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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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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 Jongsa - Seonsanim
Seungsahn
1. 개요2. 생애3. 가르침4. 논란5. 저서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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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쏴라.

한국승려. 1927년 8월 1일 ~ 2004년 11월 30일(세수 77세, 법랍 57세). 1970년대부터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세계 방방곡곡 한국의 선불교를 전파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해외에서는 달라이 라마, 마하 고사난다, 틱낫한 스님과 함께 세계 4대 생불 중 한 사람으로 불릴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세계에 한국 불교를 널리 알린 공로가 큰 인물로, 특히 해외에 퍼진 선불교 문화가 일본 불교 일색[1]이었던 것을 혁신했다.

2. 생애

1927년 8월 1일 평안남도 순천군(현 순천시)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이덕인(李德仁)이며, 숭산은 법명이 아니고 한국문화에 있는 호이다. 큰스님의 법명을 바로 부르는걸 제자나 신도들이 예의없다 여겨서 호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던지라, 이렇게 굳어졌다. 특히 일반 신도들이 현각스님의 책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읽고 숭산스님을 '숭산 이행원'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순천공립학교와 평양의 평안공립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44년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2]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46년 동국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고, 절대진리에 대한 탐구를 위하여 1947년 마곡사에서 출가하였다. 스승인 고봉(古峰)선사에게 처음 받은 이름은 행원.

출가 후, 참선수행을 통해서 1949년 22살 약관의 나이에 득도했다. 춘성, 금봉, 금오, 고봉선사들에게 인가[3]를 받았다. 스승인 고봉선사로부터 인가와 전법을 받고, 숭산이라는 당호를 받았다. 그후, 고봉선사의 명에 의해, 3년간 묵언수행을 하였다.

1951년 군징집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고 1957년 장교로 제대했다. 1958년 대한불교조계종회 의원, 화계사 주지가 되었으며 1960년 대한불교신문사를 설립하여 초대 사장에 취임했으며 1961년 조계종 총무부 부장, 1964년 동국학원 이사로 재직하였다.

그 뒤 한국 선불교의 보급을 위하여 해외포교에 나서, 1966년 일본 신주쿠(新宿) 홍법원, 1969년 홍콩, 1972년 미국, 1974년 캐나다 토론토, 1980년 영국 런던, 스페인 팔마, 1983년 브라질 상파울로, 1985년 프랑스 파리 선원 등 세계 각지에 국제선원을 개설하여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렸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2004년 기준 세계 32개국에 120여 개의 선원이 개설되어 있으며, 현각청안, 무량을 비롯한 외국인 스님도 다수 배출하였다.

1985년 세계평화문화인대회에서 세계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96년 만해사상 선양회가 수여하는 만해포교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부터 화계사 조실로 일하였으며, 2004년 11월 30일 입적하였다.

3. 가르침

Descartes said, I think therefore I am. Therefore this I come from thinking. Where does thinking come from? Who are you? When you were born, where did you come from? When you die, where do you go?
데카르트 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것도 생각에서 온다.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왔는가? 당신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1972년 46살 나이에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물론 영어는 전혀 못했다. 미국은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여론이나 히피 문화의 유행 등이 한창이었고, 이 모습을 본 숭산은 당시 미국이 포교하기에 알맞은 환경이라고 여기셨다고 한다.[4]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 시에 거처를 구하고 세탁소 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며 2년 동안 밥벌이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브라운 대학교에서 동양문명사를 가르치는 리오 프루덴 교수를 만났고, 숭산을 알아본 교수가 제자들을 소개시켜 주면서 불교에 관심이 있는 미국인에게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이후 프로비던스 선원(Providence Zen Center)을 시작으로, 1974년 LA Dharma Zen Center, 1975년 뉴욕 Chogye International Zen Center, 1977년 캘리포니아 Empty Gate Zen Center 등을 차례로 설립, 전미 25개주에 25개 선원을 설립했다.

특별한 빽줄(...) 없이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미국 방식을 꿰뚫고 있었고[5], 때문에 미국에서 포교를 하면서 우리 관점에선 파격적일 정도로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보였다. 때문에 미국인들이 숭산의 가르침을 아무런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특히 숭산은 저 엄청난 콩글리쉬(...)가 유명한데, 영문법도 엉망진창인데다 몇몇 단어만으로 만든 짤막한 문장을 구사해서 간단명료하게 불법을 전해서 듣는 이들을 경탄하게 만들었다. 가히 선불교에서 말하는 불립문자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줬다 하겠다.

