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갈라스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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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갈라스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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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팀 | ||||
| | 2002-03 · 2005-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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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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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윌리엄 갈라스 William Gallas | |
| 본명 | 윌리암 에리크 갈라스[1] William Éric Gallas | |
| 출생 | 1977년 8월 17일 ([age(1977-08-17)]세) | |
| 프랑스 아니에르쉬르센 | ||
| 국적 | ([[과들루프| | |
| 신체 | 키 181cm | |
| 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2] / 은퇴) | |
| 소속팀 | AVG 풋볼 (1987~1992 / 유스) 라싱 클럽 드 프랑스 (1992~1993 / 유스) INF 클레르퐁텐 (1992~1994 / 유스) SM 캉 (1995~199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7~2001) 첼시 FC (2001~2006) 아스날 FC (2006~2010) 토트넘 홋스퍼 FC (2010~2013) 퍼스 글로리 FC (2013~2014) | |
| 국가대표 | 84경기 5골 (프랑스 / 2002~2010) | |
1. 개요
"갈라스는 환상적인 선수였다. 갈라스는 스쿼드에 22명의 선수만 있어도, 24명이나 25명을 두고 있는 것 같은 선수였다."
주제 무리뉴
주제 무리뉴
프랑스의 前 축구 선수. 국가대표팀에서 레블뢰 철의 포백을 계승한 레블뢰 수비진의 핵이었고 클럽에서는 첼시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던 무리뉴 1기 시절 철의 포백의 일원으로 활약했던 뛰어난 실력의 보유자였다.
런던을 연고로 하는 클럽을 세번이나 거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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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윌리엄 갈라스/클럽 경력#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윌리엄 갈라스/클럽 경력#|]] 부분을 참고하십시오.2.2. 국가대표 경력
2.2.1. UEFA 유로 2004
갈라스는 유로 2004에 참가해 프랑스가 8강에 올라가는데 공헌했지만, 8강에서 프랑스는 그리스의 수비 축구에 일격을 당해 패해 탈락한다.마르셀 드사이, 릴리앙 튀랑, 미카엘 실베스트르라는 쟁쟁한 경쟁자들에 밀려 라이트백으로 뛰었지만 이것도 사실 무려 윌리 사뇰을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한 것이었다.
2.2.2. 2006 FIFA 월드컵
마르셀 드사이가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 뒤 릴리앙 튀랑과 호흡을 맞추며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잡아 월드컵 기간동안 팀의 철벽 수비에 공헌하며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여담으로 대한민국전에서 후반전 막판에 박지성이 동점골을 넣자 공을 하늘 높이 쏘아올리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차오른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는데[3], 한국에선 아직까지도 이때 장면의 임팩트가 매우 커서 해외축구에 관심이 떨어지는 사람도 이 장면으로 갈라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3. 플레이 스타일
수비수로서의 기량은 냉정히 말해서 최고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갈라스가 고평가를 받았던 것은 바로 여러 자리를 소화할 수 있는 멀티성, 즉 유틸리티 플레이어라는 점 때문이다. 무리뉴가 말한 스쿼드에 22명만 있어도 25명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멀티성 덕분에 어딜 가서든지 한자리는 차지했으며, 수비 능력이 말 그대로 최고 수준은 아니었다 뿐이지 전체적으로 뛰어난 편이었다. 키가 아주 큰 것도 아니고, 대인방어가 완벽한 것도 아니고, 태클이 최고 수준도 아니고, 게임을 읽고 차단하는 능력도 최고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모든 걸 잘 해냈다. 또한 본업인 센터백 기준으로는 매우 빠른 발을 갖추었기에 첼시에서 웨인 브릿지가 부상을 당했을 때 종종 플레이한 왼쪽 풀백 자리에서도 원래 자기 포지션처럼 잘 뛰었고, 오른쪽 풀백을 보는데도 문제가 없어서 이 포지션으로도 종종 출장하였다. 요약하자면 포백의 어느 자리를 가든 한 가닥 하는 선수였다.다만 본업이 센터백이기 때문에 풀백으로 출전했을 때의 공격력은 상대적으로 아쉬웠다. 그러나 그걸 만회하고도 남는 뛰어난 세트피스 득점력을 선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비해 점프력이 좋고 오프더볼 상황이나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위치선정이 매우 탁월하여 헤더 옵션으로 활약했다. 