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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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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조국의 클럽 커리어를 정리한 문서.

2. 프로 데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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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최고 유망주, 전국구 스타가 되다

차범근축구교실 출신이며, 이후 각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한 시즌 5개 연속 대회 득점왕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2002년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어 연습생 중 유일한 고교생 신분으로 월드컵 무대를 경험했다.당시 기사

그리고 이 해 카타르에서 열린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이었던 한일전에서 연장전 골든골을 넣어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3. 클럽 경력

3.1. FC 서울 1기

2003년 조광래 감독의 안양 LG 치타스[1]에 입단했다. 등번호는 9번.

본래 대신고와 연고 협약을 맺고 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정조국을 강하게 원하며 고교 최대 금액인 3억원을 준비했다고 한다. # 실제로 대신고에서 조재진, 조성환 등 정조국의 선배들이 이 협약의 주체로 수원에 입단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정조국은 그로 얼마되지 않아 협약 구단의 최대 라이벌인 안양에 입단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

3.1.1. 2003 시즌 (안양 LG 치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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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와 연령별 대표팀 레벨을 씹어먹고 프로로 직행한터라, 그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심지어 그의 별명을 인터넷 공모를 통해 선정하기까지 했다. 패트리어트

그러나, 부담이 너무 컸는지, 데뷔 후 10경기가 넘게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며 R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그러다 5월 4일 부천 SK전 PK가 나왔는데, 원래 키커인 마에조노 마사키요가 양보해 키커로 나섰고, 득점에 성공하며 만 19세 11일의 나이로 K리그 데뷔 골을 기록했다.

5월 21일 광주 상무전에선 멀티골을 기록하는 등, 자신감을 찾으며 주전 공격수로서 꾸준히 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8월 6일 부산전 득점을 기록하며 19세 3개월 20일의 나이로 K리그 역대 최연소 두 자릿수 득점[2]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3]

그리고 리그 마지막 경기인 성남전에서 프로 통산 두 번째 멀티골을 기록했다.

리그 32경기 12골 2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11위. 최성국을 제치고 K-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4]

3.1.2. 2004 시즌

팀과 함께 고향인 서울로 옮겨 시즌을 시작했다. 연고지를 옮기면서 시즌 전 야심차게 영입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인 헤나우도에게 9번을 넘겨주며 18번으로 등번호를 옮겼다.

그러나, 헤나우도를 비롯해 산타나 등 외국인 용병들이 부진했고, 김은중왕정현 등과 공격진을 이끌었다. 정규리그 18경기 2골 1도움으로 부진하며 R리그로 강등되기도 했지만, 리그컵 12경기 6골 1도움을 기록하며 2시즌 연속 10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왕정현과 함께 대한축구협회 FA컵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3.1.3. 2005 시즌

개막 전 등번호를 다시 9번으로 옮겼다.

그러나 파괴력이 이전 시즌들 만큼 위력적이지 않았고, 감독도 이장수로 바뀌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괴물 신인이 영입되어 입지가 애매해졌다. R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정규리그 16경기 3골에 리그컵에서는 10경기 동안 1도움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3.1.4. 2006 시즌

박주영, 김은중, 두두까지 막강한 공격진 속에서 대부분 후보 선수로 전락했다.

부산과의 삼성 하우젠컵 2006 개막전에 교체 출전하면서 FC서울에서 100번째 경기에 출전하게 됐다. 만 22세 22일로 역대 FC 서울 최연소 100경기 출전 기록이다. 종전 기록자인 최태욱의 기록을 약 4개월 앞당겼다.

이후 성남 일화 천마와의 리그컵 경기에선 선발 출전하며 K리그 통산 100번째 경기에 출전했다. 만 22세 44일로 역대 K리그 최연소 100경기 출전 기록을 작성했다.

그러다, 대만 원정에서 A매치에서 데뷔골, 홈에서 A매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전북전에서 멀티골, 제주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후반기 들어 후반 조커로서 제몫을 하기 시작했다.

정규리그 17경기 4골, 리그컵 10경기 2골 3도움으로 팀의 삼성 하우젠컵 2006 우승에 기여했다.

3.1.5. 2007 시즌

시즌을 앞두고 귀네슈 감독이 부임했다.

