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7 10:19:57

벨라루스-라트비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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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라트비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중세2.2. 근세2.3. 근대2.4. 20세기2.5. 21세기
3. 라트비아의 벨라루스인4. 관련 문서

1. 개요

역사적으로 라트비아벨라루스는 이웃 나라에다가 다우가바 강 수운을 공유하는 관계로 굉장히 밀접한 관계이지만 오늘날에는 라트비아가 확고하게 반러 성향이고 벨라루스가 친러 성향을 띄면서 벨라루스와 외교적 갈등도 빚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오늘날에는 벨라루스인은 동슬라브, 라트비아인은 발트로 민족 정체성이 확고하게 나뉘어있지만 키예프 공국이 벨라루스로 확장하던 초창기에는 벨라루스에서 발트어족 및 우랄어족 민족들과 슬라브족들 사이의 통혼과 교류가 흔했다. 중세 라트비아에 거주하는 여러 발트어족 민족들은 오늘날 벨라루스의 기원 중 하나로 여겨지는 폴로츠크 공국과 많은 교류를 이루었으나 독일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라트비아를 침략하고 폴로츠크 공국을 몰아내면서 해당 지역은 벨라루스와 본격적으로 분리되었다.

2.2. 근세

벨라루스리투아니아 일대를 지배하던 리투아니아 대공국지그문트 2세 제위 시기에 라트비아 일대를 점령했다. 이후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폴란드 왕국과의 동군연합 체제를 넘어 루블린 조약을 통해 폴란드 리투아니아으로 거듭났다. 17세기 스웨덴폴란드-리투아니아의 분쟁 속에서 라트비아의 북부 지역인 비제메 지역은 스웨덴으로 넘어갔으나, 동부 라트갈레 지역과 쿠를란트 공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시기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귀족들의 권위가 강하고 농노들의 입지가 계속 약화되어 독일인 지주들이 라트비아인 농노들을 착취하는 형태의 사회구조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2.3. 근대

18세기 초 러시아 제국이 팽창하면서 라트비아를 점령하고 이어 폴란드 분할 과정을 통해 벨라루스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벨라루스와 라트비아는 모두 러시아 제국 영토가 되었고 양 지역 사이의 교류가 원활해졌다. 다우가바 강 수운이 다시 벨라루스에서 리가로 국경 제한 없이 열리면서 라트비아 리가는 무역 도시로 부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트비아와 벨라루스는 종교적인 차이로 인적 자원 교류가 한정되어 있었다. 당시 라트비아인들은 독일인들의 영향으로 개신교를 주로 믿고 있었고[1] 독일인들이 도시 상공업을 장악했던 반면 벨라루스인들은 러시아의 영향으로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에서 정교회로 개종했고 도회지에서는 독일인보다는 유대인 인구가 훨씬 많았었다.

2.4. 20세기

1,2차 대전 전간기 당시 라트비아는 독립을 쟁취했던 반면 벨라루스는 소련과 폴란드 영토로 각각 분할되면서 라트비아에서는 벨라루스 혹은 벨라루스인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약했다. 2차대전 이후 양 지역은 모두 소련에 편입되었고 각각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교류가 이루어졌다.

2.5. 21세기

2020년에 벨라루스에서 루카셴카의 장기 독재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되자 라트비아는 벨라루스를 제재했다.

2021년 5월에는 라트비아에서 개최하는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서 현 벨라루스 국기가 아닌 1995년까지 썼던 국기가 계양되면서 벨라루스가 강력 반발했다.#

2021년 8월부터 불거진 벨라루스의 난민 밀어내기(2021년 벨라루스-유럽 연합 국경 위기)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 8월 11일부터 11월 10일까지 국경지대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3. 라트비아의 벨라루스인

오늘날 라트비아의 벨라루스인들은 라트비아인, 러시아인 다음으로 라트비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그룹에 해당한다. 2016년 초 기준 이루어진 인구 조사에서 라트비아 인구의 3,4 %, 6만 6천여 명이 벨라루스인으로 조사되었다. 라트비아 내 벨라루스인 인구를 편의상 러시아계 라트비아인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늘날 라트비아 내 벨라루스인의 대다수는 리가, 다우가프필스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거주한다. 2차대전 이후 라트비아 독일인 인구가 거의 다 추방되고 소련은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등 동슬라브계 민족들을 라트비아에 체계적으로 이주정착시켰고 한 때 1989년 기준 라트비아 내 동슬라브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35%에 달하기도 했다. 소련 해체 이후 라트비아는 1941년 이전부터 라트비아에서 거주한 사람의 후손이 아니면 라트비아어 시험을 통과해야만 라트비아 시민권을 주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라트비아 내 벨라루스인들이 무국적자로 전락하였다. 무국적자 신분으로는 불리한 점이 많지만 라트비아와 러시아, 벨라루스 사이에 자유로운 왕래가 보장되는데다가 라트비아 내 상황이 벨라루스보다 좀 더 나은 관계상 아직 벨라루스인 상당수가 불리한 상황과 사회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라트비아에 잔류하고 있다.

1994년부로 라트비아 내 벨라루스인들은 벨라루스어로 된 신문 "Pramen"을 자체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그리고 라트비아내 벨라루스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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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부 라트갈레인들은 가톨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