국가대표 경기에서 84경기 5골을 기록했고 클럽에서도 첼시와 아스날 시절 도합 260경기 24골을 기록하는 맹위를 떨쳤다. 첼시 시절엔 존 테리, 히카르두 카르발류 등과 함께 첼시의 방패전설의 주역이 되었다. 이 기믹은 이후 갈라스가 떠난 뒤에도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알렉스, 다비드 루이스, 게리 케이힐 등을 통해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속도와 높이 두 가지를 겸비했고 기술도 나름 괜찮은 수비수였으며, 실수하는 일도 굉장히 적었기에 여러모로 쓰임이 많았던 선수였다. 다만 개인으로는 풀백보다는 센터백으로 출장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 첼시 FC (2001~2006)
- 프리미어 리그: 2004-05, 2005-06
- 풋볼 리그컵: 2004-05
- FA 커뮤니티 실드: 2005
4.2. 개인 수상
4.3. 출전 기록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4] | 총계 |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 95/96 | SM 캉 | 리그 2 | 16 | 0 | 0 | 0 | 0 | 0 | 0 | 0 | 0 | - | 16 | 0 | 0 | ||
| 96/97 | 리그 1 | 18 | 0 | 0 | 1 | 0 | 0 | 0 | 0 | 0 | - | 19 | 0 | 0 |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 97/98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 리그 1 | 3 | 0 | 0 | 0 | 0 | 0 | 0 | 0 | 0 | - | 3 | 0 | 0 | ||
| 98/99 | 30 | 0 | 0 | 1 | 0 | 0 | 9 | 0 | 0 | - | 40 | 0 | 0 | ||||
| 99/00 | 22 | 0 | 0 | 1 | 0 | 0 | 7 | 1 | 0 | - | 30 | 1 | 0 | ||||
| 00/01 | 30 | 2 | 0 | 0 | 0 | 0 | 0 | 0 | 0 | - | 30 | 2 | 0 | ||||
| 합계 | 리그 1 | 103 | 2 | 0 | 3 | 0 | 0 | 16 | 1 | 0 | - | 122 | 3 | 0 |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 01/02 | 첼시 FC | 프리미어 리그 | 30 | 1 | 0 | 8 | 1 | 0 | 3 | 0 | 0 | - | 41 | 2 | 0 | ||
| 02/03 | 38 | 4 | 1 | 8 | 0 | 0 | 2 | 0 | 0 | - | 48 | 4 | 1 | ||||
| 03/04 | 29 | 0 | 0 | 5 | 0 | 0 | 11 | 1 | 0 | - | 45 | 1 | 0 | ||||
| 04/05 | 28 | 2 | 1 | 6 | 0 | 0 | 12 | 0 | 0 | - | 46 | 2 | 1 | ||||
| 05/06 | 34 | 5 | 1 | 3 | 0 | 1 | 7 | 0 | 0 | 1 | 0 | 0 | 45 | 5 | 2 |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 06/07 |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 21 | 3 | 0 | 2 | 0 | 0 | 6 | 0 | 0 | - | 29 | 3 | 0 | ||
| 07/08 | 31 | 4 | 0 | 3 | 0 | 0 | 8 | 0 | 0 | - | 42 | 4 | 0 | ||||
| 08/09 | 23 | 2 | 0 | 4 | 1 | 0 | 9 | 3 | 0 | - | 36 | 6 | 0 | ||||
| 09/10 | 26 | 3 | 0 | 1 | 0 | 0 | 8 | 1 | 1 | - | 35 | 4 | 1 |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 10/11 | 토트넘 홋스퍼 FC | 프리미어 리그 | 27 | 0 | 0 | 1 | 0 | 0 | 8 | 0 | 0 | - | 36 | 0 | 0 | ||
| 11/12 | 15 | 0 | 0 | 1 | 0 | 0 | 2 | 0 | 0 | - | 18 | 0 | 0 | ||||
| 12/13 | 19 | 1 | 0 | 0 | 0 | 0 | 5 | 0 | 0 | - | 24 | 1 | 0 | ||||
| 합계 | 프리미어 리그 | 321 | 25 | 3 | 42 | 2 | 1 | 81 | 5 | 1 | 1 | 0 | 0 | 445 | 32 | 5 |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 13/14 | 퍼스 글로리 FC | 호주 A리그 | 15 | 1 | 0 | 0 | 0 | 0 | 0 | 0 | 0 | - | 15 | 1 | 0 | ||
| 합계 | 호주 A리그 | 15 | 1 | 0 | 0 | 0 | 0 | 0 | 0 | 0 | - | 15 | 1 | 0 | |||
| 통산 | 455 | 28 | 3 | 45 | 2 | 1 | 97 | 6 | 1 | 1 | 0 | 0 | 598 | 35 | 5 | ||
5. 여담
- 런던을 연고로 한 첼시, 아스날, 토트넘에 모두 몸을 담았다. 런던 팀들간의 안좋은 관계를 볼 때 굉장히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팬중 아무도 갈라스를 욕하지 않는데 첼시에서 아스날로 이적할 때는 본인 의지로 이적한게 아니며 아스날 시절에는 딱히 잘하지는 못해 토트넘으로 이적할 때 욕을 먹지는 않았다.[5]
- 사미르 나스리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 독일 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인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내내 경기를 지배하다가 후반 40분경 설기현의 크로스, 조재진이 떨궈 준 볼을 박지성이 밀어넣은 동점골 때문에 화가 나서 공을 잡고 걷어찼다.