위 인용구를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즉 이 나라는 놈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생각하기 이전의)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태어날 때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는 어디로 가는가?" 현각은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에서, 위 설법에서 처음 숭산에게 감명을 받았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들이 다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아니여서, 실제 숭산의 젠센터에 다닌 테오도르 준 박은 그의 수행기 <참선>에서 숭산을 송담스님을 언급한 스님으로만 적고 있다.
Only go straight(용맹정진할 뿐이다)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이다)
이 두 문구는 숭산의 가르침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이 두 문구는 '오직 할 뿐', '오직 모를 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숭산은 포교를 위해 세계를 떠돌았는데, 이때 편지를 통해서 가르침을 편 것도 유명하다. 제자들이 수행도중 의문이 생기면 편지를 써서 묻고, 숭산이 답장을 통해 가르침을 주면 이를 읽은 제자들은 다시 수행에 몰두하고, 또 의문이 생기면... 이하 계속 반복.

또한 선불교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공안(公案)을 내서 제자의 깨달음을 점검했는데, 이를 '공안 인터뷰'라고 부른다. 이때 사용한 공안들 가운데 'Dropping Ashes on the Buddha'가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아래 저서 목록 가운데 《부처님께 재를 털면》이 이 공안에서 따온 제목이다.

공안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담배를 피며 에 들어왔다. 그는 불상에 대고 담배 연기를 내뿜고 를 털었다. 만약 이 때 당신이 곁에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6][7]
나는 오직 불교의 뼈대만 가르칠 뿐이다.
각각의 문화가 천천히 그들 자신의 불교를 살찌울 것이다.

사실 콩글리시가 아닌 한국어로 숭산과 얘기해도 현각과 느꼈던 것과 같은 말문막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사망했으니 더 들을 수 없지만... 사망하기 전 MBC에서 만든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 맨 마지막 장면에 취재 PD와 숭산의 인터뷰 클립이 짧게 삽입되어 있는데, 여기서도 그 특유의 법문으로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날린다.
그의 달마톡이 다 끝나갈 즈음, 옆에 있던 금발의 여자가 스님에게 물었다. 내 기억으로 그 여자는 하버드 대학 박사반에 재학 중인 30 전후의 학생이었다.
"홭 이스 러브? (What is love? / '사랑'이란 뭔가요?)"[8]
숭산은 내쳐 그 여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었다.
"아이 아스크 유, 홭 이즈 라부? (I ask you, what is love? / 제가 물어볼게요. 사랑이란 뭘까요?)"
그러니까 그 학생은 대답을 잃어버리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숭산은 말하는 것이었다.
"디스 이스 라부. (This is love. / 이게 사랑이에요.)"
그래도 그 여학생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학생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동안의 숭산은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 것이었다.
"유 아스크 미, 아이 아스크 유. 디스 이스 라부. (You ask me, I ask you. This is love. / 당신이 저에게 물어봐서, 저도 당신에게 물어봤어요. 사랑은 이런 거에요.)"
인간에게 있어서 과연 이 이상의 언어가 있을 수 있는가? 아마 사랑철학의 도사인 예수도 이 짧은 시간에 이 짧은 몇마디 속에 이 많은 말을 하기에는 재치가 부족했을 것이다. 나는 숭산의 비범함을 직감했다. 그의 달마톡은 이미 언어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국경도 초월하고 있었다. 오로지 인간, 그것 뿐이었다.
- 도올 김용옥,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9]

4. 논란

작가 티모시 밀러에 따르면, 숭산은 미국 관음선종에서 몇몇 여학생들과 애정관계가 있었다. 1988년, 논란이 불거짐에 따라 숭산은 몇몇 여학생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참회식을 2번 했다. 티모시 밀러는 "관음선종은 숭산의 관계 문제로 골머리를 썩혀야 했다, 숭산은 추종자들에게 독신생활을 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여신도와의 관계에 논란이 알려짐에 따라, 몇 구성원은 떠나기도 했다." 이 시기와 관련하여, 바바라 로즈(관음선종 주지)가 말하길 "모두 공동체 생활을 배워나갔을 뿐이고, 선사님도 마찬가지겠죠." 그 사실을 폭로했던 소니아 알렉산더(관음선원의 전 책임자)는, 그로 인해 그녀는 자신이 절 짓는데 이용만 당했다고 느꼈으며 절을 떠났다. 그때 그 관계가 무엇인지 숭산에게 묻자 숭산 왈 "사랑(love)도 정욕(lust)도 아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함께했던 다른 여신도는 "그녀는 이용당한다고 느끼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으며 "관련된 여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니아 알렉산더는 여전히 숭산에게 존경심을 느끼고 있으며, 교단에 몸담았던 시간이 도움이 됐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녀는 2011년 관음선종에 법문강사로 다시 합류하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여전히 숭산이 즐겨찾기 되어있다.[10]

조계종 승려 설지는 본래 선의 정신은 그 어떤 것도 부정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견처를 두지 않는 중립적 입장(혹은 오직 모를뿐)이며 따라서 숭산에 대한 비판이 깨달음과 욕망의 관계에 대한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11]

5. 저서

저서로는 《천강에 비친 달》(1992), 《세계일화 1,2,3》(2001), 《선의 나침반》[12], 《오직 모를 뿐》《부처님께 재를 털면》[13],《온 세상은 한 송이 꽃》(2001) 등이 있다.

