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제갈량의 처남이 되었다 | |
장르 | 대체역사 |
작가 | 조작가R |
출판사 | 에피루스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1. 07. 03. ~ 2022. 07.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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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삼국지 대체역사물 웹소설. 작가는 조작가R.[1]2. 줄거리
공모전 참가를 고민하던 작가는
제갈량의 처남이 되었다
제갈량의 처남이 되었다
삼국지 대체역사물을 주력으로 쓰던 작가, 어느날 눈 떠 보니 제갈량의 처남 황선 작가(作加)가 되어 있었다.
익주정벌-한중공방전-익양대치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 과연 작가는 제갈량의 처남으로서 촉한의 비상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익주정벌-한중공방전-익양대치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 과연 작가는 제갈량의 처남으로서 촉한의 비상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1년 7월 3일부터 연재를 시작하였다.리디, 조아라, 네이버 시리즈,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본이 발매되었다.
2022년 7월 11일 303화로 완결했다.
4. 특징
제목은 가벼운 웹소설 느낌이지만 정작 내용은 무겁고 건조하다. 형식상 삼국지 빙의물, 대역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사실 내용만 봤을 때는 군담소설이나 다름없다.삼국지 촉한 인물에 빙의하여 역사지식을 활용해 인재를 살리고 난적을 죽이고 역사를 개변해서 천하를 통일한다는 클리셰를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역사개변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정치를 다루지 않는다. 주인공은 유비의 입촉 때부터 시작해서 삼국을 통일할 때까지 촉한이 치른 모든 전쟁에 참가했는데, 완결까지 오직 전장에서 승패와 죽음을 맞이한 이들만을 그린다.
연의에서 나관중이 네임드 캐릭터는 죽을 때도 간지나게 죽어야 제맛이라는 신념(...)으로 살짝살짝 왜곡과 날조를 통해 최후를 포장하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바뀐 역사 속에서 삼국 네임드의 죽음을 집요하게 다룰 뿐 원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묘사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5. 등장인물
5.1. 주인공과 친인척
- 황선
제갈량의 처남. 황부인의 남동생. 자는 작가. 유비의 입촉 시기에 대한민국의 안 팔리는 대역물 작가였던 조 작가가 빙의한다. 전직 작가의 말빨과 삼국지 지식을 바탕으로 동오와 척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유비가 단독으로 익주를 차지해야 한다고 설파하여 유비의 눈에 들어 어린 나이지만 종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송과 방통을 살리면서 이후 스노우볼이 어떻게 굴러가든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역사개변을 일으켜 삼국 통일을 달성하기로 결심한다. 방통이 형주 방위를 맡고 제갈량이 성도에서 내치에 전념하면서, 황선이 제갈량을 대신해 남벌과 북벌에 참모로[2] 참가한다. 이후 아이를 가질 틈도 없이(...) 옹주와 형주를 바삐 오가며 전쟁을 치르면서 마침내 세월이 흘러 대사마 자리에 올라 계한 군부의 정점에 선다.[3] 관우, 마초, 황충, 조운 등 장비를 제외한 오호대장군을 전쟁통에서 잃었지만, 실제 역사에서 제갈량의 빅 플랜이었던 장안과 번성을 점령하여 위나라를 공략할 양면 루트를 확보하고, 형주를 침공한 오나라를 연달아 물리쳐 마침내 강동 손씨를 멸망시키고 오나라를 계한이 품는다. 유비는 업 공략을 못보고 천수를 다했지만, 유선을 황제로 모시고 마침내 조상의 투항을 받아 위를 멸망시킨다. 이후 달아난 사마씨를 쫓아 유주를 공략하고 삼국 통일을 완성하고, 유선을 비롯한 중신들과 함께 유비의 생가를 찾는다.
- 제갈량
유비군의 중진이자 역사의 위인. 매제인 황선을 아낀다. 원 역사와는 다르게 방통이 생존해 있고, 군무를 황선이 맡게 됨에 따라 내정에 주로 전념하지만, 필요할 때는 직접 군세의 사령관으로 전선에 나서는 촉한의 조커 역할. 업성을 점령한 후 술자리를 빠져나가 죽은 사람을 남몰래 추모하던 황선을 따라와 다음 생애에 황선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또 처남으로 맞이하고 싶다고 말한다.
- 장비
유비의 의동생. 고증이라면 고증인지, 능력을 증명한 황선이 자신보다 입지도 낮고, 경력도 짧은데도 매우 예의 바르게 대한다.[4] 제갈량은 장비는 능력도 의리도 더할 나위 없는 용장이나 술이 들어가면 언행이 거칠어지니 주의하라고 조언한다. 황선에게 둘째 딸과의 혼인을 제안하면서 장인이 된다. 이는 유비 세력의 혼맥을 통한 연결을 완성하기 위해서라고.[5]
5.2. 촉
- 유비
군의 중에 졸고 있는 황선에게 입촉에 대한 식견을 묻고, 이에 대해 황선의 완벽한 답에 탄복하여 황선을 총애하게 된다. 황선이 간간히 말하는 식견에 탄복하여 이를 닮았으면 하는 마음에 유선의 스승으로 삼기도 한다. 한중 정벌 초기에는 조조와의 일전에 두려워하다가 간옹, 손건, 미축의 격려를 받고 전장에 나가는, 의외로 심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팽양처럼 대놓고 배신 행위를 한 상대에게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등의 위선[6]을 보이는 등의 현실적인 면모도 드러나기에 마냥 절대적인 존재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황선이 무리하게 일을 하자 천명에 먹혀버린 주유를 떠올리며 황선을 후방으로 돌려 휴식하게 해주며, 황선에게 유비 자신이 죽기 이전에 천하를 통일하려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라고 하는 등 황선을 각별하게 아낀다.
- 관우
원래 역사대로 형주에 주둔하며 양번을 노리고 있다. 오나라와 사이가 나쁘고, 그나마 노숙은 존중하는 편이다. 황선이 역사를 바꾸면서 살아난 방통이 남군에 주둔해 오의 침공을 막고, 황선이 형주 공방전에 참전해 관우를 도우면서 죽음을 면하고 오히려 조인과 만총을 쓰러뜨리는 공을 세운다. 하지만 병졸에게 잘 대해주지만 사대부를 업신여기는 그 성품이 기어코 발목을 잡아서, 황선의 조언마저 무시했다가[7] 사마의의 계략에 빠져 죽음을 당한다. 방식도 원래 역사에서 여몽에게 당한 그대로였고, 다만 최후를 맞이한 장소가 맥성에서 번성으로 바뀌었을 뿐.
