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경의 수상 이력 | ||||||||||||||||||||||||||||||||||||||||||||||||||||||||||||||||||||||||||||||||||||||||||||||||||||||||||||||||||||||||||||||||||||||||||||||||||||||||||||||||||||||||||||||||||||||||||||||||||||||||||||||||||||||||||||||||||||||||||||||||||||||||||||||||||||||||||||||||||||||||||||||||||||||||||||||||||||||||||||||||||||||||||||||||||||||||||
|
<colbgcolor=#ffffff,#0B1727><colcolor=#000000,#ffffff> 최은경 崔恩景 | Choi Eunkyung | |
출생 | 1984년 12월 26일 ([age(1984-12-26)]세) |
대구직할시 수성구 (現 대구광역시 수성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대구용지초등학교 덕화여자중학교 목일중학교 세화여자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
종목 |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1000m, 1500m |
국가대표 | 2001-02~ 2005-06[1] (총 5시즌) |
신체 | 165cm, 59kg |
SNS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쇼트트랙 선수다.2. 선수 경력
덕화여자중학교 1학년 때 1998-99 시즌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이때 신설된 ISU의 나이 제한[2]에 걸려 대표팀을 나와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 목일중학교으로 전학했으며, 세화여자고등학교와 한국체육대학교에 진학했다.2.1. 2001-02 시즌
2.1.1.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전이경을 이을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고, 솔트레이크 시티 준결승에서 세계신기록도 작성했다. 계주 금메달과 개인전 1500m 은메달을 획득했다.2.2. 2002-03 시즌
2.2.1.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
1500m와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올랐다 3000m에서는 은메달을 따냈다.2.2.2. 2003 세계선수권
자신의 커리어 첫번째 종합 우승에 도정했다. 당시 중국의 에이스 양양(A)와 피말리는 접전을 펼칠거라고 예상되었다. 한국 팬들은 그녀가 양양에 세계선수권 종합 7연패를 막아줄거라고 기대하였다. 양양(A)는 아시안 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한 이후로도 여전한 기량을 뽐내고 있는 중이있다. 결국 접전 끝에 최은경이 1500m 금메달과 1000m, 3000m 은메달로 자신의 첫번째 세계선수권 종합 금메달이자 한국 선수로는 1997 전이경 이후 6년 만에 한국 여자 선수로서 우승했다. 하지만 당시 양양A가 아시안 게임에서 당한 부상으로 정상적인 폼이 아니기는 했지만 큰 부상이 아닌 잔부상이었기 때문에 최은경의 우승은 매우 값졌다.2.3. 2003-04 시즌
2.3.1. 월드컵 시리즈
월드컵 시리즈에서 전이경 이후 한국 여자 선수로는 두번째로 종합 우승을 하였다. 당시에는 지금과 다르게 단일 대회 출전 종목 제한도 없었고 선수권 방식으로 치러졌기 때문에 지금의 월드컵 시리즈와는 다르게 비교적 가치도가 더 높았던 시절이었다.2.3.2. 2004 세계선수권
1000m, 1500m, 3000m 계주에서 금메달 그리고 500m에서 동메달을 따며 종합 우승 2연패를 달성했다. 전이경 이후로 최초의 2연속 우승자가 되었다.2.4. 2004-05 시즌
2005년에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이 전원 무단 이탈을 하는 일이 생겼는데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니 당시 여자부 지도자들이 선수들에게 성적을 강요하며 폭행을 일삼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당시 폭행에 당사지인 최광복 코치는 파면되고 김소희 코치는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다.2.4.1. 2005 세계선수권
세계선수권 종합 3연패를 노렸으나 진선유라는 혜성처럼 등장한 거물급 선수에게 밀려 3연패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1000m 금메달과 3000m에서 동메달을 따며 종합 준우승을 차지 하였다. 하지만 이 준우승이 다음 시즌 파벌 싸움이 절정을 이루게 된 원인이 되고 만다. 아래 '파벌' 문단 참조.2.5. 2005-06 시즌
2.5.1. 월드컵 시리즈
월드컵 시리즈에서 부상으로 인해 개인전에서 큰 활약을 하지 못했으나 계주에 참가해 여자 대표팀이 메달을 따내는데 일조했다.2.5.2.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올림픽에서는 월드컵때와는 다르게 비교적 회복된 모습을 보이며 큰 활약을 펼쳤다. 3000m 계주 금메달, 개인전 1500m 은메달을 획득했다. 1000m에서도 2번째로 들어왔으나 양양(A)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제임스 휴이시의 논란이 있는 판정으로 실격을 당했다.3. 평가
진선유에 가려 올림픽에선 콩라인에 머물렀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한국 여성 쇼트트랙 선수 중에선 세계선수권 종합우승 경험도 2번이나 있는 엘리트 선수였다. 연령적으로도 전이경과 진선유 사이에서 한국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 에이스 라인을 담당하던 선수였다.2005 인스브루크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선 전관왕에 성공했고[3], 주종목인 1000m와 1500m 이외에도 한국의 취약 종목인 500m에서 준수한 실력을 갖췄던 선수였다.
