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11:29

최강희(축구인)/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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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감독 유형3. 인격적인 부분4. 구단 직원의 심판 매수 사건5.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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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강희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감독 유형

닥치고 공격, 일명 닥공으로 불리는 수비 불안의 리스크를 갖는 극단적인 공격 전술로 일관한다. 3장의 교체 카드는 거의 모든 경기에 공격 자원을 투입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스쿼드가 좋지 않은 시절에는 전형적인 카운터 전술이 많았다. [1] 선수시절 측면에서 뛰어서 그런지 측면에서의 플레이를 상당히 중시 하는듯.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윙덕후다.

공격 에서는 경기장을 넓게 쓰기보다 한쪽 측면에 선수를 몰아 넣어 완전히 장악하여 좁은 공간에서 윙어 중심의 연계를 통해 선수 개인 기량으로 풀어낸 다음 순간적으로 반대쪽 윙어가 중앙으로 들어가 투톱을 형성해 상대 페널티 박스안 공격수를 늘려 컷백 내지 크로스로 주로 공략한다. 특히 이 전술은 홈에서 경기내지 득점이 필요할때 경기 70분부터 중앙 미드필더 까지도 번갈아 가며 상대팀 페널티 에어리어 박스안에 침투시켜 공격 숫자를 엄청 늘리고 롱 킥 후 볼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세컨볼 싸움에 우위를 점해 볼을 다시 가져오고 침투 패스나 크로스 중심으로 공격을 계속 시도한다. 말 그대로 시그니처인 닥공 축구를 특히 홈 경기서 대부분 구사하며 원정 경기에서는 상황에 따라 라인을 적당히 내리고 빠른 역습으로 승부를 많이 보며 팀 승점을 안정적으로 따내는 쪽으로 경기한다.

윙어를 극단적으로 선호하는 성향도 있지만 닥공 자체가 윙어들에게 체력적 부하가 큰 전술이다.[2] 그러다보니 괜찮은 윙어가 나왔다 싶으면 무조건 찔러봤으며 경기 초반에는 윙어까지 상대 윙백을 철저한 맨투맨으로 끝까지 따라 다니며 체력을 빼놓고 경기 70분쯤 윙어를 교체시켜 체력을 안배시켜주고 새로 투입된 윙어는 높은 에너지로 체력이 떨어진 윙백이 있는 측면을 수월하게 적극 공략하며 중앙 공격수와 윙어의 로테이션을 적절히 활용해 효율적으로 경기 운용을 한다.

선수들을 한 쪽 측면에 몰아넣는 모습은 현대 축구에서 대부분의 팀이 사용하는 포지션 플레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데, 최강희가 이러한 전술을 사용하는 이유는 공이 뺏겨도 빠른 압박을 통해 공을 다시 가져와 공격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쪽 측면에 여러 선수들을 투입해 공을 돌린다면 상대 선수들이 여기서 공을 뺏어내도 상대 선수에게 둘러쌓여 있어 다른 선수들에게 패스를 내주기 어렵기 때문에 공을 쉽게 뺏어올 수 있다. 실제로 최강희 감독 시절 전북의 경기를 보면 상대보다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공을 가지고 공격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공을 다시 뺏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측면에 몰린 선수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공을 주고받으며 공격하기 때문에, 일정한 패턴이 없어 상대 팀 입장에서는 수비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다만 이러한 공격 전술은 좁은 공간에서 순간순간의 번뜩임으로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는 퀄리티 높은 선수들이 필요하고, 순간적으로 선수가 부족한 반대쪽으로의 반대 전환에 쉽게 실점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거기에 최강희 감독 특유의 공격적인 성향이 겹쳐져 경기를 보다 보면 상대 역습 시 수비 1-2명과 상대 공격수들이 대치하는 상황이나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다가 역습 한두 번에 실점해 무너지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3]