- 유선
유비의 후계자. 황선을 높게 여긴 유비가 유선의 스승 중 한 명으로 황선을 붙여주었고, 황선은 유선이 원 역사에서 부족했던 것이 인재를 보는 안목이라고 생각해 각국의 인재들에 대해 유선에게 가르치고 특히 유비의 행동들에 대해 많이 가르쳤다. 유비가 오래 산데다 황선이 교육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자 명군의 자질을 보이기 시작했고, 유비 사후 즉위한 뒤에는 원 역사와는 달리 흠잡을 곳 없는 명군이 되었다. 위의 첩자들이 양의 등 촉의 일부 신하들을 부추겨 황선과 제갈량에 대해 모함을 하는 상소를 올리자 양의와 황호 등의 간신을 모조리 잡아들인 뒤 처형하여 원정을 나간 황선과 제갈량 등을 신뢰한다는 제스쳐를 보이는 등 명군으로서의 자질이 넘치는 행보를 보인다.
스승인 황선을 특히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황선의 장자가 위연의 딸과 혼약을 맺었다는 말에 아쉬워하며, 황선이 딸을 가진다면 반드시 자신의 아들과 혼약을 맺게 하겠다고 황선에게 선언할 정도.[8] 이에 대해 황선이 주군은 어떤 신하든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유선은 황선이 유비의 행보를 자신에게 이야기해주던 당시 유비가 고난을 겪을 때는 슬픈 어조로,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을 때는 황선 자신이 더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없겠냐고 답하며 황선을 감동시킨다.
- 황충
촉한의 오호대장군. 유비군 제일의 명궁이자 부족한 면이 없는 용장. 황선에게 궁술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황선과 함께 많은 전장을 오갔으며, 익양대치 당시 방덕과 함께 여몽을 저격해 죽이는 공을 세운다. 한중 전투에서도 활약하여 후장군에 올랐으며 조창과 조진, 하후연과 서황 등을 상대로 때로는 압도, 못해도 호각의 싸움을 벌이며 맹활약한다. 양양의 포위망을 뚫고 관우군에 보급을 하는 데 성공하여 관우로부터 황충을 낮춰보았던 것에 대한 사과를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급을 마치고 현산으로 퇴각하는 길에 장료-조창과의 대결에서 부상을 입고 끝내 사망한다. 하지만 사망하기 전 황선에게 유언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굳건한 의지를 가질 것을 조언했고, 이에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을 활용해 촉한의 천하통일을 이루겠다고 다짐하면서 (가후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낱 이무기에 불과했던 황선은 한수에서 날아오른 용이 되었다.
- 마초
조조와 전쟁에서 지고 일가가 참살당하자 실의에 빠져서 한중에 칩거하고 있었다. 한중의 장로는 마초의 무력을 이용할 생각뿐이었고 후하게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초 역시 웅지가 꺾인 상태였다. 원래 역사에서는 이회가 설득해 유비에게 귀순하지만, 황선이 몰래 한중으로 잠입해 촉으로 귀순시킨다. 유비와 제갈량이 처음 북벌을 시도했을 때 계획대로 마초를 앞세워 이민족을 규합하지만, 이들은 마초의 포악한 성품을 두려워해 따른 것이지 진심으로 따른 게 아니었고 위나라의 후원을 받자 마초에게 창끝을 돌린다. 결국 마초는 천하를 거침없이 질타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본인의 부덕으로 가문이 대가 끊일 지경까지 처했고 그런 자신을 받아준 것이 황선과 유비였음을 절감하고는, 서량의 금마초가 아닌 촉한의 오호대장군으로서 몰려오는 위군과 맞서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다.
- 방덕
마초의 부하로 그와 같이 유비군에 편입된다. 황충과 같이 유비군 제일의 명궁으로 익양 대치 당시 영릉에서 황충과 함께 여몽을 저격하여 사살하는 공을 세운다. 조위에서도 방덕을 마초에 지지않는 명장으로 평가하며, 그 평가가 부족하지 않을만큼 명성을 떨친다. 마초가 죽어가면서 방덕에게 존형이라고 칭할 정도로 사이가 각별했다.
- 오란
- 뇌동
서황의 군대를 막다가 전사하는 듯 했으나 후일 재등장. 너무나 허무한 패배에 면목이 없어 복귀하지도 못하고 패잔병들을 이끌고 떠돌다가 유봉과 황선이 하후연의 공격으로 죽기 직전에 등장해 둘을 구해낸 후 성공적으로 복귀한다.
- 이엄
연의와 정사처럼 능력있는 인물이나, 능력에 비해 과도한 자신감을 품은 인물로도 묘사된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하찮은 일을 맡는 사이에 황선 등이 자신을 뛰어넘고, 자신보다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이 지금의 동격이라고 한탄하다가 서주에서 만총에게 사항계를 걸어보았으나 당연히 만총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사항계가 통했다고 믿고 제갈각의 충고를 무시하며 자신만만하게 출전했다가 위의 역격에 휘말려 산에 고립되었으며, 관평이나 제갈각 등은 이미 위의 역격에 대비해 수비하기 바빠 원군을 파견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올 리가 없는 원군을 찾다가 쫓기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가 도져 사망하고 말았다.[9]
- 관평
관우 사후 형주 수비를 맡았고, 오나라 멸망 이후에 참군 왕준과 함께 서주를 수비하게 된다. 이엄의 사항계가 간파되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참군인 왕준의 조언을 새겨듣는 모습을 보여 왕준이 의아해했으나[10] 관평은 관우가 황선의 조언을 들었을 때는 양번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황선의 조언을 듣지 않자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면서, 왕준은 황선이 자신을 위해 안배해준 경계하는 자이니 그 조언을 듣는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리고 제갈각과 함께 황선의 구원이 오기 전까지 서주의 핵심 요지들을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관우와 용모가 꽤나 닮았는지, 2차 형주 침공전에서 촉한과의 맹약을 무시하고 구원에 나서지 않으려던 사마가가 자신을 설득할 사자로 찾아온 관평을 보고 순간 죽었던 관우가 돌아온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 등애
사마의가 형주를 수비하면서 조비에게 군사 역할로 남겨준 인물. 조비는 낙곡으로 진격하면서 등애에게 자오곡을 통해 황금성을 기습하라는 역할을 맡기나, 조진이 전사하자 이미 황금성 앞까지 도달했을 등애를 버리고 퇴각하고 만다. 등애 역시 이에 분함을 느껴 유비에게 항복했고, 이 후로는 장비의 부관으로서 활약한다.