4. 근황
2009년 현역에서 은퇴했으며, 이후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2016년, 한 화장품 기업의 마케팅 과장으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였다. 박사과정을 마칠 무렵 회사 대표가 취직 권유를 해서 받아들였다.
2022년 jtbc의 더메달리스트 시즌2에 출연했으며, 이후 쇼트트랙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5. 폭행의 피해자
5.1. 사건의 언론 보도 매체
2004년 여자 쇼트트랙 구타 사건은 이후에도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여러 파문에 겹친 사건들과 스포츠 선수 인권과 관련되어 여러 언론 매체들에서 많이 보도되었다.- 2014년 보도: 안현수의 귀화와 관련된 빙상연맹의 여러 문제점. 선수 구타 파문과 관련, 당시의 여자팀의 코치였던 최광복과 해설위원이었던 김소희에 대한 문제제기와 관련되어 서울신문, 스포츠조선, TV데일리에서 보도하였다.
- 2018년: 심석희의 구타 폭로 파문이 있으면서 다시금 보도되었으며, 이때 변천사가 JTBC 뉴스룸에 나와서 재폭로하였으며, 이렇게도 언급하였다. 당시 언론(스포츠춘추, JTBC) 보도에 나왔던 것보다 더 심했다. 코치 선생님들은 우리가 이것을 폭로하면 어디든 따라가서 괴롭힐 것이라고 하였다.
- 2023년 12월: 2004년 구타파문 당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상을 수상한 언론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5.2. 2004년 여자 쇼트트랙 구타 사건
일단, 당시 구타를 불러 일으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한체대와 비 한체대의 파벌 갈등은 어느 한쪽의 문제라 단순히 단정하거나 개개의 한 사건으로 모든 것을 판단 내리기에는 상당히 복잡하게 이어져있다.다만, 그런 파벌 갈등을 떠나 분명히 이시기 구타를 방조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피해자는 선수들이었다. 특히 출신 학교에 따라 파벌 갈등이 극심했을 당시, 최은경은 당시 비한체대였던 단국대 코치에게 폭행당한 피해자였다. 당시 최초로 폭로한 사람은 변천사였고, 진술서에 의하면 심한 폭행을 당한 선수 중 최은경이 있었다.
2004년 당시 여자 쇼트트랙 에이스인 최은경(한체대)과 여수연(중앙대), 변천사, 허희빈(이상 신목고), 강윤미(과천고) 등 주축선수 6명은 저녁 훈련이 끝난 뒤 태릉선수촌을 이탈했다.
