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만화가 박무직의 논란 및 사건사고를 정리하고 있다.2. 목록
2.1. HOTEL 공모전 수상 논란
일본 진출 초기 메이저잡지로의 진출을 위해 제자의 작품을 가져가 재작화하여 내놓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리뉴얼 대상이 됐던 해당 작품 자체는 '순수 제자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박무직 화실에서 나온 작품'으로 보는게 올바르다. 문제가 된 단편 <HOTEL>은 원안/구성 박무직에 작화는 제자인 박지홍이 하여 국내 공모전에서 수상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애초에 내용 자체가 박무직의 작품이다 보니 작품자체의 컬러는 박무직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요소가 많았다. 작품에 참여한 파트를 밝힌 사항이 좀 독특한데 '원작'이나 '글' 혹은 '스토리'가 아니라 '원안'이나 '구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볼 때, 단순히 원작이나 시나리오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콘티 단계까지는 박무직이 한 것으로 보인다.결국 이 논란의 귀결은 박지홍이 스승의 원안과 콘티를 받은 다음에 그 부분을 숨기고 자신의 독자적인 작품인양 한국 공모전에 당선된 것이든지 박무직이 제자의 당선작을 재탕해서 일본 공모전에 당선된 것 둘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다.
즉 "베테랑 작가인 박무직이 사실상 모든 걸 한 작품인 <HOTEL>이 (신인) 공모전 수상을 했던 것이 옳은 일이었나?"에 대한 논란[1], (일본에서 재차 수상한 이후에는) "한 공모전에 수상한 작품을 재탕하여 다른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이라고 할 수 있다.[2]. 물론 박무직 명의로 발표된 <HOTEL>은 박지홍 명의로 발표된 <HOTEL>의 리뉴얼이나 감독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탕'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3] 실제로 일본 측에서도 박무직이 아니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수준급 작화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2004년 동아 사이언스 과학기술창작문예 만화부문 수상작 리스트에는 작가로서 박지홍 이름만 있고 박무직 이름은 없었다. 출판된 수상작 모음집에도 박무직 이름은 없다.# 공모전 당선을 위해 프로작가가 스토리를 쓴 사실을 일부러 숨긴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던 대목.
무엇보다도, HOTEL이 당선되었던 동아사이언스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은 신인작가 지원을 위한 공모전이었다는 것이 문제다.[4][5] 그러니까 이 논란은, 프로작가의 공모전 참가나 재탕 출품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프로가 나올 수 없는 신인작가 지원 목적의 공모전에 문하생 이름을 빌려서 출품해서 당선되었고 상금도 받아 챙긴 행위 (그게 아니라면 신인작가가 스승인 프로작가의 스토리와 원안을 받은 후 그 사실을 숨기고 출품하여 당선되고, 상금도 받아챙긴 행위)가 핵심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2.2. 이원복 비판
만화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내성적인 다른 만화가들에 비해 능동적인 편이라 이원복의 병맛스러운 순정만화 비판[6]을 적절하게 깨부수고 오히려 이원복의 그림체가 서양 카툰을 흉내낸 면[7]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원복 본인부터가 일본만화가 치바 테츠야 만화를 표절하던 사람인지라 박무직만 이원복을 비판한 게 아니라 많은 만화가들에게도 덩달아 일본 만화를 그대로 표절하던 양반이 나중에는 난데없이 서구풍 만화가 으뜸이라고 하고 일본만화 따라한다고 비난할 자격있냐고 까였기에 당시에는 박무직에 대한 비난은 그리 없었다.2.3. 도서대여점 논쟁
당대 작가들에 비해 권리를 주장하는 데에 적극적인 만화가였으며 한때 도서대여점 논쟁을 주도하기도 했다.[8] 주도만 하고서 나중에 뒤로 쏙 빠져버렸다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대여점 이야기는 꾸준히 이야기했다. 다만 본업인 만화가 일과 코믹스투데이 원고료 미지급 사건 등 여러가지 일이 겹친터라 초기 여론형성에 주력하고 빠졌다고 보는게 맞다. 실제로 이 시기 널리 퍼져서 소위 '작가들의 권리를 생각하는 의식있는 독자들'을 스스로 뭉치도록 만든 '자유의 검은 리본'이라는 심볼은, (황미나의 양해를 구해) '황미나가 만든 것으로 하고' 사실은 박무직이 만들고 퍼뜨린 심볼이다. 현역작가 중 거의 유일하게 대놓고 활동하던 박무직이 빠진 이후에도 독자들을 중심으로 이 '검은 리본' 심볼 아래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박무직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여점 논란에서 사라졌다고 보긴 힘들다.2.4. manga/manhwa 논란