그러나, 이장수 감독 시절처럼 귀네슈 밑에서도 조광래 감독 시절 만큼 좋은 활약을 하진 못했고, 부상도 겹치며 국가대표팀에서도 멀어지게 됐다.

정규리그 12경기 2골 1도움, 리그컵 7경기 3골 FA컵 2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3.1.6. 2008 시즌

시즌을 앞두고 지난 시즌 득점왕 두두가 떠났지만,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영입되며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었지만, 김은중의 부상, 박주영이 여름에 프랑스로 떠난 뒤 데얀과 호흡이 잘 맞으며 조금씩 살아났다. 팀의 14경기 연속 무패를 이끄는 맹활약으로 부활했다.

10월 4일 21R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전반 11분 안태은의 크로스를 득점으로 연결했다. 공중볼 경합 중 안재준의 팔꿈치에 얼굴을 맞아 광대뼈 3곳이 함몰되는 부상을 당해 수술대에 올랐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 B조 2차전을 앞두고 국가대표 예비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던 걸 고려하면 더욱 아쉬운 부분.

그러나 11월말 플레이오프에서 마스크를 쓰고 복귀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울산 현대 호랑이와 준결승,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골을 기록했으나 팀이 종합 스코어 2-3으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하며 빛이 바랬다.

2008 시즌 기록 : 정규리그 11경기 6골 4도움, K리그 플레이오프 3경기 2골, 리그컵 7경기 1골 1도움.

3.1.7. 2009 시즌

김은중도 시즌 전 팀을 떠나며, 데얀의 파트너 자리를 두고 이승렬과 경쟁하게 됐다. 시즌 전 A매치 명단에 들어 출전했으나, 이후 대표팀에 불리지 않았다.

전남과의 리그 개막전, ACL 1,2차전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하는 등 초반 세 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후 약 6주 동안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다가, 5월 2일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전반 11분 왼쪽 광대뼈와 턱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으며 6월까지 결장했다.

7월에 복귀해 FA컵 전북과의 16강에서 추격골, 7월 12일 경인더비 멀티골 등 복귀해서 득점포를 재가동했다.

팀이 원톱과 투톱을 병행하고 있어서 조커로 출전하는 경기가 많아지다가, 9월 들어 다시 투톱으로 회귀, 움 살랄과의 챔스 8강 1차전 원정에서 전반만에 멀티골, 이어진 대전과의 리그 25R에서도 전반만에 멀티골을 기록하는 등 몰아치기에 능한 모습을 보여주며 선발 출전시 파괴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2006 시즌에 이어 약 3년째 무관으로 시즌을 마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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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해가 꼭 정조국에게 암울하기만 하지는 않았는데, 인생의 반쪽을 찾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09년 12월 11일, 탤런트 김성은과 백년가약을 맺으며 결혼에 골인했다.

2009 시즌 기록 : K리그 21경기 7골 1도움, 리그컵 4경기, ACL 7경기 4골, FA컵 1경기 1골

3.1.8.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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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넬루 빙가다로 바뀌고 기성용, 김승용, 김호준, 이상협 등이 떠나고 김용대 최효진 방승환 하대성 에스테베즈 등이 영입되는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진 팀에서 중심축을 잡아줬다.

3월에 한골도 기록하지 못하다가, 4월 슈퍼매치, 대구 FC전 연속골을 기록하며 부활하는 듯 했으나, 이후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월드컵 휴식기 전까지 득점하지 못했다.

그러나 8월 20일 득남하여 아버지가 되면서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태어날 아이에게 자랑스런 아빠가 되고 싶다"던 그는 이후 미친 듯한 상승세를 보이며 후반기에만 8골을 기록한다. 8월 21일 강원전 결승골을 시작으로 9월 11일 대구전 추가골에 이르기까지 6경기에서 4득점 2도움을 기록하며 5위에 있던 팀을 2위까지 끌어올렸다. 특히,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포스코컵 2010 결승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4년 만에 리그컵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에도 경남전 2골 1도움, 정규리그 막판 세경기 연속 골, 챔피언 결정전 2차전 동점골 등 말 그대로 후반기 리그를 폭격하며 팀의 10년 만이자 자신의 커리어 첫 K리그 우승을 이끌며 더블을 기록했다.

