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16:40:59

에구치 히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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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에구치 히사시.jpg

1. 개요2. 경력3. 특징4. 그 외5. 주요 작품6.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의 개그 만화가이자 상업 일러스트레이터. 2000년대에 와서 만화가로서의 활동은 멈추었으며, 상업 일러스트레이션에 집중하고 있는 편이다. 키치죠지 거주 만화가의 수장격인 인물이기도 하다.[2] 여성을 매우 매력적으로 묘사한 팝아트풍의 그림체로 일세를 풍미했다. 주간 소년점프의 초인기 만화가가 된 뒤에는 마감을 지키지 못하고 (물리적으로) 도망가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으며, 토가시 요시히로 뺨치는 원조 휴재이었으며, 히라모토 아키라보다 먼저 그림체 대격변으로 팬들에게 충격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2. 경력

1977년에 데뷔, 초창기 소년 점프의 대표적인 개그 만화 나가라! 파이리츠!(원제 : すすめ!!パイレーツ)로 인기를 끌었다.

파일:eguchi2.jpg

이 당시의 그림은 도저히 잘 그렸다고 보기 힘든데, 그 이유는 에구치 본인이 개그 만화에 잘 그린 그림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대신 빠른 연재로 승부를 보았기 때문. 거인의 별 등 근성 스포츠물이 범람하던 시기에 '나가라! 파이리츠!'는 스포츠 개그물로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초창기 소년 점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편이다. 만화 원작의 드라마 아오이 호노오에선 이 만화를 통해 패러디라는게 자유로워지고[3] 보다 자연스러워졌다며 파이오니아(선구자)라고 치켜세우는 내용까지도 나온다.
그렇게 극도로 데포르메화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를 그리던 중, 그는 당시 일본 만화계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오토모 카츠히로[4]의 만화들을 접하고, 드디어(!) 그림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나가라! 파이리츠!'의 연재를 마친 후, 그는 그림을 연습하기 시작하였고, 1981년에 소년 점프에 새로운 문제작을 연재하게 된다.

파일:eguchi3.png

히바리 군 연재 초기 그림.

바로 스톱!! 히바리군!. 오카마 또는 오토코노코 만화의 시발점(무려 1981년이다!)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오조라 히바리라는 히로인(???)의 존재로 소년 점프에 연재되며 당시 일본의 문화계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5] 여러 잡지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서 PTA의 항의를 받았고, 커밍아웃하지 않은 클로짓 게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으며[6] 당시의 오타쿠들은 여자같은 남자 아이 히바리 군에게 주목하였다. 무엇보다도 대단한 점은 '나가라! 파이리츠!'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캐릭터의 묘사. 과거의 과한 데포르메를 버리고 어느 정도 등신이 잡힌 캐릭터가 등장하였고, 81년 당시에는 꽤나 앞서나가는 그림체였다.

파일:eguchi man.jpg

연재 후반부에 나온 타이틀 그림 중 하나. 에구치 히사시 최고의 1컷이라 불리며 애니메이션 오프닝 마지막에도 사용되었다. 일러스트집이나 전시전에서도 가장 메인으로 놓는 이미지이다.[7]

문제는 그림이 복잡해지면서 과거처럼 빠르게 만화를 그릴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림의 질을 올렸더니 어시들이 따라 그리지를 못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미소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에구치 히사시의 미소녀 그림은 선구적이었고 쉽게 따라 그리는 사람이 없었다. 자기가 히바리를 직접 그려야 했기 때문에 작업량이 늘어나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고. 안 그래도 그림이 느린 데다가 약속을 거절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 상, 휴재가 잦아지게 되었고, 토가시 요시히로의 대표 스킬인 콘티 연재를 먼저 실천하지 않나, 소년 점프 편집부에서는 에구치가 제 때에 연재를 할 수 있는지 내기를 걸기까지 하였다. 그의 공백을 땜빵하기 위해서 점프는 본의 아니게 수많은 신인 만화가들의 단편을 투고하였고, 여기서 마츠모토 이즈미 등 후의 소년 점프를 이끄는 작가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에구치는 나중에 "나 덕분에 새로 데뷔한 만화가가 얼만데!"라고 이야기하기도.

결국 그는 주간 만화 스케줄에 도저히 맞추기 힘들어지고, 그는 "흰 악어가 나타났다!"[8]가 나타났다는 핑계로 '스톱!! 히바리군!'을 1983년에 연재중단 시켜버린다. 1983년에 애니메이션이 출시되었지만 이 마저도 수많은 사람들의 항의에 의해 조기종영 당하기까지 한다.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만화. 결국 이 만화는 2010년에야 3권짜리로 완결이 나게 된다.

