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의 손자 순성군 順城君 | ||
봉호 | 순성군(順城君)[1] | |
시호 | 희안(僖安) | |
본관 | 전주(全州) | |
이름 | 개(𧪚) | |
생부 | 양녕대군 | |
생모 | 수성부부인 김씨(隨城府夫人 安氏) | |
부인 | 군부인 평산 신씨(平山 申氏) | |
자녀 | 4남 4녀 | |
묘소 |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산40-2번지 | |
생몰 기간 | 음력 | 1414년 6월 23일[A] ~ 1462년 9월 2일 |
양력 | 1414년 7월 18일 ~ 1462년 10월 3일 |
[clearfix]
1. 개요
조선 전기의 왕족이다. 태종(조선)의 손자로, 양녕대군의 맏아들이다. 본명은 '개'이고, 시호는 '희안'이다. 품계는 가덕대부에 이르렀다.2. 생애
1414년(태종 14년) 7월 18일[5]에 왕세자 이제(후일 양녕대군)와 왕세자빈 김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A] 1435년(세종 17년) 7월 13일[7]에 순성군 작호를 받았고[8], 이후 종친으로서 왕실에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하다가 1462년 10월 3일[9]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49세.[10]아버지와 닮았던 듯 하다. 《세종실록》에 적혀있는 순성군의 일부 행적을 보면 양녕대군의 행적과 비슷하다. 피접한다는 핑계로 판관 김후생의 집에 가서 밤새 술을 마시고 심지어는 하인을 시켜 그의 아내를 엿보는 행동까지 했으며,[11] 세종이 신하들과 종실들이 첩을 간통하는 죄에 대해 논할 때 예시 인물로 언급되었다.[12]
3. 묘소
묘소는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광명에 있었으나 1978년 서울대공원 건설로 인해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산40-2로 이장되었다.[1] 군호는 전라남도 화순군의 옛 지명 중 하나인 '순성(順城)'에서 유래했다.[2] 두 번째 정실 부인이다. 그런데 친정오빠 정보가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첩으로 강등당했다. 출처: 《고종실록》, 40권, 고종 37년 5월 19일 양력 2번째기사.[3] 정몽주의 장남 정종성의 서녀이다. 즉, 정몽주 입장에서는 손녀와 자신을 살해한 사람의 손자가 부부가 된 것.[A] 출처: 《태종실록》 27권, 태종 14년 6월 23일 갑자 2번째기사.[5] 음력 6월 23일.[A] [7] 음력 6월 9일.[8] 출처: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 6월 9일 기유 2번째기사.[9] 음력 9월 2일.[10] 당시 나이 셈법인 세는나이 기준. 만으로는 48세이다.[11] 출처: 《세종실록》 47권, 세종 12년 2월 26일 정유 4번째기사.[12] 출처: 《세종실록》 85권, 세종 21년 5월 13일 경신 3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