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4 14:35:17

스티븐 헌트

스티븐 헌트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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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Stephen Hunt 3.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스티븐 헌트
Stephen Hunt
본명 스티븐 패트릭 헌트
Stephen Patrick Hunt
출생 1981년 8월 1일 ([age(1981-08-01)]세)
아일랜드 포트리셔
국적
[[아일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71cm, 72kg
직업 축구선수(윙어 / 은퇴)
소속 선수 크리스탈 팰리스 FC (1999~2001)
브렌트포드 FC (2001~2005)
레딩 FC (2005~2009)
헐 시티 AFC (2009~2010)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2010~2013)
입스위치 타운 FC (2013~2015)
코번트리 시티 FC (2016)
국가대표 39경기 1골 (아일랜드 / 2007~2012)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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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의 前 축구 선수.

레딩 FC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였으며,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도 활약 한 바 있다.

2. 클럽 경력

2.1. 브렌트포드 FC

어릴적 다양한 곳에서 축구를 경험한 헌트는 크리스탈 팰리스 FC의 연습생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축구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헌트는 프로에도 데뷔하는 등 본격적인 프로축구 선수가 되었지만, 크리스탈 팰리스에선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브렌트포드로 이적하게 되고, 첫 시즌부터 40경기 이상 나오며 주축 선수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40경기 이상 출전하면서 꾸준히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주장으로도 활약하기도 했다.

브렌트포드에서 4시즌간 총 160경기에 나섰던 헌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적을 결심하고 브래드포드 시티 AFC로 이적이 유력했지만 뒤 늦게 헌트 영입전에 뛰어 든 레딩 FC의 적극적인 관심에 레딩으로 마음을 돌리고 레딩으로 이적했다.

2.2. 레딩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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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헌트는 레딩에서의 스타트가 좋지 못했는데, 동 포지션에 보비 컨베이라는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의 윙어한테 주전 경쟁에서 밀려 주로 로테이션 및 벤치 멤버로 활약했다.

하지만, 헌트는 나올때마다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팀 승리에 기여하면서 적지 않은 경기에 출전하였다. 그리고 팀은 챔피언쉽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무난히 우승했고 레딩은 프리미어리그로 향하게 된다.

2006-2007 시즌 프리미어리그로 향한 레딩에서 스티븐 헌트는 입지에 변화를 맞이한다. 경쟁자 보비 컨베이의 부상으로 주전 선발로써 출전 기회를 여러 차례 잡게 된다. 그리고 인상적인 경기력을 여러 차례 선보이면서 중용되었고 팀의 프리미어리그 돌풍의 일조를 하게 된다.

2007-2008 시즌에도 헌트는 주전으로 나서면서 활약했고, 그의 주가는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1월엔 선덜랜드 AFC에서 550만 파운드의 이적료[1]를 제안하면서 헌트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레딩은 당시 강등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기 때문에 헌트를 판매하지 않았다. 게다가 헌트는 2월엔 팀과 장기 계약까지 체결하면서 팀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레딩은 치열한 강등권 경쟁끝에 강등당했고, 챔피언쉽으로 다시 돌아갔다.

2008-2009 시즌에 레딩은 차기 시즌 승격을 위해 주축 선수인 케빈 도일과 헌트는 지키고자 했고, 두 선수 역시 팀에 승격을 위해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레딩은 유력 승격후보로 시즌을 치렀으나 안타깝게 승격에 실패하고 만다.

이에 레딩은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적극 구애를 받던 케빈 도일과 스티븐 헌트에 대한 판매를 허용하였고, 두 선수 역시 팀에 대한 애정은 깊지만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싶었기 때문에 서로 이적에 합의했다.

여러 프리미어리그 클럽에 이적 문의를 들은 결과 헌트는 레딩의 클럽 레코드에 준하는 금액으로 헐 시티 AFC로 이적하면서 레딩을 떠났다.

레딩에선 172경기 21골을 기록했다.

2.3. 헐 시티 AFC

2009년 8월 13일 헐 시티 이적을 완료하며 1년 만에 프리미어리그에 복귀했고, 불과 이틀 뒤인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첼시 FC 원정에서 헐 시티 데뷔전을 치렀다. 후술되다시피 첼시는 체흐의 머리 부상이라는 큰 악연이 있어서 첼시 홈팬들의 거센 야유와 함께 데뷔전을 치러야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 경기에서 선제골로 데뷔골을 넣으며 2009-10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개막골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이 경기는 디디에 드록바의 원맨쇼로 인해 추가시간에 역전골을 허용하며 졌다.

주전급으로 활약하며 미드필더임에도 개인 PL 한 시즌 최다골인 6골을 득점, 지미 불라드와 함께 팀의 강등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시즌 막바지 부상으로 경기에 나오는 사이 소속팀은 19위로 강등되고 말았다.

2.4.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레딩을 떠나 헐시티로 이적했던 헌트는 팀이 한 시즌만에 강등당하자 새로운 프리미어리그 팀인 울버햄튼으로 300만 파운드의 이적료와 3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적했다. 부상으로 인해 데뷔가 늦어졌는데 새 소속팀 울버햄튼에서의 데뷔전도 공교롭게 9라운드 첼시 원정 교체출전이었다. 거센 야유로 데뷔전을 맞이한 것은 당연했다. 15라운드 선덜랜드와의 홈경기에서 첫 골을 넣었다. 2011년 들어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마지막 5경기를 남기고 복귀했는데 38라운드 블랙번과의 최종전 홈경기에서 울버햄튼의 잔류를 확실시하는 3-2로 추격하는 중요한 만회골을 넣어 팀을 구했다.[2]

그렇게 프리미어리그에서 2시즌간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2시즌 후 팀은 강등당했다. 이 시기쯤 헌트는 여러 부상을 겪으면서 급격히 폼이 무너지고 있었다. 강등당한 후엔 여전히 부상을 겪으면서 출전 경기가 급속도로 줄어들었고, 울버햄튼에서의 3번째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났다.