수비 스타일에서는 맨투맨 수비를 고수하며 깔끔한 수비보다 거칠고 투쟁적인 수비를 선호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과격한 플레이로 카드 문제를 항상 달고 다니는 조성환을 주장으로 선임해 신뢰를 보내기도 하고, 김민재의 공격적인 수비 성향을 전지훈련에서 알아보고 바로 주전 수비수로 낙점해 K리그 최고의 센터백으로 길러냈다. 황선홍 감독이 유튜브 슛포러브 채널에서 이야기 하길 본인이 3-5-2 전술로 변화를 주었을때 최강희 감독의 전북도 똑같이 3-5-2로 바꾸면서 철저하고 집요하게 대인 마크하는 수비를 했을 정도라고 이야기 했을 정도이다. 2015년 말 장윤호의 인터뷰에 따르면 공격에 관해서는 별다른 지시가 없고, 수비에 관해서 대인마크를 중심으로 수비 시의 간격조정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지도한다고 한다. [4]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는 극단적으로 타겟맨을 이용한 롱볼에만 집착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 문제가 가장 크게 드러났던 것이 2013년 이란과의 최종예선.[5][6]

국가대표팀 감독을 마치고 전북으로 돌아온 시절에는 이러한 성향이 더 크게 드러났다. 이 시기에는 다른 K리그 감독들이 전북의 막강한 공격력에 대비해 전북만 만나면 모두 내려서서 역습 한 방을 노리는 축구로 일관했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성향과 겹쳐 답답한 경기 양상이 자주 나타났다. 거기에 최강희는 상대 감독들의 이런 전술 대해 다른 방법을 고안하기보다는 더 강력한 장신 선수를 이용한 롱 볼을 구사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장신 스트라이커가 아쉬우니 2m에 육박하는 김신욱을 데려오고, 김신욱을 향한 크로스가 아쉽자 김진수와 이용을 영입히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장신-롱볼 전술은 자칫 공격패턴이 너무 단조로워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최강희는 에닝요, 레오나르도 등 개인기로 상대방의 측면을 파괴할 수 있는 윙어를 둠으로써 장신-롱볼 전술의 단조로움을 해결했다. 하지만 이들이 전북 현대를 떠나고 측면 크랙이라고 할 만한 선수가 로페즈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면서 최강희 감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윙 플레이가 줄어들었다.[7] 결국 전북 2기의 후반부에는 풀백들의 크로스+김신욱의 머리에만 의존하는 단순한 플레이가 반복됐다.

이러한 단조로움을 해결해주는 선수가 바로 이재성이었다. K리그 시절 이재성은 공격에서는 전방으로 찔러주는 패스, 드리블 능력, 오프 더 볼 움직임이 모두 뛰어난 K리그 역사에서 손에 꼽는 미드필더 중 하나였는데, 최강희는 이러한 이재성을 활용해 상술한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결국 최강희의 전북 말년, 특히 마지막 2년동안은 이재성의 유무에 따라 경기 퀄리티가 들쭉날쭉하는 모습을 보였다.[8]

3. 인격적인 부분

선수 시절 울산 구단에 독일식 선수 관리 시스템을 적용하려는 차범근 감독과 불화가 생겨 대판 싸우게 되자, 차범근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캐리커쳐를 그려 선수단에 배포했고, 동료 선수들이 그 그림을 향해 다트를 던지며 차감독을 모욕했다는 일화를 십수년이 지난 시점의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해묵은 과거를 들춰내며 선배이자 자신의 은사였던 레전드를 다트판 커리커쳐로 전락시키며 조롱하듯 인터뷰를 한 태도가 비인격적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최강희는 이뿐만 아니라 비바 K리그와 포포투를 포함한 여러 언론에서 차범근을 독선적인 사람으로 비하하며 비아냥거리기를 서슴치 않았다.

애당초 그와 차범근이 불화를 겪으며 은퇴까지 향하게 된 원인에는 그의 잘못이 크다는게 축구계의 중론이다. 선수시절 최강희는 매번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며 틈만 나면 줄담배를 피워댔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했던 차 감독은 당연히 이에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9] 그는 은사인 조중연이 현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겨우 술과 담배를 끊고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조중연이 물러나고 차범근이 현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몇 차례 의견 충돌 이후 다시 술과 담배에 빠져들었고 이런 자제력 없는 태도는 그가 조기 은퇴하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다.

몇몇 팬들은 계약 문제로 차범근이 독선행위를 저질렀고 차범근 때문에 최강희가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는 최강희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며 차범근이 선수의 계약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되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10] 즉 양비론을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그는 차범근에 의해 자신이 강제로 억울하게 은퇴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자신도 팀의 레전드인 최진철강제로 은퇴시키기도 했다.

아이러니한건 선수였을 땐 차범근 감독과 마찰을 빚으며 그를 조롱했던 최강희 본인도 한국 국대 감독직을 맡게된 이후엔 기성용에게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다거나, 자신이 못하기만을 바라겠다는 둥 비난과 조롱이 가득 담긴 뒷담화를 듣는 수모를 겪게 된다.

