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09:28:09

플래닛 할리우드

플래닛 헐리우드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
2.1. 창립2.2. 몰락
3. 한국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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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lanet Hollywood

미국레스토랑 체인점이자 리조트 운영 기업.

2. 역사

2.1. 창립

소피의 선택, 도망자, 마지막 액션 히어로, 나인 하프 위크 같은 영화를 기획 및 제작했던 케이스 바리쉬(Keith Barish)가 레스토랑 체인 사업으로 유명한 로버트 얼[1]이란 사업가를 1980년대부터 만나서 논의하던 게 시작이었다. 디즈니랜드의 레스토랑들처럼 헐리웃 유명 배우들 캐릭터 및 여러 상품을 사고 보면서 식사도 할 레스토랑이란 당시로서는 신선한 사업이었다. 대주주로 브루스 윌리스,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워제네거 같은 당대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참여하면서 세계적 화제를 모았고 이렇게 1991년 뉴욕 카네기 홀 근처에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실제 할리우드 영화에서 쓰인 소품과 의상 및 관련 자료로 내부를 장식한 색다른 분위기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았으며 메뉴에는 특이하게 아널드 슈워제네거 어머니가 굽던 방식으로 만든 애플파이 같은 메뉴가 있었고 대주주로 참여한 유명 배우들이 열심히 홍보한 덕에 성공을 거뒀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전세계적으로 체인점이 우후죽순 후다다닥 생겨났다.

2.2. 몰락

1996년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95개에 이르는 체인점을 가졌고, 300개로 늘린다는 목표를 가졌지만 2년도 안 가 재정 문제에 빠졌다. 이 와중에도 1998년에는 쿨 플래닛 아이스크림이라는 아이스크림 전문점 사업도 했으나 1년도 안 가 망해서 사라졌다. 결국 1999년 챕터 11 파산보호신청을 내면서 실패한 걸 인정하고 만다.
실패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분석되었는데
  • 결정적으로 맛이 없다. '하든스(Harden's) 런던 레스토랑 가이드'가 플래닛 헐리우드에 대해 '관광객들이나 찾아가볼 레스토랑', '아이 손잡고 딱 한 번 가볼 곳', '맛으로 기대하고 가면 대주주인 배우들에 대한 배신감만 얻는 곳'이라는 평가들을 내릴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이후, 2001년 10월 다시 한번 챕터 11 파산 보호 신청을 한다. 이번에는 9.11 테러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원인으로 손꼽혔다. 이로 인해 1억 3500만 미국 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

이거 다 하나같이...
결국 2013년만 해도 같은 여행지에 그나마 체인점 20개만 남았으며 유명 배우인 대주주들도 지분을 팔고 여기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전세계적으로 14개만 남아있었다.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어 2019년에는 달랑 7개만 남았다. 2020년엔 코로나 19 여파로 전세계 관광업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기에 여기도 다 문닫고 사라질 듯 했으나 딱 1개만 문닫고 2022년 기준으로 6개 점포가 남아서 영업을 유지하고 있다.

3. 한국 지점

논현동 지점 사진

외식업체인 홍능갈비(대표 고자홍)와 영화 수입사인 삼호필림(대표 박효성)[2]이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브루스 윌리스 등 헐리우드 스타 4명과 합자해 한국 지점을 세웠는데 1994년 5월 27일에 기공식을 열었다. 이때 한국에 온 브루스 윌리스가 고사에 참여하여 제삿상 앞에서 절을 하고 막걸리도 따르고 돼지머리 입에다 100달러짜리 지폐도 한 묶음 꽂아 넣었다. 그리고 2일 뒤 MBC 예능프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 283회(1994년 5월 29일 방영분)에서 이문세가 진행할 당시 출연해서 홍보를 했는데, 브루스의 통역은 최연제가 맡았다. 기공식 전 녹화방송 당시 여의도 MBC 사옥에 늦게 도착하는 등 비매너를 보인 채 양말을 벗고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오죽하면 이 프로그램을 보고 할리우드 레스토랑 홍보방송이냐는 비난이 쇄도했다. 난데없이 윌리스의 사생활이라느니 당시 이 프로에서 한복 모델로 나온 게스트 홍진경이 당시 윌리스의 마누라이던 데미 무어보다 내가 예쁘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등 진행도 비판받았다.