파일:eguchi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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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그는 연재 주기가 여유가 있는 격월간 만화잡지 '후레쉬 점프'에 '에이지'라는 청춘 권투만화를 연재하기도 했으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복선을 깔아두는 와중에 갑자기 연재를 중단하였다! 에구치의 말로는 언젠가 완결시킬 계획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왕성한 일러스트레이션 활동 때문에 포기하는게 낫다. 욕심은 있는지 '파파링코 이야기'라는 작품도 빅 코믹 스피리츠에 1985년에 연재하였으나 이것도 연중. 도대체 연중한 작품이 몇 개냐!!! 다만 위의 에이지와 파파링코 이야기의 일러스트에서 보듯이 그의 그림 실력은 상당한 수준을 기록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의 기반이 된다.

파일:eguchi6.jpg

이후 그는 만화는 주로 성인 대상의 단편만 부정기적으로 연재하고 독립만화잡지 'COMIC CUE'의 초대 편집자를 맡는 정도로 만화 활동을 줄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개그 단편들은 외잡스러우면서도 당시 시대상을 예민하게 반영한 걸작들이 많고, 훗날 세 편의 단편집으로 출간되면서 그의 성인물 대표작으로 자리잡았다. 연재를 줄인 대신 그는 진작에 재능을 보였던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에 전념하는데,. 여러가지 광고 일러스트를 그리거나,[9],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10]을 맡는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며 큰 성공을 거둔다. 그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상품, 광고, 앨범 커버, 잡지 표지, 책 표지, 달력 등을 일본 각지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이며, 그의 상업 일러스트레이션만 따로 모아서 전시회를 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실 모델도 아니고 만화 일러스트로 광고를 했는데도 화장품, 책,, 의류 등의 상품 판매량을 엄청나게 끌어올린 능력자라서 광고 업계에선 전설로 꼽히고, 어지간한 연예인을 뛰어넘는 인기를 가지고 있다. 오타쿠들은 그의 만화들을 기억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더 유명한 특이한 인물이다.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을 시작한 이래, 음반 자켓의 디자인도 꾸준히 하고 있다. 1992년부터 2020년까지 발매한 앨범 자켓만을 모아서 또 화집을 내놓았을 정도다. 보통은 인디나 마이너한 뮤지션을 위주로 작업하였고, 대표작은 위의 히바리군의 대표 일러스트를 활용한 '긴난보이즈'의 데뷔 앨범이다. 그러다가 2020년 6월 24일에 발매하는 유명 밴드 SEKAI NO OWARI의 새 싱글 'umbrella/Dropout'의 디자인을 담당했음이 밝혀졌다.

주 활동 무대가 일본 국내의 광고계가 된 탓에 해외에서는 에구치 히사시가 S급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츠메 신고 감독은 해외에 나갔을 때 'Sonny Boy에 고전 크리에이터인 에구치 히사시 씨를 기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자 "지금도 잘나가는 분입니다." 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3. 특징

파일:eguchi7.jpg

그가 그린 혼다 슈퍼 커브 광고.

파일:img_ogp1.jpg

그가 그린 '거리 카드 페스타' 광고.

초기 '나가라! 파이리츠' 시절에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스톱!! 히바리군!'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실적이면서 아름답게 여성을 묘사하는 데에 정평이 나있다. 극도로 정확한 인체비례에 평면적인 단순한 채색, 간결하면서 세세한 선의 표현 등 상당한 실력을 자랑한다. 이렇게 일본에서도 대중에게 어필하기 쉬운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가 수많은 상업 일러스트레이션에 기용될 수 있던 것이다. 도시적인 분위기의 그림 때문에 시티 팝 비디오에 많이 등장하기도.
그림 자체는 80년대 중반에 '에이지'를 연재하면서 틀이 잡혔지만, 80년대 후반,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이후의 그림에 은근히 차이를 보이는 편이다. 같은 시기의 그림도 안구 묘사, 명암 묘사 등을 변주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데포르메 스타일을 현재도 사용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

