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삽으로 땅을 파는 작업
진흙탕에 빠진 마우스 전차를 삽으로 파내는 독일 국방군 장병들[1] |
말 그대로 삽으로 땅을 파는 것. 대유법으로 토목공사 전반을 지칭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남성은 군 복무시 다양한 환경에서 작업이라는 미명하에 이걸 해 볼 수 있다. 특히 유해발굴병은 삽질 자체가 공식 보직이며 절대 땡보직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적으로 확실히 힘든 보직이다.
정확한 근육의 힘 분배와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엄청 고생만 하고 효율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삽질이 얼핏보면 쉬워 보이지만 삽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우며, 특히 손잡이 부분까지 철저히 금속으로만 만들어진 삽은 더욱 무겁다. 삽질 한 번 할때 담기는 흙이나 모래, 눈의 양이 합쳐지면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삽질 기사의 삽질도 이 삽질이다.
2. 속어
2.1. 아무 의미도 없는 짓, 혹은 해놓고 나니 하나마나하게 된 일
원본은 "포크레인(불도저) 앞에서 삽질한다.""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는 속담의 현대판으로서 한때 자주 쓰였던 말이다. 유사한 의미의 고사성어로는 "공자문전매효경(공자 집 앞에서 효경 판다)", "반문농부(공수반[2]네 집 문 앞에서 도끼 자랑한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 영어 속담으로는 "To teach a fish how to swim(물고기한테 수영법 가르친다)"이 있다.
2.1.1. 군대에서의 삽질
원본인 불도저 앞에서 삽질하다는 말이 잘 쓰이지 않게 됨에 따라 그 말은 못 들어보고 군대에서 할일 없으면 삽으로 땅 판 다음 다시 메우게 시킨다는 이야기를 유래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근데 보통 이런 경우 '사실 그건 과장된 허무맹랑한 이야기다'라는 결말이 나는 게 일반적인데 이 경우엔 '그런 일이 많기는 한데 그게 유래는 아니다'가 되었다는 게 흠좀무다. 일반적으로 애들 놀면 머리에 쥐가 나는 행보관의 지시로 하는 경우가 다수다. 사실 사병들의 개인시간 따위는 전혀 보장하지 않았고 똥군기가 만연했던 전근대적 병영문화 시대에선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게, 괜히 할 일 없다고 사병들을 병영에만 하루종일 방치했다간 사건사고가 터지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병영문화가 많이 개선되었고 군 차원에서도 병사들의 휴식권과 자기개발을 꽤 장려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런 무의미한 삽질을 시키는 건 악폐습이 맞다. 확실한 것은 어떻게 알고 있든 군에서 장병들을 비효율적으로 일을 시키는 것을 비꼬고 있다.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험담이 있다.
일과시간 시작. 행정보급관이 어떤 곳을 파라고 지시한 뒤 사라진다 → 판다 → 몇 시간 후 나타난 행정보급관. 이 자리는 별로니 옆을 파라고 한다 → 원래 팠던 자리를 도로 메우고 다시 판다 → 몇 시간 후 다시 나타난 행정보급관. 이 자리도 별로니, 그 옆을 파라고 한다 → 다시 메우고 다시 판다 → 일과시간 종료를 얼마 안 남기고 다시 등장한 행정보급관. 이 자리도 별로이니 그 옆을 파라고 한다. → 또다시 메우고 또 다시 판다.
중대장 지시로 아침부터 대규모 작업 시작. 중대 총원이 달려들어 일과시간이 끝나고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온종일 작업했으나 작업은 채 반도 끝나지 않았다. 행정보급관이 '안 되겠네? 불도저 불러!' 하더니 불려온 불도저가 나머지 반을 30분 만에 처리.
이런 짓을 일삼는 지휘관은 후일 전시상황이 터지면 상관 살해를 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 평시라도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은 지휘관이 있다면 쓸데없는 삽질을 병사들에게 시키면서 괜히 원한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하자.
저렇게 땅을 파고 메우는 게 사실 부대 근처의 땅이 농민들이나 간부 가족들의 농지인데 공짜로 땅 갈아엎으려고 그런다 카더라는 소문도 돈다. 그런데 땅 갈아엎는 것도 때가 있기 마련이고, 인력으로 하느니 기계로 후루룩 갈아엎는 게 농민들과 간부 가족들 입장에서는 더 편하다.
육군 규정에 합법적인 얼차려 유형 중 하나로 '개인호 파고 되메우기'가 규정되어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있다.[3]
사실 이 단어가 탄생하기 전에도 '뻘짓'이나 '부질없다'라는 형용사를 사용해 왔으며 '헛짓하다'라는 동사도 동일한 뜻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전 폭설 대비 제설훈련의 모습이다. 당시 제설장비가 충분히 준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군 장병들이 제설훈련을 하는 모습을 자랑스러운 듯이 뉴스에 등장시켜 빈축을 샀다. 문자 그대로 맨땅(허공)에 삽질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쥤다.
