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23:34:50

페트르 체흐/클럽 경력/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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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르 체흐
2004-2015
2020-2021
파일:FLKZ_qDXIAAXWXH.png
▲ 2004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등번호 1
39(2020-2021)
기록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 (07-16).svg
333경기
242실점 166클린시트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94경기
83실점 40클린시트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 가로형.svg
9경기
10실점 1클린시트
파일:FA컵(잉글랜드)로고(화이트).svg
33경기
28실점 14클린시트
파일:capital.png
17경기
15실점 7클린시트
파일:crR1Bvv.png
4경기
7실점
파일:UEFA 슈퍼컵 로고_white.svg 2경기
6실점
파일:FIFA 클럽 월드컵 로고.svg 2경기
2실점
합산 성적
494경기
393실점 228클린시트

[clearfix]

1. 개요

페트르 체흐첼시 FC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이적

스타드 렌 FC에서[1] 7백만 파운드에 이적했다. 리그 앙에서도 워낙 못하는 구단 중 하나였지만 그런 덕택에 골키퍼로의 역할을 보여줄 기회가 많았고 이런 점들이 여기저기 어필해서 첼시로 옮길 수 있었다. 원래 체흐는 카를로 쿠디치니의 백업으로 원래 영입되었다. 운명이 뒤바뀐 남자들[2] 2000년대 중반부터 끊임 없이 이적료가 치솟아서 그렇지 당대에는 백업 골키퍼치고는 적은 가격은 아니었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본 듯하다. 무리뉴와 첼시의 전성기를 같이 보낸 멤버지만 막상 영입은 전임 감독이자 차후 레스터 시티 FC의 우승을 이끈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에 의해 이뤄졌다. 영입하고 짤려서 그렇지.

3. 첼시 FC 1기

3.1. 2004-05 시즌 ~ 2010-11 시즌

2004-05 시즌 주제 무리뉴 감독이 부임한 후 프리시즌에 쿠디치니가 팔꿈치 부상으로 빠지자 그가 대신 주전 골키퍼로서 뛰게 된다. 그리고 그는 데뷔전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전에서 무실점으로 1 : 0 승리를 견인한다. 그리고 대기록이 시작되었다. 리그 1,025분 연속 무실점[3].

계속 주전으로 뛰면서 체흐는 좋은 경기력을 이어나갔으며 04-05시즌 첼시는 체흐-갈라스-카르발류-테리-페헤이라로 이어지는 포백에 클로드 마켈렐레의 수비 라인은 그야말로 통곡의 벽이었다. 결국 리그에서 15실점만 기록하면서 역대 최소 실점 우승을 기록했고 체흐는 이후 붙박이 주전으로 올라섰다.
파일:2014-02-05_15;34;50.png
어린 나이에도 엄청난 수비력으로 첼시를 두 시즌 연속 우승으로 이끈 체흐였다. 그리고 쿠디치니는 백업으로 전락했고 체흐의 백업, 첼시의 백업 키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2006년 10월 14일, 레딩전에서 체흐는 레딩의 미드필더인 스티븐 헌트와의 충돌로 인해서 머리 부상을 당하게 된다. 고의성이 있는지 여부는 스티븐 헌트만 알겠지만 충돌 당시 키퍼를 피하려는 동작이 아주 확실하다고 보긴 어려웠다. 문제는 리플레이에서 스티븐 헌트의 무릎에 머리를 정통으로 가격 당한 게 분명한데도 주심은 이것을 보지도 못하고 체흐가 머리를 감싸쥐며 고통을 호소해도 '아프면 니가 니 발로 나가라'는 뉘앙스로 그에게 선수 터널 쪽을 가리켜 체흐가 기어서 나가게 해 매우 논란이 됐다. 결국 그 경기에서 체흐는 의식 불명에 빠지게 되고 눌린 뼈 복원 수술을 하게 된다. 초기엔 부상의 심각도를 몰랐지만 의사들은 이 부상으로 그가 생을 마감할 뻔했다고 한다.[4] 이후 스티븐 헌트는 첼시 팬들의 공적으로 등극(...) 이날 경기는 체흐 말고도 대타로 나온 쿠디치니도 위험플레이를 당하고 기절[5]해 버려 교체할 골키퍼가 없어서 존 테리가 임시로 골키퍼로 뛰기도 하는 등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이 경기는 당시 설기현레딩 FC로 이적했던 시기라 MBC ESPN에서 맨유는 물론이고 레딩 경기도 생중계를 해주던 시절이였고 하필이면 한국의 축구 팬들은 이 충공깽스런 광경을 라이브로 볼 수 있었다.
파일:Yx9L3h0.jpg
2007년 1월 20일 리버풀과의 경기에 그는 럭비에서나 쓸법한 헤드기어를 쓰고 나타났다. 얄궂게도 이 헤드기어는 이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는다. 럭비 기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에서 그의 헤드기어를 만들었고 충돌로 인해서 약해진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플라스틱 충합제를 덧붙였다. 부상에서는 얼추 회복됐지만 이후에도 안전을 위해 헤드기어를 벗지 않고 있다. 인터뷰할 때는 벗기도 한다.#이 동영상 40초 참고[6]

