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5:28:35

카를스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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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스루에의 위치
행정
국가 <colbgcolor=#fff,#191919>
[[독일|]][[틀:국기|]][[틀:국기|]]
시간대 (UTC+1/+2)
바덴뷔르템베르크
카를스루에 현
인문환경
면적 173.46km²
인구 309,964명(2023년 12월)
인구밀도 1,787명/km²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정치
시장 프랑크 멘트루프

1. 개요2. 교통3. 역사4. 경제5. 기타6. 출신 인물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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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도시. 1775년 부터 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에 편입되기전 까지 바덴 대공국의 수도. 표기법 상으로 '카를스루에'라고 주로 쓰지만 맨 끝 모음은 [ə](슈와)로 '어/으'에 더 가깝다.[1] 이외에도 간혹 카를스루에(Karlsruhe) 대신 칼스루헤 혹은 카를스루헤로 적는 사례도 보이는데, 독일어 H(하)는 모음 바로 뒤에 있으면 묵음으로 변하므로[2] ~는 명백한 오류다.

독일의 사법수도로서 연방헌법재판소연방일반법원[3]이 이곳에 있다.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KIT), 카를스루에 교육대학, 카를스루에 음악대학, 국립 조형예술 아카데미 등 많은 대학이 소재하고있다.

2. 교통

동서 방향으로 프랑스 파리-스트라스부르에서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뮌헨을 잇는 노선과 남북으로 프랑크푸르트, 프라이부르크와 스위스 취리히를 잇는 노선이 교차하는 철도 교통의 요지라서 도이체반에서도 카를스루에 중앙역을 1급역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30만의 도시치고는 비교적 큰 철도 역사를 소유하고 있다.

도시 내 교통은 카를스루에 S반이 담당하고 있다. 노면전차가 일반 간선철도를 운행할 수 있게 개량한 상호직결 운행시스템 (Tram-Train)이 최초로 상용화 된곳이다. 이 때문에 이걸 카를스루에 모델이라고 부른다. 철도 동호인들에게는 TGV와 교행하는 전차로 유명하다. 시내에선 도시철도로서 노면전차로 운행하던 노선이 시외로 나가선 장거리 철도 선로를 공유해 광역철도로서 고속으로 운행할 수 있다. 이 노선을 달리는 열차는 직교류에 모두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도이체반과 지역 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철로를 갈아탈 때마다 절연 구간에서 전력 공급 방식을 전환한다. 이전에 카를스루에 광역권에 살던 시민들은 철도를 이용해 시내로 오기 위해 반드시 중앙역 등에서 환승을 했어야 했지만 이 시스템이 상용화 된 이후 환승 없이 시내로 들어올 수 있게 되면서 편의성이 늘어 이용객이 늘었고,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하였다. 트램 등 기타 교통수단은 카를스루에 교통연합체(KVV)를 참조.

2012년부터는 도심을 통과하는 트램과 간선도로를 지하화하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따라서 트램노선은 변경되고 도심의 도로는 모두 파헤쳐져 시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상황. 당초엔 도시 건설 300주년을 맞이하는 2017년을 겨냥하여 완공 시기를 맞췄다.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철도 공사는 시간을 맞추기가 힘든지, 완공시기는 지속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개통 예정일은 계속 밀려 2021년 12월 12일, 도시 중심가인 카이저슈트라세의 트램 지하화 공사를 완료하고 개통식이 열렸다. 3.6km 지하화 하는데 12년 걸렸다.

3. 역사

1715년 카를 3세 빌헬름 바덴두를라흐 변경백에 의해 도시가 세워지기 전 두를라흐, 크닐링엔, 노이로이트, 뮐부어그, 학스펠트 등 주변에 이미 여러 도시들이 있었다. 이 중 두를라흐가 1565년 바덴두를라흐 변경백 카를 2세가 이곳으로 천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중심도시로서 발전했다. 하지만 그후 30년 전쟁, 9년 전쟁에 의해 두를라흐 일대는 초토화되었다.