여담으로 마속과 버금가는 등산의 장인답게, 등장할 때마다 험한 산을 넘어 적을 기습하자는 계책을 꺼내는 빈도가 매우 높으며, 원 역사에서는 말더듬이지만 서술상으로 평어로 얘기한다.[11]
- 방통
익주 정벌 중 낙성에서 전사할 유비군의 참모. 법정과 같이 오래만 살아있다면 삼국지 역사를 달라지게 만들 능력이 있는 인물이기에 황선은 낙성 공방전에 참가해 방통을 구하려고 한다. 방통의 사인은 연의의 창작 외에는 정보가 거의 없지만, 전황을 보면 다 끝난 전쟁에서 운 없는 유시에 맞아 전사했음이 거의 확실했기에 그를 구하기 위해 황선이 팽양과 같이 낙성 공략에 나섰다가 귀가 반쯤 잘려나가는 큰 부상을 입는다.
본인은 몰랐겠지만 이렇게 살아난 이후 황선의 기대가 빗나가지 않아 이후 형주 남군에 주둔하면서 오나라의 공격을 막아내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된다.
- 법정
유비군의 책사. 살아만 있었으면 제갈량과 같이 북진 전략을 세우게 되었을 거라는 평가답게 그 능력을 보여준다. 오나라의 형주 침공을 대처하는 황선이 수립한 대책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여 끝내 손권의 침공을 빈틈없이 막아내고 역공하는데 성공하게 만든 1등 공신이었으나, 수명이 다해 사망하고 말았다. 수명이 다한 것을 짐작하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장렬한 묘사가 일품.
- 유봉
유비의 양아들. 뛰어난 능력과 열정의 용장이나, 열정이 과하고 경험이 부족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황선과 합류해 방덕과 같이 조진과 조홍의 군대를 쳤다가 너무 깊이 들어가 추격에 패할 뻔했으나 불길하게 여긴 황선이 매복을 숨겨둔 덕에 역으로 조홍을 잡는 공을 세운다. 그리고 상용에 주둔했을 때, 원 역사에선 부족한 병력을 뺄 수 없다는 이유로 관우의 원군을 거절해 사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나 작중에서는 황선의 조언을 들어 관우에게 원군을 파견해[12] 공을 세웠다. 유봉 본인은 후계자의 욕심이 없었으나, 열정이 과한 모습과는 별개로 자신의 입지 때문에 매사에 너무 소심하게 나가는 문제가 있었는데[13] 황선은 이에 대해 곽거병과 위청의 예시를 들어가며 자신의 공적에 떳떳한 모습을 보일 것을 조언하였다. 옹양주 점령 이후 북지왕에 임명된다.
- 장송
익주 호족 장숙의 동생. 본래대로라면 유비에게 편지를 보내려다 이를 장숙이 발견하고 내통을 고발당해 처형당하나, 여기서는 황선이 개입해서 생존한다. 유비가 익주를 차지한 뒤 익주 호족의 필두가 되어 한편으로는 호족들의 여론을 규합하고 한편으로는 유비에게 전쟁을 멈추고 내정을 다지도록 정치적 압력을 넣기도 한다. 이 때문에 황선이 장송을 괜히 살렸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공세가 다소 지지부진한 상황이었고, 관우가 사망했음에도 유비는 복수전을 감행하지 못했다.[14]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있었는데, 잇단 전쟁으로 촉이 피로한 것도 문제지만, 익주계와 형주계의 파벌 싸움에 새로이 장안 낙양 계열 인재들이 촉한에 편입되면서 정치적으로 예민한 상황이었기에 마침 익주계의 신하들 중 가장 고위직인 장송이 유비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에 소극적이던 익주계의 거두가 되었고, 이를 이용해 결정적인 순간 익주계의 의견을 주전으로 쏠리게 만들 셈이었던 것이었다. 이런 안배를 듣게 된 황선은 장송에게 탄복했고, 유비의 무리한 복수전을 말리는 대신 자신은 주전파의 거두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 1년 뒤 조비가 사망하자 위나라가 흔들릴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장송은 자신의 수명이 다했음을 예감하고 익주계의 호족들을 모조리 설득해 주전에 힘을 실어주었으며, 유비에게 불충한 발언을 했던 것을 사죄하고 진심을 내보이면서 사망한다.
- 미방
작중에서는 오와 내통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며, 유비 세력의 오래된 숙장이라 자신의 능력에 비해 너무 과분한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여 이에 큰 부담을 느낀 상황으로 등장한다. 오나라의 군대가 공안에 쳐들어오자 항복할 마음을 품었으나, 황선의 조언으로 처음 유비를 따라나섰던 마음가짐을 떠올리고, 미방 자신은 유비가 가는 길을 보고 싶었다는 걸 새겨넣어 황선으로 변장해 전종을 유인하고, 끝내 전사했으나 용맹하게 싸워 자신의 마음을 증명했다. 유비 역시 이런 미방의 마음에 감동해, 미방마저도 전사했으니 손권에게 형주 땅은 단 한치도 내줄 수 없다고 선언한다.
- 간옹
유비의 친우이자 유비군 원로. 한중 공방전을 앞두고 유비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술자리에서 손건과 미축과 같이 그를 위로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인물이고, 본인도 이를 아는지 황선에게 친우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 마속
읍참마속의 주인공. 법정은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나, 때때로 기본을 지키지 못한다고 평했다. 황선은 비극을 아예 사전차단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를 데리고 파군 전투에 동행했고, 산 위에 올라간 장합군이 식수가 부족해 괴멸당하는 것을 경험한다.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제갈각과는 논쟁에서 격한 분위기를 풍겼으나, 문득 고지에 진을 치는 문제에 대해 제갈각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그에 다짐하듯이 되뇌이기도 한다. 이후 제갈각과는 서로의 식견을 듣고 감탄하는 등 죽이 잘 맞게 된다. 등애의 황금성 침투를 예상하지 못해 또 다시 유비의 실망을 사는 듯했으나, 바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모습에 유비는 마속이 성장하고 있다고 믿게 되고, 오의 2차 형주 침공 당시 상용에 마속을 남겨두는 안배를 통해 유비 사후 오나라의 침략을 막아내고 자신의 성장을 증명했다.
