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2:54:57

유창식/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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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고교 시절3. 프로선수 시절

1. 개요

유창식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고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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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고 2학년이던 2009년에는 봉황대기에서 한 학년 위의 심동섭과 마운드를 지켰고 김용주가 이끄던 북일고에 패했다. 절치부심 한 뒤 3학년인 2010년 3월 황금사자기 전국대회 때 30이닝을 던지면서 3승에 평균자책점 0의 완벽투를 보여주었고, 결승전에서 장충고에 1-0 완봉승을 거두며 우승기를 들었다. 이 때부터 류현진의 뒤를 이을 차세대 왼손 투수로 평가받았다. 2010년 4월 캐나다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탈삼진 31개로 부문 1위를 차지했고 구원투수상을 수상. 2010년 9월 11일 서울 목동 야구장에서 치러진 경남고KBS 초청 고교야구 최강전 결승에서 9이닝동안 공 124개를 던지며 12개 삼진, 3피안타 1실점.

최고 시속 140㎞ 초,중반대의 직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구위가 위력적이고, 완급 조절 능력이 좋아 즉시 전력감으로 평가받았다.

3. 프로선수 시절

3.1.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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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

계약금 7억원을 받고 입단했다. 입단 당시의 시즌 전망은 밝지 않았다. 당장 한화 이글스의 투수진이 허약하므로, 웬만하면 내년 바로 1군 콜업되어 실전용으로 투입되지 않을까 싶으며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고교시절 너무 많은 투구로 인해 어깨 염증으로 인해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한대화 감독도 시즌 시작을 2군이나 불펜해서 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 시즌 초에는 2군에서 머물렀다.

아무리 초특급이라도 신인은 신인일 뿐[1]이고,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등판했다가 쳐맞으면 그 트라우마가 오래 남을수도 있기에, 한대화 감독의 선택은 옳다고 본다. 한화 이글스의 마운드 사정이 작년보다 약간은 나아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고교 때 혹사도 상당히 심한 선수여서 더더욱 보호해야 하기도 한다.

2011년 5월 3일 SK전에서 9회초 구원등판, 1이닝을 11구 무실점 퍼펙트로 막고 이닝을 종료하며 비교적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5월 7일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데뷔 첫 선발!...이었는데 2이닝 5실점으로 털렸다.[2]

총 투구수는 정확히 50개. 스트라이크는 27개밖에 되지 않았으며 구종도 직구와 슬라이더 밖에 안썼으며 그나마 직구 최고 구속은 141km가 찍혔다. 그러나 평균구속은 135km정도였다. 전반적으로 볼이 높게 형성됐고, 구위도 상대를 압도할 만한 힘이 없었다. 스프링캠프의 중요성이 느껴지는 부분.

이후 2군에 내려가서 집중적인 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 때 1군에 올라가지 못하고 2군에 있는 것에 대해 힘들어하는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어서 팬들이 당혹해하기도 했지만 이후 한화측에서는 잘못된 기사라고 나왔고, 어쨌든 6월 말 1군에 콜업됐는데 훈련을 정말 열심히 한 모양인지 흑인이 되어서 돌아왔다. 여전히 구속은 140mk/h 정도까지만 나오지만, 어쨌든 다시 올라왔으니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8월 7일 LG와의 경기에서 오랜만에 선발등판, 5이닝 김광수 분식 4실점했으나 타자들의 득점지원으로 첫 선발승을 따냈다. 더불어 이 승리는 2011시즌 데뷔한 신인 투수가 기록한 승리 중 최초의 선발승이다.

8월 26일 LG와의 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해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양팀 다 1점씩밖에 못내고 무승부로 끝나서 승수 추가는 실패.

9월 14일 KIA와의 경기에서는 1이닝도 채 못채우고 5실점을 하면서 패전투수가 됐다. 무엇보다도 그날 한화타선이 윤석민을 3점이나 털어버린 상황이였기에 더 아쉬운 상황이라... 2이닝만 더 채우면 2012시즌 신인왕 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에

10월 4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6회에 등판, 아웃카운트 2개를 잡는 동안 무려 10실점[3]하고 강판당했다. 이미 점수가 크게 벌어진 상황이라 경험 쌓으라고 올린 것인데 자기가 책임질 경기도 아니면서 계속 도망가는 피칭으로 스트레이트 볼넷 남발에 연속안타 맞으면서 무너졌다.[4] 일각에선 '제2의 유전어냐' 하는 장탄식도... 그나마 전어는 처음 몇 해동안 가을 희망고문이라도 했지... 참고로 이 경기에서 기록한 9실점 비자책은 KBO 한 경기 최다 비자책 실점에 해당된다.[5]

