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임수경
1. 정치 활동 이전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여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3년 5개월간 복역 후 1992년 출소하였고, 이후 감옥 생활로 중단된 학업을 이어 나갔다고 한다. 학위과정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고, 모교 강의 및 각종 강연을 다녔다.1994년 5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리포터로 나왔으나 사측에 의해 중도 하차됐다가 1998년 <라디오 저널>로 복귀했고, 2004년 해인사의 월간 <해인> 지 객원기자로 일하며 KTV <통일로! 미래로!>의 MC를 맡았다.
2001년 여름, 정부의 허가를 받아 재차 방북하여 북측 인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2003년 8월 15일 광복절 특집으로 문성근이 진행하는 KBS '인물현대사' 8회에서 임수경 방북사건을 다루었다.
전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준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었던지라 선거 때마다 매번 정계진출설이 흘러나왔는데, 결국 2012년 4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 21순위로 출마하여 당시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의석이 딱 21석이 되었던 바람에 턱걸이로 당선에 성공하였다.
당시 공천배경도 흥미로운데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한명숙이 자신의 심복이자 사무총장 임종석을 지역구(서울 성동구 을)에 공천하려 했으나 저축은행 비리 사건 연루로 기소된 상태라 당내 반발이 있었고,[1] 그러나 한명숙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새누리당을 어떻게라도 이기기 위해 통합진보당 야권 연대로 서울 관악구 을이나 성남시 중원구 같은 야권 전통강세 지역에서 통합진보당에게 후보 자리를 내 주었다. 당시 여론은 별로 안 좋았다. 당시 야권 단일 후보를 정하기 위해 여론조사 부정이 드러났는데 민주당 지도부에서 직접 부정을 저지른 통진당 후보의 잘못을 덮어버리려 하면서, 네티즌들은 경선은 요식이고 통진당 후보에게 조공바치려고 쇼한다는 추정까지 할 정도로 커다란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하였던 유시민도
이렇게 일이 돌아가면서 종북을 혐오하는 부동층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임수경같은 통진당에 가까운 인물이 민주당 비례대표로 나선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당연히 종합적인 판단을 할 때 임수경 때문에 졌다는 직접적인 보도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어쨌건 선거를 치른 것은 임수경을 공천한 한명숙 대표 체제였고, 야권 전체의 패배이기 때문이다. 당시 2012년 총선 이전부터 야권 커뮤니티에서 반대의견이 많았고, 패배 이후 비판도 많았지만 고작 언론에서 (임수경만) 직접적 지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임수경 공천이 마이너스가 되었다. 커뮤니티 또한 여론이고 신문기사도 여론을 넘어선 우월한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임수경 같은 비례대표 공천 덕에 민주당 표가 떨어졌다는 걸 거론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2. 19대 국회의원 활동
2015년에는 조선일보 창간 95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하였다. 사실 그 행사는 정관계 인사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 중 가장 규모가 큰 행사로 손꼽히는 행사이며 국무총리, 여야대표[2] 등이 필수적으로 오는 행사다.2016년 2월 25일, 더불어민주당에서 하위 컷오프 대상에 포함되었다. 탈북자에 대한 막말 논란이 결정타로 작용한 모양이다. 사실 그녀가 19대 국회의원이 된 것도 예전에 북한에 갔다 오면서 큰 파장을 일으킨 점만 제외하면 별다른 정치 및 사회운동 경력이 없는데 임수경의 말론 통일 운동을 하였다고 공천을 받은 것이다. 야권에서도 왜 이런 인물을 공천했었냐며 불만이 많았고 결국 임수경은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되었다.
저 폭언 사건이 하필 당선 직후 초기에 터지는 바람에 임기 내내 사실상 찌그러져 지내는 신세였다. 그래서 국회의원을 했음에도 보도 횟수가 극히 적다.
3. 근황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는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를테면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생존 범인 김현희를 명백한 테러리스트라고 지목하면서 그녀를 제대로 단죄하지 않은 안기부의 조치를 비판[3] 했으며, 그 외에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생존 공비 이광수 등의 몇몇 간첩이 선처받은 것을 언급했다. 그러나 여전히 김씨 일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하지 않고 있으며, 언급된 인물은 일련의 법적 절차를 밟은 이후 전향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북한정권의 입장에서는 이적행위자, 배신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것만으로 북한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1] 단, 임종석은 2년 여를 끈 재판끝에 최종 무죄 판결 받았다. 임종석이 공천을 포기하면서 대신 그의 운동권 동지인 임수경을 비례대표로 추천했다는 설이 나왔다.[2] 의외의 사실이지만 임수경, 문재인은 조선일보와 관계가 좋은 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 조선일보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문재인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간의 사적 관계는 좋은 편이다.[3] 당시 야권에서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이 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거세게 비난했고, 노태우 대통령이 확실한 증거물을 남기려고 했던 점도 사면의 한 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