머리 부상 이후 그 전에 비해 종종 실수가 나왔다. 부상전에는 키퍼로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결점이 거의 없는 키퍼였다면 이후에는 아주 가끔 알을 깠지만 그래도 굉장히 안정적인 키퍼로 다시 돌아온다. UEFA 유로 2008 터키와의 경기에서는 2대1로 앞선 상황에서 동점을 허용하는 결정적인 실책을 범했고, 결국 팀은 2대3의 역전패를 당하며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폼을 다시 끌어올렸던 4년 뒤 UEFA 유로 2012 그리스와의 경기에선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에 오는 얼리크로스를 처리하는 펀칭을 시도하려다 센터백 토마스 시복과 살짝 부딪힐 뻔했는데[7] 공 처리 겸 머리를 보호하려 한 펀칭이 그리스 공격수 게카스에게 향해 골을 먹힌 적이 있다.

특징으로는 역시 엄청난 안정성과 큰 키를 통한 제공권 및 크로스 장악, 그리고 깔끔한 선방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안정성 하나만큼은 리그 내 다른 빅 클럽의 골키퍼들과 비교했을 때 가히 월등한 수준.[8]

비록 머리 부상 이후 폼이 떨어져 08/09 시즌까지만 해도 활약이 석연찮았지만, 09/10 시즌부터 서서히 폼이 돌아왔다는 평이 많다. 특히 09/10 시즌에서는 클린시트 17경기를 기록하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여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체흐가 부상으로 잠시 없었을 때 백업인 일라리우와 턴불이 아쉬운 모습만 보이면서 체흐의 공백을 실감케 했다. 포츠머스와의 FA컵 결승에서는 케빈 프린스 보아텡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더블을 이끌어냈다. 10/11 시즌도 중앙 수비진이 줄부상하는 가운데 열심히 뛰어다니며 선방쇼를 벌였다.

3.2. 2011-12 시즌

11/12시즌에서는 다소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이긴 했지만(특히 팀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좀 실력이 안좋았다.)[9] 챔스 예선 6차전 발렌시아와의 결전에서 수많은 슈팅들을 혼자 다 막아내는 갓모드를 발동하면서 드록바와 함께 팀을 16강에 올리는데 일조했다.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11115120425606.jpg
자세히보면 알겠지만, 코를 감싸는 건 헤드기어가 아니라 보호대라서 분리되어있다. 2011년 12월 후반부터 코보호대는 쓰지않는다.

그리고 운명의 2011/12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FC 바르셀로나와 스탬포드 브릿지에서의 설욕전에서 바르셀로나의 막강한 화력을 모조리 막아내며 디디에 드록바와 함께 MVP급 활약을 펄쳤다. 4강 2차전에서도 결정적인 선방등을 여럿 해 MOM으로 선정되었다.
파일:external/www2.pictures.zimbio.com/FC+Bayern+Muenchen+v+Chelsea+FC+UEFA+Champions+GlHJHDpxWAKl.jpg
{{{#ffffff 아르연 로번의 페널티킥을 선방해 내는 체흐}}}
5월 20일날 열린 2011/2012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도 체흐다운 결정적인 선방을 몇차례 보여주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1:1로 진행된 연장전에서는 드록바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프랑크 리베리를 담가버리는 바람에 PK가 주어진 절체절명의 순간, 체흐는 아르연 로번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팀을 승부차기로 이끈다. 뒤이은 승부차기에서는 1~3번 키커에게 골을 먹히긴 했지만 바이에른 뮌헨 키커들이 차는 방향을 모두 읽고 그쪽으로 움직이는 위엄을 보여주었다.[10] 결국 4번 키커 올리치의 킥을 막아내고 슈바인슈타이거의 킥 역시 체흐의 손을 스쳐 골대를 맞고 나가면서 첼시는 승리했고, 체흐는 이 경기의 영웅으로 등극하였다.
파일:187192hp2.jpg
팀 역사상 첫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30세 생일 선물을 받았다.[11] 비록 결승전 MOM은 또다른 영웅 디디에 드록바에게 돌아갔으나 체흐가 받았어도 전혀 이견이 없었을 만큼 둘의 활약은 굉장했다.