이후, 2013-2014 시즌에 챔피언쉽리그의 또 다른 팀인 입스위치 타운 FC으로 이적해서 2시즌간 활약했다.

입스위치에서 2시즌을 보낸 후, 2015-2016 시즌엔 리그1에 속한 코번트리 시티 FC를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전성기 시절인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으로 활약 한 바 있다.

당시 아일랜드 대표팀의 감독인 조반니 트라파토니의 중용을 받던 선수였으며, 아일랜드의 UEFA 유로 2012에도 명단을 올렸으나 출전하지 못했고, 이후 대표팀을 은퇴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상당히 저돌적인 돌파를 즐겨하는 측면 윙어로 특유의 역동적인 페인트 동작과 준수한 크로스 능력이 장기로 평가 받는다.

게다가 단신임에도 몸싸움에 있어서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며, 박스안으로 침투해서 헤딩에도 적극 가담하는 등 신장에 비해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을 지녔다.

단점으로는 때론 너무 거칠게 몸을 내던지면서 플레이 하는 경향이 있다.

5. 여담

  • 3명의 형제가 있는데, 동생인 노엘 헌트도 축구선수다. 공교롭게도 노엘 헌트[3]도 레딩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였었다.
  • 레딩, 헐시티, 울버햄튼에서 프리미어리거로 5시즌간 활약했지만 3팀에서 무려 강등을 3번 당한 바 있다.
  • 2009-2010 시즌부터 SBS 스포츠에서 프리미어 리그 중계를 맡았는데, 헐시티 소속의 헌트는 첼시와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득점하며 SBS 스포츠 EPL 중계 경기에서 가장 먼저 득점한 선수가 됐다. 이날 경기는 홈팀 첼시의 2-1 역전승으로 끝이 났다.
  • 흔한 프리미어리거로 보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전 세계 팬들에게 헌트가 지금까지 회자되는건 레딩 FC시절 2006년 10월 14일에 열린 첼시와의 경기에서 페트르 체흐의 머리와 무릎으로 부딪혀 체흐가 생사를 오가게 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4] 당시 레딩의 경기는 설기현 때문에 한국에서도 생중계 되었기 때문에 한국 축구팬들도 이 경기를 볼 수 있었다.
  • 당시 충돌 당시엔 체흐 부상의 심각도를 몰랐지만, 체흐는 의식불명에 빠지게 되고, 눌린 뼈 복원 수술을 하게 된다. 의사들은 이 부상으로 그가 골키퍼로써의 생을 마감할 뻔했다고 한다. 이후 스티븐 헌트는 첼시 팬들의 공적으로 등극했으며, 한 동안 헌트의 이름만 나와도 야유가 나왔을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이 날 경기서 체흐 말고도 대타로 나온 카를로 쿠디치니도 부상을 당하고 기절해버려 교체할 골키퍼가 없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 결과 임시 방편으로 존 테리가 임시로 골키퍼로 뛰기도 하는 등 믿을 수 없는 여러 해프닝이 연이어 발생했다.
  • 전성기 시절 EPL 중,하위권 팀들의 1순위 영입 대상이였던 선수[5]였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플레이로 중,하위권 팀들이 선호하는 유형에다가 측면 돌파 능력과 때때로 박스 침투가 매우 적극적이여서 1골이 귀중한 중,하위권 팀들에게 변수를 만들 어 줄 수 있는 선수로 늘 꼽혔다.
  • 2021-2022 시즌이 레딩 FC의 15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 였는데, 이 시즌이 끝난 후 레딩의 150주년 기념 레전드 매치가 열렸다. 이 중 참석 할 수 있는 선수들 위주로 최대한 참석했는데, 스티븐 헌트도 이 날 경기에 참석해서 경기도 뛰었다. 다만, 몰라보게 늙은 모습과 백발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7]-아니 이제 겨우 40대 초반인데......-
  • 남태희레딩 FC 유스팀에 몸 담을적엔 "지금껏 지켜본 어린 선수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1] 레딩 클럽 레코드의 해당[2] 울버햄튼이 블랙번에게 3-1로 지고 버밍엄이 토트넘과 1-1 무승부로 끝났을 경우 울버햄튼은 골득실에서 밀려 18위로 강등이었다. 그런데 헌트의 득점으로 인해 골득실이 같아지고 다득점에서 앞서면서 17위로 올라갔고, 18위로 밀려난 버밍엄은 갑자기 총공세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버밍엄은 결국 경기 종료 직전 실점하며 강등을 확정지었다.[3]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로 레딩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4] [5] 그가 뛰었던 팀 외에도 당시 프리미어리그에 있던 '생존왕' 위건도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대체자로 스티븐 헌트가 늘 언론에 언급되었고, 승격 팀들 역시 헌트 영입을 희망하는 팀이 많았다.[6] 케빈 도일의 사촌과는 결혼도 했다.[7] https://www.readingfc.co.uk/news/2022/may/25/-as-players-we-made-our-name-at-this-clubnot-the-other-way-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