4. 구단 직원의 심판 매수 사건

전북 현대 직원의 심판 매수 사건이 터지면서 K리그에 다시 한 번 팝콘파티가 열렸다. 그러나 이후 인터뷰가 계속되면서 논란이 됐다.

사령탑 최강희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불발되면서 팬들이 수준 높은 경기를 볼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겼다"'면서 "(전북에 부임하면서) 우승은 할 수 있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팬들께서 경기장의 열정적인 문화를 만들어 주셨다. 다시 일어서도록 하겠다. 올 시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 K리그의 관심 없는 팬이라면 이게 왜 문제라고 볼 수 있으나, K리그 팬들은 빼앗겼다는 발언이 잘못됐다면서 최강희를 비난했다. 그리고 K리그 팬들에게 사과와 매수에 대한 반성 없는 건 덤.

최강희, "징계부터 잘못...강등 고려했다"

징계 받았을 때와 매수 사건 터졌을 때와의 반응과 정반대되어 까이고 있다. 그리고 책임진다면서 그대로 넘어가기에 더 까이고 있다.

최 감독은 '심판 매수' 사건이 터진 다음 날인 지난 5월 24일 "분명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사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5일 "그때는 정말 100% 그만두려고 했다"며 "이제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당시 속마음을 밝혔다. 그만두려고 했다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의미 없어졌다고 말하며 말을 번복했다.

그는 ''모든 우승컵은 심판 매수로 이룬 것이고, 범죄 집단처럼 돼버렸다"고 힘들었던 심경을 말했다.

30년 전부터 관행적으로 돼 온 일들이 다 밝혀진 것도 아니고, 자유로운 구단도 하나 없는데 전북으로 몰아가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심판들이 전북에 배정받는 것을 엄청 싫어했다"며 "그래서 정말 우리 홈에서만큼은 최소한 5대 5로 봐달라고 애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심판매수에 대해 구단도 피해자라고 호소하고 있다

5.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으며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며 대표팀을 월드컵 예선탈락의 위기에 몰아갔다. 카타르손흥민버저비터 결승골, 레바논김치우버저비터 프리킥 동점골이 없었거나, 당장 우즈벡이 최종예선에서 단 2골만 더 넣었다면 조예선 3위로 플레이오프로 밀려나 이기더라도 남미와 진출권을 놓고 싸워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있었다. 쿠웨이트를 상대로 비기기만하거나 UAE가 레바논과 비기기만해도 출전이 확정되는[11] 조광래의 상황보다 몇배는 더 위험한 상황을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58~82년까지 한국의 월드컵 실패사를 살펴보면 기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최종 예선이나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다. 위험도는 낮았을 지 몰라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면 한국의 월드컵 실패사 중에서도 최악의 흑역사가 될 일이었다. 위에서 말한것처럼 애당초 맡고 싶지 않았던 팀을 은사인 조중연의 강요로 떠맡은 측면이 있고[12], 몇몇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 항명을 하는 등 개판 오분전인 대표팀이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적어도 확실한 봉합 정도는 해줘야 했는데 감독 말기엔 거의 자포자기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면서 확실히 대표팀이 몰락하는데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대표팀에서 복귀한 2014~2015 시즌에는 리그 2년 연속 우승에도 전술, 전략 능력과 관련한 논란이 일었다. 4-2-3-1 시스템에 원톱을 중심으로 윙어를 이용한 특유의 축구 전술에 전혀 전술적인 발전이 없다는 지적이다. [13]