하이텔 만화창작동호회에서도 활동했었는데 (아이디:einsteiN) '외국에서는 모두들 만화를 망가라고 부르니 우리도 망가라고 불러야 한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망가(manga)는 일본 만화를 뜻하는 말이지 만화 일반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반발이 심했던 주장이다.[9][10]2.5. 문하생 열정페이 논란
2000년도 초중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문하생 공고도 여러모로 화제가 된 바 있다. '○○ 구합니다' 정도의 내용이 전부인 일반적인 모집 공고와 달리 일주일의 작업량과 문하생들에게 내주는 '숙제'의 내용과 정기적으로 하는 '독서토론'의 내용 등등 거의 커리큘럼 공고 수준으로 자세했던 것. 정확한 액수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돈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잘 하지 않는 편인 다른 문하생 공고에 비해 문하생은 어느 정도 일을 하고 어느 정도를 받고 어느 정도가 되면 어시스턴트로 취급해 어느 만큼을 준다는 식으로 자세히 적어놓기도 했다.원론적으로 보자면 틀릴 거 없는 공고였지만 상대적으로 문하생 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만화가들과 지나치게 빡쎄보이는(?) 내용이 거슬렸던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단순히 문하생 문의를 하는 것만으로도 미리 고민을 하는 지망생들도 있었고, 반면 만화학원 대신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문하생 모집란을 살펴보는 지망생들도 있었기 때문. 글만 살펴봐도 '들어가기 어려워보였기 때문'에 어그로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2014년 9월 13일 일본 화실에서 1년 가까이 일하다가 나온 한국인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노동착취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허구한날 자뻑질에 자기는 명품을 사고 휴일까지 지키면서, 월급날마다 어시스턴트에게 짜증을 낸다거나 초과근무, 휴일 무시는 기본에 약속한 돈도 제대로 주지 않고 쫒겨나듯 나왔다고.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고, 한국에서도 별 차이가 없었다는 다른 사람들의 증언도 SNS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아래는 순서별로 네이버 카페 방방 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에서 있은 어시턴트들의 증언과 박무직 작가의 해명을 정리한 것이다. 이대로는 결국 자가당착의 일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 어시 증언 증언1 증언 2
2.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1 해명2
3. 어시 증언과 박무직 작가의 답글 해명 증언3 해명3
4.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4 해명5
5. 어시 증언 증언4 증언5 증언6
6.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6
7. 어시 증언 증언7
8.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7 이것이 박무직 작가의 이번 사태 마지막 글이다.
9. 어시 증언 증언8 증언9
이후에도 어시들의 증언이 추가되었다. 여기에서는 증언1에 이어 매니저인 박무직 작가 아내의 문제점도 나온다(증언10).2.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1 해명2
3. 어시 증언과 박무직 작가의 답글 해명 증언3 해명3
4.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4 해명5
5. 어시 증언 증언4 증언5 증언6
6.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6
7. 어시 증언 증언7
8.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7 이것이 박무직 작가의 이번 사태 마지막 글이다.
9. 어시 증언 증언8 증언9
박무직 작가와 일하는 어시스트들의 불만은 경제적 대우, 인격 모욕, 언행불일치 등에 있다. 특히 화가 날 때 감정을 조절할 줄 모르는 점이 큰데, 예전에는 작업이 잘 안되거나 불만족스러우면 어시스트나 문하생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부수거나 했고, 현재는 거기에 더해 욕까지 했다는 증언이 여럿 나왔다. 그런 것에 질려 그만두려는 어시스트 등에게는 "출판사에 못 들어가게 하겠다." 식으로 협박도 일삼았다고 한다.
