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0:51:22

제2차 영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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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영란전쟁
Second Anglo-Dutch War
영국-네덜란드 전쟁의 일부
기간
1665년 3월 4일 ~ 1667년 7월 31일
장소
북해, 영국해협, 잉글랜드, 네덜란드 공화국, 북아메리카, 카리브해
교전국 및 교전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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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 주교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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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덴마크 국기.svg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파일:프랑스 왕국 국기.svg 프랑스 왕국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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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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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2세(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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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멍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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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 공자 루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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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테드만
크리스토프 베른하르트 폰 갈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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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더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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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힐 더라위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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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콥 판 바세나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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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테르 더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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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르넬리우스 더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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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렘 반헨트

[[네덜란드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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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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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요한 마우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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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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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클라우스 폰 아헬펠트
파일:프랑스 왕국 국기.svg 앙투앙 르파브르
병력
선박 139척
군인 21,000명
총 4,200정
네덜란드 공화국: 선박 131척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군인 21,000명
피해
7,210명 사망
7,000명 부상
2,000명 포로
선박 29척 파손
선박 2척 포획
네덜란드 공화국
5,150명 사망
3,000명 부상
2,500명 포로
선박 23척 파손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8명 사망
결과
네덜란드 공화국의 승리
브레다 조약
네덜란드령 기아나획득
1. 개요2. 배경3.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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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네덜란드 공화국 사이에서 두번째로 발발한 해상전쟁으로 1665년부터 1667년까지 진행되었다.

2. 배경

제1차 영란전쟁가 일어났을 때 부터 잉글랜드네덜란드 공화국은 무역과 해상에서 경쟁관계였다. 영국의 정치인들은 해상무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얻기 위한 야망을 표출한 상태였고 이와 더불어 잉글랜드의 성공회네덜란드장로회는 서로에게 이념적 위협이 된다고 여겨왔다. 제1차 영란전쟁에서 영국이 이겼으나 네덜란드는 작은 배를 위주로 운영하면서 영국의 상선들을 억류하는 상황도 계속해서 빈번히 연출되었다. 이후 올리버 크롬웰스페인 제국과의 전쟁을 하게되고 이에 대한 여파로 영연방스페인이탈리아 남부 지역들과의 무역을 잃게 된다. 네덜란드는 이를 기회 삼아 더 많은 무역시장을 점유하게 된다. 또한, 영국은 항해조례, 관세, 제조업 규제 등 보호 무역을 지속했고 이에 반해 네덜란드는 영국과 다른 조세 적용으로 인해 상품의 가치가 더 매력적이었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는 팽창하게 되었고 영국은 폐쇄적으로 변하게 된다.

한편, 영국은 왕정복고를 통해 찰스 2세가 왕으로 복귀하면서 세계 무역에서 네덜란드보다 우위에 있게 될 거라는 희망을 품게된다. 찰스 2세는 네덜란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메리 헨리에타가 사망할 때 아들 윌리엄 3세의 후견인으로 찰스 2세를 지명했다. 윌리엄 3세는 네덜란드의 스타트허우더가 될 인물이었고 이로 인해 영국은 네덜란드 정치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코르넬리우스 데 그라에프와 안드리에스 데 그라에프가 1660년 영국에 선물을 보내면서 영란관계를 풀어보려고 했고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1663년, 프랑스 왕국루이 14세가 남네덜란드(현 벨기에) 지역을 편입시키려 했고 이로 인해 영국과 네덜란드는 관계가 좋아지게 된다. 당시 수상이었던 클래런던 백작도 프랑스가 영국의 주적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클래런던의 정적이었던 헨리 베넷과 토머스 클리퍼드가 1664년 제임스 2세와 협업해 현재 영국의 해상무역에서 밀리는 이유를 네덜란드라고 결론을 내리고 전쟁을 치러서라도 우위를 점해야 된다는 판단에 네덜란드에 보복할 정책들을 내세웠다.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뉴암스테르담의 장악할 야망을 드러낸다.

전쟁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할 쯤 영국의 사략선들은 영국 해군과 협력해 네덜란드의 상선을 공격 및 나포해 영국으로 데려가는 상황들이 빈번히 일어났다. 네덜란드가 전쟁을 선포할 당시까지 약 200척의 선박이 나포되어 영국 항구로 보내졌다. 이 때 네덜란드는 새 법안에 의해 영국 국기에 먼저 경례를 했으나 영국은 네덜란드에 경례를 하지 않았고 네덜란드 지휘관들은 이를 치욕으로 느끼게 된다.

한편, 네덜란드는 제1차 영란전쟁 이후 더빗에 의해 해군을 개편했고 더 무거운 대포를 40에서 60문을 설치한 배들을 건조하고 이를 운영할 선장들을 모집하게 된다. 또한, 영국의 인구수의 1/4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난한 소작농이 대부분인 영국과 달리 네덜란드는 도시 인구수가 많아 자금이 빠르게 모였으며 영국보다 2배 많은 돈인 약 1100만 파운드를 전쟁에 사용할 정도가 된다. 네덜란드는 황금 시대를 맞아 호황을 누리면서 발전한 반면 영국은 흑사병과 이후 전쟁 중에 발발한 런던 대화재로 인해 예산의 대부분을 담당하던 도시의 인구가 줄고 자금 유출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국 의회는 기록적인 예산인 250만 파운드를 편성했으나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을 방법이 없어 런던시에서 대출을 받는 것에 의존하게 된다.

1663년 말, 제임스 2세는 로얄 아프리카 회사의 이익을 보호할 명목으로 로버트 홈즈를 보냈고 카보베르데의 네덜란드 교역소를 장악하게 된다. 이후, 1664년 6월에는 서아프리카의 있는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 소속 배들을 몰수했다.

1664년 6월 24일, 영국은 북아메리카의 네덜란드 식민지인 뉴네덜란드를 공격해 10월에 완전히 점령하게 된다.

1664년 12월, 영국은 이즈미르에 정박한 네덜란드 함대를 공격했고 네덜란드는 익년 1월 위협을 느낄 시 영국 전함에 대한 공격을 허용한다. 이에 찰스 2세는 1665년 3월 4일을 네덜란드에 대한 선전포고의 날로 정하게 된다.

1665년 3월 4일, 카디즈영국 해협에서 네덜란드 국적의 수송선이 영국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면서 네덜란드는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3. 결과

1667년 7월 31일, 브레다 조약으로 네덜란드는 현재 뉴욕시가 있는 뉴네덜란드를 영국에게 넘기고 육두구 무역에 중심지인 인도네시아룬 섬수리남의 설탕 재배지를 얻어냈다. 또한, 신트외스타티위스 섬과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교역소 또한 차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