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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2003년 포스트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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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p4rcEr.png KBO 포스트시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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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준플레이오프
2.1. 경기내용
2.1.1. 1차전: SK, 상대 1선발을 초반부터 몰락시키다
2.1.1.1. 스코어보드2.1.1.2. 상세
2.1.2. 2차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삼성, SK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행!
2.1.2.1. 스코어보드2.1.2.2. 상세
2.2. 결과
2.2.1. 최종순위 4위 삼성 라이온즈
3. 플레이오프
3.1. 경기내용
3.1.1. 1차전: 파죽지세의 SK, 에이스를 무너뜨리다
3.1.1.1. 스코어보드3.1.1.2. 상세
3.1.2. 2차전: 전 롯데감독의 투혼, SK를 이끌다
3.1.2.1. 스코어보드3.1.2.2. 상세
3.1.3. 3차전: 베테간의 대결, SK가 스윕으로 가져가다
3.1.3.1. 스코어보드3.1.3.2. 상세
3.2. 결과
4. 한국시리즈
4.1.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2003년 프로야구에서는 1위 현대 유니콘스, 2위 KIA 타이거즈, 3위 삼성 라이온즈, 4위 SK 와이번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특이사항으로는 현대가 정규시즌 우승에 이어 3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 SK 와이번스가 창단 4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서 삼성, KIA를 패배없이 연파하고 일명 돌풍의 SK 신드롬을 앞세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는 것 등이 있다. KIA 타이거즈는 전년도에 이어서 또 6할 승률 찍어놓고 플레이오프에서 4위팀에게 제압당하는 참사를 겪었다.

준플레이오프는 3위 삼성과 4위 SK의 맞대결이 되었다. 2승으로 SK의 승리.

플레이오프는 2위 KIA와 준PO를 통과한 SK의 맞대결이 되었고 SK가 3연승을 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한국시리즈에서는 1위 현대가 SK를 상대로 4승 3패로 3년 만에 3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前 인천 연고팀 현대와 現 인천 연고팀이자 쌍방울을 버린 SK의 대결패륜 더비이었다. 안 그래도 축구의 인기 때문에 관중수가 적었는데 팬들이 거의 달아난 현대와 창단 3년밖에 안 된 SK의 대결이라 큰 관심을 받지 못한 비운의 한국시리즈가 되었다. 문서 참조.

2. 준플레이오프

3위 삼성과 4위 SK의 맞대결로 이루어졌다.

SK는 당시만 해도 해체된 쌍방울의 선수들을 토대로 창단한 사실상 신생 구단이었고, 구단 창단 4시즌(만,3년)만에 진출했다.
상대는 이마양 트리오가 있던 삼성 라이온즈였다

2.1. 경기내용

2.1.1. 1차전: SK, 상대 1선발을 초반부터 몰락시키다

2.1.1.1. 스코어보드

준플레이오프 1차전 10.04(토),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3,735명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SK 김영수 1 0 2 2 1 0 0 0 0 6
삼성 전병호 0 0 1 1 3 0 0 0 X 5

▲ MVP : 이승호
▲ 승리 투수 : 이승호(20)
▲ 패전 투수 : 전병호
▲ 세이브 투수 : 조웅천
홈런 : 박경완 (3회 1점) 김민재 (4회 2점) 이상 SK 이승엽 (5회 1점) 이상 삼성[1]

2.1.1.2. 상세

SK의 선공이었는데 시작초반부터 삼성 선발 전병호[2]를 몰아내고 이 기세에 박경완김민재 홈런으로 앞서 나가며 가볍게 그냥 먼저 1승을 가져갔다. 근데 그게 끝이다.

그러나 7회말 김한수삼중살을 치는 바람에 삼성은 경기, 아니 시리즈의 판도를 완전 내줘버렸다. 관중들 함성 부터 가관이다.

당시 양 팀의 하위타선 부재가 너무 컸다. 한동안 점수를 못내다가 삼성의 추격전으로 경기가 좀 재미있게 흘러나가던 참이었으나, 삼성이나 SK팬들은 오직 이승엽의 홈런[3]에만 너무 관심을 갖다가 아예 7회부터는 관중들이 대거 나가버리기도 했다.]

마무리 조웅천은 9회 등판하여 SK의 창단 첫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결국, SK의 창단 첫 포스트 시즌 승리를 챙겼다.

2.1.2. 2차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삼성, SK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행!

