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22:12:04

버디 리치

파일:롤링 스톤 로고.svg 선정 가장 위대한 드러머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롤링 스톤이 2016년 가장 위대한 드러머를 선정한 순위다.
1위2위3위4위5위
존 본햄 키스 문 진저 베이커 닐 피어트 할 블레인
6위7위8위9위10위
클라이드 스터블필드 & 존 자보 스타크스 진 크루파 미치 미첼 알 잭슨 주니어 스튜어트 코플랜드
11위12위13위14위15위
베니 벤자민 찰리 와츠 D. J. 폰타나 링고 스타 버디 리치
16위17위18위19위20위
빌 브루포드 테리 보지오 지기 모델리스테 토니 윌리엄스 버나드 퍼디
21위22위23위24위25위
이안 페이스 레번 헬름 엘빈 존스 스티브 갯 얼 팔머
26위27위28위29위30위
대니 케리 데이브 그롤 카마인 어피스 칼튼 바렛 클리프톤 제임스
31위32위33위34위35위
로저 호킨스 제임스 갯슨 토니 앨런 미키 하트 & 빌 크로이츠만 프레드 벨로
36위37위38위39위40위
스티브 스미스 제프 포카로 짐 켈트너 티키 펄우드 잭 디조넷
41위42위43위44위45위
카터 보포드 빌 워드 필 콜린스 제리 앨리슨 빌리 코범
46위47위48위49위50위
데이비드 가리발디 데이브 롬바르도 존 프렌치 비니 콜라이우타 코지 파웰
51위부터는 출처 참고
같이 보기: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1 / 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파일:롤링 스톤 로고.svg 독자 선정 가장 위대한 드러머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롤링 스톤의 2011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로 뽑은 "가장 위대한 드러머" 순위다
1위2위3위4위5위
존 본햄 키스 문 닐 피어트 데이브 그롤 링고 스타
6위7위8위9위10위
버디 리치 스튜어트 코플랜드 퀘스트러브 진저 베이커 저스틴 슈리브
출처 }}}}}}}}}
<colbgcolor=#000><colcolor=#fff> 버디 리치
Buddy Rich
파일:Buddy Rich.jpg
본명 버나드 버디 리치
Bernard Buddy Rich
출생 1917년 9월 30일
뉴욕 주 뉴욕 시
사망 1987년 4월 2일 (향년 69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드러머, 송라이터, 밴드리더
장르 재즈, 빅 밴드, 스윙
가족 배우자 마리 앨리슨(1923년생, 2020년 사망)
딸 캐시 리치(1954년생)
별명 Traps
The Drum Wonder
Mr. Drums
활동 1921년 ~ 1987년
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버디 리치 빅 밴드)
1. 개요2. 생애
2.1. 사망
3. 연주4. 기타

[clearfix]

1. 개요

파일:Rich.jpg
미국 태생의 재즈 드러머. 아트 테일러, 아트 블래키, 엘빈 존스 등과 함께 재즈계 및 온 음악계를 통틀어서 가장 명망 높은 드럼 연주자이며, 이러한 그의 명성은 살아생전부터 그의 사후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의 뒤를 따르는 수식어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드러머'로 요약할 수 있다.

2. 생애

1917년 9월 30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계 가정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1] 태어났다. 2살 때부터 극장에서 보드빌 공연 사업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 무대에 자주 섰으며, 공연 중간 휴식시간 때 연주자석에 있는 드럼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후 그가 드럼을 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 챈 아버지 로버트 리치에 의해 본격적으로 드럼 독학을 시작하며 4살 때 브로드웨이의 공연장에서 성조기여 영원하라의 선율에 맞춰 드럼을 완주할 만큼 빠른 실력 성장을 보인다. 이 시기에 드러머 외에도 탭댄서와 가수로도 활동한 전적이 있다.[2] 이후 유년기와 청소년기 내내 미국 전역과 호주 등의 국가를 돌아다니며 순회 공연을 하였고, 15살이 되던 해인 1932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어린 연예인이 되었다.[3]

활동을 개시한 이래로 아티 쇼토미 도시, 베니 굿맨[4], 찰리 파커 등 수많은 연주자들과 협연을 해왔으며, 1940년대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빅 밴드의 리더가 되어 이끌기도 했다. 그 밖에 재즈 음악을 소재로 삼은 영화 위플래쉬에서 주인공 앤드류 네이먼의 롤 모델로 언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9년에 맥스 로치와 합작해서 Rich versus Roach도 냈다.

