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음메, 기 죽어! 음메, 기 살어!"[1]
1988년~1990년까지 KBS2 쇼 비디오 자키에서 방영된 김한국, 김미화 주연의 코미디 프로. 당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 프로에 출연한 김한국과 김미화도 국내 최정상급 코미디언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개그맨 김한국과 개그우먼 김미화가 부부 역할을 맡았다. 판소리에서 모티브를 따온 마당극 형식의 코너였는데 세트 한쪽에서 국악인 신영희씨가 앉아서 판소리 북을 치면서 추임새를 넣어주며 관찰자로서 이 부부에게 딴지를 걸거나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 밖에 애완견으로 행국이가 가끔씩 등장한다. 쓰리랑부부가 세들어사는 집의 집주인으로는 개그우먼 지영옥씨가 '지씨 아줌마'라는 별칭으로 등장한다.
김미화가 연기한 캐릭터인 순악질 여사는 캐릭터성이 매우 확고했다. 왼쪽 눈썹과 오른쪽 눈썹이 연결된 이른바 일자눈썹에 항상 야구배트를 휴대하고 다녔다.
매주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웃음을 전달했는데 대부분의 스토리 라인상 구조가 부부간의 사소한 오해나 말다툼 > 아내인 김미화가 실력행사 > 이에 맞서 김한국이 반격 >[2] 집주인 지영옥이 열받아 이들 부부가 사는 방으로 들어와 "방 빼!"라고 소리지르고 부부는 이에 대항해 "못 빼!"로 맞받아치는 방식이다[3]. 하도 웃음보가 터지는 장면이 많았던지라 김한국과 김미화도 연기하면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 꽤 잡히기도 했었다.
참고로 처음에는 부부 둘만 사는 집 설정이었다가 방영 중에 시대를 10년 뒤로 이동하여 자식이 있는 설정으로 바꾸기도 하였는데, 그 둘의 딸인 김새네 배역을 한 사람이 당시 초등학생 아역배우였던 이재은[4]이었다.
당시 방송에서는 표준어 이외에는 사투리를 듣기가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쓰리랑 부부의 출연진들이 능숙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 덕에 서남 방언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사실, 김한국과 김미화는 설정과는 달리 각각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용인시, 지영옥은 대전광역시 출신이며 유일하게 김새네 역의 이재은만 실제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이다.
2. 발단
KBS2 '쇼 비디오 쟈키'에서 당시 동기였던 김한국과 김미화가 아크로바트를 엉터리로 하는[5] 코믹 남매 연기[6]를 하는 '아리랑 남매'라는 코너를 하게 되는데, 한창 방송되던 와중에 그 방송의 피디에게 남매 설정을 부부 설정으로 바꾸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김미화는 매주 방송되는 코너라 갑자기 남매가 사람도 바뀌지 않았는데 그대로 부부역할이 되는 건 느낌이 어색하여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말했으나 피디가 계속 요구를 하였고, 어쩔 수 없이 부부로 새롭게 설정을 짜 보기로 한다.[7]부인 역할로써의 새로운 설정을 고민하다가 일단 외모와 성격을 이전 여동생 역할보다 더 강한 쪽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그 이전부터 만화가 길창덕이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여성중앙에 연재하던 인기 만화였던 '순악질 여사'라는 만화를 좋아하여[8][9] 그 만화에 나오는 인물을 개그의 배역으로써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강한 인물 설정을 고민하던 그녀는 이를 기억하여 순악질 여사의 성격과 외모를 따온 역할로 설정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눈썹이 일자눈썹인 그 캐릭터와 비슷한 모습을 위하여 눈썹에 검은색 테이프를 붙이고 드센 부인 '순악질 여사'의 연기를 하기로 한다.[10] 그러나 눈썹만으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껴 크기가 작은 어린이용 야구방망이까지 준비해, 드세면서도 귀여운 느낌이 드는 부인으로 역할을 확정하고 코너를 준비한다.
바뀐 제목은 전유성이 지어줬다고 하는데,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와 김한국이 코너의 새로운 제목을 결정할 일만이 남아 고민하고 있을 때, 그들의 선배인 전유성이 원래 아리랑 남매였으니까 쓰리랑 부부로 하면 된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정해줬다고 한다. 아리랑 가사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이니까 아리랑 대신 '쓰리랑'을 앞에 넣고, 부부역할이 되었으니 '남매'가 있던 자리에 '부부'를 넣으면 된다는 이유.[11]
3. 인기
코너가 처음으로 선보이던 날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방송이 될 때마다 인기가 올라가 KBS의 최고 개그 코너가 된다.처갓집 양념통닭의 광고.
