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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강 중류에 위치한 파양호 인근의 평야 지대를 의미한다.원말명초에는 주원장과 진우량 간의 파양호 대전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2. 고대 도시
2.1. 시상(柴桑)
시상(柴桑)으로 불리기 사작한 역사 기록은 한나라 시대이며, 양주 예장군(豫章郡) 소속이었다. 이 명칭은 현재 차이쌍구(柴桑区)로 남아있다.손오 시대에는 형주 무창군(武昌郡)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참고로 주장시와 이름이 같은 구강군(九江郡)은 이 당시 서우현과 허페이시일대를 뜻했으므로 지금의 주장시와는 관계가 없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건업과 형주 사이의 도시로 시상은 꾸준히 등장하는데, 단 삼국지 13(PK)에서는 '시상' 대신 '예장'이 나온다.
서진 시대에는 명칭이 심양(浔阳)으로 바뀌었으며, 현재는 이 명칭이 주장시의 도심인 쉰양구(浔阳区)로 남아있다.
현 명칭인 주장(九江)은 수나라 대인 606년에 만들어진 명칭으로, 당시에 명칭이 구강군(九江郡)이었던 것에서 나왔다. 당나라·송나라 때에는 명칭이 강주(江州)로 교체된다. 《수호전》에서 송강이 귀양가게 되는 곳이자 대종, 이규, 장순을 만나게 되는 강주가 이곳이다.
원나라 대에는 강주로(江州路)였다가 명나라 대에 구강부(九江府)가 세워지면서 다시 주장이 되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주장은 개항장이 되었지만 이후 상업은 쇠퇴하였다.
중일전쟁 당시에는 일본군에게 점령당했던 적도 있다.
현대에는 주장시에 편성되어 있다.
2.2. 남창(南昌)
중국사 등장시기는 주나라 때로, 오나라가 통치하였다가 전국시대를 기점으로 초나라 산하로 들어간다. 독자적 행정구역으로써 처음 등장한 시기는 한나라 시기로, 한나라가 이 곳에 양주 예장군(豫章郡)을 설치한 것이 시작이며, 예장군의 치소 명칭이 남창현(南昌县)이었다.수나라 대에는 홍주(洪州)[1]라는 명칭으로 불리었으며, 남당이 이 곳에 남창부(南昌府)를 설치하면서 명칭이 남창으로 변경된다.
송나라 대에 다시 홍주로 명칭이 돌아갔다가 효종 대에 융흥부(隆興府)로 승격된다.
원나라 대에는 용흥로(龍興路)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원말명초에는 주원장과 진우량 간의 역사적 결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명나라 대에 홍도부(洪都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다시 남창부로 개칭되었다.[2]
20세기 들어서는 중화민국 시기 난창 기의(南昌起义)가 일어난 중공과 중국공산당의 성지가 되었으며, 50년대에 석탄 공업과 화학 산업이 중점적으로 발달된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명나라 대에 홍도부(洪都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대에는 난창시에 편성되었다.
2.3. 신평(新平)
신평(新平)이라는 지명은 동진 시대의 기록된 명칭이었으며, 이 때부터 징더전 지역이 독자적으로 사서에 등장한다.이후 716년에 신창(新昌)으로 개칭하였다가 742년에 부량(浮梁)으로 개칭한다.
현대에는 징더전시에 편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