- 제갈각
제갈근의 아들. 익양대치가 마무리되어갈 때 황선의 제안에 따라 관우의 딸과 정략결혼한다. 형주 공방전에서 제갈근과 함께 포로로 잡혔다가 촉(계한)의 신하가 된다.[15] 마속처럼 자신의 주관이 뚜렷해 의견 차이가 벌어진 마속과 자주 논쟁을 겪으나, 마속의 성장을 보면서 느낀게 있었는지 원 역사와는 다르게 자만하는 성격이 많이 죽었다.[16] 마속이 고지에 올라간 장합이 고전하는 역전을 겪었듯, 제갈각도 진등의 아들인 진숙에게 성 내에 포위당한 상태에서 거짓으로 항복을 꾸미는 사이에 재정비를 하자는 계책을 조언받고 처음엔 이에 화를 내지만 이내 다른 수가 없어 시행했는데 정말로 적이 공세를 늦추는 바람에 재정비를 해 끝내 황선의 원군이 오기 전까지 수성을 성공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 팽양
본래 유장의 신하였으나 유능함에도 오만한 성격과 언행 탓에 벌을 받았던 인물. 그 후에 방통과 법정의 추천을 받아 능력을 인정받아 유비의 익주 정벌에 참가한다. 그러나 낙성 공략의 군의에서 황선과 마찰이 나자 위연과 황선을 견제하며 작전을 짰다가[17] 유장군의 숙장인 장임에 의해 황선이 부상을 입게 만든다. 이 다분히 고의적인 모략에 분노한 황선은 이번엔 역으로 유순에게 항복을 권하는 사신으로 팽양을 추천한다.[18] 이를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 황선에게 암계를 쓴 것과, 아군에게 밀정을 붙여놓은 일이 유비와 법정에게 걸리면서 몰리자, 결국 유순에게 붙으면서 유비군을 배신한다. 그러나 이를 예측한 유비군에 의해 역으로 유순에게 화살을 맞아 죽어가게 된다. 죽어가면서 자신을 이해한다는 제스처를 보인 유비에게 애당초 살려줄 거였으면 치료부터 해줘야지, 이렇게 죽어가는 자신을 두고 같잖은 연기로 이미지 관리나 하는 거 다 안다면서 악을 쓰다가 죽는다. 사실 자업자득이나 다름이 없는 게, 본인의 출세를 위해 경쟁자인 황선을 위기로 몰아간 데다 이러한 행위가 발각되자 자신을 숙청하려는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배신을 한 정황이 다 드러났기 때문에 팽양을 구명해줄 이유 따윈 없었다. 사실상 팽양을 황선의 성장을 위해 유비가 희생시킨 것이었으며, 이 이후 황선은 어설픈 면모가 많이 사라지고 더욱 성장하게 된다.
- 양의
원 역사에서는 유비 사후 제갈량이 불러들여 중책을 맡기나, 작중에서는 이릉대전이 벌어지지 않은데다 양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유비와 황선 때문에 중용되지 못했고 본래 성품이 그런지라 자신이 중용되지 못하는 걸 황선의 탓으로 돌리고 그를 질투하고 있었다. 그런 도중 위나라의 반간계에 걸려들어 황호 등과 연계해 황선을 참소하지만, 황선을 스승으로서나 신하로서나 크게 신뢰했던 유선은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자마자 바로 반간계에 연루된 일당들을 모두 잡아들인다. 심문 현장에서도 원래부터 황선 등을 참소할 마음이 없었던 극정[19]과는 다르게 온갖 변명만을 늘어놓지만 유선은 오히려 이를 보고 선황인 유비가 어째서 양의를 기용하지 않았는지 알겠다며 미련없이 극정을 제외하고 양의와 황호 등 반간계에 연루된 일당을 모조리 주살한다.
5.3. 위
- 조조
한중 전투에서 조홍과 하후연이 사망하자, 관우를 죽임으로써 유비에게 복수하겠다고 천명하고 양양을 점거한 관우를 포위하나 끝내 점령하지 못하고 홍수에 의해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손권과 다르게 위기를 느끼자마자 바로 휘하 장수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탈출하는 자신을 호위했던 수백의 호위병들을 모조리 죽여 이를 함구시키는 등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였다.[20] 궁중에 칩거하는 동안 후계자 경쟁에서 사마의의 역심을 감지하자 바로 사마사를 잡아와 하후휘와 강제로 혼약을 맺게 하는 등 자신의 사후 사마의를 억제할 안배를 남겨놓기도 한다. 조비에게 사마의를 반드시 억제할 것을 당부하고 사망한다.
- 조홍
조진과 같이 한중 인근에서 유비군과 전쟁을 벌이다가 조진을 구해내고, 유봉에게 전사한다. 조조의 사촌형제이자 평생의 친우였던 자렴의 죽음은 장합 전사에 이어서, 한중 공격에 적극적이지 않던 조조가 복수를 위해 형주에 친정을 하는 계기가 된다.
- 하후연
전사한 조홍의 복수를 위해 출격. 유봉에게 중상을 입히고, 황선을 추격했으나 뇌동에게 막히고 퇴각한다. 이후 정군산 전투에서 황충에게 사망한다.
- 장합
조조의 오자양장 중 1인. 파군을 두고 왕평과 황선의 촉군이 가세해 위에 귀순하려던 파족들이 밀려나자, 그들을 지원해서 2만명의 대군을 데리고 진군해 고지대인 탕거산을 점령하고 장비, 황선, 왕평과 맞붙는다. 그러나 파족 장로들의 말을 믿고 탕거산을 점령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싸움이 길어지자 서황의 원군에도 전세를 뒤집지 못하고 퇴각하다가 왕평과 위연에게 사망한다.[21]
- 장료
작 중 위나라 제일의 맹장. 형주 침공전에서 황충과 대결해 부상을 입히고, 이후 관우가 사마의의 기만책에 말려들어 북진하다가 고립된 신야성에 갇혔을 때도 대결에서 관우에게 부상을 입힌 겻 역시 장료였다. 둘 모두 장료와의 대결에서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하는 등 개인의 무공으로는 위나라는 물론 작 중 제일을 다툴만했다. 그러나 장료의 최대 단점은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었는데, 전장은 단순히 무를 겨루는 곳이 아님에도 무인으로서의 긍지에 집착하다가 관우에게 의외의 일격을 맞고 부상을 입었고, 이 부상이 낫지 않은채로 무리하게 참가했던 오와의 전투에서 한당이 자신을 희생해 장료의 무기를 묶어두자 이를 놓지 않다가 다른 오나라의 장수들에 의해 치명상을 입어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22]
- 사마의
작중 황선의 숙적 포지션. 공교롭게도 주인공은 원래 사마의의 처남으로 소설을 쓰려 했으나 주변 인물들의 만류로 제갈량의 처남으로 소설 주제를 잡았었다. 가후와 함께 책략의 성향이 잘 나타나는데, 처신을 중요시하는 것이 가후라면 사마의는 자신이 손해보는 상황을 혐오한다. 그럼에도 위나라의 주변 인물들에게는 자신의 야심을 잘 숨겨 조씨 일족을 제외하면 그를 위의 충신으로 여기고 있다. 능력적으로는 위나라의 대체불가 존재라 촉한의 침공도 사마의 본인이 막는 곳은 잘 막아내고 있으나 다른 전선이 뚫리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마침 촉한에게 두번째 통수를 실패한 오나라를 제후국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이를 역이용한 육손의 계략에 휘말려 군을 이끌고 오나라 영내로 진입했다가 끝내 빠져나오지 못해 사로잡혔고, 황선에게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건 모두 적들 뿐이라고 한탄하며 죽어간다.
