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8-25 16:58:50

설리번 5형제


1. 어떤 사람들인가2. 어떻게 죽었는가3. 사후4. 유사 사례


파일:attachment/5413189580.jpg
왼쪽부터 조지프, 프랜시스, 앨버트, 매디슨, 조지.

1. 어떤 사람들인가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군에 복무한 수병 5형제. 태평양 전쟁 중 타고 있던 함정이 어뢰 공격으로 격침당해 전원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오와워털루 출신으로 진주만 공습 이후 모두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원래 한 가족은 같은 함정에 배치될 수 없었으나, 맏형 조지가 해군 장관에게 "우리 형제는 언제나 함께였고 함께 승리할 것입니다."라는 편지를 보내 애틀랜타급 경순양함 USS 주노(USS Juneau (CL-52))에 다같이 배치되었다. 이들 형제는 미군의 선전물에도 등장하여 많은 미국인들이 알게 되었다.

2. 어떻게 죽었는가

1942년 11월 13일 새벽, 과달카날 해전(일본명 제3차 솔로몬 해전)에서 설리번 5형제가 타고 있던 주노 함은 교전 도중 일본 해군 구축함이 발사한 어뢰 중 1발에 뱃머리를 피격[1]당했고, 수리를 위해 에스피리토 산토 항구로 철수하던 도중 일본 잠수함의 어뢰에 의해[2] 탄약고가 대폭발, 침몰하였다.

철수하는 함대를 이끌던 후버 대령은 일본 잠수함이 득실거리는 바다에서의 구조활동은 무리라 판단했는지 주노의 구조를 포기하고 나머지 함대를 이끌고 그대로 에스피리토 산토 항구로 가버렸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육군 항공대B-17 폭격기를 보고 구조요청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원인모를 이유로 구조요청은 전해지지 않았다. 당시 주노에서는 100여명의 승조원이 탈출했지만, 구조가 늦어진 결과, 대다수가 기아, 탈수, 상어의 공격으로 인해 숨졌다.

이 사망자들 중에 설리번 5형제가 모두 포함되었다. 3명은 폭발에 의해 즉사, 막내인 앨은 다음날 익사했고, 맏형 조지는 며칠 후 구명보트에서 죽었다.[3] 결국 약 8일 후 형제를 제외하고 구조된 생존자는 약 10여명에 불과했다. 주노의 격침과 대규모 인명피해를 보고받은 홀시 제독은 그 책임을 물어 후버 대령을 직위해제했다.

설리번 부모는 전사통보를 받지 못하고 단지 미 해군이 교전으로 인해 많은 함정이 침몰했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이 들어 해군측에 물어보았지만 M.I.A.(Missing In Action, 교전 중 실종) 통보만을 받고, 나중에야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쓴 전사 통지서를 받았다.

3. 사후

이 사건 이후로 미군은 한 형제가 같은 부대나 함정에 근무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후에 설리번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미 군함에 '설리번 형제'(The Sullivans)가 명명되었다. 초대 USS 설리번 형제는 플레처급 구축함 DD-537로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1965년에 퇴역하여 보존함 처리되었다. 2대 USS 설리번 형제는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DDG-68로 1997년에 취역하여 아직 현역에 있다.

이 형제의 이야기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도 관련이 있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2차대전 당시 미 육군 제101공수사단 501연대 3대대에 복무중이었던 프레더릭 닐랜드 병장(Frederick Niland)인데, 닐랜드 병장의 형제들이 설리번 형제와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각각 다른 부대에 흩어져서 복무 중이었음에도 비슷한 시기에 태평양 전선 뉴기니와 노르망디의 유타와 오마하에서 전부 죽거나 실종되어서 홀로 살아남은 프레더릭 닐랜드 병장만이 본토로 귀국조치 되었고, 이런 닐랜드 병장의 이야기와 설리번 형제의 비극을 모티브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뉴기니에서 실종된 형 1명은 일본 육군포로가 되었다가 전후 귀국했다. 실제로 영화 초반 조지 C. 마셜 육군참모총장에게 장교들이 몰려가서 라이언 4형제 중 형들이 모두 전사하고 막내 제임스만이 살아있음을 논하던 장면에서도 설리번 5형제가 언급된다. 라이언 4형제가 원래 미 육군 제29보병사단에 함께 있었으나 설리번 5형제가 전사한 후 각각 따로 배치되었다는 설정.

이 형제에게는 누이 제너비브 마리 설리번(Genevieve Marie Sullivan, 1917 ~ 1975)[4]과 더불어 막내 앨의 슬하에 외아들 제임스 설리번이 있어 대가 끊기는 것만은 간신히 면했다. 제임스는 아버지 앨 설리번처럼 해군에 입대하여 첫 번째 The Sullivans(DD-537) 함에서 근무했는데, 해군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제임스를 이 구축함에 배치한 듯 하다.

이 부분은 2018년 2월 18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4. 유사 사례

또 다른 같은 함정에 배치된 형제로는 코네티컷 뉴 헤이븐 출신의 로저스 4형제 외 최소 30형제가 있다.[5] 이들 역시 설리번즈 형제 몰살 이후 전부 근무지가 다르게 변경됐다.

다만 근무지가 다르게 배치되었음에도 형제들이 연달아 죽는 일이 생기기도 했는데 1944년 미합중국 육군(4명, 이 중 항공대 2명) 및 해병대(1명)에 입대한 보그스트롬 5형제[6] 가운데 4명이 1944년 6월~8월의 두 달동안 모두 죽어(...) 결국 가족들이 마을 주민들과 주 의회의 도움으로 마지막 남은 아들의 군복무 중단을 청원한 일이 있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 청원은 받아들여져 마지막 남은 아들은 미국으로 돌아왔고, 이후 형제들이 군복무를 하다 한 명만 남고 나머지가 모두 죽으면 나머지 한 명은 반드시 귀국 및 전역시키도록 법이 바뀌었다고 한다.
[1] 미국 쪽에서는 구축함의 어뢰라고 판단하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일본 쪽에서는 아마쓰카제에서 발사한 어뢰 중 1발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황상의 심증일 뿐 이 최초 피격이 어떤 배의 어뢰였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2] 일본측 자료에 의하면 순잠 1급 잠수함 이26이 발사한 어뢰라고 한다.[3] 고나트륨혈증(체내에 나트륨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병)으로 발작을 일으켜 죽었다는 설과 혼자 살았다는 충격에 자살했다는 설이 있다.[4] 오빠남동생들이 몰살당하는 참사를 겪고는 그 이듬해인 1943년에 예비역 해군 산하 여성군무원(WAVE in the U.S. Naval Reserve)으로 자원입대, 1년 9개월 간 복무 후 전역했다. 최종 계급은 모병 담당 주무관(Specialist R).[5] 당연히 형제를 다 합쳐 30명이라는 게 아니라 형제들이 자원입대해서 같은 함정에 배치된 게 30형제나 된다는 뜻이다.[6] 본래는 7형제였으나 장남은 전쟁 전 사망했고, 막내아들은 징집연령에 미달된 상태여서 참전하지는 않았다. 물론 형들이 연달아 죽은 후에는 군면제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