당시 페트르 체흐는 토너먼트 진행 내내 수호신의 모습을 보여 줬다.[12] 심지어 결승전에서는 세계 최고라 불리던 마누엘 노이어를 제압하고 우승컵을 들었으나 애석하게도 피파 월드 베스트 일레븐과 UEFA 올해의 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13]

3.3. 2012-13 시즌

12-13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시즌 초에는 레딩과의 홈 경기에서 프리킥을 실수로 실점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후에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수많은 슈퍼 세이브를 선보였다. 아스날 전에서는 다비드 루이스의 발에 빗맞은 공을 쳐내는 엄청난 세이브를 보여주었으며, 토트넘 전에서는 카일 워커의 환상적인 중거리포를 쳐내고, 맨유와의 FA컵에서도 치차리토의 1대1 상황에서 헤딩슛을 골대 위로 쳐내는 엄청난 슈퍼 세이브를 보였다.
파일:FB_IMG_1621076315395.jpg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는 팀이 전반 내내 밀리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일 유일한 실점도 페널티킥으로 인한 실점이며 얼마 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을 허용한 마누엘 노이어처럼 필드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팀은 이바노비치의 결승골로 2-1로 승리해 전년에 이어 유럽 대항전 우승을 경험했다.

3.4. 2013-14 시즌

2013-14 시즌 초의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슈퍼컵 경기에서는 그야말로 체흐신. 뮌헨에 점유율, 유효 슈팅 모두가 밀리는 상황에서도 프랑크 리베리의 중거리 슛에 실점하긴 했지만 이후 종료 전 버저비터를 먹히기 전까지 파상 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앞선 스코어를 유지해 바이언들을 똥줄타게 만들었다. 승부차기에서는 바이언은 5개 다 성공했으나 첼시는 마지막 키커 루카쿠의 슛이 노이어에 막히며 아쉽게 패했다.

이후 리그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첼시의 호성적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1월 11일 헐 시티와의 21라운드 리그 경기에서 209번째 클린시트를 기록, 첼시 역대 최다 클린시트 기록자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임대가있던 티보 쿠르투아가 팀에 라리가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안겨주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것 때문에 첼시에서의 입지가 대단히 위태롭게 되었다. 쿠르투아의 첼시 복귀는 이미 확정되었고, 체흐가 팀에 남는다면 최소한 힘겨운 주전 경쟁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3.5. 2014-15 시즌

14-15 시즌 부터 티보 쿠르투아가 주전 골키퍼가 되고 체흐가 벤치 신세가 되었다. 체흐의 기량이 하락한것도 아니지만 주제 무리뉴는 미래를 생각하고 92년생에 월드 클래스 반열에 오른 티보 쿠르투아를 선택한 것 같다.

2014년 10월 5일. 쿠르투아가 알렉시스 산체스와 충돌로 인해 부상[14]을 당해 교체투입되어 첫 리그 경기에 투입되었다. 문제는 이 경기가 하필 아스날 FC과의 경기였다. 그래도 무실점으로 경기를 잘 마쳤다.

뉴캐슬과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했는데 카벨라의 슈팅을 동물 같은 반사 신경으로 막아냈고 뉴캐슬의 전반 5번의 유효 슈팅을 모두 막아내는 등,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FA컵 3라운드 브래드포드 시티 AFC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지만 팀은 2:4로 완패했다.

25R 에버튼 FC과의 경기에서도 출장해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루카쿠와의 1대1 상황을 막아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 최근 들쭉날쭉한 출장에 경기 감각이 영 아닐 텐데도 나올 때마다 한결같이 좋은 활약을 보이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확실히 안정성과 노련함에 있어서는 쿠르투아보다 높은 수준이다.