잦은 전쟁의 여파 때문에 1715년 카를 3세 빌헬름 변경백은 두를라흐에서 조금 떨어진 지금의 카를스루에 성을 중심으로 카를스루에라는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후 도시로서 번성하게 되었고 바덴 대공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도시를 세우게 된 데에는 일화가 있다. 지금의 카를스루에 성 주변은 원래 변경백의 사냥터였는데 그러던 어느날 사냥을 하다 낮잠을 잔 카를 3세 빌헬름이 그곳을 중심으로 도시를 지으라는 계시(?)를 받는 꿈을 꾸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겨 지금의 카를스루에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신도시를 계획하면서 바로크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고자 당시부터 뚜렷한 건축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였다. 또한 자신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시민을 해외에서 데려오기 위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건축부지와 건축비를 제공하였다. 그런 까닭에 18세기에는 이탈리아 반도, 스위스, 프랑스 왕국 등에서 이주한 시민들이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다문화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중 연합국의 공습에 의해 도시중심부의 건물이 대부분 무너졌다. 무너진 건물들은 전후 대부분 복원되었으나 지금까지 조금씩 조금씩 뜯어 고치는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연방 헌법재판소와 연방대법원이라는 도시 규모에 걸맞지 않는 최상위 사법 기관이 위치한 도시로, 이는 카를스루에가 수도였던 바덴 대공국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바덴주 및 프랑스미국이 점령했던 북바덴 지역과 뷔르템베르크, 호엔촐레른 지역을 묶어 바덴-뷔르템베르크주로 통합시키려는[4] 과정에서 바덴주와 바덴주의 모태격인 바덴 대공국의 수도 였던 카를스루에는 이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였다. 주의 수도가 기존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수도였던 슈투트가르트로 정해졌으며 따라서 카를스루에는 수도 기능을 잃을 것이기 때문. 그럴만도 한 것이 이미 인구 규모에서 1950년대 카를스루에는 20만명 남짓, 슈투트가르트는 50만명 남짓으로 두 배 이상 규모가 컸고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이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연방 쪽에서 던졌던 당근이 바로 연방의 중요한 기능인 최고 재판소 두 곳을 카를스루에에 할당하는 것이었다. 이후 이 연방 헌법재판소까지 두 지역의 합병에 관한 헌법 소원이 올라가게 되지만 합헌 결정이 내려져 카를스루에는 콩라인으로 주저 앉게 되면서도 연방 재판소를 두 곳이나 유치하게 되었다. 덕분에 독일 뉴스에서는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전할 때 간략하게 "카를스루에에서는..." 이라고 도시명만을 말하면서 시작하더라도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뜻하는 고유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 사실 독일어로 연방헌법재판소는 Bundesverfassungsgericht인 관계로 너무 단어가 길어져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2015년에는 건립 300주년을 맞이했다.

4. 경제

독일 전체는 물론이고 바이에른 다음으로 경제사정이 좋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안에서도 굉장히 잘 사는 도시 중 하나다. 주도 슈투트가르트만하임에 이은 3위의 GDP를 자랑한다. 단일 연구기관으로는 규모가 독일에서 제일 큰 KIT를 비롯해 독일 최대의 드럭스토어인 DM의 본사, 독일 3위의 전력 생산 및 공급 업체인 EnBW의 본사 등이 위치하고 있다. 이 밖에도 지멘스의 연구 및 생산기지, 1&1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인터넷 및 통신망 공급 업체인 United Internet의 데이터센터,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립은행의 4개 본사 중 하나, 주립 특수 은행인 L-Bank의 본사 등이 위치해 있다.

5. 기타

독일로 이주한 동포들이 1964년 5월 독일 카를스루에 한인회 설립했다. 동독에서 유학하던 탈북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카를스루에 한인회의 기틀을 닦았다. 2024년 3월에 6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6. 출신 인물

7. 관련 문서



[1] 독일어 한글 표기에서는 슈와를 'ㅔ'로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2] 단, Alkohol(술)과 같은 예외가 있는데, 이건 음절이 al/ko/hol로 나뉘어지기 때문에 h 발음이 가능한 것이다. 국내에서 alcohol을 알코올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조된다.[3] 한국의 대법원 격[4] 독일 제국 시기에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는 바덴 대공국과 뷔르템베르크 왕국, 프로이센 왕국의 월경지인 호엔촐레른 주가 위치해 있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 수립 후 바덴 대공국은 바덴 공화국으로, 뷔르템베르크 왕국은 뷔르템베르크 자유 인민주로 각각 개편하여 1945년까지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