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8-07 00:53:57

엽문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 시리즈에 대한 내용은 엽문(영화)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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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중국무술가이자 영춘권의 일대종사[1]. 이소룡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2. 생애

본명은 엽계문(葉繼問, Ip Kai-man),[2] 1893년 10월 1일중국 청나라 광동성(廣東省) 불산(佛山)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진화순(陳華順)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지만, 당시 진화순의 나이가 70세여서 그의 제자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오중소(吳仲素)로부터 대부분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엽문이 영춘권을 배우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진화순은 병으로 사망하는데, 진화순의 유언 중 하나가 바로 오중소로 하여금 계속해서 엽문에게 영춘권을 가르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엽문은 16세에 친척의 도움을 받아 홍콩으로 이사했고, 1년 뒤 홍콩의 일류 대학인 세인트 스티븐스 대학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한 영국인 경찰관이 어떤 중국인 여자를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엽문은 그 일에 개입했다. 경찰관이 엽문을 공격하려 했으나 엽문은 경찰관을 쓰러뜨리고 친구와 학교로 도망친다. 이 친구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한 남자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고, 그 남자는 엽문을 만나 어떤 무술을 썼느냐고 묻는다. 남자는 엽문에게 엽문의 자세가 '딱히 좋지 않다'고 말하며 치사오(黐手, 이수)로 그의 영춘권을 테스트해 보겠다고 했다. 엽문은 이를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으나 곧 그 남자에게 패배한다. 드라마틱하게도 그 남자는 바로 진화순의 스승 양찬(梁贊)의 큰아들 양벽(梁璧)이었다. 이 사건 이후 엽문은 양벽으로부터 영춘권을 이어 배우기 시작한다.

엽문은 24세에 고향 불산으로 돌아와 중국 국민당의 경찰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친척, 친구, 부하 등 일부에게 영춘권을 가르쳐 주었으나 공식적인 무술 도장은 열지 않았다. 그리고 1949년 국공 내전이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자 엽문은 불산을 떠나 홍콩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도장을 열긴 했으나 제자들이 대부분 한두 달이면 떠나버리는 탓에 엽문은 가난한 삶을 살았다.[3]

3. 기타

  • 아들 엽준에게는 오랫동안 무술을 가르치지 않다가 엽준이 40대의 나이가 되서야 전수할 마음이 생겨서 전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대에서 영춘권이 끊어질 것을 염려해서 모든 초식들을 영상으로 남겼다.
  • 동명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지만 실제 그의 삶과 영화는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영춘권 문서로.
  • 실제 엽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려면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2013)가 오히려 참고가 된다. 다만 일대종사에서 엽문의 평생의 라이벌처럼 나오는 여성 '궁이'는 영화를 위해서 창조한 허구의 인물.
  • 일본인에게 영춘권을 전수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1] 각 무술 문파에서 한 시대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스승. 영어로는 Grandmaster라고 한다.[2] 중국에서는 중세까지만 해도 성으로 사용할 때는 '섭(반절 書涉切)'으로 읽었고, 이를 따르면 광동어에서는 '엽문'을 '십만'으로 읽게 된다. 다만 지금은 보통화든 광동어든 대부분의 경우 '예/입(한국어로는 엽)'이란 하나의 발음으로 읽도록 바뀐 상황이다.[3] 끝까지 배웠던 제자들 역시 엽문에게 공식 면허를 받아서 도장을 열긴 했지만 이들 역시 도장 운영이 잘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4]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견자단 주연 영화 '엽문' 시리즈에서는 담배로 순화되었다. 하지만 담배가 더 암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함정(...).[5] 아내 장영성이 1960년 자궁암으로 사망하고 12년뒤, 그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