2.1.2.1. 스코어보드

준플레이오프 2차전 10.05(일), 문학 야구장 21,577명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삼성 김진웅 0 0 0 1 0 0 0 0 1 2
SK 김원형 0 1 2 0 0 0 0 0 X 3

▲ MVP : 김원형
▲ 승리 투수 : 김원형
▲ 패전 투수 : 김진웅
▲ 세이브 투수 : 조웅천
▲ 홈런: 고지행 (4회 1점) 이상 삼성

2.1.2.2. 상세

투수전 끝에 SK가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2.2. 결과

▲ 준플레이오프 MVP : 김원형 2경기 방어율 0.00 1승 0패

SK가 2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2.2.1. 최종순위 4위 삼성 라이온즈

삼성은 그 이마양이라는 좋은 타선을 가지고도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지 못한점은 빈약한 투수진. 당시 임창용, 배영수, 김진웅이라는 세 젊은 투수들이 있었으나 이 선수들은 당시만해도 가을야구 성적이 뒤죽박죽이여서[4] 정규리그 성적마저 방어율이 3점~5점대를 찍고 다녔다.[5][6]

비슷하게 보면 이마양과 비슷하게 있던 이택근, 박병호, 강정호로 이어지는 LPG 타선을 포함해 200안타를 때려낸 서건창까지 버티고 있어서 역대급 핵타선을 지녔던 넥센 히어로즈가 2014년 역대급 성적으로 찍고 2014년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는데 패배했다. 당시 적팀이 삼성이였다. 2004년 한국시리즈 이 후로 10년만에 만났다.물론 넥센은 당시 이름이 현대가 아닌게 함정(...)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무사 1,3루 김한수가 1년에 한번쯤 볼까 했던 삼중살을 치자 급기야 사기가 떨어졌다. 이후 포스트시즌에서의 삼중살은 15년 뒤 한화의 김회성이 재현한다.

한편 이마양의 일원이었던 마해영은 FA로이드를 받고 기아에서 2년을 뛰었지만 공갈포에 20홈런도 넘기지 못하고 결국, LG로 트레이드 1군에서는 0.071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선사 후 2군에서도 실력이 안되어 퇴출받고 고향팀인 롯데가서 은퇴를 하게 된다. 특이한 점은 엘롯기 세 팀에서 뛰고 은퇴했다.

3. 플레이오프

2위 기아와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한 SK의 맞대결로 이루어졌다.

전년도에 이어 정규리그 콩라인 2위를 기록한 기아와 삼성을 2연승으로 누르고 올라온 정규리그 4위 새내기 SK의 대결이였다.
당시, 스포츠사에서도 기아가 스윕을 한다는 기사가 꽤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뚜껑은 따야 아는법 뚜껑을 열어보니?? 승자는 SK였다.

3.1. 경기내용

3.1.1. 1차전: 파죽지세의 SK, 에이스를 무너뜨리다

3.1.1.1. 스코어보드

플레이오프 1차전 10.09(목), 무등 야구장 14,0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SK 채병용 1 1 0 2 0 0 0 0 0 4 - -
KIA 김진우(55) 0 0 0 0 0 0 1 0 0 1 - -

▲ MVP : 채병용
▲ 승리투수 : 채병용(SK)
▲ 패전투수 : 김진우(55)
▲ 세이브 투수 : 김원형
▲ 홈런: 안재만 (4회 2점) 이상 SK

3.1.1.2. 상세

20대 초반의 신예 투수진이었던 채병용과 김진우의 맞대결이었다. 둘 은 2002년도 동기이다.
하지만 SK가 김진우를 상대로 선취점을 내며 김진우를 끌어내렸고, 채병용의 호투와 마무리 등판을 한 김원형의 호투로 가볍게 승리했다.

3.1.2. 2차전: 전 롯데감독의 투혼, SK를 이끌다

3.1.2.1. 스코어보드

플레이오프 2차전 10.10(금), 무등 야구장 10,171명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SK 스미스 0 0 0 0 2 0 0 0 0 2 - -
KIA 존슨 0 0 0 0 0 0 0 0 0 0 - -

▲ MVP : 조원우
▲ 승리투수 : 트래비스 스미스[7]
▲ 패전투수 : 마이크 존슨[8]
▲ 세이브 투수 : 조웅천
▲ 홈런: 조원우(5회 2점) 이상 SK

3.1.2.2. 상세

그야말로 양 팀 타선이 모두 물빠따빈타로 허덕이던 경기였는데 당일 SK 조원우의 2점홈런이 결승점이 되었다. 단기간 싸움답게 집중력을 선보였던 경기.

3.1.3. 3차전: 베테간의 대결, SK가 스윕으로 가져가다

3.1.3.1. 스코어보드

플레이오프 3차전 10.12(일), 문학 야구장 30,4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KIA 리오스 0 2 1 0 1 0 0 0 0 4 - -
SK 조진호 2 0 4 4 0 0 0 0 0 10 - -

▲ MVP : 박경완
▲ 승리투수 : 김원형
▲ 패전투수 : 이강철
▲ 홈런: 이진영(1회 2점), 이재주(2회 2점), 박경완(4회 3점)

3.1.3.2. 상세

벼랑에 궁지에 몰린 KIA는 다니엘 리오스를, 이미 2승 고지에 오른 SK는 조진호를 선발로 냈다.