또한 매니저를 맡고 있는 박무직의 부인 역시 어시스트들이 박무직 화실을 떠나는 여러 원인을 제공했다. 박무직 작가의 아내는 고생하는 어시들 앞에서 남편에게 명품 가방이나 옷을 사달라거나 해외 여행을 시켜달라고 수시로 조르고, 작가도 아닌 입장에서 상관처럼 굴면서 어시들에게 화를 낸다던가 집안일 등 사적인 감정을 어시들에게 푼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여 박무직 작가 이상으로 원성을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박무직 화실 경험자들은 매니저(박무직의 아내)를 화실에서 퇴출시키고, 그녀가 어시스트와 화실의 일에 간섭하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
더구나 박무직 작가의 해명글이나 이와 관련된 미디어스 기사에 아내에게 외제차를 두 대나 사주면서 경제적 여유가 줄어든 것이 어시스트에게 박한 대우를 한 원인 중 하나로 나오고, 어시스트들이 박무직 아내가 기존의 옷과 가방 외에 명품의 관심이 외제차로 옮겨졌고, 평소 그녀가 그런 것을 사 줄 것을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렇게 여러 문제가 불거져 어시스트 등 한국의 만화 지망생들에게 박무직 작가의 인식은 상당히 나빠졌다. 박무직 작가의 인덕이나 대인 관계는 현재 화실에 장기 근속 어시스트가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되어 언론에 기사가 실렸고, 인터넷 방송에서도 이 일이 언급되었다.
1. 2014년 9월 17일 미디어스에 성상민 만화평론가가 쓴 '그 만화가는 어떻게 '악덕 업주'가 되고 말았는가'
원문기사
2. 2014년 9월 20일 대작스멜22화-대스 헤럴드 트리뷴에도 이 내용이 나온다. 10분 30초 이후부터 박무직 작가 관련 언급이 나온다.
링크는 최신 회차로 연결되니 22화를 찾아가야 한다.
결국 이로 인해 박무직도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에 해당하는 인물이 되었다. 과거 월간 키노 지에서 한국만화 병폐를 그리도 성토하고 인터넷에서 지적했지만 그렇게 잘난척 하던 본인도 갑이 되자 문하생을 저렇게 착취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7~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만화계에서 일어나던 일과 전혀 차이가 없다. 덕분에 2000년 초반까지 인터넷에서 박무직을 까던 만화동호회 사이트 회원들은 이 일을 이야기하며 박무직도 그리도 잘난 척 했는데 정작 자신도 그러한 병폐를 계승했을 뿐, 여태 하던 비난이 그야말로 개소리라고 비아냥을 보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예술계에서 아마추어와 프로를 막론하고 이러한 일은 오프라인과 인터넷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1] 공모전에 따라서는 신인으로 대상을 한정하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HOTEL이 수상한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은 신인작가를 위한 공모전이 맞다.[2] 재탕문제는 조금 더 까다로운데, 공모전이 출품작에 대한 작가의 권리를 어느 정도로 보장하느냐 따라 다르다. 괜히 대부분의 공모전에서 출품작 권리를 주최측이 가져간다고 명시된게 아니다.[3] 설령 '리뉴얼'이나 '감독판'이라고 한다면 더욱 공모전의 규약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주의가 필요.[4] 이 공모전에 관한 기사를 확인해봐도 분명히 신인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공모전이라고 써있다. 이하 기사 내용 발췌.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은 과학소설, 논픽션, 만화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신인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과학기술부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공모전이다"[5] 신인작가 지원 공모전에 기성작가 이름을 내걸 수 없어서인지, 당시 출판된 수상작품집에도 '만화 부문 수상작 HOTEL, SINCE 2079 _ 박지홍'라고만 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심사위원 이두호 명의로 나온 만화부문 심사평을 봐도 심사 당시에 박무직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처음 대회라서인지 수상작이라고 내세울만한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몇몇 작품은 기존학습지 만화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Hotel:Since 2079'를 수상작으로 뽑은 것은 작품을 준비한 작가를 격려하고 다음에는 더 뛰어난 작품을 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관심과 많은 응모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상작으로 선정한 'Hotel:Since 2079'는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그림체와 밋밋한 이야기 전개로 참신함과 재미를 반감시킨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 소재가 돋보였다."