K리그 26경기 12골 3도움, 리그컵 3경기 1골 1도움, FA컵 1경기 1도움

3.2. AJ 오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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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0 시즌의 활약으로 프랑스 리그 1 AJ 오세르로 이적했다. 등번호는 24번.

2월 20일 선발 출전하여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프랑스 리그 첫 공격 포인트를 신고했다.

5월 2일 마르세유와의 경기에서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 후반 26분 교체로 투입되어 동점골을 득점했다.

10-11 시즌 AJ 오세르에서 2골 1도움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를 영입한 장 페르난데스 감독의 신임을 받아 반 시즌 동안 선발 1경기를 제외하면 후반 교체로 뛰었으며 기록한 공격 포인트가 다 승점을 벌어 주는 결정적인 것으로 팀의 강등을 막았다는 점에선 합격점.

3.3. AS 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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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시즌을 앞두고 AS 낭시로 임대되었다. 등번호는 19번. 정조국을 영입했던 장 페르난데스 감독이 AS 낭시로 옮기면서 정조국을 같이 임대해 온 것.

10월 16일 올림피크 리옹전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11월 7일 브레스트전에서 시즌 2호 골을 기록했다.

2011-2012 시즌 종료 후 임대 기간이 끝나 AJ 오세르로 복귀 후, 군 복무를 위해 구단과 계약해지를 통해 무소속 신분으로 국내로 복귀한다.

3.4. FC 서울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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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6일 FC 서울 복귀가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36번.

2012년 11월 4일 슈퍼매치에서 K리그 복귀 골을 넣었다. 이전까지 팀이 수원을 상대로 7연패를 기록하고 있었고, 마침 이날 경기도 1:0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터뜨린 귀중한 동점골이라 정조국 개인은 물론 팀에게도 의미가 싶은 골이 되었다. 이어서 40라운드 경남전과 41라운드 제주전에서도 귀중한 골을 터뜨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41라운드 제주전 골은 3경기 남은 상황에서 팀의 우승을 확정지은 결승골이라 그 의미가 더욱 크다. 44라운드 부산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터뜨려 유종의 미를 선사했다. 최종 성적은 17경기 4골. 시즌 중반에 합류했고 폼이 저하되어 골을 기록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지만 라이벌전에서의 연패를 차단하고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순도 높은 골들이었기에 성공적인 시즌이었다.

3.4.1. 안산 경찰청 (군 복무)

팀이 우승해 기쁘고 홀가분하다는 심경을 밝힌 후 경찰청에 입대했아며, 13시즌은 K리그 챌린지에서 보내게 되었다.

경찰청에선 주전으로 활약하며 2시즌 간 팀의 공격진을 이끌었다.

3.4.2. 전역 후

2014년 9월 26일 전역해 서울에 복귀, 박주영과 함께 서울의 공격진을 이끌 자원으로 기대받았으나 시즌 초반 여러 차례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만 보이며 신뢰를 잃어버렸다.

특히 후반기를 앞두고 영입된 아드리아노가 주포로 자리 잡고 윤주태가 조커 역할을 하면서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3.5. 광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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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1일 서울을 떠나 김민혁과 함께 광주 FC로 이적했다.

지도자 연수 과정 참석차 파주훈련센터에 가서 남기일 감독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믿음을 갖게 됐으며, 처음 전화를 하고 나서 영입을 확정 짓는 데 열흘 정도 걸렸다고 한다.

3.5.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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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2일 K리그 클래식 1라운드 포항과의 경기에서 멀티 골을 넣어 라운드 MVP로 선정되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으며, K리그 클래식 2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송승민의 헤딩 패스를 받아 깔끔하게 골을 넣으면서 홈 개막전 승리를 이끌었다. 2경기 3골로 현재까지는 득점 1위에 랭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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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라운드에서도 득점을 기록, 2010년 이후 6년 만에 3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였다.

5라운드, 친정 팀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몇 차례 위협적인 슈팅을 보여 줬으나 득점에는 실패했다.

7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88분에 동점골을 넣었다.

9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PK를 성공시켜 시즌 6호 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11라운드 수원 FC와의 경기에서 이으뜸이 얻어낸 PK를 멋지게 성공시키면서 시즌 7호 골을 기록, 팀의 3연승에 기여했다.

13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그림 같은 프리킥 골로 동점을 만들었다.영상 그러나 팀은 송진형의 결승골로 인해 패배했다.