4.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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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살 연하의 전직 일본 아이돌 미즈타니 마리(水谷麻里)와 재혼. 결혼 당시 미즈타니 마리의 나이 18세. 노인 Z의 여주인공 하루코의 모델이며 일러스트는 아내가 포즈 잡고 사진을 찍은 뒤 그것을 베이스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고. 아이돌 유전자 버프인지 딸의 사진을 올렸을 때 예쁘다고 난리가 났다.
* 그의 이름자인 '寿'에서 이름을 따와, 그의 스튜디오 이름은 '코토부키 스튜디오'이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버드 스튜디오'와 같은 원리.
* 아무래도 나이가 든 분이고 일반 대중을 상대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라 그런지 픽시브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대신 인스타그램에 그의 작품이 주로 올라간다. 과거부터 최근작까지 주기적으로 올린다.
* 수많은 만화가와 친분이 깊다. 오토모 카츠히로를 비롯하여, 마츠모토 타이요, 우라사와 나오키, 카츠라 마사카즈, 테라다 카츠야 등등. 심지어 김정기 작가와도 친하다. #
* 특히 오토모와는 상당히 친분이 깊다. 일단 키치죠지에 거주하는 대표적인 두 만화가이며, 둘이서 사적으로 키치죠지 어딘가에서 술을 자주 마신다. 노인 Z을 제작할 때에는 사적인 인연으로 에구치가 캐릭터 디자인을 해주었으며, 그 외 오토모와 관련된 행사가 있으면 에구치는 기념 일러스트나 대담회를 가지는 등 꼭 참여한다.
* 그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5분 그림 연습법으로도 유명하다.[11]
* 일본의 미술잡지 '일러스트레이션'의 2019년 3월호는 그의 신작 일러스트와 인터뷰가 담긴 호였는데, 아마존 재팬 미술분야에서 몇주간 1위를 찍고 잡지 역사상 최다발행부수로 3쇄를 찍는 등 대히트를 쳤다.
* 2000년에 구매한 컴퓨터인 Power Mac G4를 2023년 현재도 메인 작업용으로 사용한다. 물론 해당 컴퓨터는 현재는 인터넷도 제대로 못 돌리는 구형 컴퓨터이기 때문에 인터넷 등 다른 작업은 다른 컴퓨터로 하는데, 한동안 iMac 2013년형 모델을 계속 쓰다가 2022년 말 Mac Studio(2022년)를 구매하여 사용중.
* 코로나19에 대한 일본의 대응책으로 아베 신조가 가구당 천마스크 2장을 지급한다는 어이없는 정책을 내놓자, 아베의 회견을 '나쁜 소리'라고 하는 비판적인 트윗을 올렸다. 뒤이어 우라사와 나오키가 이에 동조하는 캐리커쳐 트윗까지 올리자 아베 지지자들에게 세트로 공격받고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아베 정권의 검찰청 인사 개입에 반대하는 해시태그를 올리는 등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5. 주요 작품

6. 관련 문서



[1] 무려 아이돌 출신![2] 그런데 정작 거주지는 옆동네 스기나미구라고 한다.[3] @@센세(패러디 대상인 해당 만화의 작가) 죄송합니다! 라는 식으로 퉁치고 다른 만화의 여려 캐릭터들, 심지어는 서양권의 캐릭터들까지! 패러디 했기에...[4] 이 둘은 나중에 친한 친구가 된다[5] 다만 아주 충격까지는 아니었던것이 이미 1960년대부터 오카마가 방송소재로 잘 쓰였으며 미와 아카히로나 카르셀루 마키 등은 이미 이 당시에도 활동을 잘만하고 있었다. 동성애를 만화소재로 쓰는것 역시 1970년대부터 활발했었다. 그러나 막상 법제 제정은 늦었고 현재도 일본은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않는 나라다.[6] 심지어 이 만화보고 게이가 되었다는 사람이 있다고 할 정도다[7] 펑크 밴드 긴난보이즈가 앨범 "君と僕の第三次世界大?的?愛革命(너와 나의 제3차세계대전적 연애혁명)"의 커버아트로 이용하기도 했다. 에구치 히사시는 나중에 애니메이션 Sonny Boy의 캐릭터 원안을 담당했는데 여기에서 긴난보이즈의 곡 '소년소녀'가 주제곡으로 쓰이기도 했다.[8] 어느 날 약속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마감 전 날에 원고지가 새하얀 것을 보고 한 말이다.[9] 카네보 화장품, J1 정보센터, Denny's 레스토랑, 자동차 잡지 GOO[10] 노인Z, 퍼펙트 블루[11] 정말로 5분 안에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해 줘서 유명한 게 아니다. 예를 들면 메시가 드리블하고 상대를 피해 골인 시키고 나서 "축구는 이렇게 하면 된다" 라고 말하는 식의 설명이라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