당시 사회 분위기상 남성들에게 우위를 빼앗기며 살아온 여성시청자들 입장에서는 헐렁한 남편 김한국에게 실컷 바가지를 긁는 순악질 여사에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남성시청자들은 드세면서도 귀여운 맛이 있는 신선한 부인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꼈기에 그녀의 역할과 코너가 전국민적 사랑을 얻게 된 것이다. 공식 시청률이 60%를 넘긴 적이 여러번이었으니 가히 국민 코미디프로라고 할만 했다. 당연히 두 사람이 진짜 부부라는 소문까지 나서 매일같이 방송국에 문의전화도 올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두 사람은 쓰리랑 부부 설정의 광고도 수도 없이 찍었고, 거기다가 수많은 밤무대 출연요청으로 쉴 새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밤무대 경험에 대해 회고하기로는 출연료를 많이 받아서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시기였으나[12], 술취한 사람들이 가득하고 어두운 밤무대에서 공연했던 것에 대한 기억들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밖에는 극중 노래도 여럿 부른다. '우리들은~우리들은 하늘이 맺어준 쓰리랑~쓰리랑 부부'이란 노래라든지 숫자를 넣고 부르는 잘잘송이라든지.
시대를 옮겨서 "쓰리랑 부부 그 후 10년"이라는 코너로 어레인지하기도 했다. 원래 코너에서 10년이 흘렀다는 설정으로, 김한국과 김미화는 그대로 나오지만 더 이상 세들어 살지 않고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고, 초등학생 아이도 한 명 있다. 그리고 방도 하나 세내어서 젊은 아가씨 세입자도 들였다. 한동안 이 설정으로 방영하다가 다시 원래의 설정으로 돌아갔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쓰리랑 가족>이란 코미디 드라마로 따로 방영되기도 했다.#1#2 KBS2에서 밤 9시 50분에 10분 정도로 하던 짧은 드라마였으며, 극본은 권미경, 연출은 강영원 PD였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약간 성인 대상으로 시청자를 잡았는데, 야한게 아니라 사회 부조리도 이야기하고 직장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등장인물이 꽤나 많이 나왔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고 그래서인지 그리 인기를 끌지못하고 금세 사라져서 이걸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는 듯 하다. 여기서도 김새네가 나오는데, 딸아이를 낳을 때, 쓰리랑 여사가 김샌다! 김새네!라고 외쳐서 딸 이름을 지었다고. 참고로 유재석이 무명 시절에 출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위의 서술이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있다. 확실한 것은 뉴스 시간대였다는 것. 당시에는 집중적으로 KBS1 뉴스를 봤기 때문에 같은 시간 2TV는 사각지대였다. 때문에 실험적으로 월~목 뉴스 시간에 20분씩 일일 시트콤이 처음 시도되었는데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일일 시청률 2위로 올라설 걸프 전쟁이 발발, 뉴스에 시청률이 집중된 사이에 누적됐던 피로 등으로 일시 종영. 곧이어 SBS가 개국하며 대부분의 개그맨들과 제작진이 KBS에서 빠져나가면서 다시 회생하지 못했다.
1988년에는 킹레코드에서 크리스마스 캐럴로도 나왔다. '흰눈 사이로 대야를 타고 달리는 기분' 이렇게 불렀다. 개그맨들이 우후죽순 부르던 캐럴에선 제법 잘 팔려 10만장 이상 팔렸다.
그리고 라디오 드라마로도 나왔다(...) 물론 라디오로 방송된 것은 아니고, 에피소드가 녹음된 테이프가 발매되었다. 신영희 씨의 국악장단까지 의외로 제대로 들어가 있다. A면에는 '음메 기죽어' 뒷면에는 '딱딱 못맞춰!'라고 써 있는 게 포인트.
4. 말말말
"음메, 기 죽어! 음메, 기 살어!"
