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21:32:00

키타가와 히로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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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감독 80 오카다 아키노부
1군 78 히라타 카츠오(수석코치) · 88 안도 유야(투수코치) · 90 쿠보타 토모유키(투수코치)
83 시마다 무네히코(배터리코치) · 73 미즈구치 에이지(타격코치) · 77 이마오카 마코토(타격코치)
81 바바 토시후미(내야수비·주루코치) · 74 후지모토 아츠시(내야수비·주루코치) · 96 츠츠이 소(외야수비·주루·전력분석코치)
2군 86 와다 유타카(2군 감독) · 85 후쿠하라 시노부(투수코치) · 72 에구사 히로타카(투수코치) · 89 와타나베 료(투수코치)
87 노무라 카츠노리(배터리코치) · 84 히다카 다케시(배터리 코치 보좌) · 91 키타가와 히로토시(타격코치)
75 야마자키 노리하루(타격코치) · 70 타나카 슈타(내야수비·주루코치) · 76 쿠도 타카히토(외야수비·주루코치)
71 우에모토 히로(야수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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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fe01><colcolor=#000000> 한신 타이거스 No.91
키타가와 히로토시
北川博敏 / Hirotoshi Kitagawa
생년월일 1972년 5월 27일 ([age(1972-05-27)]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효고현 이타미시
포지션 포수, 1루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학력 사이타마현립 오미야히가시 고교 - 니혼대학
프로입단 1994년 드래프트 2위 역지명
소속팀 한신 타이거스 (1995~2000)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2001~2004)
오릭스 버팔로즈 (2005~2012)
지도자 오릭스 버팔로즈 타격코치 (2013~2014, 2016)[1]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군 타격코치 (2017~2019)
한신 타이거스 2군 타격코치 (2020, 2023~)
한신 타이거스 1군 타격코치 (2021~2022)
응원가 한신시절 CD판[2] 킨테츠-오릭스 시절 [3][4]


1. 개요2. 프로 입단 전3. 한신 타이거스 시절4.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시절
4.1. 2001년 9월 26일,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대타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
5.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6. 현역 은퇴 후7. 기타

[clearfix]

1. 개요

20세기말 ~ 21세기초 간사이 3팀에서 뛰었던 전직 야구선수이자 현 야구코치. 2023년엔 한신 타이거스 2군 타격코치를 맡고 있다. 킨테츠의 마지막 리그 우승을 자신의 손으로 완성시킨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대타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의 주인공.

2. 프로 입단 전

본래 효고현 이타미시 출신이었으나, 소학교 졸업 때 쯤 가족이 사이타마현으로 이사를 가면서[5], 중1때부턴 사이타마현 오오미야시[6]에서 자라게 되었다. 오미야히가시 고교로 진학하여 3학년 때는 포수 및 주장을 맡아 팀을 하계 고시엔 대회로 이끄는 등 맹활약했다. 그러나 프로 지명을 못 받고 니혼대학으로 진학해 주전 포수로 활약한 후, 4년이 지나 1994년 한신 타이거스에 역지명으로 입단했다. 입단 당시 포지션은 포수였으며, 대학 선배로 와다 유타카가 2루수 주전으로 있었다.

3. 한신 타이거스 시절

그러나 당시 한신 타이거스는 4466566664로 대표되는 암흑기 시즌이었고, 키타가와 역시 헤메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세키카와 코이치, 키도 카츠히코, 야마다 카츠히코 등이 자리를 일찌감치 잡았고, 자신보다 2살 어리지만 고졸로 프로 입단한 시오타니 가즈히코도 당시 한신에서 2군 본즈 놀이를 하고 있었다. 포수 자리는 1997 시즌 후 야노 아키히로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넘어와서 그대로 주전을 차지하였고, 키타가와와 시오타니는 둘 다 수비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둘 모두 2군에서는 날아다녔지만 정작 1군에 오면 존재감이 없다시피했다(...). 당시 한신 타이거스는 그런 만년 유망주들의 성장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고[7], 결국 2000년 시즌 종료 후 키타가와는 킨테츠로, 이듬해인 2001년 시즌 종료 후 시오타니는 오릭스로 각각 트레이드되었다.

4.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시절

2001년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로 간 키타가와는 준주전급 멤버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사실 2군 생활을 할 때부터 2군 감독이던 나시다 마사타카가 키타가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프런트에 트레이드 요청을 했다고 한다. 스스로도 이렇게 연습한 적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연습했고, 이는 아래의 명장면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 시즌 그의 성적은 .270, 6홈런, 35타점으로 보잘 것 없이 보이긴 하나,

밑의 끝내기 만루홈런 한방으로 키타가와의 야구인생이 크게 바뀌게 된다.