- 사마사
사마의의 장남. 자신의 야심을 아버지인 사마의에게 종종 내비치는 등 조심성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식견은 사마의보다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사마의는 황선에게 잡히기 전 사마사에게 황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 황선과 대적하지 말고, 만약 황선의 생전에 위가 멸망한다면 황선이 죽기 전까지는 변방에서 움직이지 말고 자중하라는 유언을 남겼다.[23] 사마의 사후 조예가 사마의의 계책이 실패했다는 것에 격분[24]하여 사마사를 요동으로 보내버렸다.[25] 업성이 점령당하고 조예가 처형당하자 사마의의 유언을 물리치고 황선에게 복수하기 위해 조예의 동생을 황제로 내세우고 오환족까지 끌어들여 봉기하지만, 황선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선 친정으로 인해 전황이 불리해지자 황제의 구원마저 내팽개치며[26] 오환에게 의탁하지만 오환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사마씨 일당을 모조리 살해하고 황선에게 화친을 요청한다.[27]
- 조비
형주 전투에서 패배한 조조가 후계자로 낙점한 인물. 조조에 비해 역량이 모자라는 면이 많이 보인다. 사냥을 광적으로 좋아해 이를 말리던 충신들을 쳐내는 폭군의 일면을 보이기도 하고, 당장 인재폭이 확 줄어든 조위의 역량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촉한에 대해 공세를 취하다가 오히려 조진, 우금 등 군부의 인재들을 잃고 등애는 아예 촉한에 항복하는 등 위의 국력을 죄다 깎아먹고 만다. 사실 촉한 역시 익주의 호족들이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28]이었기 때문에 조위가 가만히 수비만 하고 있었다면 오히려 고착화된 사이에 촉의 인재들 황제인 유비와 고참인 관우, 장비, 조운 등을 비롯한 인재들이 손실될 처지였다. 그러나 조위에서 공세를 취하고 패배를 해준 덕분에 촉한은 계속해서 조위를 정벌해야 한다는 명분을 챙길 수 있었고, 관우가 전사하자 그나마 촉한의 공세가 꺾였으나 불과 1년 뒤 조비 본인의 수명이 다해 죽으면서 촉한의 조위정벌론에 결정적인 명분을 실어주면서 조위 멸망의 단초를 마련한 암군이 되었다.
- 조창
조조의 아들. 형주전투에 참가하였으나 한수의 범람으로 인해 퇴로가 끊겨 가후와 함께 포로로 잡혔다. 포로로 잡힌 당시에 황선의 이간책에 넘어가 조비를 불신하게 되었고, 조위로 송환된 뒤에 두 번이나 내부 반란을 주동한다. 처음에는 조조의 생전에 벌어졌던 일이라 조비도 어쩔 수 없이 넘어갔으나, 조비가 패전하자 왕릉의 꼬드김에 넘어가 또 다시 반란을 주동하려 했고, 끝내 왕릉은 삼족이 몰살당하고 조창 본인도 주살당한다. 황선이 기대했던 조위의 세력이 분열되는 효과는 없었기 때문에 군무 쪽에만 재능을 보였을 뿐 정치력이 빵점인 케이스라 볼 수 있겠다.
- 조식
1차 형주 침공전 당시 사마의가 오와 밀약을 맺은 뒤 장료를 대신에 수춘 방면에 부임한다. 이후 촉한의 반간계에 넘어간 조창의 꼬드김에도 위나라를 위해 오히려 조창을 말리는 등 위나라에 대한 충정이 엿보이는 인물. 다만, 조비 역시 조식을 견제하는 입장이었기에 죽음은 면할 수 있었을지언정 군권을 다시는 쥘 수 없었고, 이후로는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다.
- 조예
조비의 아들로, 조비 사후에 후계를 물려받은 황제. 사마의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전권을 몰아주던 조비와는 다르게 사마의에 대해 내내 의심을 거두지 않고, 사냥을 좋아하던 조비와는 다르게 나름 절제된 생활을 하는 등 조비보다는 자질이 낫게 묘사된다.[29] 그러나 이미 조비가 말아먹은 게 워낙에 커서 조예 대에는 이미 관중, 관서, 사례, 형주가 모두 털려있는 등 계한과 비교하여 국력은 강하나 인재가 부족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업성에 포위된 뒤 사로잡히고 만다. 잡힌 상황에서 술에 취해 비굴하게 죽음을 피하는 모습을 보여 장비를 비롯한 모두의 경멸을 샀으나 이것이 가치부전의 계임을 파악한 황선이 조조의 자질을 충분히 가진 조예를 죽일 것을 장비에게 조언하였고, 이에 위장을 풀고 조위가 부흥할 거라고 외치지만 결국 장비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 양수
조식 파벌의 젊은 책사로, 조비가 후계자로 확정되자 은근슬쩍 조창을 부추겨서 판을 뒤엎을 기세를 노린다. 뛰어난 지혜를 보여주는 걸 보면 기재는 기재지만 원 역사처럼 주군의 뜻을 자기 손바닥마냥 들여다본다고 여기는 오만함을 끝내 고치지 못했고,[30] 관우군과 벌이는 형주 공방전 중에 통찰력을 발휘했으나, 조조의 철퇴 의지가 확고하다고 멋대로 결론지어 허저와 서황의 전투 준비를 중단시키는 행위를 저지르게 되고 이에 분노한 조조에 의해 처형당한다.