사후 30년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최고의 드럼 연주자를 논할 때면 버디 리치의 이름이 결코 빠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연주는 고도의 테크닉과 역동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자주 공연 중간에 몇 분에 달하는 긴 솔로 연주를 들려주며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을 유도한 바 있는데, 이는 탁월한 연주 능력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퍼포먼스였음이 자명하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드러머라는 칭호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규 교육을 한번도 받지 않았으며, 악보도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신 그는 곡을 통째로 달달 외웠고, 그 안에서 본인만의 스타일과 기교를 넣어 자신만의 연주법을 찾았다.

평생을 재즈 한 우물만 파는 음악 생활을 했는데, 이 태동하던 시기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컨트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위플래쉬에서는 주인공 앤드류의 방에 붙어있는 그의 포스터에 "(드럼 연주) 능력이 부족한 연주자는 록 밴드에서나 연주하게 된다."라는 그의 어록이 붙어 있을 정도. 그런 본인의 신념과는 별도로 록 드러머들이 인사를 나누려 찾아왔을 때는 항상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재즈 드럼은 물론이고 록 드럼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레드 제플린존 본햄, 딥 퍼플이언 페이스, 블랙 사바스빌 워드, ELP의 칼 파머, 제네시스필 콜린스 등 록의 역사를 빛낸 수많은 드러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퀸(밴드)로저 테일러 역시, 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순수하게 기술만 본다면 버디 리치가 최고라고 말한 바 있다.
1981년 더 머펫 쇼에 출연해서 머펫 중 하나인 애니멀과 드럼 배틀을 선보이는 등 코믹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애니멀의 드럼 연주를 맡은 사람은 로니 베럴(1926~2002)이라는 드러머다.

조니 카슨투나잇 쇼를 진행하던 시기에 게스트로 자주 출연하였다. 1960년대 후반 첫 출연한 후 1980년대 중반까지 얼굴을 많이 비추었으며, 출연분 후반부마다 투나잇 쇼 밴드와 함께 드럼 공연과 솔로 연주를 보여주었다. 현재도 유튜브에 당시 방영분이 많이 남아 있다.

2.1. 사망

1983년, 심장질환으로 인해 관상동맥우회 수술을 받고 척추 문제로 추간판 두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뒤, 의사에게 계속 드럼을 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지만, 1개월도 채 되지 않아 투나잇 쇼에 출연하여 현란한 드럼 연주를 선보였다.[5] 여담으로 1940년대 당시 밴드에서 함께 활동하며 자주 주먹다짐을 했던 프랭크 시나트라가 이때 그의 병문안을 와준 적도 있다고 한다.

이후 사망 직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지만 1987년 3월 즈음에 왼쪽 몸에서 마비 증세를 느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며, 뇌종양 진단을 받고 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에도 틈틈이 병원을 방문해 건강검진을 받았다.