실제 최강희는 전술과 지략이 뛰어난 지도자는 아니다. 대신 선수단 장악과 관리 및 저조한 컨디션으로 바닥을 치거나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정체된 선수의 포텐을 끌어내는데 탁월한 역량을 보이는 전형적인 매니저 유형의 지도자다. 이에 그의 지지자들조차 과거 감독대행 및 팀 수석코치를 역임한 이흥실[14]처럼 전술적으로 유능한 코치가 팀에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최강희 감독이 만든 최고의 브랜드인 닥공도 대중적 인지도에 비해 전술적 완성도가 아주 높다거나, 유럽의 최신 트렌드를 장착한 전술은 아니었다. 닥공 전술은 전방 자원들, 특히 윙어들의 부하가 아주 크고, 수비적으로는 센터백들과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하가 아주 커진다. 전방압박 전술을 짜기 어려운 이유가 전방 선수들의 체력을 관리하기 힘들고, 수비 뒷공간이 넓어진다는 것인데, 닥공은 이러한 단점을 전술적으로 커버하기보다는 선수들의 퀄리티와 뎁스로 무마하는 면이 강했다. 닥공의 백미는 한 경기, 한 경기의 전술이 아니라 시즌을 통으로 봤을 때의 매니지먼트다. 닥공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다보면 자연히 출전 시간에 불만을 품는 선수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최강희는 애초에 준주전급으로 뛰어도 큰 불만이 없을 선수를 데려온다거나, 현재 불만이 있는 선수를 길들인다거나, 영 안되겠다 싶으면 이적 시장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빠르게 선수를 처분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결국 닥공이라는 브랜드 역시 최강희의 헤드 코치로서의 면보다는 팀 매니저로서의 면이 더 강하게 드러난 브랜드인 셈이다.

더블 스쿼드 관리 실패는 특별히 전술적인 실패라기보다는 안정적인 운영을 선호하는 최강희 감독의 스타일 때문인지 노장들 위주로 팀을 꾸려온 것이 문제가 되었다.[15] 기껏 다시 데려온 전북의 두 전설적인 외국인 선수인 에닝요와 루이스가 나이를 못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동국, 윌킨슨, 김형일 등 노장 선수들도 시즌이 진행될수록 체력이 잘 회복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인지 2016 시즌을 앞두고 즉시 전력감의 선수들을 거의 쓸어오다시피 영입하고 있다. 앞에 글에서 에두 이적자금이라고 썼지만 얼마전 인터뷰에서 아직 에두 이적자금은 쓰지도 않았단다. 그리고 이 스쿼드를 중심으로 16시즌에는 아챔 우승, 17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무엇보다 이 두 시즌에는 뻔히 보이는 전략이 아닌 유연성과 경기력 관리 측면에서도 팬들의 평가가 상당히 높아진 상태.

전북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후임 주제 모라이스[16]김상식이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고, 특히 김상식의 무전술로 호화스쿼드를 들고도 선수단들과 불화만 일으키고 막장 경기력으로 팀컬러인 닥공을 희석시키며 팬들과도 대립하여 전북의 관중 수를 반토막내며 6년만에 리그를 울산한테 내준 직후에는 최강희의 전술적 능력이 긍정적으로 재평가받게 되었다.[17]