약 14초경 분노의 발차기를 시전하시는 분이 바로 이분.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럽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아일랜드를 상대로 연장전에서 티에리 앙리의 '신의 손' 어시스트를 받아 논란의 골을 기록한 당사자이다.
- 백지영과 닮았다는 의견들이 많다.
- 2020-21 시즌 미켈 아르테타 감독의 아스날이 강등권에 가까워지자 새 감독으로 파트리크 비에라를 추천했다. 관련 해외 기사 번역본 아르테타는 중반기를 시작으로 반등했고 비에라는 다음 시즌 크리스탈 팰리스에 부임한다.
6. 같이 보기
| 1 랑드로 · 2 붐송 · 3 리사라수 · 4 비에라 · 5 갈라스 · 6 마켈렐레 · 7 피레스 · 8 드사이 · 9 사하 10 지단 ⓒ · 11 윌토르 · 12 앙리 · 13 실베스트르 · 14 로탕 · 15 튀랑 · 16 바르테즈 · 17 다쿠르 18 페드레티 · 19 사뇰 · 20 트레제게 · 21 말레 · 22 고부 · 23 쿠페 |
자크 상티니 |
| 1 랑드로 · 2 붐송 · 3 아비달 · 4 비에라 · 5 갈라스 · 6 마켈렐레 · 7 말루다 · 8 도라수 · 9 고부 10 지단 ⓒ · 11 윌토르 · 12 앙리 · 13 실베스트르 · 14 사하 · 15 튀랑 · 16 바르테즈 · 17 지베 18 디아라 · 19 사뇰 · 20 트레제게 · 21 심봉다 · 22 리베리 · 23 쿠페 |
레몽 도메네크 |
[1] /wiljam eʁik ɡalas/. 프랑스어에서 자음 앞(m,n,h는 제외) 또는 어말에 오는 am, an은 프랑스 고유어로 여겨지는 이름인 경우 /ɑ̃/'앙'으로 발음되며, 외래어 또는 차용어로 여겨지는 이름인 경우 am은 /am/'암', an은 자음 앞에서는 /ɑ̃/'앙', 어말에서는 /an/'안'으로 발음된다. William은 프랑스어권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후자를 따른다. 참고로 프랑스어에서 William에 해당하는 이름은 기욤(Guillaume)이다.[2] 센터백, 풀백[3] 공이 살짝 빗맞으면서 높게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 안으로 들어갔는데, 궤적이 절묘해서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골문 앞 수비수들이 처리할 방도가 없었다[4] 각 리그의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5] 아스날로 이적할 때 아쉬워하는 첼시 팬은 있었지만 갈라스와 교환해온 애슐리 콜이 첼시 왕조를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해서 나중에는 아쉬워하는 의견도 줄어들었다.
분류
- 1977년 출생
- 과들루프계 프랑스인
- 프랑스의 축구 선수
- SM 캉/은퇴, 이적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은퇴, 이적
- 첼시 FC/은퇴, 이적
- 아스날 FC/은퇴, 이적
- 토트넘 홋스퍼 FC/은퇴, 이적
- 퍼스 글로리 FC/은퇴, 이적
- 프랑스의 남자 축구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4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8 참가 선수
-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 참가 선수
- 1997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말레이시아 참가 선수
- 오드센 출신 인물
- 1995년 데뷔
- 2014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