1987년 4월 2일, 버디 리치는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사망 이전 마지막으로 연주한 노래는 1987년 1월 9일 PBS 방송 녹화에 출연하여 오케스트라와 합주한 Hawaiian War Chant 였다.[6]

3. 연주

실력파 드러머 답게 엄청난 속도의 속주가 가능하다. 유튜브에 수많은 연주 영상이 있는데, 아래는 주요 연주 영상이다.
솔로 연주 도중 드럼스틱이 부러졌는데[7] 부러진 드럼스틱을 고쳐잡아 연주를 이어간 뒤, 재빨리 새로운 드럼스틱으로 바꿔 끊김없이 이어가는 모습은 가히 놀라울 정도.[8]
1982년 8월 20일 도미니카 공화국 라이브 공연에서. 이때 버디 리치는 이미 심장이 많이 좋지 않은 상태였고, 저 공연을 하며 경미한 심장마비가 왔지만 끝까지 공연을 끝내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 뒤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4. 기타

  • 버디 리치는 트래디셔널 그립을 고수하는 드러머 중 하난데, 본인은 매치드 그립으로 드럼을 치는 것은 불편하며, 옳지 않다고 한다. 대신 톰톰을 칠 때는 각도 상 트래디셔널 그립을 적용하기 불편해서 매치드 그립을 사용하는데, 그 모습[9] 을 보면 트래디셔널 그립으로 쳤을 때와 실력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 딸 캐시의 아들이자 버디 리치의 손자인 닉 리치도 드러머로 활동 중이다. 2살 때 할아버지 버디 리치의 무릎 위에서 처음 드럼을 쳐 봤다고 한다.#
  • 생전 한 성깔을 했었다고 한다. 빅 밴드를 이끌며 연습을 할 때에도 비속어가 난무했으며, 이는 녹음 자료로도 남아 있다. #[10] 또한 토미 도시의 밴드에서 활동할 때 같은 밴드에 있던 프랭크 시나트라와 자주 싸웠던 설도 유명하고, 더스티 스프링필드에게 창녀(Fucking broad)라고 막말을 했다가 싸대기를 맞은 일도 있다. #
  • 가라테 유단자였으며, 검은띠였다고 한다. 또한 유도도 배웠다. 가라테 수련이 체력 단련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2016년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드러머에 15위로 랭크되었다.


[1] 이 중 버디 리치의 둘째 누나인 조세핀 리치(Josephine Moe Rich, 1914~1993)가 1994년 제작된 버디 리치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인 Jazz legends: Buddy Rich에서 인터뷰 장면으로 짤막하게 등장한다.[2] 1950년대까지도 공연에서 춤과 노래 실력을 뽐냈으나, 1960년대 이후로 춤은 접었으며, 더이상 추지 않는다고 밝혔다.[3] 첫번째는 배우 재키 쿠건(Jackie coogan, 1914~1984)이었는데, 버디 리치처럼 보드빌 사업을 하는 집안 출신이었다.[4] 다만 베니는 버디보다는 진 크루파를 드러머로서 더 신임했다.[5] 원래부터 심장이 좋지 않아 이미 1967년 한차례 심장 수술을 받은 상태였다.[6] 여담으로 이 노래는 당시로부터 45년 전인 1942년 출연한 Ship Ahoy라는 영화에서 버디 리치 본인이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7] 1972년 ‘딕 카벳 쇼’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였을 때의 녹화본으로, 같은 방송의 다음 회차에 출연하여 드럼 연주를 선보일 때도 또 스틱이 부러져버린다.[8] 영상 2분 22초경[9] 참고로 해당 영상 초반의 비브라폰 공연 장면에서 등장하는 색소폰 연주자는 버디 리치의 남동생인 미키 리치(Martin Mickey Rich, 1923~1989)다.[10] 버디 리치는 생전 밴드를 상당히 빡세게 굴리기로 유명했는데, 너무 빡빡해서 얼마 안가 자진탈퇴하는 연주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실력을 인정받아 밴드에서 오랫동안 머무른 연주자도 있었는데, 버디 리치가 사망한 해까지 12년 동안 활동한 색소포니스트 스티브 마커스(Steve Marcus, 1931~2005)가 대표적이다. 버클리 음악대학 출신 답게 실력파라 밴드 공연에서 혼자 색소폰 독주를 하는 일이 많았다. 밴드 연주자 좌석 중 맨 앞줄 최좌측이 지정석이며, 파마 머리를 하고 다녀 라이브 공연 영상을 보면 눈에 잘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