킨테츠에서의 커리어 하이는 2003시즌으로 .309 13홈런 59타점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303에 20홈런 88타점으로 팀내 최다타점을 기록했지만 그 해 시즌을 끝으로 오릭스와 킨테츠의 합병이 이뤄졌고, 오릭스-라쿠텐 분배 드래프트에서 오릭스 소속으로 분류되면서 그의 킨테츠 커리어는 구단과 함께 끝이 났다. 오릭스에서 과거 한신 2군 생활을 함께 하던 시오타니 가즈히코, 그리고 하술할 사건의 허용투수인 오오쿠보 마사노부와 재회한 건 덤. 하지만 시오타니는 2005년 시즌 이후 부진으로 방출되고 SK 와이번스로 이적했으나 부상을 당해 짧은 한국 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4.1. 2001년 9월 26일,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대타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

2001년 9월 26일 오릭스 블루웨이브 vs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교세라 돔 오사카 시즌 최종전.
시간이 없다면 9분부터 보자.

이 경기는 2010년 일본야구기구에서 선수와 코치를 상대로 조사한 '최고의 시합과 명승부 명장면' 종합 2위로 선정되었다. 키타가와, 후루쿠보 켄지, 오쿠보 마사노부 모두 이 시합에 투표했다고 한다.

5.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파일:키타가와 히로토시 오릭스시절.jpg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이범호 닮았다

오릭스-라쿠텐 분배 드래프트를 통해 오릭스로 옮긴 키타가와는 오릭스에서도 나름 주전과 준주전을 오가며 활약했고,[8] 2012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은퇴 전인 2011 시즌엔 이승엽과 같이 나오기도 했고, 2012년엔 이대호와 같이 나온 적도 있었다. 2012년 10월 7일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전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통산 18시즌을 뛰면서 1264경기, 타율 .276 / 출루율 .337 / 장타율 .419 / OPS .756, 4350타석, 3902타수, 464득점, 1076안타, 102홈런, 536타점을 기록했다.

6. 현역 은퇴 후

2013~2014 시즌엔 오릭스 2군 타격코치로, 2016시즌엔 오릭스 1군 타격코치로 재직했으나, 정작 오릭스는 2014시즌 빼고는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2015년엔 잠시 해설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17년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군 타격코치로 부임하였으며, 2017년 드래프트로 입단한 무라카미 무네타카를 2018년 단 한 시즌만에 키워내서 2019시즌 스왈로즈의 주전급으로 만드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9년을 마지막으로 키타가와는 야쿠르트를 퇴단, 2020시즌에 자신의 데뷔팀 한신 타이거스의 2군 타격코치로 돌아왔다.

2021년부턴 아라이 료타와 같이 1군 타격코치를 맡았다. 1군에서 오오야마 유스케, 치카모토 코지, 사토 테루아키 등 여러 젊은 타자들의 1군 안착을 도왔지만, 정작 팀 타율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9] 2023년엔 오카다 아키노부 신임 감독한테 등번호 80번을 양보하고 2군 타격코치로 이동했다.

7. 기타

얼굴상도 그렇고, 상당히 잘 웃는 얼굴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1] 2013~2014년은 2군, 2016년은 1군 타격코치를 역임했다.[2] 燃えろタイガー 吠えろタイガー 目指せ日本の新男児 北川博敏 (타올라라 타이거 울부짖어라 타이거 노려라 일본의 신남아 키타가와 히로토시)[3] (~2001) 狙いを定めて飛ばせ 気合の一打 快音響かせ 白球飛ばせ高く(정확하게 겨냥해서 날려라 기합의 타격 쾌음을 울리며 공을 날려라 저 높이 [4] (2002~2012) 奇跡を呼び込む男 笑顔で決めろ 快音響かせ 白球飛ばせ高く(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남자 웃는 얼굴로 결정지어라 쾌음을 울리며 공을 날려라 저 높이[5] 본래 키타가와의 부친만 기러기 아빠로 단신 부임할 예정이었으나, 키타가와 히로토시는 이를 싫어했다고 한다.[6] 오오미야+우라와+요노 3개시가 당시엔 다 따로 있었다. 셋이 사이타마시로 통합된 건 2001년이다.[7] 그래도 이 와중에 이마오카 마코토 같은 중장거리 타자가 포텐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다.[8] 2005년엔 오릭스 버팔로즈 구단 첫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2007년엔 144경기 전 경기 출전하기도 했다.[9] 2022년 팀 타율이 .243으로, 6개 구단 중 5위였다. 팀 타율 최하위 요미우리와는 겨우 0.001 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