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f><colcolor=#e34234> 제2군단장 클레멘스 루드니츠키 Klemens Rudnicki | |
출생 | 1897년 3월 28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다초프 | |
사망 | 1992년 8월 12일 (향년 95세) |
영국 런던 | |
국적 | |
학력 | |
직업 | 군인 |
최종 계급 | 소장 |
경력 | 제1기갑사단장 |
1945년 5월 ~ 1947년 | |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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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군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자유 폴란드군의 제2군단 군단장을 역임했다.2. 생애
189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갈리치아 지역 지다초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유제프 할레르 휘하 폴란드 군단에 입대했고 이탈리아 전역에서 부상을 입은 후 중위로 진급했다.1918년 폴란드군에 입대한 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세묜 부됸니의 기병군에 대항해 제2경기병연대의 기병대를 지휘했다. 폴란드가 소비에트 러시아와 강화를 맺은 후에는 바르샤바 참모대학교에서 전략 교관으로 재직했다.
1938년 제9창기병연대의 연대장이 되었고, 1년 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 중 수도 바르샤바를 지키는 임무를 하달받았다. 그러나 부대는 상부에서 하달한 항복 명령 독일 국방군에 항복했다. 클레멘스는 포로로 이송되는 중 탈출해 폴란드 최초의 저항군 창설을 지원했고, 소련 점령하 폴란드 지하 저항군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직위 상 독일과 소련의 점령 지역 경계선을 자주 넘나들어야 했고 결국 1940년 2월 농민으로 위장해 이동 중 소련군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당국의 심문 과정에서 신분을 밝히지 않아 장교 수용소 대신 15년 교화형을 선고받게 되어 키로프에 벽돌노동자로 보내졌다.
1941년 폴란드 망명정부와 소련이 동맹을 맺은뒤 신분을 밝혀 타슈켄트에서 신설된 브와디스와프 안데르스 장군의 군대에 자원해 1943년 카이로에서 자유 폴란드군에 합류했으며 그해 연합군의 이탈리아 침공에 제5사단 사단장으로 참전하였다. 이탈리아 침공 당시 몬테카시노 전투에서 팬텀 능선을 점령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어 안코나와 볼로냐를 탈환했다. 1945년 4월 독일에서 제1보병사단의 사단장에 부임했고 얼마되지 않아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을 맞이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독일에서 자유 폴란드군 제1기갑사단 사단장으로 주둔했고, 1947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회고록 "전쟁 영웅의 최후"를 집필했다.
1980년 폴란드군 총감 볼레스와프 브로니스와프 소장이 사망한 이후 신설된 폴란드 망명정부 군사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1990년 소장으로 진급하였으며 폴란드의 민주화 이후에도 런던에 남아 1992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