당시 이탈 사건에 참가했던 한 선수는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하루도 매를 맞지 않고 운동한 날이 없다. 손으로 머리를 맞는 것은 다반사였고 심지어 아이스하키 채와 쇠로 된 로그게이지, 신발 등으로 팔뚝과 엉덩이, 빰을 가리지 않고 때렸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그는 “지난 10월 7일 아침 훈련 때 최은경 선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탔는데도 C 코치는 시간이 늦었다며, 스케이트날 집으로 엉덩이를 마구 때리더니 엎드려 뻗쳐를 시켰고 쓰러지는 선수의 목덜미를 잡고 계속 때리기도 했었다”면서 “이런 폭력은 수도 없이 행해졌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선수도 “훈련장에서는 물론이고 지난달 해외 전지훈련을 했던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와 국제대회(월드컵)가 열리는 외국에서도 구타는 끊이지 않았다”며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너무나 소중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스케이트를 제일 혐오하게 됐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선수들은 계속된 폭력에 팔목이나 엉덩이에 피멍이 들기 일쑤였고 한 선수는 머리채를 잡히거나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털이 한 움큼 빠지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진술서에는 정확히 최은경이라는 이름이 확인된다. 구타 사건의 코치들은 당시 비한체대 출신 최광복, 김소희였다. 문제는 최광복은 이 사건 이후에도 2005년 강릉시청 실업팀 감독을 하였으며, 국가대표팀 코치를 연이어 맡았다. 최광복의 학교는 광문고등학교 단국대이다. 또한, 이 여자 쇼트트랙 구타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피해 선수들이 당시 한체대 라인의 선수들이었으며. 이후 코치진은 한체대 코치인 박세우 단국대 코치인 전재목으로 변경되었다.
6. 파벌
상기된 살벌한 폭행 사건에 묻히긴 했지만, 최은경도 파벌 논란에서 빠질 순 없는게 그녀가 적극적으로 관여했든 아니든 당시 한체대파의 에이스로 실제 여러 특혜를 받은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단 2003 세계선수권에서 양양(A)의 7연패를 저지하며 우승했지만 비한체대파의 조해리[4]가 희생하여 노골적인 팀플레이를 해줬다. 비한체대파의 대표 선수 진선유에게 당시 여자대표팀의 한체대 코치들이 2005 세계선수권에서 최은경과 강윤미를 돕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실제 진선유의 도움으로 개인종합 2위를 하게 되나 팀플을 강요당한 진선유는 심판들에게 경고를 받았다.파벌 싸움의 절정을 이룬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사달의 원인이 된 선수이기도 했다. 당시 최은경은 부상에 시달리며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던 시점으로 치열한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할 보장이 없었다. 그러자 빙상연맹의 중추를 쥐고있던 한체대 쪽에서 전 시즌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자에게만 주는 국가대표 1차 선발전 면제권을 1-3위에게 모두 주도록 규정을 바꿔버린다.[5] 바뀐 규정으로 예비 국가대표 8명 중에서 3명(비한체대-진선유/한체대-강윤미, 최은경)이 자동선발 되나, 진선유는 부합리한 규정이라고 반발하며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 참가하여 1위로 선발되었다. 전년도 세계선수권 우승자가 국가대표 선발전을 뛰는데 2-3위는 자동선발되는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름 태릉선수촌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1차 선발전 2위를 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던 조해리가 갑자기 퇴촌한 것이다. 