1회 말 SK 이진영다니엘 리오스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2점 홈런을 쳤고, KIA는 2회 이재주가 동점 2점 홈런으로 추격하고 3회 초에는 역전을 했지만, 다시 3회 말 두 번째 투수 이강철이 이진영의 타구에 발목을 맞는 부상을 입고, SK는 김기태(10), 이호준의 연속 안타로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포일-볼넷으로 무사 만루를 만든 SK는 정경배의 희생플라이로 역전에 성공했고, 2사 2-3루 찬스에서 대타 양현석이 2타점 우전 적시타를 쳐 순식간에 6-3이라는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4회 말에는 김기태(10)의 적시타, 박경완의 쐐기 3점포가 터져 경기는 이미 SK로 흘러갔다. 그리고 만원관중이던 SK 관중들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였는데 그게... 정말로 붙을 수 있다는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를 실현했다. SK 선수들도 큰 대회에서도 지지 않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이제 패륜 녀석들을 잡으러 가겠습니다

3.2. 결과

▲ 플레이오프 MVP : 이진영 10타수 8안타 타율 0.800 1홈런 2타점

SK가 3승 무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리고 기아는 전년도와 똑같이 공격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 김성한 감독의 삽질로 광탈했다.[9] 이번 3연패로 기아는 해태시절보다 더 못해졌다고 까였다. 그리고 덤으로 투수코치였던 김봉근 코치를 신뢰하지 않았던 점 역시 KIA의 광탈에 한 몫 했다. 2003년 초까지만 해도 김봉근은 KIA의 투수코치였으나 김성한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시즌 중 팀을 나왔고, 이에 SK가 김봉근 코치를 영입했는데, 이미 KIA의 분석을 파악하고 김정준 분석원에게 전달을 했다.[10]

결론은 김성한 KIA 감독의 미숙한 단기전 운용 능력과 쓸놈쓸이 더해지며 광탈하게 된 것.

3.2.1. SK 와이번스

3.2.2. 최종 순위 3위 KIA 타이거즈

4. 한국시리즈

2003년 한국시리즈로 이동

4.1. 기타

2000년 시즌 이래로 계속 감소한 관중 수가 기어이 최저점을 찍고 말았다. 안 그래도 이 시즌 SK는 창단 4년만에 진출한데다가 당시 인천 야구팬들은 현대의 야반도주 때문에 야구를 끊은 팬들까지 남아있어서 SK에 냉담했다가 이 시즌의 선전으로 어느 정도 돌아왔기 때문. 게다가 이 시즌은 이승엽심정수의 홈런 경쟁이 워낙 과열되면서 포스트시즌은 차분한 분위기가 되면서 빈 자리도 많이 보였다. 근데, 2001년과 2002년 한국시리즈는 흥행을 했지만 2000년과 2003년은 그야말로 흥행에 실패했다.[11] 모든게 현대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5. 관련 문서


[1] 이승엽은 일본떠나기KBO에 있던 마지막 가을야구 홈런이였다가, KBO에 복귀 하기를 무려 장장 거의 10년 만에 돌아와 2012년 한국시리즈 1차전 윤희상을 상대로 기선 제압 홈런을 날리는데 무려 3636일 만의 홈런이였다. 사실상 이승엽의 등번호 또한 36번이였는데 이 홈런은 당시 뜻 깊은 홈런이였다.[2] 전병호의 실력을 보면 가히, 1선발이 아닌데도 첫 경기에 내정한지 가장 미스테리 하다.[3] 정규시즌 홈런은 끝났지만, 포스트시즌이 남아있기 때문[4] 김진웅이야 말할 것도 없이 큰 경기에서 약한 새가슴으로 유명했고, 임창용은 이전부터 정규리그 기간에 엄청난 혹사를 당해서인지 시즌 말미에 힘이 떨어지며 포스트시즌 등 큰 경기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5] 다만 2003년이 엄청난 타고투저 시즌이었던 건 감안해야 한다.[6] 물론 임창용은 2001년~2003년 팀 내 선발 에이스 역할을 했지만 5점대를 기록한건 데뷔했던 95시즌과 삼성 라이온즈 1기 마지막 시절때 찍었다.[7] 의외로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 시즌 내내 안경을 착용하고 등판한 선수였다.[8] 6년 뒤 한국 야구에 다시 노크를 하지만, 시즌 초반에 털려서 방출 당한다.[9] 결국 2002~2003년 2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신 김성한 감독은 KIA 구단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고 이듬해 시즌 중 경질되고 만다.그리고 후임감독들에 의해 KIA는 두 차례나 꼴찌까지 곤두박질친다 김기아[10] 우리가 알고있는 그 김성근의 아들 맞다. 현역시절 일찍이 은퇴하고 바로 전력분석원으로 뛰었었다. 흔히 김정준이 아버지 김성근이 부임한 2007년부터 SK 전력분석팀에 들어온 줄 아는 사람들이 많으나, 바로 전년도까지만 해도 아버지 김성근이 있던 LG의 전력분석팀에 있었다가 김성근이 경질당한 후 곧바로 SK로 이적, 2003년부터 SK 전력분석팀으로 재직하기 시작했다.[11] 당장 유튜브 등에서 2000년과 2003년 한국시리즈 관련 영상을 찾아보면 경기 중에 관중석이 텅텅 빈 게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