시즌 종료 후 일본 미야자키 피닉스 교육리그에 파견되어, 선발로서 여러 번 호투를 보여주었다. 하다 못해 물 건너 남쪽 나라에서도 최하위권 꼴칰 모드인 어린 독수리들 중 몇 안 되는 준수한 선발요원. 희망고문은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러나 1실점 완투 중에도 타선이 한 점도 못 내서 패전투수가 되는 날도 있었다. 이게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다는 점이 호러

11월 7일, 마무리 훈련 도중 발목에 통증을 느낀다는 얘기에 재활을 선택, 훈련 도중 귀국했다.#. 이에 일부 네티즌에게서는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라면서 우원상 좌창식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중.그래도 유원상은 몸이라도 건강했는데

3.2.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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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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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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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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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16년

시범경기 마지막 날인 3월 27일 6회초에 나와 0.2이닝 6실점하고 내려갔다. 이 경기 전까지는 6이닝 2실점에 볼넷 2개만을 내주며 잘 던졌지만, 이날 경기 이후 평균자책점은 9점대로 폭풍상승.

결국 시범경기 이후에는 2군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범경기 및 연습경기 동안 백용환의 블로킹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었다는(?) 기사가 뜨면서 배터리 코치 드립이 퍼지기 시작했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tigers&no=8945545&page=1&exception_mode=recommend

시즌이 시작된지 얼마 안 있어 넥센의 서동욱이 무상 트레이드로 KIA로 왔는데, 그 넥센이 선수를 공짜로 퍼 줬다는 사실에 온갖 카더라가 난무하던 와중 넥센이 유창식을 받느니 그냥 주기만 하겠다는 드립이 퍼지면서 1패를 적립했다.

5월 23일 "먼데이 베이스볼 나잇"으로 중계된 경찰청과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퐈이야가 무엇인지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이 경기에서 유창식을 제외한 다른 기아 투수들, 심지어 경찰청 투수들까지 탈탈 털리며 이 경기는 순식간에 핵전쟁이 된 모습. 이 경기 전까진 퓨처스리그에서 12경기에 등판해 승패 없이 1홀드 평균자책점 3.71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38⅓이닝을 던지면서 37볼넷을 내주며 9이닝당 볼넷 수(BB/9)가 8.69개라는 초월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고 임기준은 9.13ㅇ... 이날 경기에서도 여지없이 6볼넷 적립. 다만 이는 2군 경기에서 적절한 휴식이 없이 선발-불펜을 오가면서 혹사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5월 28일 올시즌 들어 처음으로 1군 경기에 등판했으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1.1이닝동안 2피안타(홈런포함), 6볼넷 3실점으로 탈탈탈 털렸다. 다음날 다시 아름다운 2군행.

3.6.1. 승부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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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pbs.twimg.com/CoMe3SmXYAE_1v4.jpg
[6]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야구판이 시끄러운 가운데 7월 24일 본인이 자진신고함으로써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화 시절인 2014년 4월 1일 개막전 삼성전에 선발등판해 앞의 두 타자는 잘 잡았으나 3번 박석민과의 승부에서 고의적으로 제구가 엉망이 된것처럼 볼넷을 내주었다. 여러 한화팬들은 500만 원 벌려고 개막전에서 승부조작을 했냐며 유창식을 강하게 비판했다.[7] 자수했다 하더라도 똑같은 조작범이니 마찬가지로 영구제명해야한다는 강경파도 있긴 했지만, 자진신고 기간 내에 자수를 했고 한 번에 그친 것으로 보아 영구제명까지는 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자진신고 기간 내에 자진신고를 한 경우 2~3년 정도의 관찰 기간을 거쳐 복귀가 가능토록 한다고 한다. 참고로 2012년의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 당시에도 유창식의 경우처럼 자진 신고한 홍정표[8]가 영구제명 처분을 면하고 대신 무기한 선수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기에 가장 심하게 처벌 받는다 해도 이 정도에 불과할 듯했다.

하지만 영구제명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구단에서 그대로 끌고가면 구단이나 선수나 계속 욕먹을 게 뻔하고 딱히 핵심 선수도 아니라 계속 품고 갈지는 의문이며, 만약 방출되면 타 구단에서 영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현역 생활을 지속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외국 리그로 나가지 않는 이상 이제 야구선수로서의 인생은 끝났다고 봐야 할지도.