퇴촌 당시 여러 잡음이 있었는데 조해리는 자살사이트에 가입할 정도로 우울증에 걸렸으며, 2차 선발전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진선유를 제외하고 모두 한체대파로 채워지게 된다.[6]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계주 금메달 이후 세리머니에서 한체대-강윤미, 전다혜, 최은경/비한체대-변천사, 진선유가 갈린 모습이 TV에 전부 중계되었다. 특히 1000m 개인전 출전에서 문제가 되었는데, 2005-06 시즌 월드컵에서 변천사가 출전하여 1000m 개인전 출전권을 따왔다. 그리고 당시 변천사는 스무살로 전성기의 나이였고 실력 또한 우위라고 평가되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최은경이 출전하게 된다. 이에 대해 당시 많은 빙상팬들은 변천사가 언론에 한체대 파벌 갈등의 진상을 폭로한 것에[7] 대한 보복성 조치 아니냐고 생각했다. 변천사와 그녀의 부모님도 올림픽 이후 아쉬움과 억울함을 토로했다.[8]
7. 수상 기록
7.1. 주요 국제대회 성적
대회 | 금 | <colcolor=#ffffff> 은 | <colcolor=#ffffff> 동 |
올림픽 | <colbgcolor=#ffe970,#554600> 2 | <colbgcolor=#c0c0c0,#444444> 2 | <colbgcolor=#d7995b,#442910> 0 |
세계선수권 | 8 | 2 | 2 |
세계 팀선수권 | 5 | 1 | 0 |
아시안 게임 | 2 | 1 | 0 |
유니버시아드 | 5 | 0 | 0 |
합계 | 22 | 6 | 2 |
올림픽 | ||
금메달 | 2002 솔트레이크시티 | 3000m 계주 |
금메달 | 2006 토리노 | 3000m 계주 |
은메달 | 2002 솔트레이크시티 | 1500m |
은메달 | 2006 토리노 | 1500m |
세계선수권 | ||
1위 | 2002 몬트리올 | 3000m S.F. |
금메달 | 2002 몬트리올 | 3000m 계주 |
금메달 | 2003 바르샤바 | 종합 |
금메달 | 2003 바르샤바 | 1500m |
금메달 | 2004 예테보리 | 3000m 계주 |
금메달 | 2004 예테보리 | 종합 |
금메달 | 2004 예테보리 | 1000m |
금메달 | 2004 예테보리 | 1500m |
금메달 | 2005 베이징 | 1000m |
은메달 | 2003 바르샤바 | 1000m |
2위 | 2003 바르샤바 | 3000m S.F. |
은메달 | 2005 베이징 | 종합 |
동메달 | 2004 예테보리 | 500m |
3위 | 2005 베이징 | 3000m S.F. |
동메달 | 2006 미니애폴리스 | 1500m |
세계 팀선수권 | ||
금메달 | 2002 밀워키 | 단체전 |
금메달 | 2003 소피아 | 단체전 |
금메달 | 2004 상트페테르부르크 | 단체전 |
금메달 | 2005 춘천 | 단체전 |
금메달 | 2006 몬트리올 | 단체전 |
은메달 | 2001 노베야마 | 단체전 |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2003 아오모리 | 3000m 계주 |
금메달 | 2003 아오모리 | 1000m |
은메달 | 2003 아오모리 | 3000m |
유니버시아드 | ||
금메달 | 2005 인스브루크 | 3000m 계주 |
금메달 | 2005 인스브루크 | 500m |
금메달 | 2005 인스브루크 | 1000m |
금메달 | 2005 인스브루크 | 1500m |
금메달 | 2005 인스브루크 | 3000m |
7.2. 세계선수권 성적
- 2회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 챔피언
- 세계선수권 타이틀 9개 (3000 m 1개 포함)
- 세계선수권 금메달 8개 (개인종목 금메달 6개, 계주 금메달 2개)
- 세계선수권 개인종목 5승 (3000 m 포함)
- 팀 세계선수권 타이틀 5개
세계선수권 수상성적 | ||||
대회 | 금 | 은 | 동 | 포디움 |
세계선수권 개인 메달 | 6 | 2 | 2 | 10 |
세계선수권 계주 메달 | 2 | 0 | 0 | 2 |
합계 | 8 | 2 | 2 | 12 |
세계선수권 성적 기록 | |||||||
시즌 | 종합랭킹 | 포인트 | 500 m | 1000 m | 1500 m | 3000 m | 계주 |
2002 | 4위 | 47 | - | 4위 | 5위 | 1위 | 금 |
- | 8 | 5 | 34 | - | |||
2003 | 금 | 76 | - | 은 | 금 | 2위 | - |
우승 | - | 21 | 34 | 21 | - | ||
2004 | 금 | 84 | 동 | 금 | 금 | 6위 | 금 |
우승 | 13 | 34 | 34 | 3 | - | ||
2005 | 은 | 63 | 4위 | 금 | 4위 | 3위 | - |
2위 | 8 | 34 | 8 | 13 | - | ||