2.2. "제 무덤 파기"에서 유래한 스스로를 궁지에 모는 행위
자기 무덤을 자기가 삽으로 파내고 있는 모양을 비유하기도 하는데 의도는 좋았으나 잘못된 방법이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나 잘못된 걸 알면서도 고치지 않고 계속하는 경우 등의 행위를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시험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범위를 잘못 알았다거나, 하라는 시험공부는 안하고 위키질을 하고 있을 때 말이다.이런 의미로서의 용례는 1980년대 중반에 KBS1 코미디 프로그램 쇼 비디오 쟈키의 코너 '네로25시'를 통하여 널리 퍼졌다.[4] '네로25시'의 출연진 중에는 후에 KBS2 폭소클럽에서 '돌 강의'를 하며 나름으로 인기를 끌었던 신인 '최형만'이 끼어 있었다. 그는 여러명의 바보같은 신하들 사이에서 그의 역할은 일정 사안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회의에서 하나마나한 자충수를 두는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이었다. 자기가 말한 것에 자신의 목을 죄는 역이었다.
이때 최양락을 필두로 다른 출연진들에게서 나온 대사가 '너는 왜 네 무덤을 파느냐'라는 식이었고 이에 최형만은 제무덤을 파는 새로운 퍼포먼스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삽춤'이란 것이었다. 초기의 삽춤은 단순히 삽을 땅에 꽂고 발로 삽머리를 밟아 흙을 퍼내는 형태였는데, 얼마 안 가 이 퍼포먼스가 '삽춤'이라는 명명 하에 발을 폴짝거리며 '삽질'을 하는 댄스의 형태를 띄게 된다. 이후로 그의 이러한 삽춤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서 그가 삽춤을 추면 출연진이 '뭐하는 것이냐'라고 묻고, 이에 최형만은 자신이 들어갈 무덤을 판다는 식의 대사를 받아친다. 얼마 안 가 '네로 25시'의 출연진들은 '삽질하고 있다'라는 대사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유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삽질은 지금에 와선 '제 무덤 파기'라는 뜻보다는 '하나마나 한 어리석은 짓'이라는 의미로 더 자주 쓰인다.
3. 중국어 간체에서 '화룡(火龙)'을 한국어로 인코딩하면 바뀌는 글자
GB2312(중국어 간체)에서 CP949나 EUC-KR로 변환하면 깨지는 단어(?)이다.참고로 '지룡(地龙)'은 '뒈질'로, '백룡(白龙)'은 '겜질'로 보인다.
4. 2019년작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
자세한 내용은 삽질(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오마이뉴스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을 포함해 이명박 정부의 실책들을 주로 비판하는 영화이다. 제목은 1번 문단과 2.1번 문단의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1] 사진에 나온 마우스가 200톤이 넘어가는 거구라 그렇지 아직도 기갑이나 공병, 수송 병과 등 뭔가 타는 것과 관련된 병과를 전역한 사람이라면 비나 눈, 녹은 서리 등으로 진창이 생겨 거기에 차량이 빠져서 삽질을 해 본 경험은 한두번씩 있을 것이다. 좀 심하면 저 사진처럼 바퀴가 완전히 잠기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2] 전국시대의 유명한 공학자로, 나중에는 도교에서 목공과 건축의 신으로 모셔졌다.[3] 얼차려의 명칭이 군기훈련으로 변경되는 시점을 전후하여 삭제되었다.[4] '쇼 비디오 쟈키'는 여러모로 당시의 국내 티비용 코미디 프로그램에 상당한 변혁을 몰고 왔다. 지금의 개그 콘서트와 같은 무대형 코미디의 TV식 진보적 원류를 이룬 것이다. 당시 TV 코미디계를 이끌어간 쌍두마차였던 유머 1번지와 '쇼 비디오 자키', 그리고 그 계보를 이어받은 프로그램인 '한바탕 웃음으로'에서는 세월이 흘러도 인구에 회자될 만한 명작 코미디들을 만들었다. 개그콘서트에서 '한바탕 웃음으로'의 코너였던 봉숭아 학당을 흉내냈을 정도다. 김미화가 개그 콘서트의 새로운 활로를 뚫기 위해 고민하자 이에 전유성이 '어 뭐, 그런걸로 고민해. 안되면 그냥 옛날거 베껴.'라고 했다는 인터뷰가 있다. 김준호도 "원래 다 시대별로 우려먹는 거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코미디 프로의 전성기였지만 정부에서 TV 프로그램에 쇼 오락물 등을 과감하게 허용하여 대중의 관심사를 정치현안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효과를 기대했을 터라, 역으로 보면 슬픈 전성기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를 향한 날 선 풍자 코미디가 시도되어 큰 호응을 얻었던 시기이기도 하며 '네로 25시' 역시 꽤 쎈 정치풍자 코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