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3 11:27:47

존 액스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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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블루제이스 No.77
존 버튼 액스포드 (John Berton Axford)
생년월일 1983년 4월 1일 ([age(1983-04-01)]세)
국적 캐나다
출신지 온타리오 주 심코
출신 학교 노트르담 대학교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5년 드래프트 42라운드 (전체 1259번, CIN)
소속팀 밀워키 브루어스 (2009.09.08.~2013.08.3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13.09.01.~2013.12.0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13.12.20.~2014.08.14.)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4.08.15.~2014.10.26.)
콜로라도 로키스 (2015.01.31.~2015.11.26.)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2015.12.12.~2017.07.31.)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8.02.10.~2018.07.3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18.08.01~2018.10.30.)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9.02.17.~2019.03.26.)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9.04.05. ~ )

1. 개요2. 선수 생활
2.1. 메이저리그에 오르기 전까지2.2.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2.3. 세인트루이스 시절2.4. 클리블랜드, 피츠버그 시절2.5. 콜로라도 시절2.6. 오클랜드 시절2.7. 토론토 시절2.8. 짧았던 다저스 시절2.9. 다시 토론토행, 그러나 부상
3. 피칭 스타일4. 기타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불펜 투수. 그의 성인 액스포드(Axford)에서 따온 'The Ax Man이란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선수 생활

2.1. 메이저리그에 오르기 전까지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37승 12패 ERA 1.88로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졸업을 앞두고 2001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 참가해 시애틀 매리너스로부터 7라운드에 지명(전체 219순위)을 받았지만 시애틀에 입단하지 않고 노트르담 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 후 노토르담의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14승 6패를 기록했으나 2003년에 팔꿈치 부상을 겪으며 토미 존 서저리를 받게 된다. 수술 이후 겨우 4경기 밖에 등판하지 못했고, 결국 2005년 드래프트에 참가했지만 신시내티 레즈로부터 42라운드에 지명을 받는다.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보다 더 늦은 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자 신시내티 입단을 미루고 1년 더 대학에서 활동했으나, 이듬해 다시 참가한 2006년 드래프트에서는 아예 지명조차 받지도 못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뉴욕 양키스 관계자의 눈에 우연히 띈 덕분에 2006년 8월 양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어 드디어 프로 무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입단 후 싱글A 무대에서는 선발 등판한 5경기를 포함해 총 26경기에 등판하며 승·패 없이 ERA 2.97을 기록했으나, AAA팀에서는 1경기 만에 ERA 13.50을 기록한 탓인지 결국 해당 시즌이 끝나고 양키스로부터 방출됐다. 방출된 후 오프 시즌 동안 생계를 잇기 위해 고향 근처인 토론토 지역의 한 텔레커뮤니케이션 회사에서 휴대폰 외판원으로 일했다. 그의 말로는 통장 잔고에 돈이 없어 ATM 앞에서 한숨을 쉬며 발을 돌렸던 때가 많았다고 한다.

2.2.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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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스에서 방출되고 학창 시절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프로 적응에 실패한 그저 그런 마이너리그 선수 중 하나로 묻히나 싶었지만, 액스포드는 야구 선수의 꿈을 접지 않고 개인 훈련을 하며 틈틈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을 상대로 피칭 세션을 가졌다. 한 번은 플로리다 주 더네딘에서 밀워키 브루어스의 싱글A 투수 코치와 피칭 코디네이터를 상대로 피칭 세션을 가지던 중, 코디네이터가 로이 할러데이의 투구 방법을 생각해보고 그의 투구폼을 따라해 보라는 조언을 했다. 조언을 들은 액스포드는 할러데이의 투구폼을 완전히 따라하지는 못했지만, 기존의 투구폼을 약간 바꾼 덕분에 평균 89마일, 최고 92마일을 기록했던 나오던 직구 구속을 다음날에는 최고 96마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덕분에 2008년 3월 마침내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 해 싱글A에서 선발 등판한 14경기를 포함해 총 26경기를 등판하며 98이닝을 소화했고 5승 10패 ERA 4.55를 기록했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돈을 벌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바텐더로 일했다고 한다.