2006 | 6위 | 15 | - | 5위 | 동 | 7위 | - |
- | - | 13 | 2 | - |
세계선수권 성적 종목 통계 | |||||||
메달 | 종합 | 500 m | 1000 m | 1500 m | 3000 m | 계주 | 합계 |
금 | 2 | - | 2 | 2 | 1 | 2 | 9 |
은 | 1 | - | 1 | - | 1 | - | 3 |
동 | - | 1 | - | 1 | 1 | - | 3 |
합계 | 3 | 1 | 3 | 3 | 3 | 2 | 15 |
- 국가대표 팀으로 활약한 5시즌의 세계선수권 결과 기재.[9]
7.3. 월드컵 성적
월드컵 우승 기록 | ||||
종합 우승 | 2003-04 시즌 | |||
1000 m 1위 | 2003-04 시즌, 2004-05 시즌 | |||
1500 m 1위 | 2003-04 시즌 |
월드컵 수상 기록 | ||||
월드컵 랭킹 | 우승 | 2위 | 3위 | 포디움 |
종합 | 1 | 0 | 0 | 1 |
1000 m 랭킹 | 2 | 0 | 0 | 2 |
1500 m 랭킹 | 1 | 0 | 0 | 1 |
합계 | 4 | 0 | 0 | 4 |
월드컵 메달 | 금 | 은 | 동 | 포디움 |
종합 | 7 | 6 | 5 | 18 |
500 m | 1 | 0 | 0 | 1 |
1000 m | 12 | 1 | 2 | 15 |
1500 m | 7 | 5 | 2 | 14 |
3000 m | 9 | 6 | 2 | 17 |
개인전 합계 | 36 | 18 | 11 | 65 |
3000 m 계주 | 10 | 4 | 5 | 19 |
메달합계 | 46 | 22 | 16 | 84 |
랭킹 + 메달 합계 | 50 | 0 | 0 | 88 |
월드컵 랭킹[10] | ||||
시즌 | 종합 | 500 m | 1000 m | 1500 m |
2000-01 | 4위 | 6위 | 6위 | 4위 |
2001-02 | 7위 | 10위 | 8위 | 12위 |
2002-03 | 5위 | 5위 | 7위 | 4위 |
2003-04 | 1위 | 5위 | 1위 | 1위 |
2004-05 | 4위 | 17위 | 1위 | 6위 |
랭킹 20위까지 표기[11] |
[1] 2005-06시즌은 빙상연맹 특별추천선수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을 얻었다. 당시에는 빙상연맹 고위 관계자들에 의한 특별 추천제도가 존재했었으며, 최은경과 같이 토리노 올림픽 연맹 추천선수로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의 개인전 출전권을 얻은 선수는 이호석이다. 단 2006년 이후 빙상연맹 특별추천 선발 선수제도는 사라진다.[2]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전년도의 7월 1일까지 만 15세를 넘겨야 한다.[3] 사실 유니버시아드가 무게감이 있는 대회는 아니지만, 전관왕을 하면 아무래도 화제가 되는 편이다. 2년 뒤에는 남자 대표팀에서 성시백이 전관왕에 성공했다.[4] 고려대학교에 진학했으며 비한체대파 모지수 코치의 애제자이다.[5] 당시 선발전 방식은 4월 1차 선발전에서 8명을 선발하고 여름 동안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한 뒤 9월에 2차 선발전을 치러 5명을 선발하는 방식이었다.[6] 변천사는 부당한 파벌싸움에 반발한 선수이고 결국 한체대를 자퇴하게 되지만 당시 한체대 입학예정자였다.[7] 변천사는 한체대 입학 예정자였지만 당시 여자대표팀 코치가 한체대 선수들에게 "중국선수들에겐 져도 괜찮지만 진선유는 우승시키면 안 된다."라는 질투에 정신나간 지시를 한 것에 충격받고 이를 언론에 터트린 후 비한체대쪽으로 둥지를 옮겼다.[8] 여담으로 이후 2014 소치 동계올림픽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인사로 참가한 변천사는 여자 1000m 경기 후 당시 트위터에 박승희와 심석희의 선전을 축하하며 "1000m에 출전했다는 자체가 부럽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9] 세계선수권 결과 기재: 수상기록이 없는 시즌 결과는 제외, 8위까지의 개인 종목 순위 결과와 포인트의 기록. 2023년 세계선수권 부터는 종합제와 3000 m 슈퍼파이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메달과 순위결과만 기재.[10] 월드컵 랭킹 표기는 랭킹 20위까지 표기를 기준으로 한다. 20위를 넘는 성적은 전체 커리어의 상위 80%를 기준으로 기재한다.[11] 랭킹 표기: 20위까지 표기 (전체 랭킹기록 24개 중에 85%인 20개까지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