"방 빼!"(지영옥)
"못 빼!"(김한국&김미화)
"못 빼!"(김한국&김미화)
5. 에피소드
그녀의 밤무대 경험에 대해 지방 밤무대업소에서 쓰리랑 부부가 진짜 부부인 줄 알고 숙소방을 하나만 주려고 했다거나 하는 등의 웃고 넘어갈 에피소드도 많다고 하지만, 웃기만은 할 수 없는 웃픈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한다.지방 밤무대 공연 요청이 와서 갔다가 그곳을 운영하는 건달들이 약속한 것보다 더 많은 횟수의 공연을 강요한 적[13]이 있었는데, 이를 행사를 중개하던 매니저가 두 사람에게 전했고, 그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공연을 거부하고 업소 건물 근처에 있던 두 사람의 숙소인 호텔로 도망쳐서 그 중 김미화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틀어박혀 업소를 운영하던 건달들이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찾아왔는데도 문을 열지 않고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김한국은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라 지방 공연을 온 김에 공연끝나고 부부끼리 그 근처 관광도 할 겸 그의 부인과 함께 왔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공연끝나고 돌아오길 기다리며 김한국의 방에 있던 상황이었는데, 건달들이 먼저 김미화의 방 앞으로 갔다가 다급해져서 김한국의 방으로 가서 문을 열어 그 부인을 보게 된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방을 쳐들어온 건달들은 쓰리랑 부부의 얼굴을 몰랐던 상황이라[14] 김한국의 부인이 김미화인 줄 알고 "당신이 쓰리랑 부인이여?"라고 물었고, 부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너무 무섭고 당황해서
그러자 당황한 그녀는 잔뜩 겁을 먹어 울먹이며 "저 그런거 할줄 몰라요. 못해요.."라고 했고 그제서야 건달들은 상황파악이 되었지만 돌이키기에는 늦어버린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당장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밤무대공연 시간분량을 때우기 위해 "어쨌거나 당신 남편 공연시간이니 당신이 남편 대신 무대 올라가서 장기자랑을 하든지 노래를 부르든지 뭐라도 해야 한다"라고 하며 강요했고, 그녀는 겁에 질린 채로 무대에 올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미자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15]
6. 그 이후
이 코너를 진행하는 동안 순악질 여사 역의 김미화는 결혼하고 임신도 했는데 김미화는 만삭임에도 극중에서 임신을 한 것으로 설정하여 계속 출연했으나 하필이면 집주인 지씨와 순악질 여사가 다투는 내용이 있는 에피소드에서 지씨가 엉덩이로 순악질 여사를 가격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날 방송 이후 김미화가 유산을 하고 한동안 코너가 중지되었다. 그날 방영분의 내용에서 지영옥과 김미화의 몸싸움 연출이 너무 과격한 탓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으나, 병원에서는 과로가 문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영옥 씨는 자신의 과격한 연기가 김미화씨의 유산에 간접적으로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을 해서 죄책감을 느꼈는지, 이후 차츰 TV에 출연 빈도가 낮아지면서 90년대 들어서 완전히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이 코너가 종영된 바로 그 해, 김미화는 여성 희극인 최초로 KBS 코미디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1998년 추석특집코미디 <웃음과 추억사이>에서 재탕한 바 있고, 개그콘서트 초창기에 김미화가 활동할 때 당시 김대희와의 연인 기믹이 있었는데, 이를 이용해서 특집 때 김미화와 김대희가 부부로 나온 쓰리랑 부부 코너가 나온 적이 있다. 그리고 2013년 3월 3일 코미디 40년 특집 개그콘서트에서 다시 방송되었다.
7. 사회적 영향
순악질 여사를 따라하는 아이들.[16]
당시 인기는 두 사람이 극중에 하는 대사들이 모두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음메, 기죽어' '음메 기살어'는 전국의 남녀노소 모두를 흉내내게 한데다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최고의 유행어이다.
심지어 유행어를 넘어 현재까지 쓰이는 신조어가 탄생되기까지 했는데, 이것이 바로 '철가방'이다. 당시까지는 중화요리점의 배달원을 정확히 가리키는 명칭도 속어도 없었고, 그냥 '짱깨'[17]나 '배달통'[18]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쓰리랑 부부에서 김미화가 중국음식을 시켜먹는 연기를 하면서 배달용 양철통을 '철가방'이라 부르자, 그것이 유행되어 이 코너가 끝난 뒤에도 한국사람들은 중국음식 배달하는 통을 '철가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말은 김미화가 즉흥적으로 생각나서 했던 애드리브였다고 하는데, 이름을 재미있으면서도 설득력있게 지어낸 그녀의 유머감각이 탁월했던 것도 맞지만, 그것이 바로 신조어가 된 건 이 코너의 인기가 어마어마했던 영향이 크다.
여담이지만, 행국이는 한마리가 아니라 비슷한 생김새의 개들 여러 마리를 돌려썼다고 한다.
8. 여담
- 콤비를 이룬 김한국과 김미화가 유창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했기 때문에 고향이 전라도인 것으로 오인되지만 둘 다 수도권이 고향이다. 김한국은 인천-서울이 고향으로 알려져 있고 서울 미아리의 영훈고를 졸업했다. 김미화도 경기도 신갈에서 태어난 후 두 살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쭉 서울 수유리와 미아리에서 자랐다.