2009년 중간계투로 전향해 하이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거치면서 9승 1패 2.7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09년 9월 7월 메이저리그로 올라와, 15일 시카고 컵스전에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다.

2010년에도 트리플A에서 시즌을 시작했으나, 5월 브루어스 불펜의 평균자책점이 30개 구단 중 29위로 폭망하고 라트로이 호킨스가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면서 대신 메이저로 올라왔다. 같은 달 23일 기존의 마무리 투수였던 트레버 호프먼이 부진하면서 마무리 보직을 이어 받았다. 구단 내 중간계투 중 가장 뛰어난 구위를 갖고 있었으나 액스포드는 마무리 경험이 없는 초짜배기였다. 브루어스의 모험은 성공적이었는데, 액스포드는 8승 2패 24세이브 2.4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다. 기대의 이상의 활약으로 그동안 브루어스의 문제였던 마무리 문제를 해소시킨데다 오랫동안 기른 수염이 롤리 핑거스를 연상시키며 브루어스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2010시즌의 활약으로 2011시즌에도 그대로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4월까지 한때는 8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블론세이브도 2차례 기록한 적이 있지만 이후로는 43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74경기 등판 2승 2패 46세이브 1.95의 평균자책점. 애틀란타 브레이브스크레익 킴브렐과 내셔널리그 세이브 공동 1위에, 기존의 브루어스 구단 최다 세이브인 44세이브(2007년 프란시스코 코데로)를 경신하면서 명실상부한 브루어스의 수호신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활약으로 당해 뛰어난 활약을 한 캐나다 야구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인 팁 오닐 상을 조이 보토와 공동수상을 하는 영예도 얻었다.

2012시즌 초반부터 부진하면서 곧 2011시즌처럼 부활하리라 예상했으나 그 예상을 벗어났다. 이닝당 탈삼진 개수는 1개 이상으로 구위가 떨어진 건 아니지만, 제구력 난조가 심해 볼넷 개수도 늘어나고 볼카운트가 몰린 상태에서 스트라이크를 넣다가 안타나 홈런을 맞으며 WHIP도 2011시즌에 비해 급등했다. 또한 5월 11일에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서 2011년 4월 25일부터 이어온 49연속 세이브 성공 기록[1]도 끝났는데, 이는 이날 경기 중 임신 중인 아내의 진통 소식을 들은 와중에 마운드에 등판했기 때문이라고.

블론세이브를 9번 할정도로 12 밀워키 성적하락에 K롸드와 함께 기여했으나, 밀워키 막판 와카 경쟁때는 쏠쏠히 활약하기도 했다. 2012년 최종성적은 5승 8패 35세이브 3홀드, 4.6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2013시즌 홈개막전에서 9회 4대3으로 리드한 상황에서 마무리를 위해 마운드에 올라 투아웃을 잡은후 덱스터 파울러에게 솔로 홈런을 맞으며 명불허전 블론세이브로 시즌을 시작했다. 팀이 10회에 끝내기로 이겼으니 망정이지 욕이란 욕은 다 먹을뻔 참고로 이 경기가 열린 4월 1일은 그의 생일이다(…)

2013 시즌에도 밀워키에서 4.45의 평균자책점으로 방화범의 면모를 보이던 와중에 8월말 같은 지구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카즈에서 넘어온 선수는 같은 불펜투수인 마이클 블레이젝.

2.3. 세인트루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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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에서는 중간계투로 출장하면서 10과 1/3이닝 동안 1승 0패 11 홀드, 평균자책점 1.74, WHIP 1.355의 준수한 계투요원이 되었다.

하지만 슈퍼2 대상이 되면서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얻었기 때문에 예상 연봉이 5M을 넘어가면서, 뎁스로 치자면 액스포드가 없어도 풀패키지인 카디널스에서의 효용성은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다.

결국 논텐더로 풀렸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예상되던 연봉조정금액 이하로 계약을 할 수도 있지만, 워낙에 보여준 것이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조건으로 노리는 구단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4. 클리블랜드, 피츠버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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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마무리투수 보강을 노리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마무리투수로 출장했으나 불안한 모습을 노출해 마무리 자리를 코디 앨런에게 내주었다. 뒤로는 볼질이 조금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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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4년 8월 14일, 웨이버 클레임을 통해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되었다.