- 가후
순욱, 순유 사후 조조 세력 최고의 모사. 황선을 이무기로 평가하면서, 용이 되기 전에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령의 나이로 양양 탈환에 참모로 나서며 여러 차례 기책으로 관우와 황선을 위기로 모는 등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나, 장기전으로 흘러가면서 점차 불리해지는 전황을 보고 조조에게 퇴각해야 한다고 진언하지만 이를 듣지 않는 조조를 보고 한탄한다. 결국 손권이 형주를 침공한다는 거짓 밀서를 이용해 조조에게 퇴각 결정을 결심하게 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고, 후위를 맡은 서황이 전사하고 조창과 자신은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포로로 잡히게 된다. 잡힌 후에 황선과 대면하여 황선이 비가 올 거라는 확신을 품은 이유에 대해 묻고, 황선의 답변을 들은 후 처신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신과 달리 태평성대에 대한 열망을 품었던 황선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였다고 한탄한 뒤 황선을 한수에서 날아오른 용이라 평하며 죽는다. 황선 역시 미래의 역사를 알지 못했다면 가후를 절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 평했을 정도로, 황선에게 있어서 최초의 역경이라 할 만한 인물.[31]
- 조상
조진의 아들로, 위나라에 인재가 부족해지자 군을 맡은 인물. 능력은 부족하나 귀족으로서의 허영심이 과도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엄의 사항계를 받아친 만총과 진태의 설계 덕에 위기에 빠진 소패를 함락시킬 수 있었으나, 진등의 아들인 진숙의 조언을 받은 제갈각의 계책으로 휴식의 말미를 줘 버렸고 끝내 황선의 원군이 오기 전까지 함락시키지 못하자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황선을 두려워해 퇴각한다. 이후 황선과의 전투에서 패배를 겪고 나자 주변에 다른 위의 장수들에게 원군을 파견하지 않고 성에 틀어박혀 버렸다.[32] 결국 위 멸망까지 내내 수세적으로 일관하다가 포로의 신세가 되었는데, 장비가 업성에서 조예를 죽이면서 조씨 일족은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다고 선포하였으니 아마 조상도 죽음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다.
5.4. 오
- 손권
오나라의 군주. 여몽이 형남을 공격했다가 어이없이 전사하고 군대도 패주한 이후 촉을 증오하며, 보복할 나날만을 노리고 있다.[33] 심지어 대부분의 신하와 장수들이 위나라와 합비를 치며 북진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도[34] 익양대치에서 자신의 권위를 실추시킨 촉한에 대한 분노만으로 형주 공격만을 고집한다. 그러나 형주 침공의 시점을 위군이 홍수로 인해 퇴각한 이후라는 최악을 골랐고,[35] 비록 촉이 양면전쟁인데다 형주 주둔군이 연이은 전쟁으로 지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해도 오 역시 형주 침공 전략을 설계했을 여몽이 이미 사망한 이후라 미방과 부사인의 내응도 일어나지 않는 등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잘 풀릴리가 없었고, 끝내 손권이 믿고 맡겼던 장수들이 하나둘씩 전사하며[36] 전황이 불리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후퇴해야 함에도 끝내 퇴각하지 않으며 퇴각의 조건으로 유비에게 형주를 모두 반환하라는 말도 안되는 조건을 거는 등 무리수만을 둔다. 결국 장사성에 포위당한 상태에서 관우와 인척관계였던 제갈근이 협상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 정봉의 호위를 받아 수로로 몰래 탈출하는 데는 성공하나, 호위병을 죽여 입막음을 한 조조와는 달리 손권의 퇴각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을 이용해 방통이 소문을 퍼뜨리는 모략을 시행했고, 세인들에게 쥐새끼처럼 수로를 기어서 도망쳤다고 조롱당하는 것을 듣자 홧병이 나 사망한다.
작 중 최악의 암군이라 할 만한데, 형주를 욕심내다가 원 역사에서의 이릉대전을 역전시킨 듯 오나라의 핵심 인재들을 모조리 잃었고 형주의 영유권을 잃은 채 손권 본인은 홧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원 역사의 유선처럼 손등이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유비가 제갈량에게 모든 권한을 실어준 것처럼 어린 손등이 성장할 때까지 잘 보좌할 체계를 잡은 것도 아니었다.[37] 손등의 재임기에는 그나마 군신이 협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으나[38] 인재와 국력의 한계로 오나라는 이미 촉한과 위로부터 나라를 지키기에도 급급한 상황이 되었고, 이러한 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2차 형주 침공전을 일으키나 이마저 패전하고 손등이 죽자 손려의 재임기에 오나라는 국론이 분열나고 말았다.
- 손등
손권의 아들로 손권 사후에 오왕이 되었고, 이후 신하들의 간청으로 오나라 황제가 된다. 인자한 성품에 총명하여 신하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부터 군주가 된 터라 중압감을 느끼고 과로에 시달린 탓에 발육 부진일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다.[39] 촉한의 발전에 위협을 느껴 위와 밀약을 맺고 형주를 침공했으나, 이미 촉한에서는 이를 예상하고 있었고 오나라의 국력은 1차 침공과는 다르게 뒷통수마저 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진 상황이라 패배를 하게 되고, 손등 본인도 손가 특유의 나대는 기질을 자제하지 못해 후방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변의 진언을 물리치고 진격했다가 퇴각하면서 중신인 장소가 자신을 대신해 희생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는 등 정신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원래 병약했던 몸이 더 악화되어 사망하고 만다.
사실 손권과 다르게 손등의 침공은 삼국의 형세 유지를 위한 최후의 발악이나 다름없었다.[40] 다만, 촉한의 주력이 위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혹시 모를 대비책만 남겨놓았음에도 오나라가 이를 뚫을 수 없을 정도로 오나라의 국력과 인재풀은 손권 대에 이미 약화될 대로 약화된 상황이어서 성공하지 못했다.
- 손려
손권의 아들이자 손등의 동생으로, 손등이 사망한 뒤에 오나라의 2대 황제가 된다. 그러나 손권과 손등이 이미 촉에게 패전 후에 사망한 바람에 권위는 이미 실추된데다, 위나라의 공작으로 인해 사실상 위의 제후국 신세로 전락한다. 몸이 점점 쇠약해지다가 육손이 시행한 최후의 비책이 실패하고 사망하자 이에 충격을 받고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 손반
- 여몽
형주를 점령하기 위해 익양 대치 와중에 형주 남부를 공격한다. 그러나 방통과 황선은 이를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고, 여몽은 허장성세로 영릉을 점령하려던 중에 날아온 저격에 맞아 즉사한다.[41] 사실상 주인공 보정에 의해 최초로 사망한 기념비적 인물.
