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역대 위원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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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2020~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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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CB531><colcolor=#fff> 초대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송기인 宋基寅 | Song Gi-in | |||
출생 | 1938년 9월 24일 ([age(1938-09-24)]세) | ||
부산광역시 | |||
본관 | 여산 송씨 | ||
거주지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 ||
현직 | 고현철교수기념사업회 이사장 | ||
재임기간 | 초대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 ||
2005년 12월 1일 ~ 2007년 11월 30일 | |||
상훈 | 국민훈장 모란장 (20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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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천주교 (세례명: 베드로) | ||
경력 | 국회통신 견습기자 1972년 사제 서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멤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 민주화운동정신계승부산연대 공동대표 부산교회사연구소장 동아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 초대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참여정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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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부, 민주화 운동가, 전직 대학교 교수.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간한 사제 인명록상으로 742번째 신부다.부산·울산·경남지역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이자 문재인 前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져있다.
부산원예고등학교(현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와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사제로 서품된 그는 고향 부산으로 내려와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사제로 재직하게 됐다. 교구 사제로 재직하면서 전포성당, 구포성당, 삼랑진성당, 당감성당, 신선성당[1], 서대신동성당 주임신부로 일했다.
이후 참여정부에서 초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재임동안 받은 2년 치 급료 2억여 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부했다.
2005년 사목 일선에서 은퇴했고 은퇴 발표 후부터 현재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에서 거주하고 있다.
2. 정치권과의 인연
민주당계 정당이 배출한 영남 출신 대통령인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과 모두 인연이 있다.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1981년 부림사건과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을 계기로 인연이 맺어졌다. 당시 송 신부는 당감성당 주임을 맡으면서 부림사건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인해 구속 수감된 이들을 면회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관련자들을 무료로 변론해주던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만나게 됐고 본격적으로 가까워지게 됐다. 이후 송 신부는 노무현 변호사와 부인 권양숙에게 '유스토'와 '아델라'라는 세례명을 지어주고 당감성당에서 직접 세례를 줬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뒀던 1988년에는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로부터 부산지역 시민사회 재야 인사 중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나설 국회의원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노무현을 추천한 바 있다. 당시 송 신부는 부산지역 변호사 모임에 나가서 "YS가 국회의원 후보를 찾는다카던데 국회의원 할 사람 없나?"라고 물어봤고 노무현의 선배 변호사였던 김광일만 홀로 손을 들었다고 한다. 노무현이 손을 들지 않자 송 신부가 "노변, 니는 국회의원 생각 없나?"라고 물었고 노무현은 "저는 변호사 생활이 편합니다."라고 말하며 국회의원 출마 요구를 완곡히 거절했다. 그러나 송 신부는 노무현에게 총선 출마를 지속해서 권유했고 송 신부의 삼고초려에 노무현도 수긍했다.
그 결과 노무현은 13대 총선에서 5공의 실세이자 부산 출신 엘리트였던 허삼수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제5공화국 청문회를 계기로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다만 13대 총선 이후 부산에서 출마하는 선거마다 노무현이 연거푸 패배하자[2] 송 신부는 "변호사로 편히 살겠다던 친구를 내가 괜히 국회로 보내서 힘들게 했나보다"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한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자 양산부산대학교병원으로 달려가 냉동실에서 고인의 이마에 손을 얹고 망자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그리고 5월 29일 열린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에서 가톨릭 종교의식을 집전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대통령 본인보다 가족과의 인연이 깊다. 부산 신선성당 주임으로 있던 시절 사목위원회의 부회장 역할을 했던 사람이 문재인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였는데[3] 일선 성당의 주임신부와 사목위원 간의 관계가 워낙 가깝기 때문에[4] 강 여사의 가족과도 친근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후 문재인은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줄곧 부산에서 변호사로서 생활했기 때문에 송 신부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고 정치 입문 전까지 송 신부와 주기적으로 식사를 하며 여러 현안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2017년 문재인이 재수 끝에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송 신부에게 인사차 전화를 걸었는데 송 신부는 대뜸 "서로 아는 사람인데 안부는 무신 안부고? 바쁠텐데 퍼뜩 끊어라"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고[5] 한다. 대신 김정숙 여사가 전화를 하자 "잘하라"는 인사만 남겼다고 한다.
[1] 후술하겠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가족과의 인연이 이 성당에서 맺어졌다.[2] 실제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모두 부산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3] 문재인의 가족은 전부 신선성당을 오랫동안 다녔다. 문재인도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신선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훗날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에 만난 여자친구 김정숙과 혼인성사를 올린 곳도 신선성당이었다. 강한옥 여사는 아들 문재인이 부산을 떠난 이후에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신선성당을 다녔다.[4] 성당에서 추진하는 여러 일들은 사목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 이 때문에 주임신부가 사목위원들을 성당 안팎에서 자주 만날 수밖에 없다.[5] 비슷한 시점에 문재인은 경남고등학교 3학년 당시 담임교사에게 인사차 전화를 했지만 이 교사 역시 "대통령이 공무 때문에 바쁠텐데 나같은 사람한테 전화할 여유가 있나? 그럴 여유가 있으면 국정이나 열심히 살펴라"라고 꾸짖은 뒤 전화를 끊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