2.5. 콜로라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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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30일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고, 3월 1일 40인 로스터에 합류하였다. 2015년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주전 마무리로 활동했으나 4승 5패 4.20 25세이브라는 성적은 그리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고, 결국 재계약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2년간 10M의 계약으로 오클랜드로 팀을 옮겼다.

2.6. 오클랜드 시절

2016년, 오클랜드로 팀을 옮긴 액스포드는 주로 불펜 투수로 뛰었다. 매드슨 앞에 나오는 셋업맨 역할을 하면서 68경기에 등판하여 6승 4패 3세이브 ERA 3.97에 fwar 0.2를 기록하였다. 2017년에도 불펜 투수로 활동했으나 1패 평균자책점 6.43으로 부진하며 지명할당, 결국 방출되었다.

2.7. 토론토 시절

방출된 이후 시즌 끝날 때까지 팀을 못 찾다가 시즌이 끝난 이후 2018년 2월 9일 토론토와 계약에 합의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4점대의 성적으로 그리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가 트레이드 데드라인 시점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의 구단이 관심을 보였는데, 결국 이후 코리 코핑이라는 하위권 불펜 유망주와의 1:1 트레이드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2.8. 짧았던 다저스 시절

이번에도 다저스의 불펜진 고쳐쓰기의 일환으로 영입이 된 모양.[2]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자신의 폼을 보여주지 못하며 한 이닝도 마감하지 못한 채로 6실점으로 장렬하게 털리면서 시작하더니, 그 이후 쿠어스 필드 원정으로 치러진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두 경기에서는 무실점으로 준수한 모습을 보이면서 원래의 폼을 찾는 듯 하고 있다. 최고 구속은 여전히 97마일까지 찍는 모습인데, 첫 경기에서 까먹은 임팩트가 너무 어마어마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두 자릿수의 ERA를 벗어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듯 하다.

그랬던 와중에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쿠어스 필드 원정에서 타구에 종아리를 맞고 골절상을 입으면서 3주 가량 아웃 판정을 받았고, 결국 9월 17일에서야 부상자 명단에서 팀에 복귀했다. 그 이후엔 수비의 도움이 부족하긴 했어도 여러 차례의 기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사실상 포스트시즌 엔트리 승선은 멀어질 듯 하다. 액스포드가 기대치 이하이기도 하지만, 나머지 불펜진이 9월 들어서 다수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결국 라이언 매드슨과는 다르게 디비전 시리즈 엔트리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9. 다시 토론토행, 그러나 부상

다저스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뒤, 2019년 2월 17일 토론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직후 팔꿈치 부상을 진단받고 한 달 여 만에 토론토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며칠 안 돼 다시 토론토 산하 AAA 구단인 버팔로 바이슨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부상 이후 재활 치료가 계속되는 중인지 6월 중순까지도 출장 기록은 없는 상황이다.

3. 피칭 스타일

평균 96~98마일에서 최고 100마일 정도 찍힐 정도로 빠른 포심 패스트볼과 80마일대의 커브, 평균 83~86마일의 슬라이더를 던진다.

6피트 5인치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스타일에 팔을 채는 특이한 장점이 있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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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남이었던 마이너리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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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2 시즌에 면도를 해서 위의 사진으로 되돌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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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수염 수염.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캐나다 대표로 출전했는데, 박노준 해설이 이름을 옥스포드로 읽병신력을 선보였다.(…)

소문난 영화광으로 2014년에는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18개 부문 수상자를 전부 맞추어서 화제가 되었다.

[1] 2002년부터 2004년까지 84연속 세이브를 기록했던 에리크 가녜 이후 최고 기록.[2] 특이하게도 커리어 내내 평균 패스트볼 구속이 거의 떨어지지 않고 95마일대로 일정한 모습을 보였다. 거기에 199cm의 키에 99kg이라는 피지컬까지 더해져서 다저스가 이걸 본 듯 한데, 실제로 다저스는 투수들의 체격을 굉장히 중요시했던 구단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라소다옹도 직접 인정한 이런 흑역사도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