체흐 에이전트의 발언 등을 보아 이번 여름 팀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쿠르투아의 백업 신세는 한 시즌으로 충분하다고. 아무래도 UEFA 유로 2016을 앞두고 주전으로 뛰면서 경기 감각을 최대화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첼시에서 10년 정도를 주전으로 뛰었는데도 골키퍼 치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여전히 엄청난 실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어느 구단이나 노릴 듯하다. 현재[15]아스날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파리 생제르맹 FC과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 2015년 6월 18일 기준 아스날 FC로의 이적이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5월 24일 EPL 2014-15 시즌 38R[16] 첼시 FC VS 선덜랜드 AFC 경기에서 선발로 나왔다. 아마도 디디에 드록바, 존 오비 미켈과 함께 첼시 선수로 뛰는 마지막 경기가 될 듯 싶다.[17] 또한 이 경기 시작 전에 10년 전인 2004-05 시즌 리그 우승 멤버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파일:UDJvwmC.jpg
왼쪽에서부터 아이두르 구드욘센, 알렉세이 스메르틴, 윌리엄 갈라스, 히카르두 카르발류, 파울루 페헤이라, 카를로 쿠디치니, 클로드 마켈렐레, 제레미 은지탑.
파일:bYIL25s.jpg
첼시의 레전드인 존 테리, 디디에 드록바 그리고 페트르 체흐
494경기 393실점 228클린시트
또한 당일 경기를 끝으로 첼시 FCEPL 출범 이후 네번째 우승을 달성했는데 모든 우승을 존 테리, 디디에 드록바, 페트르 체흐와 함께 했다. 그야말로 첼시의 레전드들이다. 경기 내용을 알고 싶으면 첼시 FC/2014-15 시즌 참조

4. 첼시 FC 2기

4.1. 2020-21 시즌

다소 뜬금없이 첼시의 2020/21 시즌 프리미어 리그 로스터에 포함되면서 선수로 복귀했다.# 비계약 선수 형태로 합류했으며 번호는 39번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혹시 모를 변수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다른 포지션과 달리 골키퍼는 한 명이기 때문에 감염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정말 만약의 경우를 위한 대비책이기도 하고이미 은퇴한 지 1년이 지난 데다 구단의 디렉터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출전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들은 팬들은 우스갯소리로 지금 경기에 출장시켜도 케파 아리사발라가보다 잘하겠다고 말했다.
파일:petrsave.jpg
첼시의 U23 경기 일정이 꼬이면서 주전 골키퍼의 출전이 어렵게 되었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12월 15일에 열린 토트넘 U23과의 프리미어 리그 2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은퇴한 지 약 1년 7개월만에 선수 복귀전을 치렀다. 오랜 기간 현역에서 물러나 있었던 만큼 경기 감각이 바닥을 치면서 실점과 직결되는 실수를 연발하고 두 골을 먼저 내 줬으나 어떻게든 팀이 수습한 덕에 3-2 역전승으로 복귀전을 마무리지었다. 해당 경기에서는 대니 드링크워터알피 데바인에게 보복성 태클을 해서 퇴장을 당하는 등 선수들 간의 다툼이 격해지면서 본인의 축구 경력보다 어린(...) 선수들이 싸우는 모습을 봐야 했다.
파일:멘디와 훈련하는 체흐.jpg
훈련장에서 멘디와 함께 훈련하는 모습도 공개됐는데 기술 이사 직함뿐만 아니라 비계약 선수로 등록된 시점부터 사실상의 플레잉 코치 역할을 하면서 구단 내 골키퍼진의 훈련도 같이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5. 총평

파일:external/pbs.twimg.com/CA4I6iaWAAAd4A2.jpg
Chelsea NO.1
494경기 393실점 228클린시트
첼시 역대 최다 클린시트 1위
첼시 역대 최다 출장 7위[18]


