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20:53:07

제임스 얼 카터 시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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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44C9> 일생 생애 및 정치 이력
가족 아버지 제임스 얼 카터 시니어 · 배우자 로잘린 카터 · 장남 잭 카터 · 차남 칩 카터 · 삼남 도넬 카터 · 장녀 에이미 카터
역대 선거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 ·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관련 정치인 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 · 폴 볼커 · 테드 케네디 · 로널드 레이건 · 박정희
기타 독재자 킬러 · 자유주의적 매파 · 지미 카터 행정부 · 평가
지미 카터 행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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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제임스 얼 카터 시니어
James Earl Carter Sr.
파일:James_Earl_Carter_Sr.jpg
출생 1894년 9월 12일
미국 조지아 주 알링턴
사망 1953년 7월 22일 (향년 58세)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
부모 아버지 윌리엄 아치볼드 카터
1858년 11월 12일 ~ 1903년 9월 4일 (향년 44세)
어머니 니나 프랫
1863년 12월 5일 ~ 1939년 3월 8일 (향년 75세)
형제자매 4남 3녀 중 3남
배우자 릴리안 고디 카터
1898년 8월 15일 ~ 1983년 10월 23일 (향년 85세)
자녀 장남 지미 카터[1]
1924년 10월 1일 ~ ([age(1924-10-01)]세)
장녀 글로리아 카터
1926년 10월 22일 ~ 1990년 3월 5일 (향년 63세)
차녀 루스 카터
1929년 8월 7일 ~ 1983년 9월 26일 (향년 54세)
차남 빌리 카터
1937년 3월 29일 ~ 1988년 9월 25일 (향년 51세)
직업 정치인
소속

1. 개요2. 생애3. 기타4. 참고 항목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상인, 농민이자 정치인으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부친이다.

2. 생애

1894년, 조지아주 남서부의 알링턴에서 윌리엄 아치볼드 카터(William Archibald Carter)와 니나 프랫(Nina Pratt)의 4남 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1903년, 부친 윌리엄 아치볼드 카터가 사업 파트너에게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자[2] 그를 피해 조지아주 플레인스로 이사하였다.

1917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미 육군에 입대하여 1918년 11월 30일 전역한 후 카터는 플레인스에서 농부 일과 식료품 가게를 운영해 생계를 이었다. 이후 1923년 릴리안 고디 카터와 결혼해 이듬해인 1924년 지미 카터를 낳았다.

사망 1년 전인 1952년 민주당 소속으로 조지아주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이듬해인 1953년 7월 22일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3. 기타

민주당 소속이면서도 같은 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을 매우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루즈벨트 정부에서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서 농산물 과잉생산을 개선하기 위해 돼지 살처분과 목화밭 갈아엎기 등의 통제 정책을 쓴 것이다.[3] 이로 인해 루즈벨트를 혐오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를 밀기도 했다.

다만 조지아주 내에서는 계속 민주당에 남았는데, 어차피 1960년대까지 조지아 정계 자체를 민주당이 독점한 탓도 있다.[4] 대신 카터는 뉴딜 반대파인 주지사 유진 탈매지를 지지했다.

4. 참고 항목



[1] 미국 제39대 대통령. 그리고 현재 시점으로 카터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다.[2] 그걸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3] Agricultural Adjustment Act(AAA). AAA는 농산물의 가격을 올리고 농민의 수익을 개선했지만 당연히 물가가 올라 도시민 중심의 여론은 좋지 못했으며, 자영농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소작농에 돌아가는 혜택도 없었다.[4] 미국 남부가 공화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는 현대의 인식과는 괴리가 있는데, 이는 남북 전쟁 이후 전쟁에서 대적한 상대(북군)의 집권 세력이면서 흑인 민권을 향상시킨 공화당을 남부 백인들이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조지아는 셔먼의 바다로의 행진에서 초토화되어 북부에 대한 적대감이 가장 심한 곳이었다. 카터 시니어가 1936년 대선에서 지지한 공화당 앨프 랜던은 조지아에서 고작 12.6%밖에 득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