이때 유창식은 KIA 타이거즈 소속이었지만 조작 자체는 전 소속팀인 한화 이글스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KIA가 아닌 한화 구단에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

하지만 다음날인 25일 경찰청에 출두해 조사를 받던 중 승부조작을 한 번 더 한 것으로 드러났다. 승부조작 경기는 4월 19일 LG전 이며 자백 당시의 진술을 상당히 번복하였다. ## 이로 인해 그나마 있던 유창식에 대한 동정론들도 싸그리 사라졌고 야구 팬들 모두 유창식에게 대한 배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후 경찰청 공식 수사 발표가 나왔다. 유창식은 2경기 승부조작으로 30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유창식은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고작 300만 원이란 적은 돈에 눈이 멀어 야구를 져버리게 된 희대의 멍청이로 남게 되었다.[9]

다음 스포츠 돌직구 토크 폴카운트에 출연중인 정민철 해설위원(2014년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도 당시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며 사과했다.#### 유창식의 승부조작 사실을 듣고 이를 받아들이는 데 심적으로 고생했다고.

그리고 경찰 조사 결과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는데, 그것은 유창식이 불법 사이트에서 본인 등판 경기를 두고 1억 5천만 원을 베팅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자수 이후 점점 더 스케일이 커지는 상황.

2016년 12월 29일,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공판에서 법원은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17년 1월 25일, KBO에서는 승부조작 및 도박에 참여한 유창식에 대해 3년 간 유기실격 징계를 내렸다. 같은 승부조작에 참여했으나 자진 신고에 따른 감경에 의거한 징계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구단이 추가 징계를 내리긴 힘들어보인다. 이미 유기한 실격 처분이 내려져서 구단에서 임의탈퇴나 방출 등의 조치를 취할 수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징계 기간 동안 일단 KIA가 그냥 안고 갈 가능성도 있다. 다만 구단이 안고 가며 3년이 지나더라도 KIA에서 정상적으로 써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아래에서 언급한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법정 구속까지 되어 기아는 물론이고 KBO 전체에서도 쓸 일이 없어져 버렸다.

3.7. 2017년

OSEN의 저니맨 외인구단 최익성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김상현과 함께 정신 못차리고 저니맨 외인구단에서 뛰는게 밝혀졌다. 최익성 대표는 유창식이 타자로서의 성공확률이 높다고 설명했..지만 모 자동차 사이트에 올라왔다가 삭제된 글에 의하면 저니맨 외인구단에서도 불미스러운 일로 나왔다고 한다. 4월 24일 저니맨 외인구단 첫 공식경기에서 1번 타순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

3.7.1. 성폭행

승부조작 건과는 별개로 1월 12일 전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본인과 변호인은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고 두 사람의 체격 차이를 감안하면 합의에 의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며, 죄질이 나쁘고 피해자가 엄벌을 요구함에 따라 2017년 11월 9일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으며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40시간 이수하게 됐다. 이에 따라 야구계에서 완전히 매장. 이 꼴을 보며 본의 아니게 한화 팬들은 전임 감독을 재평가(...)하게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최후 진술에서 유창식은 "정말 안했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지만 문제는 전 여자친구가 무고를 한 것이라면 이에 대해 무고죄로 맞고소를 하는 게 상식인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본인이 혐의를 부인하는데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

이로 인해 저니맨 외인구단에서 재기를 꿈꾸던 그의 선수생활은 완전히 끝났다. 이후의 근황은 알려진 것이 없다.


[1] 지명 당시 탈고교급으로 평가받으며 즉전감이라고 평가받은 1라운드급 투수들이 바로 자리잡은 케이스는 소수에 속한다. 대다수는 너무 성급하게 1군에 올렸다가 두들겨 맞고 자신감을 잃거나 재능을 만개하지 못 한채 사라진 케이스가 많은편.[2] 유창식이 만루쌓고 데폴라가 분식했다.[3] 신주영 1점 분식, 1자책[4] 유창식의 9실점 포함 6회말에만 11실점했다.[5] 8실점 비자책 경기는 1985년 신태중을 시작으로 2022년 로버트 스탁까지 8번이나 더 나왔다는 점.[6] 공교롭게도 유창식이 입은 티셔츠 상표인 STIGMA는 '낙인', '오명'이란 뜻이다. 저 티셔츠의 브랜드 이름이 스티그마. 스트릿 계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브랜드이다.[7] 게다가 이때는 구대성의 번호였던 15번을 달았다. 말 그대로 영결되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레전드의 번호를 더럽힌 셈. 게다가 승부조작 사실이 밝혀졌던 당시 유창식이 달고 있던 등번호는 김성한, 김상진의 등번호였던 11번이다. 그야말로 대선배들에게 못 볼 꼴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8] 당시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윙리시버.[9] 상술된 대로 그의 입단 계약금은 승부조작으로 번 돈의 200배가 넘는 7억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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