1995년 5월 14일에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에 문을 열었으며 5월 22일 개장행사를 열었는데 이 행사에는 장 클로드 반담, 신디 크로포드, 돈 존슨 같은 미국 배우들도 같이 참석했으며 박중훈, 이승연, 장동건도 참여했다. 당시 저녁 8시에 행사가 열렸는데 수천여명이 몰려와 꽉 차서 교통경찰 100여명이 와서 통제해야 했다고 한다.[3] 이런 화제를 모으며 한국에서도 아주 잠깐 잘 되는 듯 했으나 결국 한국에서도 오래가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하루 매출액이 4천만원이 넘을 정도였지만 두 달도 안 가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 하루에 몇 백만원조차 채우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1995년 12월에는 위생 상태 불량으로 서울시에서 영업 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결국 1995년 12월 20일, 겨우 7달 만에 문닫고 영원히 사라졌다. 삼호필림도 이 실패로 타격이 컸는지 1996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가본 이들의 평에 의하면 맛이 평범한 게 엄청 비쌌다고 한다. 일반 만두가 8개에 9700원인데 큰 만두도 아니고 특이한 맛도 아닌게 이랬으며[4] 햄버거도 1만원이 넘었다. 스테이크류는 4만원을 넘고 파스타는 2만원이 넘었는데, 지금 물가로 봐도 꽤 비싼데 당시 물가로 치자면 더더욱 엄청 비쌌거니와 맛도 너무나도 기대 이하라는 악평만 넘쳐놨으니 역시 오래갈 수 없었다.

한국에서 개장 공연 행사 때 주최측에서 웬 대학생을 데리고 행사 책임자에게 와서 '얘가 끼가 있어 보이는데 한번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책임자는 그 대학생이 얼굴도 별로라 영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부탁하니 거절하긴 뭣해 행사 직후 노래 한 곡을 부르게 했는데 정말 노래는 잘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방송이 생방송이기 때문에 기획되지 않은 사람을 올려서 실수가 생기면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기 때문에 마뜩치 않았다고. 몇 달도 안 가 그 대학생을 TV에서 보게 되었는데, 바로 박진영이었다! 그 책임자의 회고

그러나 한국 개장 당시인 1995년에 박진영은 이미 1집의 성공으로 유명해진 후였다. 심지어 이 때 내한한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따라서 위 회고는 시간이 흘러 발생한 기억의 변조 등으로 인한 착각이거나 책임자가 박진영을 모르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 성이 Earl. 백작이라는 뜻이다. 2004년 실제 샌드위치 백작의 11대인 존 에드워드 홀리스터 몬터규 샌드위치 백작과 합작으로 미국에서 샌드위치 백작(Earl of Sandwich)이란 가게를 미국 올랜도에 열었다. 더 웃기는 게 12대 샌드위치 백작이 될 사람 이름이 올랜도 몬터규.[2]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든지 첫사랑(1993년) 같은 이명세 감독의 영화들을 제작했으며, 격주간 영화 정보지 <시네마데끄>를 출간한 바 있다.[3] 이 당시 교통통제를 했던 한 경찰관은 '아니 고작 미국 레스토랑 하나 문열었다고 경찰이 나서서 이렇게 해야 하나?'라고 인터뷰를 하였다.[4] 이 당시 분식집에서 만두 8개 1인분이 대략 2000원 정도 했으며, 롯데월드나 에버랜드(그 당시 자연농원)같은 놀이공원에서도 만두 1인분은 4000원 정도에 판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