6. 여담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와 인연이 있는데, 캘리포니아 에살렌에서 진행된 '불교와 서양심리학' 이라는 워크숍에 여러 구루들과 함께 선불교 대표 중 한 명으로 참가하였다.[14]
  • 숭산의 제자로 알려진 미국인 현각 스님이 2016년 조계종을 비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


[1] 해외에서 선불교를 가리키는 용어가, "선(禪)"의 일본어 발음인 "젠(Zen, ぜん)"인 것이 그 예. 여담으로 선사들은 "젠 마스터'(Zen Master)"라고 부른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당시 서구권에 일본 선불교를 소개한 스즈키 순류 (鈴木俊降, 1904 - 1971) 선사의 저서가 끼친 영향이 큰 게 첫번째이고, 그 다음으로 일본인들이 미국에 건너가서도 불교 신앙을 고집하고 일본인 사찰을 만들어서 모이는 문화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본식 선불교에 심취하여 자포네스크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사람이 스티브 잡스. 당시 미주 한인들은 주로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중국인들의 경우는 도교가 많기는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믿지는 않았다. 또한 중국과 한국은 국내에서도 각각 문화대혁명과 개신교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불교가 대놓고 탄압받거나 사회적으로 푸대접을 받던 상황이었으므로, 아무래도 그 당시부터 본국이 가장 부유하고 불교 문화권으로서의 정체성을 그나마 잘 유지했던 일본의 영향력이 강할 수 밖에 없던 것은 당연지사.[2] 일제에 의해 금지된 '단파 라디오'를 만들어 외부 사정을 청취하는 데 도움을 줬다.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 기계 수리공도 했듯이, 평소 기계에 해박하였다.[3] 득도를 검증받아 인정되는 것[4] 다만, 이 부분은 김용옥과 현각의 증언이 각각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5] 미국에 와서 느낀 것이, "미국인은 자유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이었다고 하며, 이 때문인지 예상보다 출가자가 적어 놀랐다고 하였다.[6] 모든 것은 空일 뿐이란 논점으로 본다면 불상이나 재떨이나 다를 것이 없으므로 이 사람을 말렸다간 불상이라는 형태에 집착하고 있다고 까인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말리지 않았다간 불상은 불상이고 재떨이는 재떨이일 뿐인데 空에 집착하고 있다고 까인다. Only don't know.[7] 영화 달마야 놀자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있다. 조폭 일행들이 절에 머물면서 불상 청소하다 불상을 떨어뜨려 귀가 빠졌고, 이들에게 반감을 가지던 스님들이 이를 가지고 주지스님께 가서 따지자, 주지스님은 "불상의 귀가 빠졌으면 다시 붙이면 될 것 아니냐? 고작 그거로 나한테 큰일이 났다고 하냐? 그깟 불상의 귀가 하나 빠졌다고 뭐가 이리 호들갑이야? 그럼 너희들은 그동안 나무토막을 부처님이라고 섬겼느냐? 너희들 마음 속에 부처님이 들어있다." 라고 호통을 쳤다.[8] 옛날에 영어를 수학하신 분들은 'What'을 '왓'이 아닌 '홧'에 가깝게 배운 분들이 많다. 일제강점기의 영향인데, 일본어 카타가나로는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 되기 때문. 'Love'역시 '러브'보다는 '라부'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9] 덤으로 김용옥은 본인의 성향이 그렇듯이 이 당시 숭산이 외국인에게조차 이상한 외경심의 대상이 되는 걸 보고 "이자는 대단한 스승이거나 악질적 사이비종교가가 분명하다"라고 생각하고 논파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이 말에 완전히 넋이 나갔다고 한다. 나름 논객으로 알려진 인물의 완전 GG선언인 만큼 영어가 난잡하다는 둥 숭산에겐 다소 무례한 표현이 그득하지만, 숭산의 비범함을 전하는 일화임에는 분명하다.[10] 더 자세한 사항은 영문 위키피디아 - Criticisms 항목 (https://en.wikipedia.org/wiki/Seungsahn) 참조 바람.[11] https://blog.naver.com/sanh21/221799914386[12] 1권과 2권으로 나눠져 있었다가 2010년에 한 권으로 묶여서 새로 나왔다.[13] '부처가 부처에게 묻다'라는 제목으로 재발간되었다[14]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 311p. 정신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