- 육손
여몽의 죽음 이후 오나라의 대장군이 되는 인물.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원 역사의 재능이 어디가지 않아서 거의 정확하게 전황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육손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이미 손권의 삽질로 인해 국력이 약화된 터라 촉한과 연합하여 얻은 강하 외에는 실질적인 성과가 없다시피했다. 오가 정체되어 있는 사이 촉한이 계속 성장하여 위나라마저 기세에 눌리게 되자, 위와 밀약을 맺고 형주를 또다시 기습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한 뒤에는 사실상 위의 속국이 된 셈이나 다름없게 되어 멸망의 단초가 된다.[42] 끝내 이를 타개하고자 오나라의 권력투쟁을 빌미로 황선과 사마의를 오나라의 영내에 모두 끌어들여 난전 중에 죽인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를 예측한 황선의 역공으로 위기에 몰리고 자신 하나의 희생으로 오나라의 항복을 받아준다는 황선의 조건을 받아들여 자결한다. 그의 계략은 반은 성공했는데, 사마의가 육손의 계략에 휘말려 오나라의 영내에 진입하고, 끝내 빠져나가지 못해 황선에게 붙잡혀 죽었기 때문이다.
- 장소
오나라의 신하. 손권은 적벽대전 당시 항복을 주장하던 장소를 멀리하는데 여몽의 사망 이후 형주 침공을 노리던 손권의 눈 밖에 났고, 이 때문에 아예 칩거 상태에서 손권이 사망하자 손오에 대한 기대를 버렸으나, 육손의 설득과 손등의 자질을 보고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 그러나 결국 손등은 2차 형주 침공에서 장소 등의 말을 듣지 않고 최전선까지 나갔다가 역격해오는 촉한의 추격군에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장소는 손등을 온몸으로 보호하다가 화살을 맞고 사망하고 말았다. 손등 사후 손려 재임기에 위와 내통하는 보즐, 여거 등과 손려의 친위세력인 육손, 주거 등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를 중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장소의 사망은 끝내 오의 멸망의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 보즐
손등 사후 손려가 즉위하자 여거와 함께 사마의와 내통하여 오를 사실상 위의 제후국으로 추락시키고 본인의 사치를 충족시키려는 간신.[43] 육손이 오의 재흥책을 제안해도 이를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등 오에게 있어서는 암적인 존재가 되었고, 이에 육손이 보즐에게 협력하는 척 사마의를 오의 영내로 끌어들여 황선과 동귀어진을 시킨다는 고육책을 꺼내드는 계기가 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육손에게 오를 좀먹는 간신으로 여거와 함께 지명되어 육손이 은밀하게 부른 유찬에게 살해당한다.
[1] 그밖에 슬기로운 병영생활을 썼다.[2] 이때는 황선이 전공이 적어서 지위도 낮았고, 유비를 따르는 숙장들이 건재했던 시점이라 곁에서 책략을 짜주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3] 물론 장비가 있긴 하지만 남들 눈에는 잘난 사위 자랑을 못해서 안달이 난 장인어른으로 비춰서 그저 웃음벨(...)[4] 장비는 능력이나 인품을 증명한 명사들에겐 예의 발랐지만, 절대다수의 병졸들에겐 가혹했다.[5] 당시 황선은 장송 일가와의 혼약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한 상황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장비의 사위가 되어 유비 친위 세력의 거두 중 하나로 올라섰고, 계속된 승전으로 황선의 권위가 올라간 덕분에 촉한이 통일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6] 황선도 이를 보면서 나름 경각심을 가지나, 유비는 황선을 자신의 밑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성장해나가면서도 항시 충성스러운 신하로 여기기 때문에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7] 이때 황선은 남만 원정과 북벌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제갈량 방통 다음 가는 책사였고 성도와 형주에 묶여 있는 두 사람에 비해 촉한이 치른 모든 전투에 참가한 실질적인 No.1 군사였다. 그런 황선의 말조차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은 것.[8] 조조가 사마의를 의심해 사마사와 하후휘 간에 강제로 혼약을 맺어준 것과는 결이 좀 다르다. 황선은 자신의 아들이 명문과 혼약을 맺을 경우 유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경계할 것을 우려하여 위연의 딸과 혼약을 맺은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유선이 "나는 황선 당신을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한 셈이다.[9] 이엄을 구원하기 위해 수하인 잠술이 이끄는 수백의 구원군이 파견되었고, 만위와 진태 역시 산중에 숨어 든 이엄을 계속 포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만 잘 먹었다면 끝내 구원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위의 공세를 어느 정도 수습한 뒤에 구원이 도착했으며, 이엄과 같이 포위되었던 아들 이풍은 덕분에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10] 왕준은 황선에게 관평은 관우와 기질이 비슷하므로 자신감이 과도할 수 있으니 이에 반드시 몇번이고 조언을 하라는 언질을 받았다.[11] 작가의 전작인 삼국지 : 촉한대장위연전에서는 등애를 말더듬이로 계속 서술했는데, 작가가 후기에 등애의 말투를 적는 게 힘들었다고 고백했다(...)[12] 황선은 병력 수가 적어 핵심 전력으로 되지는 못하지만, 견제의 역할만에라도 충실하라는 조언을 남겼다.[13] 공을 세우려는 열정 자체는 과할 정도로 높으나, 정작 공을 자랑하는 데 있어서는 소심한 것이 문제였다. 유비의 후계가 된다는 야심이 없었으나, 공을 자랑하는 것조차도 야심을 보이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이 오해할까 지레짐작해 이를 꺼렸기 때문.[14] 물론 이 복수전은 원 역사의 이릉대전의 재림이 될 것이 뻔했다. 오죽하면 주전파로 볼 수 있는 제갈량조차도 복수전은 만류했을 정도.[15] 유비군과 전쟁을 벌이던 중에 손권이 연회를 열면서 제갈자유지려와 아버지와 숙부 중 누가 더 현명한가를 행하자 손권 앞에서는 원 역사처럼 재치를 드러내는데, 이후 아내 관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술버릇이 고약하다, 적이 지척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술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모셔야 할 주군을 잘 고른 것은 숙부님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손권을 깐다.[16] 기산으로 향하며 논쟁하던 마속이 갑자기 황선의 예를 들며 자신의 의견을 귀담아들어주자 제갈각 역시 마속의 식견에 감탄했었다고 고백했고, 이후 서로의 식견을 존중하게 된다.[17] 말이 견제지 대놓고 사지에 몰아서 죽이려고 들었다. 황선은 당하면서야 팽양이 전부 알면서 자신을 사지로 몰았음을 깨닫는다.