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5 17:32:09

임동원 해임건의안 가결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임동원
,
,
,
,
,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전개
2.1. 제안설명2.2. 표결
3. 파장

[clearfix]

1. 개요

2001년 9월 3일 국회에서 임동원 통일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시킨 사건.

임철호 농림부장관(1955년), 권오병 문교부장관(1969년), 오치성 내무부장관(1971년)에 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4번째이자, 1987년 체제의 첫 해임건의안 가결이며 30년 만의 해임건의안 가결이기도 하다.

이 해임건의안 가결의 영향으로 1997년 11월부터 3년 10개월간 이어져 내려오던 DJP연합은 와해되었다.

2. 전개

당시 야당이자 원내 제1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임동원의 통일부장관 및 국가정보원장으로서의 행적을 문제삼아 연일 비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조 관계에 있는 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민주국민당이 과반을 차지한 데다 해임건의안을 낼 명분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한나라당은 이미 2001년 6월 23일에도 북한 상선의 제주 영해 통과 등을 문제삼아 한 차례 임동원 해임건의안을 낸 바 있으나, 자유민주연합의 협조를 얻는 데 실패하여 폐기된 바 있다.

그러던 도중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동년 8월 15일 광복절에 평양에서 개최된 민족통일대축전에 동국대학교 강정구 교수만경대고향집에 방문하여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식의 문구를 적었다가 귀환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한나라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임동원 통일부장관에게 책임을 물어 다시금 해임건의안을 내기로 결정한다.

당시 국회의원 재적 의석수는 271석으로, 과반수 찬성 가결정족수는 136석이었다. 한나라당의 의석수는 여기서 4석 부족한 132석이었기 때문에, 설령 132명 모두가 해임건의안에 찬성하고 여기에 희망의 한국신당 김용환 의원과 무소속 강창희 의원까지 합세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2표의 이탈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해임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기 때문에 만약 공동 여당인 자유민주연합 쪽에서 이탈표가 상당수 나와서 해임건의안이 가결될 경우 안 그래도 불안한 상태에 놓였던 DJP연합이 파기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자민련에서 해임 찬성을 당론으로 정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민주당 분위기는 격랑에 휩싸였으며, 한나라당과 자민련 쪽에서 내심 샤이 반대표가 나와서 부결되기를 바라는 눈치도 있었다. 다만 한나라당에서 개혁파 의원이 10명 정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반대'로 이탈한다고 해도 자민련에서 16명이 찬성한다고 가정하면 140표로 가결정족수를 넘는 상황이었다.

만약 의원들이 찬반 표결에 모두 당론을 따른다고 가정할 경우 아래와 같이 된다.
해임 찬성 해임 반대
한나라당 132 새천년민주당 114
자유민주연합 16 자유민주연합 4
희망의한국신당 1 민주국민당 2
무소속 1 무소속 1
합계 150 합계 121

2.1. 제안설명

울산 북구 출신 윤두환 의원입니다.
지난 8월 24일 제출한 통일부장관해임건의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드리겠습니다.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현정부는 대북정책을 독점한 채 국가부담을 가중시키는 양보 일변도의 대북지원을 지속하였고 그러면서도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끌려만 다닌 저자세 정책으로 일관해 대한민국의 안보와 주권을 농락당하게 만들었고 국가경제에는 심대한 부담을 안겨주었으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극심한 위기상황에 빠뜨려 버렸습니다.
통일부장관 임동원은 국정원장 재직 시 북한의 김용순 비서 방문기간 중 수행비서역할을 자임하는 등 국가안보를 지켜야 할 국정원을 북한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킨 바 있으며 북한선박의 영해 및 북방한계선 침범 시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으로서 북한선박의 계속적인 영해침범을 사실상 묵인하는 등 군의 사기와 목표를 저하시키고 국민의 안보의식에도 심대한 혼란을 초래한 바 있습니다.
또 통일부장관 임동원은 그간 국회 상임위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대북경협의 일관된 원칙은 정경분리임을 강조하면서 한국관광공사의 금강산관광 참여문제에 대해서는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한 한국관광공사의 자체결정이며 통일부는 관여하지도 관여할 수도 없다고 강변해 왔으나 한국관광공사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시인하여 통일부장관 임동원의 이중성과 기만성이 폭로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기본틀을 뒤흔든 결정판은 평양에서 열린 8·15민족통일대축전 파문이었습니다. 8·15평양축전을 앞두고 친북자들의 노골적인 이적행위가 예상되었음에도 통일부장관 임동원은 하루만에 방북불허를 방북허용으로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검찰 등 공안당국의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소속 간부들에 대한 방북불허요청도 묵살해 국가 전체를 남남갈등으로 갈가리 찢어 놓아 버렸습니다.
방북단 일부가 방북승인도 나기 전에 북측과 사전 협의했고 북한에 가서도 북측인사들과 비밀접촉한데다가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판명난 범민련과 한총련 관계자들이 다른 단체 이름으로 방북신청을 했는데도 승인해 줌으로써 친북인사들의 이적행위를 통일부장관 임동원이 방조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선배·동료의원 여러분께서는 이번에 제출된 통일부장관해임건의안이 가결되어 이 땅에 온 국민이 동의하는 통일정책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상으로 제안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2. 표결