[1] 이후 첼시는 체흐의 추천으로 스타드 렌에서 에두아르 멘디를 영입하게 된다.[2] 후에 FC 바르셀로나마르크안드레 테어 슈테겐클라우디오 브라보를 동시에 영입한 것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미겔 앙헬 모야얀 오블락을 같이 영입한 것과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는데 슈테겐과 오블락을 미래의 주전감으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체흐를 쿠디치니의 후계자로 미리 영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술했듯이 체흐는 첼시에 오기 전에 이미 UEFA 유로 2004 등의 국가대표에서도 아주 좋은 활약을 펼쳐 이미 골키퍼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체흐가 첼시에 온 2004년에 그의 나이는 22세. 수명이 긴 포지션인 골키퍼에게는 유망주나 다름없는 나이다.[3] 이 기록은 2008-2009시즌에 리그 14경기 연속 무실점을 달성하고, 1,311분 연속 무실점이라는 기록을 세운 반 데 사르가 깨뜨린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반 데 사르는 만 38세였던 해당 시즌에 유럽 최우수 골키퍼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4] 축구 인생이 아니다. 진짜로 목숨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함몰된 두개골의 X-RAY 사진(사람에 따라 혐오감을 느낄 수 있으니 주의)을 봐도 알 수 있다.[5] 공중볼을 처리하다가 상대 수비수 이브라히마 송코와 부딪혀 중심을 잃으며 머리부터 땅에 떨어져 곧바로 기절했다. 화면으로 보기에는 의식을 잃은 쿠디치니가 체흐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로 보였으나 다행히 쿠디치니는 두개골 골절은 아니어서 머지않아 복귀했다.[6] 공포증, 후유증 같은게 있는지 지금도 직접 충돌할 상황이 온다 싶으면 망설이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어느 골리나 무섭긴 하지만 체흐는 아무래도 겪어봤기에 더 그런듯. 사실 골키퍼라고 해서 그러한 두려움이 없는 것이 절대 아니다. 월드 클래스 공격수의 파워풀한 슛을 눈앞에서 잡아내는 것은 프로 선수 이전에 인간인 이상 무서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을 극복해 내는 것이 골키퍼의 자질이지만.[7] 시복이 체흐에게 빠른 속도로 달려온 것도 아니었고, 안면이 아니라 헤드기어로 보호되고 있는 옆 부위에, 무릎과 머리가 부딪힐 각도도 아니었다. 종합하자면 정말 부딪히더라도 부상 위험이 없던 상황이었다.[8] 맨유의 반 데 사르는 뛰어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실수가 잦아졌고, 리버풀의 레이나 역시 최상급의 골키퍼지만 그놈의 가끔 가다 보여주는 예능 대실수 때문에 개그맨이라고 조롱받는다. 아스날도 슈체스니 등 팀의 주축 골키퍼들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있기 때문에 역시 체흐가 돋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다.[9] 이것은 존 테리, 알레스, 게리 케이힐같은 발이 느린 센터백들을 가지고 무리하게 라인을 끌어올린 안드레 빌라스보아스의 책임이 없지 않다. 무리하게 라인을 올리다보니 상대 공격수에게 뒷공간을 쉽게 허용하고 체흐가 막아내야할 상황이 더 많이 늘어난 것. 빌라스보아스는 이후 토트넘에서도 수비 라인을 끌어올리는 전술을 시도했는데 이 때문에 골키퍼인 위고 요리스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주었다.[10] 참고로 그날 있던 페널티킥은 로벤의 것과 승부차기를 합쳐 모두 6개였으며 체흐는 그 여섯 개 전부의 방향을 읽어 그 중 3개를 막아낸 것이다. 승부차기 때 5개 중 하나만이라도 막기 어려운걸 생각하면 후에 체흐는 이 경기를 앞두고 자신의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하기 위해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출장한 선수들의 주발을 모두 외우거나 메모에 적어두고 나섰다고 밝혔다.[11] 결승 당일이 체흐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도 첼시로써 큰 동기부여가 되었을지도.[12] 체흐의 기인 열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13] 체흐를 제치고 이름 올린 선수는 이케르 카시야스. 당시에 카시야스는 리그 우승과 유로 2012까지 우승하면서 커리어로 체흐를 눌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당시의 카시야스도 체흐 못지 않게 잘했다.[14] 꽤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쿠르투아의 머리에 산체스의 무릎이 부딪혔다. 위에 언급된 체흐와 스티븐 헌트의 충돌과 상당히 유사했기에 첼시 팬들로서는 매우 가슴 졸였던 상황이았다. 다행히 쿠르투아는 그렇게까지 큰 부상으로 넘어가진 않았다.[15] 2015년 5월 25일 기준[16] 리그 마지막 경기[17] 여름 이적 시장에 이적이 확정됐다.#[18] 494경기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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