[18] 적진에 단신으로 가는 것도 위험하지만, 위에 적혔듯이 팽양은 성격이 나빠서 유장 산하 호족이나 신하들과 사이가 매우 나빴다.[19] 작 중 오나라의 2차 형주 침공전 과정에서 마속 휘하의 장수였으나 오나라와 내통하려다가 죽은 극읍의 아들이다. 이 때문에 위나라 측에서도 당연히 촉한 조정에 대한 원망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해 접촉했으나, 극정 본인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20] 심지어 호위장인 허저조차도 조조의 행방을 몰랐으며, 다른 장수들 역시 조조가 난전 중에 간신히 몸을 뺀 것으로 알아차렸다. 조조가 미리 탈출했음을 간파한 유일한 사람은 가후뿐이었는데, 가후는 조조가 없는 위군을 최대한 수습하다가 조창과 함께 사로잡혔다.[21] 탕거산이 크고 풍족한 산이기는 했으나 겨울이면 개울까지 얼어버린다는 사실을 간과했다.[22] 이후 이러한 양상을 2차 형주 침공전에서 남군을 수비하던 조운에게 써먹으려 했으나, 조운은 자신의 창이 붙들리자 바로 놓아버리고 다른 무기를 꺼내들어 주변 장수들을 모조리 참한다. 창을 묶어놓는 희생을 담당했던 서성이 조운에게 '너에게 무는 무엇인가'하고 묻자 조운은 충의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대답하여 장료와의 차이를 보였다.[23] 정작 사마사가 도망쳤다는 걸 들은 황선은 사마의와의 대면에서 너의 아들은 반드시 나와 싸우고 죽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으며 사마의 본인도 황선의 이 말에 부정하지 못했다.[24] 사마의가 오를 완전히 위에 편입시키기 위해 조예의 딸과 손려를 결혼시킬 것을 주장했는데, 딸을 보내놨더니 정작 오는 촉에게 점령당해버렸기 때문. 그나마 포로 교환 형식으로 육율생과 손번을 내주고 다시 돌려받기는 했다.(촉한 역시 손려가 사망해서 손가의 다음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는 손번을 돌려받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25] 사마의도 이런 상황이 펼쳐질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사마사에게 변방에서 웅크리라는 것을 조언한 셈이다.[26] 사마씨 일당이 황제를 구원하지 말고 세력을 보존하자는 말을 들은 제갈탄은 일전에 사마의가 조휴를 구원하지 않고 후퇴한 것을 떠올리며, 자신이 사마씨들의 야심을 몰랐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27] 물론 황선은 장성을 넘어와 하북을 노릴 야심을 보인 오환을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기에 오환 수령의 아들까지 볼모로 요구하여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경우 장성을 넘어온 오환 세력들을 모조리 몰살시키겠다고 선언하였고, 결국 이에 굴복한 오환은 위와 내응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28] 그나마 장송이 호족들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화친론을 최대한 억제하고는 있었으나, 거국적인 공세를 취하기에는 상당히 곤란했다.[29] 원 역사에서는 제갈량 사후 조위의 위기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방탕한 삶을 살았는데, 아무래도 조위가 계속 위기상황이니 그런 면모가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30] 가후가 이에 대해 조언을 해줄까 하다가, 이미 조조에게 밉보인 사람에게 조언해주었다는 것이 들리면 자신의 처신에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31] 팽양의 경우 황선에게 죽을 위기를 겪게 했으나 정작 본인도 처신을 신경 써야 했으므로 계속해서 황선을 견제할 수는 없었고, 여몽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던 황선의 안배에 자신의 능력을 보일 틈도 없이 제거당했다.[32] 이에 환범은 원 역사처럼 "조자단은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당신이 낳은 자식들은 개새끼나 송아지에 불과할 뿐입니다!"라는 대사를 한다.[33] 형주 남부 쟁탈전에서 자신의 친위세력이 손상되어 권위가 상실되었기 때문.[34] 육손마저도 상책은 서주 공략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작중에서는 위나라가 장료마저도 관우 토벌에 동원한 것이 조홍과 하후연의 사망에 대해 유비에게 복수하기 위함이었고, 오와는 아무런 협약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35] 사실 오나라 입장에서도 최대한 위와 촉이 소모된 시점을 골라 쳐들어가는게 맞긴 하다. 작 중에서 육손도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조언은 이미 올린 바가 있었다. 문제는, 소모전 끝에 위나라가 패배한 시점에서 비록 지쳤으나 승리한 촉나라를 치려고 했다는 것. 이 시점에서 수해에 휩쓸려 합비에 주둔했던 장료군마저도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 육손이 말한대로 합비 공략이 상책이었다.[36] 전종은 형주를 침공할 것을 제안한 덕분에 손권이 전쟁에서 공적을 세울 경우 손노반과 맺어줄 것을 약속했으나 황선의 계책에 넘어가 전사했다.[37] 손책 대의 중신인 장소의 경우 원래는 손등을 보좌하지 않고 은거하려 했으나 손등의 자질을 보고 그를 섬기기로 다짐했고, 그나마 장소가 신하들 간에 균형을 잘 조절해주었기에 손등 대에는 신하들 간의 권력투쟁 구도가 발생하지 않았다.[38] 이는 그나마 손등의 재임기에 장료를 전사시키거나, 촉과의 연합으로 강하를 점령하는 등 손권 말년의 패전을 어느정도 수습하는 모습을 보였던 덕분이기도 하다.[39] 황선이 주적을 포로로 잡으면서 손등이 20살의 나이였으나 꼬마로밖에 보이지 않아 병사들이 손등을 알아보지 못해 놓쳤다고 일갈했다.[40] 촉한과 계속 동맹을 유지하면서 서주 방면을 뚫을 수 있긴 하지만, 작중에서는 오나라의 공세 역량 상 촉한에 비해 세력 확장이 매우 더딜 수밖에 없었다.[41] 황선은 원 역사를 알고 있었기에 영릉태수 학보를 직접 마중하며 손권의 서찰을 보여주어 조롱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명궁인 황충과 방덕의 경쟁심을 부추기면서 학보의 앞에 선 장수를 저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결국 둘의 화살이 여몽의 목과 관자놀이를 관통하여 사망한다.[42] 사실 육손 입장에서는 가불기나 마찬가지였다. 촉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위나라를 친다고 해도 손오의 국력 상 합비와 광릉에서 막힐 것이 뻔했고, 그 사이에 촉과 오의 국력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43] 보즐이나 여거도 할 말은 있다. 이 둘은 오의 토착 세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황제에게 기대어 성장해야 했는데, 정작 기대야 했을 손권과 손등은 계속된 패전으로 권위가 실추된데다, 손등이 유언으로 육손을 밀어준 탓에 사실상 버려진 신세가 된 것이다. 즉, 권력의 균형이 사성 호족 쪽으로 크게 쏠려버렸기 때문에 이들은 권력을 위해 위와 영합한 것. 물론, 오나라의 안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외부 세력과 영합한 시점에서 간신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