14라운드 FC 서울전, 친정 팀과의 리턴 매치에서 동점골을 기록했다. 비록 팀은 2-3으로 패했지만 90분 동안 정말 열심히 뛰었고 경기 종료 후에도 서울 팬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경기 종료 후 인터뷰를 통해 서울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6월 26일 16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서 김민혁이 얻어낸 PK를 성공시키면서 팀의 1-1 무승부에 기여했다. 이것으로 2010년이후 6년 만에 두 자릿 수 득점을 기록했다.

경고 누적으로 6월 29일 수원전에는 결장했다. 그리고 그 날 경기는...

7월 9일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멀티골을 넣었다. 이 득점으로 13골을 기록한 티아고를 한 골 차이로 따라 붙었으며 아드리아노를 제치고 득점 2위에 올라섰다. 아드리아노가 징계로 당분간 못 나오게 되면서 이제 득점왕 경쟁은 티아고 vs 정조국의 2파전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7월 16일 울산전에서는 PK를 성공시키면서 득점 공동 선두로 오르게 되었다. 게다가 티아고와 아드리아노가 당분간 출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라서 전망이 더욱 밝아졌다.

7월 23일 티아고의 중동 이적이 발표되었고, 상주 상무전에서 시즌 14호 골을 넣으면서 프로 데뷔 후 개인 최다 득점을 기록하였고, 득점 단독 선두로 올랐다.

7월 26일 정조국의 활약상과 감동적인 인터뷰가 9시 뉴스에 나오면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찍기도 했다.

8월 10일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15호 골을 기록했다.

8월 27일 울산 현대전에서 후반전 추가 시간에 극장 동점골을 넣어 K리그 통산 100호 골을 달성했다.[5]

이후 발목 부상으로 인해 33라운드까지 출전하지 못했으나 경쟁자들도 많은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여전히 득점 선두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정조국이 빠진 후 팀은 1승 1무 3패로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10월 16일 약 2달의 공백 이후 수원 FC전에서 복귀했는데, 복귀하자마자 멀티골을 넣었다.

11월 2일 3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전 추가 시간에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켜 팀의 2년 연속 K리그 클래식 잔류를 확정지었다.

11월 5일 38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27분 PK를 성공시켜 시즌 20호 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다음 날 최종전에서 아드리아노가 골을 추가하지 못하며 득점왕이 확정되었다. K리그 통산 104호 골로 라데와 함께 통산 득점 공동 7위가 되었다. 게다가, 2013년 김신욱을 넘어, 승강제 도입 후 K리그 역대 국내 선수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자가 됐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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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FC의 전설이 되어 떠나다

11월 8일 시상식에서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득점왕MVP를 수상하며 3관왕에 올랐다.

2016 시즌 한래 총 31경기 20골 1도움을 기록하며 단 1년만 소속되었음에도 광주 10주년 레전드 멤버에 당당히 입성했다.

3.6. 강원 FC

3.6.1.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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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부상들이 발목을 잡은 강원FC에서의 첫 시즌

2017시즌을 앞두고 승격에 성공해 공격적인 투자와 선수 영입을 이어가던 강원 FC에 이적료 6억 원에 이적을 확정지었다.기사

10월 8일 평창에서 열린 인천과의 33라운드에서 후반 추가골을 터뜨려 승리에 기여했다. 이 골로 리그 통산 111번째 득점을 기록하며 통산 득점에서 김현석을 넘어서게 됐다.

시즌 초 경기력이 좋았으나 4라운드부터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이후로도 회복하여 경기에 투입되면 좋은 움직임을 보였으나 또 부상을 당해 계속 공백기를 가지는 경우가 잦았다. 출전 시간 대비 팀의 승리에 기여한 골이 많고 결론적으로 팀도 상위 스플릿에 진출했으나, 출전한 경기들에서의 좋았던 경기력을 생각하면 팀이 필요했던 순간들에 부상으로 팀에 기여하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2017 시즌 기록 : 18경기 7골 1도움

3.6.2. 2018 시즌

2018 시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K리그 1 2라운드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팀의 순위가 별로인 가운데 폼이 올라온 제리치와의 조합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30라운드 수원전에서 극장골을 넣은 후 31라운드 전북전에서 2분 만에 골을 넣으며 2경기 연속 골을 넣었다. 이 득점으로 K리그 통산 115골을 기록해 김도훈을 넘어서 리그 역대 최다 득점 6위에 오르게 됐다.

