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9 15:24:14

파스칼 심봉다

파스칼 심봉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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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머스데일 유나이티드 FC
Skelmersdale United Football Club
파일:심봉다.jpg
<colbgcolor=#000f88,#191919> 이름 파스칼 심봉다
Pascal Chimbonda
출생 1979년 2월 21일 ([age(1979-02-21)]세) /
과들루프 레자빔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
[[틀:국기|]][[틀:국기|]][[과들루프|]]
신체 180cm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1]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르아브르 AC (1998~2003)
SC 바스티아 (2003~2005)
위건 애슬레틱 FC (2005~2006)
토트넘 홋스퍼 FC (2006~2008)

선덜랜드 AFC (2008~2009)
토트넘 홋스퍼 FC (2009)
블랙번 로버스 FC (2009~2011)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1)
동커스터 로버스 FC (2011~2012)
마켓 드레이턴 타운 FC (2013)
칼라일 유나이티드 FC (2013~2014)
AC 아를 아비뇽 (2014~2015)
워싱턴 FC (2017)
애쉬튼 타운 FC (2019)
감독 스켈머스데일 유나이티드 FC (2023~)
국가대표 6경기 (과들루프 / 2003~2012)
1경기 (프랑스 / 2006)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지도자 경력
5.1. 스켈머스데일 유나이티드 FC
6. 기록
6.1. 대회 기록6.2. 개인 수상

[clearfix]

1. 개요

프랑스 국적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 클럽 경력

2.1. 르아브르 AC

파스칼 심봉다는 1998년 그의 현역 커리어를 프랑스의 르아브르 AC에서 시작하였다. 줄곧 르아브르 B팀에서 출장하다가 1999년 4월 29일 RC 스트라스부르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심봉다는 르아브르가 2부 리그로 강등되기 전까지 4년간 클럽에서 활약했다.

2.2. SC 바스티아

SC 바스티아로 이적한 그는 2005년 경, AS 생테티엔과의 경기에서 크게 진 후 팬들로부터 인종 차별적인 모욕을 받고 추가적으로 팀이 2005년 7월 강등당하자 이적을 결심하게 된다.

2.3. 위건 애슬레틱 FC

파일:심봉다 위건.jpg
이적 결심 이후 그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제의를 거절하고 50만 파운드의 금액으로 위건 애슬레틱 FC로 떠났다. 위건에서의 첫 시즌인 05-06 시즌, PFA 올해의 팀에서 게리 네빌, 스티브 피넌, 파울루 페헤이라를 제치고 오른쪽 풀백 자리를 차지하였다. 당시 언론은 그를 일컬어 '윙보다 위협적인 윙백' 이라며 극찬했다. 이러한 활약에 더하여 바이아웃 금액이 1백만 파운드였기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아스날 FC,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와 링크되었다. 2005-06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이후 위건에게 이적 요청을 하였다. 4년 계약 연장 협상 이후 6개월 만에 이적 요청을 하였기 때문에 위건의 보드진들은 분노했으며 "그가 팔리지 않는다면 계약 종료 전까지 리저브 매치에서만 뛰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토트넘 홋스퍼 FC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가 제의를 하였지만 위건이 정한 6백만 파운드라는 금액에 미치지 못하여 거절되었다. 이후 2006년 8월 8일 레딩 FC와의 경기에서 마지막으로 위건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게 된다.

2.4. 토트넘 홋스퍼 FC

2006년 8월 31일, 위건은 결국 토트넘으로부터 450만 파운드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이적 시장 마지막날 자정 직전에 이적이 완료되었다. 그는 그해 9월 9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홈 경기에서 데뷔전을 가졌다. 심봉다는 2-1로 승리한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램파드의 과격한 태클로 무릎 인대가 손상되었다. 경기 이후 당시 감독이었던 마틴 욜은 그의 투혼 정신을 언급하며 높이 칭찬하였다. 하지만 2007년 1월 14일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뉴캐슬 미드필더 니키 버트의 얼굴을 손으로 가격하면서 논란에 휘말렸다. 이 사건은 양팀 선수들간의 싸움을 일으켰다. 그는 2007년 1월 20일 풀럼 FC와의 1-1 무승부로 끝난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었다. 2008년 2월 24일, 런던 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7-08 칼링컵 결승에서 왼쪽 풀백으로 나오면서 2-1 승리를 거두고 최초의 대회 우승을 경험하였다. 2008년 3월 12일, 심봉다는 UEFA컵 2007-08 시즌 PSV 에인트호번과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중요한 패널티를 실축하며 PSV 에인트호번은 8강에 진출하였고 토트넘은 탈락하였다. 2007-08 시즌 동안 심봉다는 아스톤 빌라 FC,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부터 관심을 받아왔고 이적 루머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는 연장 계약을 체결하고 팀에 잔류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2.5. 선덜랜드 AFC

2.6. 토트넘 홋스퍼 FC

2.7. 블랙번 로버스 FC

2.8.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9. 동커스터 로버스 FC

2.10. 이후 커리어

3. 국가대표 경력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과들루프 출신인 이력 때문에, 그는 2003년 과들루프 대표팀에 소집되어 골드컵 지역예선 3경기를 소화해 과들루프 소속으로 첫 A매치를 치뤘다. 하지만 FIFA 주관 대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본국인 프랑스 대표로 선발되면 프랑스 대표로써 FIFA 대회를 나설 수 있는 신분이었다.

3년 뒤 그는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위건에서의 맹활약으로 생애 처음으로 프랑스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2006년 5월 31일 펼쳐진 덴마크와의 월드컵 최종 평가전에서 A매치에 데뷔하며 23인 엔트리에도 선발된다. 월드컵 본선에선 한 경기도 나오지 못했지만, 프랑스는 결승까지 갔고, 그는 월드컵 준우승 멤버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두 대표팀의 일원이 된 상당히 희귀한 경험인 셈이다.

근데 이후 프랑스 대표팀 라이트 백 자리에 바카리 사냐라는 부동의 주전이 등장하고, 이후에도 마티외 드뷔시, 세바스티앙 코르키아 등 라이트백 자원이 쏟아지면서 토트넘에서 아무리 잘해도 주목을 받기 힘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심봉다 본인의 폼마저 저하되면서 대표팀과는 멀어지게 된다.

여기서 2012년 그는 과들루프 대표팀의 소집 요청을 또 한번 받게 된다[2]. 이번에는 CONCACAF 산하 연맹인 캐리비언 지역 축구연맹에서 개최하는 카리브컵 예선에 나서는 과들루프 대표팀의 일원이 된 것인데, 조별 예선 3경기에 출전하며 10년만에 다시 과들루프 대표팀에 컴백한다. 즉 국적 변경을 2번 한 셈이다. 또한 캐리비언 컵 역시 FIFA 주관 대회는 아니기에 2022년 현재까지도 심봉다는 프랑스 대표팀에 다시 선발된다면 프랑스 대표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묘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5. 지도자 경력

5.1. 스켈머스데일 유나이티드 FC

2023년 10월 15일, 스켈머스데일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1] 풀백, 센터백[2] 앞선 대표팀 선발 기간동안 출전한 유일한 경기인 덴마크전은 평가전이기 때문에 국적 변경 제한을 받지 않고, 월드컵에서는 단 1번도 출전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