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20:04:34

샤를 앙리 상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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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발리에 샤를앙리 상송 드롱발[1]
Chevalier Charles-Henri Sanson de Longval
(1739 ~ 1806)

1. 개요2. 행적3. 여담4. 대중 문화에서

1. 개요

상송 가문의 4대 증손. 프랑스사형집행인. 상송 가문은 대대로 사형수의 처형을 집행해왔던 가문으로 유명했으며, 그 중에서도 4대 증손인 샤를 앙리 상송이 가장 이름이 많이 알려져있다.[2] 상송(sanson)이란 가문명은 소리(son)가 없다.(sans)라는 의미, 즉 "죄인의 비명소리가 울리지 않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흔히 '무슈파리(Monsieur de Paris)', 곧 '파리신사(남자)'로 알려져 있다. 이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사형집행인을 가리키는 별명으로, 반드시 파리에 거주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서 유래했다.[3]

2. 행적

이 사람이 사형집행인으로 봉직하던 시기에 프랑스 혁명이 벌어졌으며, 혁명 후 정부에서도 17,000여 명이 단두대에 목이 달아났고, 그 중에는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로베스피에르 같은 거물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처형을 담당한게 이 사람이었다. 즉 눈 앞에서 왕과 왕당파들, 그리고 혁명가들과 공화파들이 수없이 죽는 것을 지켜본 산증인인 것이다.

그런 격동의 시기에 수많은 처형을 집행하며[4]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생역정을 거친 사람이다보니 관련 서적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발자크가 저술한 <Memoires pour servir a l`histoire de la Revolution(프랑스 혁명사에 공헌하기 위한 회상록)>이나 아다치 마사카츠의 <왕의 목을 친 남자> 등등.

망나니가 그렇듯이 여러모로 사형집행이라는것이 기피받고 흉흉한 일이다보니 상송 가문은 이래저래 멸시를 받는 일이 많았지만, 실제 샤를 앙리 상송은 그런 환경에서도 꽤나 신사적인 남자였다. 사형수를 망나니로 뽑아 다른 죄인의 처형을 맡긴 한국이나 프랑스의 이웃국가들의 망나니들의 처지와는 다르게 프랑스에서는 사형집행인에게 제대로 봉급과 직책을 줘서 대우해줬기 때문에 꽤나 풍족하게 살았다.[5] 또한 의술에도 뛰어나서 사형집행인 일이 없을 때는 의사로도 활동한 적이 많았다.[6] 이는 사람의 을 자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당시 사형집행인은 사형수의 고통을 최대한 덜어주기 위해 한 번에 목을 날릴 수 있도록 검술인체에 대해 충분한 역량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말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만나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상당한 미남에다가 머리도 똑똑하여, 번듯하게 차려입고 거리에서 직업을 속이고 많은 여성을 유혹하여 하룻밤을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 후작부인이 그에게 너무 빠져서 더 가까이 지내다가, 망나니라는 걸 알고 분노하여 법적으로 상소까지 낸 것이다. 망나니라면 앞으로 망나니임을 알 수 있도록 옷을 입던지 표식을 해야한다고 한 것이다.

아무도 상송을 변호하려고 하지 않아 그가 직접 법정에서 스스로 변호를 맡았는데, 법원은 후작부인의 상소를 기각하며 상송이 이겼다. 이때 상송이 한 변론이 걸작인데 상송은 "그럼 범죄자를 누가 사형시킬 것이며 재판장님이나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가 범죄자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누구더러 사형시킬 것입니까? 스스로 나서겠습니까?"라고 변호했다. 이 말에 재판장의 답변도 걸작인데 후작부인에게 "저 말에 당신은 답변하실 수 있나요? 누군가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는데, 당신은 그 자를 사형시키길 원하지만 당신 손을 피로 더럽히고 싶지 않을테죠? 그러면 당신이 더럽다고 한 저 망나니에게 애원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라고 냉혹하게 후작부인을 깠고 그 부인도 아무런 반론도 못했다. 그래서 상송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승소한다.

그렇게 상송은 할 말 다하고 사형집행인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다가 67세의 나이로 당시 기준 천수를 누리다가 갔다.

망나니 이지만 사형제도에 회의를 갖고 있었고 사형제 폐지를 위해서 권력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진보적인 활동을 하였다.

3. 여담

상송 가문은 이후 손자인 6대 집행인 앙리 클레망 상송까지 사형 집행을 맡았으나, 도박 중독으로 인해 단두대를 전당포에 맡긴 사건 때문에 결국 무슈 드 파리에서 파면되고 상송 가문의 세습은 막을 내린다.[7] 다만 사형집행을 교도관은 돕기만 하고 단두대의 레버를 내리는 집행 자체는 외부에서 데려온 집행인을 시키는 건 전과 같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무슈 드 파리 직위 자체는 유지됐다고 볼 수 있다. 직위는 프랑스가 사형제를 폐지한 1981년에 공식적으로 없어진다.