[160910] 국무위원(통일부장관 임동원) 해임건의안(이재오의원 등 132인)
국무위원(통일부장관 임동원) 해임건의안
(의안번호: 160910) (발의일: 2001년 8월 24일) (의결일: 2001년 9월 3일)
재적 재석 기권무효
27126714811900
결과재적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여
가결
후속 절차대통령 : 해임건의안의결서 수령(헌법 제63조)

역대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건의안 가결 사례
<rowcolor=#ffffff> 연도 정부 해임대상 해임여부
1955년 이승만 정부 임철호
농림부장관
사퇴
1969년 박정희 정부 권오병
문교부장관
1971년 오치성
내무부장관
2001년 국민의 정부 임동원
통일부장관
2003년 참여정부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
2016년 박근혜 정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대통령
거부
2022년 윤석열 정부 박진
외교부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2023년 한덕수
국무총리
<rowcolor=#ffffff>

표결에 불참한 의원: 박주선, 이원성(이상 새천년민주당), 이한동(자유민주연합), 정몽준(무소속).

148표로 가결되었다. 한나라당+김용환(한국신당)+강창희(무소속) 134명 전원 찬성이라고 치면 14표의 이탈표가 나온 것이다. 자민련 20석 중 의원 꿔주기로 들어온 4명을 제외하면 16석으로 거의 엇비슷하다. 자민련이 해임 찬성으로 당론을 정했으니 '반대'로 이탈한 표는 아예 표결에 불참한 이한동을 포함해서 2표인 셈이다.

표결 불참 의원 4명을 제외하고 의석을 계산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해임 찬성 해임 반대
한나라당 132 새천년민주당 112
자유민주연합 15 자유민주연합 4
희망의한국신당 1 민주국민당 2
무소속 1 무소속 0
합계 149 합계 118
실제 148
(-1)
실제 119
(+1)
만약 새천년민주당 의원 전원이 당론을 따라 해임 반대에 투표했다고 가정한다면,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의원 꿔주기로 들어온 4명 제외)에서 1명이 해임 반대에 투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거나, 해임건의안은 가결정족수인 136에서 12가 더 많은 148명이 가결표를 던져 가결되었다.

3. 파장

임동원 통일부장관은 해임건의안 가결 후 사실상 경질되었다. 해임건의안 자체는 1987년 개헌 이후 강제성이 없어졌고, 또 임 장관은 햇볕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해임을 거부하고 그대로 안고 갈 수도 있었으나, 가결 직후 임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결국 경질로 마무리되었다.

내각제 개헌 이행 유무와 햇볕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 등으로 집권 2년차인 1999년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하던 DJP연합은 이 날 임동원 해임건의안 가결을 기점으로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의원 꿔주기를 통해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했던 장재식, 배기선, 송석찬, 송영진 의원은 모두 새천년민주당에 복당하였고, 이로 인해 자유민주연합은 20석에서 16석으로 줄어들며 비교섭단체로 전락했다. 자유민주연합은 3년 6개월 만에 연립여당 지위를 상실하여 새천년민주당이 단독 여당이 되었고, 국회 구도 또한 여대야소에서 여소야대로 재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