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07-16 20:27:40

탱크 어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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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Tank" Abbott

종합격투기 관련 인물
국적 미국
종합격투기 전적 24전 10승 14패
6KO, 3서브미션, 1판정
6KO, 6서브미션, 2판정
생년월일 1965년 7월 16일
신장 / 체중 183cm / 114kg
링네임 "탱크"
기타UFC 6 토너먼트 준우승
UFC 96 Ultimate Ultimate 준우승

본명은 데이비드 어봇. 캘리포니아주 출신의 유명한 싸움꾼으로 헌팅턴 비치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폭력전과로 교도소를 몇차례 들락거리기도 했는데 키모 레오폴도가 UFC에 출전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출전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1. 전적2. 파이팅 스타일3. 기타

1. 전적

  • 주요 승 : 존 마투아, 폴 발렌스, 스티브 제늄, 칼 워샴, 스티브 넬마크, 안조 요지, 마이크 버크

1995년 7월 UFC 6 토너먼트에 참가한 탱크는 1차전에서 180kg의 거구인 존 마투아를 20초만에 펀치로 KO시키면서 충격적인 데뷔전을 승리로 이끈다. 2차전에서도 거구의 레슬러인 폴 발렌스와 대결, 펀치러쉬에 이은 그라운드 니킥[1]으로 승리한다. 충격적인 연승을 기록한 탱크는 결승에서 러시아의 삼비스트인 올렉 탁타로프와 대결하지만 체력과 게임운영에서 미숙함을 보이며 석패하고 만다.

1995년 12월에는 왕중왕 결정전인 Ultimate Ulimate에 참가한다. 비록 우승은 좌절되었으나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것. 1차전에서 토너먼트 3 우승자인 스티브 제늄을 때려눕히고 2차전에 진출하지만 준결승에서 댄 서번을 만나 20분 동안 바닥을 청소한 끝에 패배하고 말았다.

1996년 6월 UFC 11 토너먼트에서도 준결승에 진출하지만 스캇 페로조와의 혈전 끝에 판정으로 패하고 만다. 탱크에게 승리한 스캇 역시 탈진으로 기권했기 때문에 마크 콜먼이 불로소득격으로 타이틀을 가져가게 되었다.

1996년 12월에는 다시 한번 Ultimate Ultimate에 도전한다. 칼 워샴과 스티브 넬마크를 기분좋게 박살내며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전에서 프레데터 돈 프라이를 만나 리얼 네이키드 초크로 패배하며 또 다시 우승이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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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마크전의 KO. 슈퍼 액션에서 선정한(...) UFC 역대 KO 1위에 뽑히기도 했다.

1997년 5월 UFC 13에서 비토 벨포트에게 52초 KO승을 헌납했다. 1997년 10월에는 타이틀 도전권을 얻어 UFC 2대 헤비급 챔피언인 모리스 스미스에게 도전했으나 패배, 또 다시 타이틀을 눈앞에 두고 물러서야 했다. 콩라인 어봇. 1997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UFC 15.5 Japan에서 안조 요지에게 승리했고 해가 바뀐 1998년 5월 UFC 17에서도 승리를 이어갔다. 하지만 1998년 UFC 17.5 브라질에서 페드로 히조에게 패하면서 MMA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2003년 2월 5년간의 공백을 깨고 UFC 41에 출전하지만 프랭크 미어의 토홀드에 걸려 초살 서브미션패를 당한다. 이후 키모 레오폴도, 웨슬리 코레이라에게 연패했고, PRIDE에서 열린 요시다 히데히코와의 시합에서도 초크에 걸려 패배했다. Strikeforce에서는 폴 부엔텔로에게 KO로 패했고, EXC에서는 킴보 슬라이스의 흥행몰이 시합에 떡밥으로 등장해서 승리를 헌납해 주기도 했다. 안습.

2009년 2월 Wargod이라는 단체에서 마이크 버크라는 선수에게 승리했다. 공식적으로 근 4년만에 거둔 첫승인데 아직 떡밥을 받아먹을 기력 정도는 남아있는 듯.

2. 파이팅 스타일

레슬링 베이스의 선수로 9세부터 레슬링을 연마했다고 한다. 뛰어난 소질을 보였으나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며 커리어를 접어야 했다. 이후 복싱을 배우면서 자신이 강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MMA 무대에서도 이 강펀치를 유감없이 휘두르며 숱한 KO를 양산해 냈다. 그래플러들이 득세하던 초기 NHB 시절[2] 화끈한 KO를 양산하며 UFC의 인기몰이를 담당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피트 파이팅'이라 칭하며 MMA에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3]

주짓수를 경멸하며 때로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했는데[4], 당연히 그라운드 이해도가 낮았다. 완력은 좋지만 체력이 저질이어서 다 이길뻔한 게임을 체력 때문에 놓친 적도 있다. 결국은 이러한 약점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날로 발전해 가는 MMA의 흐름에 휩쓸리고 말았다.

3. 기타

미국에서는 엄청 인기인이다.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컨셉과 과격하고 잔인한 파이팅, 게다가 탱크 본인도 꽤나 쇼맨쉽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중에 어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2000년대 이후의 행보는 그야말로 안습이지만 그 와중에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1998년 이후로 2승 8패를 기록하면서도 꾸준히 오퍼는 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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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프렌즈에 등장한 적이 있기 때문에 미국 드라마 팬들에게도 친숙한 얼굴이다. 3기에서 모니카 갤러의 연인인 피트 베커의 UFC 데뷔전 상대로 등장한다.

원조 양아치 파이터로 온갖 기행을 일삼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UFC에서도 양아치 시절의 동료들과 몰려다녔는데, UFC 6 우승이 좌절되자 평소 대립하던 패트릭 스미스를 사적인 자리에서 습격하여 린치를 가하기도 했다. MMA 첫승 상대였던 존 마투아와도 원래 사이가 나빴다고 전해진다. UFC 명예의 전당에 헌핵될 예정이었으나 이렇듯 질나쁜 행동이 문제가 되었고 폭력전과가 드러나면서 취소되었다.

북미 프로레슬링 단체인 WCW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의외로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대졸 학력의 소유자로 캘리포니아 롱비치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한때는 교사가 되려고 한 적도 있었다. 물론 폭력전과 때문에 아웃.

키모 레오폴도와 면식이 있고, 티토 오티즈를 추천하기도 했다.

이빨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싸우다가 이렇게 된 것은 아니고 교통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한때 셔독에서 어봇 짤방놀이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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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킥이라고 보긴 좀 그렇고 무릎으로 찍어눌렀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듯.[2] 그렇다고 단순히 그래플러가 스트라이커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입식 스트라이커들은 이미 그들만을 위한 프로무대가 크게 활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굳이 MMA에 진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1류급 선수들의 참가율도 극히 저조했다.[3] 다만 이것은 아트 데이브에 의한 이미지 메이킹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는 힘빨과 타격센스에 의존하는 막싸움.[4] 다만 힉슨 그레이시는 존경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