- 진중권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김미화가 출연했을 당시 진중권이 과거에 김미화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방송 같이 출연할 때, 김미화씨를 실제로 봤는데 생각보다 예뻐서 놀랐다고 방송 후에 지인들에게 자랑을 했었다'고 하자, 김미화가 농담으로 '맞다. 내가 개그활동을 많이 하던 시절에 워낙 분장을 많이 했어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예쁘다. 근데 그때는 왜들 그렇게 내 미모를 몰라 줬는지 모르겠다. 쓰리랑 부부할 때 김한국씨와 내가 둘이 부부 역할을 그렇게 오래했는데, 스캔들도 썸씽도 전혀 없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젊을 때 동료 개그맨들이 나를 여자로들 너무 안 봐줬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김미화는 사실 이 방송 뿐만 아니라 쓰리랑 부부가 끝난 이후에 여러 방송에서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꽤 많은데, 실제로는 김한국의 경우 쓰리랑 부부를 하기 전에 이미 결혼을 했고, 김미화 역시 쓰리랑 부부를 하던 중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19] 썸씽 없는 것을 아쉬워할 게 아닌 상황..
유부남 유부녀끼리 뭐? 뭐 어쩔라고?결국 그냥 순수한 농담이다.설마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계열을 원한 건 아니겠지?
- 지금같으면 순악질 여사의 행동은 논란이 될만한 것들이 꽤 있었다. 이기적인 아줌마의 모습들을 김한국뿐 아니라 가족 외부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보였기 때문. 대표적으로 병원에 침대가 없자 개복수술한 환자를 웃게 만들어 배를 터뜨리고 그 침대를 차지한 것. 현실이었다면 영락없이 형사처벌을 받을 악질적인 행동이다. 당시 개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그 상황을 웃기게 풀어나가서 웃음을 유발하는 쪽이 유행이었기 때문.[20]
- 동시기 방영되던 유머 1번지 코너 동작그만에서 김한국이 후임인 이봉원(극중 이영남)의 면회를 온 김미화[21]를 보고 형수님 같이 생겼다며 재수없어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여담으로 김미화가 "형님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요?"라고 묻자 김한국은 "김행국이요."라고 답했다.
[1] 앞의 대사는 김한국이, 뒤의 대사는 김미화가 한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반대로도 가능. 후자는 김미화가 혼자서 설레발 떨었을 경우다.[2] 예를 들어 한 에피소드에선 빨래를 하기 위해 김한국의 옷을 뒤지다가 수첩이 나와서 봤더니 의미불명의 날짜가 나오고 묘령의 여성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나오자 김미화가 "맞고 불거여? 불고 맞을거여?(...)"라고 심문을 시작하고, 여기에 김한국이 의미불명의 날짜가 '공포의 당신 생일'이라고 설명하고 묘령의 여성의 이름과 전화번호는 어디서 본것 같지 않냐고 되묻고는 "당신 시어머니 전화번호도 모르냐!?"며 되려 받아쳐 김미화가 데꿀멍해진 것이 있었다.[3] 10년 후 에피소드에서도 어레인지를 하는데, 부부의 아파트 방 하나에 세들어 사는 젊은 아가씨가 방 빼라는 요구에 돈(보증금) 빼 달라는 것으로 받아치면서 "돈 빼!"라고 소리지르고 부부는 "못 빼!"로 맞받아친다.[4] 영화 '노랑머리'의 주인공인 그 이재은이 맞다.[5] 실제 연습은 열심히 했다고 한다. 다만 전문가가 아닌데다 공개녹화라는 부담감이 커서 실수를 많이 했다고.[6] 로미오와 줄리엣 등 여러 가지 명작을 패러디했다.[7] 토크쇼에서 한 말로는 오빠 오빠하다가 여보 여보 한다는 선배의 조언(?)을 듣고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 오빠가 친오빠는 아닌데...[8] 말그대로 중2병을 갖고있는 아내와 일반인 남편과의 에피소드를 그린 4컷짜리 만화였다. 남편이 밤늦게 들어온다고 마당에 권투링을 개설하지 않나, 대판 싸워 울고 난 다음날 남편이 출근한 사이에 도둑이사를 가버리질 않나(...), 바느질이 엉망이라고 야단맞고는 남편의 바지앞을 몽땅 꿰매버리거나 스테이플로 박아버리질 않나, 하여간 장난질이 심해 시달림 당하는 내용이었다. 제법 인기를 끌어 1980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바로 장미희가 순악질 여사를 연기했다.[9] 이 작품이 제법 인기를 끌자 길창덕은 80년대 초중반에 '순악질 남편'이라는 다른 만화도 여성지 월간에 연재했다. 즉 성별이 달라진 만화. 