표절 의혹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6주간 차지했을 정도로 당대의 히트곡이다. 2012년에는 조민기가 나온 신라저축은행 CM송으로도 리메이크됐다.

5. 리메이크


2008년에 신지가 리메이크한 버전이 발표되었다. 힙합 듀오 마이티 마우스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6. 노래비

파일:해뜰날 노래비.jpg
파일:해뜰날 노래비2.jpg
[4]
노래를 기념하는 노래비가 작곡가 신대성의 고향인 안동의 세계물포럼기념공원, 송대관의 고향인 전라북도 정주시내장산 문화광장 내에 있다. 또한 송대관의 모교인 전주시 전주영생고등학교에도 이 해뜰날 노래비가 있다.


[1] 본명은 최시걸이다. 신대성은 예명. 당시에 그가 사귀던 현재 부인 이름이 신영희라서, 부인에게 성을 따오고 앞으로 대성하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대성이라 지었다는 이야기를 송대관이 한 적 있으나 신대성에게 직접 검증되지는 않았다. 사실 송대관처럼 가수 활동도 했던 작곡가 겸 가수(1948년생이라 송대관보다 2살 어리다)이나, 가수로서 인기도 못 얻었기도 했고 작곡의 재능이 더 뛰어나서 가수를 포기하고 작곡가의 길만 걷기로 하면서 송대관과 쭉 함께했다고 한다. 송대관은 신대성이 동생이지만 항상 그를 최선생이나 신선생이라 불렀다고 한다. 2010년에 사망하였는데, 당시 송대관이 장례식장에서 오열하였다고 알려진다. 크러쉬의 고모부이기도 하다. 1994년 10월 23일부터 죽기 직전까지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을 지냈다.[2] 원래 가사는 '운명아 비켜라 내가 나간다, 떠도는 놈이라고 괄시를 말아라, 쨍하고 해뜰날 있을 거니까' 같은 내용들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수정해서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로 바꿨더니 심의위원 측에서 '쨍하고 해뜰날 돌아왔단다로 해야지, 왜 돌아온단다로 해서 아직 해뜰날이 안 돌아온 걸로 만드냐?'며 압박도 주었다고 한다.[3] 여담으로 LA 다저스 홈구장 다저 스타디움의 배경음으로 허구한 날 나오는 바람에 중계를 보던 한국인들이 '미국 야구장에 웬 해뜰날?'이라며 궁금해 했다고 한다. 야구 선수 나경민의 응원가이기도 하다.[4] 경상북도 안동시 세계물포럼기념공원에 설치된 노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