4. 대중 문화에서

4.1. 이노센트

주인공이자, 상송 가문의 4대 므슈 드 파리. 상송 가의 장남이지만 연약한 마음 때문에 사형 집행인이 되기 싫어하였지만, 아버지의 설득 아닌 설득으로 가업을 잇기로 한다.

하지만 원래 마음이 약해서 첫 사형 집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때문에 아버지가 실망을 하였고 새로운 아들을 낳아서 므슈 드 파리를 물려 주려고 하자 스스로 각성을 하고 사형 집행을 충실하게 한다.[8] 원래는 정도 많고 소심해 보이는 성격이었지만, 마리 잔느 베큐와 하룻밤을 자면서 동정탈출(...)을 하자 새로운 형태의 쾌락에 눈을 뜨면서 사람이 변했다.(그래도 처형하는 죄수를 진지하게 대하는 자세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때부터 성격과 가치관이 변하면서 여동생과 사이가 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그래도 귀족에게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서 귀족의 물건을 훔친 기술자를 전신의 뼈를 부수고 바퀴에 매다는 처형시 신발끈을 묶는 척하며 아무도 몰래 즉사시킨 다음 뼈를 부수는 식으로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사형수들을 고통없이 보내고자 하는 인도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등 인도적인 방식으로 집행한다.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는데 그 아들만큼은 자기와 다르게 키우려고 했지만, 아들과 거리를 걷다가 똥물을 맞는 치욕을 당하자 이에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짓을 한다. 즉, 아들에게 고문을 가한 것이다.

1부까지는 주인공으로 비중있게 나오고 2부부터는 부제인 루즈에 걸맞게 오리지널 캐릭터나 다름없게 재구성된 여동생 마리에게 떠넘겨졌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마저 여동생 마리가 실행한 것으로 재구성되었다.

2부에서는 단두대의 성공적인 발명으로 인하여 사형집행을 더 수월하게 만들고, 사형수들에게도 부담을 적게 줄 수 있을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오히려 단두대의 기백에 사형수들의 공포심은 더 커져버렸다.[9] 그리고 프랑스 혁명 및 공포정치로 인해 루이 16세 부부는 물론, 한달에 수천명의 사람들을 처형시키면서 단두대를 사용하기 전보다 더 목숨을 빼앗는 것에 무덤덤해진다. 결국 정신적으로 한계가 왔는지 머리카락은 반쯤 백발이 되버리고 눈도 생기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아들에게 무슈 드 파리의 자리를 넘겨주고 은퇴. 노년엔 나폴레옹에게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탄원서를 들고 직접 찾아가지만 루이 16세의 목을 친 사신이라면서 박대받는다. 마지막엔 수십년 전에 먼저 병마로 세상을 뜬 여동생의 환영을 보고 결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150년 뒤 1981년 프랑스는 사형제를 폐지한다.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의 전치사와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 또한 붙임표로 이어진 인명 등의 경우, 여러 요소가 하나의 단어를 이루는 복합어로 보고, 한글로 표기할 때에는 붙여 적는 것이 규정 용례이다.[2] 1대였던 조부는 원래 귀족집안의 군인이었는데, 망나니 집안의 딸과 사랑에 빠지면서 사형집행인이 되기로 한다.[3] 다른 지역에서 활동한다면 무슈+드+지역이름, 이런식으로 불려진다.[4]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상송은 무려 2,918회의 처형을 집행했다.[5] 사실 이는 프랑스가 특이한 쪽이다. 망나니 문서 참고. 프랑스의 상송 가문뿐만 아니라 사형집행인들은 엄연한 귀족이었다.[6] 당시 프랑스 평민층 남성의 일반적인 연 수입은 400리브르 정도였는데 상송 가문의 수입이 연 3만 리브르에다 징세권까지 있었다.[7] 상송 가문 자체도 20세기를 못넘기고 기록에서 사라진다.[8] 그의 아버지 쟝 역시 첫번째 사형 집행 당시 샤를처럼 5~6번 검을 휘두른 다음에야 성공했다.[9] 대중들은 레버 하나만 조작하면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 샹송 가문은 필요없지 않냐 했지만, 샤를은 그 말을했던 청년을 단두대로 불러와 직접 레버를 당겨보라고 시켰다. 그 청년은 기세등등하게 올라갔지만 죽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사형수의 저주에 가까운 악담과 사람을 죽인다는 압박감에 레버를 조작하자마자 본인도 심장 마비로 죽었다. 즉 사람을 죽이는 방법만 쉬워졌지 생명을 앗아가는 부담감을 변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