하루는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버린 순악질 남편이 회사에 가서 동료들에게 "퇴근이 늦었다고 마누라가 재떨이를 던졌어~~"라고 한 덕분에 회사에서 순악질 남편의 아내가 악처라고 안좋게 보기 시작했고 소문이 돌고돌아 순악질 남편의 아내 귀에도 들어오자 아내가 남편에게 울며불며 "술먹고 전봇대에 들이박아 난 멍을 내가 재떨이를 던져서 난거라고 소문을 냈어요?!" 라고 화냈고 순악질 남편은 "흥! 용돈 줄인 보답이다!"이라고 맞선다... 하지만, 아내도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 순악질 여사 급으로 변해서 남편을 데꿀멍시키는 것도 여럿 있다.[10] 추후 순악질 여사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끌게 되자, 그녀는 길창덕 화백을 직접 찾아가 '선생님의 만화인물을 활용한 연기를 하여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고, 길창덕은 이에 크게 기뻐하며 그녀에게 손수 종이에 순악질 여사 만화캐릭터를 그려주고, '순악질 여사, 김미화 여사에게' 라는 메시지까지 들어간 싸인을 해서 선물해 주었다고 한다. 그녀 역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싸인을 받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11] 김미화는 처음 그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에는 제목이 원래 제목과 그냥 비슷한 느낌이라 그리 탐탁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오히려 신선했다고. 우리나라에서 '아리랑'이라는 것은 워낙 유명한 국악이기 때문에 아리랑이라는 표현은 여러 분야에서 인용되지만, '쓰리랑'이라는 표현은 아리랑 노래 가사에는 나와도 막상 다른 분야에 인용되어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그 제목이 시청자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12] 공연 횟수당 출연료는 그리 크게 받았다는 건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워낙 혹사 수준으로 공연 횟수가 많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버는 돈은 많았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기본적인 인기는 항상 괜찮게 있었기 때문에 먹고 살 만큼은 계속 벌었는데, 쓰리랑 부부로 완전히 최고 인기 개그우먼이 된 후에는 꽤 부유한 편이 되었다고 한다.[13] 이런게 엄청 많았다. 심지어 그냥 지방 밤무대 나이트바에 들어가 술마시던 연예인에게 억지로 재능기부 강요하는 것도 흔했다. 심형래도 그런 일을 겪었는데 항목에 나오듯이 가지고 다니던 모형총을 쏴서 사람들이 겁에 질려 우르르 나가게 하고 양아치들이 쫄아서 멍때렸다고...진짜 총소리같고 불꽃도 나는 총이라서...[14] 당시 쓰리랑 부부가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었으니 아예 몰랐다기보다는, 쓰리랑 부부 자체가 김미화가 워낙 분장을 많이 하는 개그이기도 했고, 다급하고 정신이 없어서 '이 사람이 분장하면 그 모습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15] 이 일로 김미화와 김한국은 밤무대 일에 질려 버려, 당시 출연 요청이 계속 매우 많았음에도 '쓰리랑 부부' 컨셉으로는 밤무대 일을 더 이상 길게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16] 이 사진은 '골목안 풍경' 연작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김기찬의 작품이다.[17] 이건 그냥 중국음식, 중국음식 배달부 전체, 중국인이나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을 가리키는 비하적 의미의 속어.[18] 이건 사실상 표준어 수준이며, 중국음식 배달이 아닌 경우에도 쓸 수 있다.[19] 김미화는 결혼한 지 10여년 이상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가정폭력으로 인해 이혼했고, 그로부터 다시 몇년 뒤인 2007년에 다른 사람과 재혼을 했다.[20] 당시 원탑 심형래가 했던 꽁트들은 현실에서 다 구속될 만한 설정이었다. 설정상 모르고 하는 바보개그지만 수산시장에 실수로 불을 지른건데 시장바닥에 생선구이가 있다며 들고왔다거나 지인에게 돈을 들고 왔는데 알고보니 은행에서 다른 손님 돈을 모르고 들고 나오는 도둑질을 했다거나 하는 것들이 대사로 아무렇지 않게 나왔다. 이런 개그의 원조는 일본 게닌들이다.[21] 이봉원이 김미화와 캠퍼스 커플로 출연했던 코너가 이봉원이 입대하는 장면을 끝으로 종영하고 이봉원이 동작그만에 투입되었는데, 여기서 김미화가 특별출연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