여기에 휴식기를 마치고 맡은 산둥 타이산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면서 아시아 레벨에서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즉 전술가형 감독이 아닌 매니저형 감독이라고 보는 게 맞으며, 선수들을 영입할 때 본인의 전술이 아닌 선수의 특성에서 전술을 짜 와서 만드는 카를로 안첼로티와도 비슷한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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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빠른 윙백이나 윙포위드를 이용해서 카운터를 노리는 경기가 많았다.[2] 최강희 감독의 닥공 축구에서 윙어에게 공격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으로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강조하는데 이에 따른 체력 소모가 꽤 큰 편이다.[3] 다만 전북은 역습에 적은 수비로 감당하는 리스크에 익숙해져 있기에 침착하고 과감한 수비로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넘긴적도 많으며 또한 상대의 역습 루트를 분석해 지나가는 지점에 센터백과 미드필더가 수준높은 협력수비로 역습에 대비는 잘 구축하였다.[4] 경기중 벤치에서 대부분 표정 변화가 없이 침착한 최강희 감독이지만 수비시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마크 안 붙었을때 만큼은 ”바짝 바짝“ 외치며 그게 잘 안 이루어졌을때 강하게 질책하는 편인데 훈련때도 ”바짝“ 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할 정도로 상대에게 강하고 적극적인 수비를 강조한다.[5] 이날 한국은 경기를 지배하다시피 하며 이란을 경기 내내 몰아붙였으나 이동국, 김신욱 투톱만을 본 무한 크로스와 골문 앞에서의 결정력 부족으로 골을 만들지 못했고 이란의 역습 한방에 실점하며 패배하였다.[6] 이란은 인종적으로 봤을 때 유럽인에 가깝다. 오히려 남유럽보다 체격조건에서는 우월하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이 아무리 아시아에서 잘한다쳐도 이란 축구대표팀이 평균적인 힘과 높이에서 밀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 이란 축구 대표팀은 전통적으로 우월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선 수비 후 역습에 특화된 팀이다. 여러모로 봤을 때 이란 축구대표팀의 선수구성과 플레이스타일 자체가 최강희식 축구에 대한 카운터였던 셈이다.[7] 로페즈도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는 측면에서 크로스만 올리려 하는 습성이 있다.[8] 이는 이동국의 이재성에 대한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이동국은 "재성이가 라인업에 있는 전북은 1군이고 아니면 2군"이라고 이야기했다.[9] 본인은 "자기는 그러면서도 국가대표를 할 정도로 잘 했는데, 세세한 부분까지 터치하는 차범근 감독과 맞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지만, 줄담배를 피우고 술을 자주 마시는 선수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감독이 있을까?[10] 구단이나 모그룹의 입김이 강한 한국 프로 스포츠판에서 감독이 선수의 연봉협상을 주도하고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 당연히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 구단에서 그것을 인정한 적은 없다. 만약 최강희의 주장대로 차범근이 마음대로 연봉을 결정하고 선수에게 통보만하는 독재를 저질렀다면 당시 사제지간을 맺은 선수의 입이나 한창 차범근 죽이기로 여론이 하나로 뭉쳤던 98년도에 이미 그것이 밝혀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즉 차범근이 마음대로 연봉을 결정하고 선수에게 통보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최강희 본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애시당초 차범근이 강제로 담배를 입에 물리고 피우게 한게 아니라면 누워서 침뱉기나 다름 없는 소리다.[11] 실제 UAE가 4:2로 레바논을 꺾었다[12] 조중연 뿐만 아니라 현대가에서도 은근한 강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정몽준 명예회장과의 식사회동등. 한마디로 전방위적인 압박에 등떠밀려 국대감독을 수락한 것[13] 최강희 감독의 전술에 큰 변화는 없어도 중앙 공격수와 특히 윙어들은 좋은 개인기 능력 바탕으로 다양하게 개성이 있는 플레이 스타일의 선수들로 여러 영입하며 전술 단조로운 부분의 단점들을 해결했다.[14] 실상 전북 특유의 닥공전술의 핵심에 있었던 전략가이며 현장 축구인들에게도 전술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한 코치라는 평가를 받는 지도자다. 경기마다 상대팀에 맞선 전술과 전략을 가장 많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유형의 지도자이며, 학구파이기도 하다. 다만 전북 감독대행에 막상 오르고나서, 펩 과르디올라가 구사하는 쓰리백 전방압박 축구의 도입과 공격수 정성훈의 중앙수비수 기용(이때는 수비수 부상이 너무 많아 아예 수비진이 파탄날 지경이라 어쩔 수 없었다.) 등 파격적인 전술을 너무 많이 추구했고 이에 팀이 흔들리며 다소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나야만 했고 감독으로 취임한 안산에서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중이다. 최근 K리그에서도 전술가형 감독은 김학범, 남기일 등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성과를 찾기 힘든 편이고, 스타들을 장악하는 매니저 형으로 평가받는 최용수나 정반대 스타일의 덕장 매니저 형인 서정원 등이 주목받는 실정이다. 그래도 19시즌에 김병수가 병수볼이란 이름으로 선전하고 21시즌에 김기동, 이병근, 안익수 등이 활약하면서 나아진 편이다.[15] 최강희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듯 베테랑 선수들의 체력과 운동 능력은 어쩔수 없이 젊은 선수보다 밀리지만 대신 쌓아온 연륜에 의해 경기 순간적인 상황에 판단하는 능력에 빠르게 우위를 점하며 경기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고 또 경기중 위기나 변수에서도 경험이 빛을 발해 비교적 팀이 덜 흔들리고 빠르게 회복하고 나아가는 것에서 큰 장점을 보여준다.[16] 다만 모라이스는 전임 최강희의 후임 감독으로 선임된것에 대해서 비교 기대치가 높았던 것도 고려해야 하고 2년 연속 리그 우승, 2년 연속 지도자상, 전북 구단 역사상 첫 더블을 기록한 점에서 김상식에 비해 훨씬 평이 좋은 편이다.[17] 2016 시즌은 최다승점을 쌓았지만 심판매수 사건으로 승점이 삭감되는 외적요인으로 우승컵을 내준 시즌인걸 고려하면, 사실상 10년 가까이 전북 왕조였던걸 김상식이 박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