2018 시즌 기록 : 26경기 4골 1도움

3.6.3. 2019 시즌

11라운드 경남 FC전에서 강한 압박 플레이로, 급하게 정조국을 잡아챈 우주성이 전반 20분 퇴장을 당하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1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팀이 0-4로 지고 있던 58분, 이 날 부진했던 제리치와 교체 투입되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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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강원FC 팬들의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을 최고의 순간을 남기다

이 날 그는 영웅이 되었다. 당시 0-4로 지고 있던 와중에도 강원은 유효 슈팅이 하나도 없었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정조국은 투입 직후부터 위협적인 돌파에 이은 슈팅으로 옆그물을 맞히는 등 득점에 가까운 장면들을 여러 번 만들었다. 그리고 71분에 측면에서 좋은 연계 플레이를 보여 주며 조재완의 첫 골을 어시스트하더니, 조재완의 해트트릭과 발렌티노스의 골로 기적처럼 4-4가 만들어진 후반전 추가 시간 5분, 경기 종료 직전 극장 결승골을 터뜨렸다!! 상황인즉슨, 경기 종료가 1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강원은 승점 3점을 위해 파상공세를 이어 가고 있었다. 이 때 코너킥 이후 세컨볼 경합 과정에서 한국영이 볼을 뺏기는 듯 하자 주심은 그대로 휘슬을 입으로 가져갔으나, 한국영은 엄청난 투지로 정확한 슬라이딩 태클을 가해 공을 다시 뺏어 낸 후 측면의 조재완에게 연결했다. 그리고, 조재완의 크로스를 놓치지 않은 정조국이 타점 높은 헤더로 내리 꽂으며 결승골을 넣었다. K리그 역사상 4골 차를 뒤집은 역전승이 탄생한 것은 이 경기가 처음이다.

18라운드 인천전에서 선발 출전해 후반전에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페널티킥으로 동점골, 한국영의 스루패스를 받아 역전골을 넣으며 팀 승리의 1등공신이 되었다. 이 득점으로 인해 우성용을 넘어 K리그 역대 최다 득점 단독 5위에 올랐다.

20라운드 상주 상무전에서 선발 출전해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박스 안에서의 강력한 발리슈팅으로 득점했다.

24라운드 전북 현대전에서 강지훈의 크로스가 수비수 맞고 굴절된 것을 밀어넣으며 동점골을 기록했지만 취소되었고, 전반 추가시간에 이영재의 컷백을 받아 득점하며 결국 동점골을 기록했다. 리그 통산 120호골

32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이영재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했으며, 37라운드 대구전에서 교체 출전해 최치원에게 공을 넘겨주며 최치원의 만회골을 어시스트했다.

2019 시즌 기록 : 31경기 5골 3도움

3.7. 제주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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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이 끝나고 강원을 떠나 과거 광주 시절 은사였던 남기일 감독이 이끄는 K리그2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7라운드 충남 아산 FC전에서 페널티킥을 통해 제주에서의 데뷔골을 뽑아냈다.

그렇게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고, 2020년 한 해동안 12경기 1골을 기록하며 큰 활약은 아니었지만 베테랑으로서 팀의 중심을 다잡으며 제주의 승격을 이끌었고, 시즌 종료 후 정조국은 프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다고 밝혔다.

곧바로, 2021년부터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공격코치로 활동함을 발표하였다.

2003년에 프로 데뷔하여 리그 통산 392경기 출전, 121득점의 기록을 남기고[7]18년의 프로축구 선수생활을 마무리하였다.

[1]FC 서울.[2] 종전 기록자는 1987년 대우 김주성의 21세 9개월 15일.[3] 이 기록은 2024년 강원의 양민혁이 새롭게 갱신한다.[4] 고졸 출신 K리그 신인상은 1998년 이동국 이후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5] K리그 역사상 9번째.[6] 이 기록은 2021년 11월 6일부로, 그의 팀 선수인 주민규에 의해 5년 만에 깨지게 됐다.[7] 은퇴 시점 역대 K리그 최다 득점 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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