실제로는 프로만화가가 만든 스토리인데 "밋밋한 이야기 전개로 참신함과 재미가 반감"되었다고 써있다. 공모전 출품 당시 박무직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증거다.[6] 한국, 일본 순정만화는 동양인 인물도 서양인처럼 그린다는 주장을 하며 깐 적이 있다. 그림체 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일본만화나 그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만화들의 머리색깔-흑발과 백발의 문제는 테제와 안티테제의 관계에서 시작해 발전한 부분으로, 이걸 '서양인 흉내'라는 개념으로 보는 건 잘못된 시각이다. 이런 식의 비판은 이원복 뿐만 아니라 탈망가를 주장하는 만화가들이나 독자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이다. 다만 서구적 미의 기준이 식민지배와 대중매체를 통해 세계적으로 퍼진 것은 사실이고, 일본 만화 역시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단순히 머리색의 문제가 아니라 외모의 문제인 것. 그런데 재미있게도 모에한 그림체가 유행하면서 과거의 서구적 외모의 요소가 대부분 사라졌다.[7] 여기에는 표절 논란도 많다. 벨기에 및 유럽 만화 장면을 그대로 베꼈기에 이원복 비판론자들은 일본 만화 표절을 그리도 비난하던 이원복은 정작 유럽 만화를 베끼냐고 까댔다. 이에 이원복은 영향을 인정하긴 했어도 표절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 말도 일본 만화에 대한 표절 논란에서 종종 보이던 것이라 내로남불이기에 더 까였다.[8]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지속적으로 참여한 현역작가. 발단이 된 글도 그렇지만 다른 작가들의 경우 본인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작품활동이 바빠서라도 적극적으로 독자들과 함께하는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 편이었다.[9] 이 주장은 <NEW 무일푼 만화교실>의 부록에도 등장한다. 우리나라 만화가 가진 특질은 서구권만화와 달라 그들처럼 comics로 번역할 수는 없고(근데 일본의 그 '망가'도 서양에서 manga로 부르기도 하지만 Japanese comics라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우리나라 만화의 직접적인 뿌리격인 일본만화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차라리 manga라고 부르는게 낫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골자였다.[10] 한국만화의 뿌리가 일본만화라는 주장 자체는 나올 수도 있다. 국내주류 만화계라는 조건을 붙인다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익숙한 만화의 페이지 연출, 컷 연출, 기호 표현, 내러티브 전개 방식의 대부분은 그 방식 자체의 기원은 어찌됐든 한국은 일본만화에서 직접적으로 영향 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주류를 이루는 만화잡지 연재-단행본 형태의 만화 시스템에 국한된 것으로 서양 만화나 흔히 말하는 카툰 쪽에 영향받은 영역을 싹 무시하는 형태다. 매체의 한계로 시장이 크지 않았을 뿐이지 개별 작품으로 따지면 사회적 영향은 무시못할 정도로 큰게 시사만화 같은 장르다. 이들은 피너츠나 신문삽화, 소설 삽화 등의 서양매체에서 영향받은 것이 더 많다. 또한 기존에도 일부는 영향받더라도 독자적이거나 기존에 내려오던 만화가 아닌 회화의 기법을 도입하는 등의 시도가 없던 것도 아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박무직은 이런 것들을 싸그리 무시한 셈. 그리고 무엇보다 설령 한국의 만화가 100% 일본만화의 계보였다고 하더라도 만화(애초에 망가의 직역이기도 하다)를 manga로 부를 이유는 없다. 미국을 국내에서 'United states'나 'America'로 고쳐 쓸 이유가 없듯이 말이다. 애초에 서양에서 manga란 단어를 쓰는 이유는 자국의 comics와 구분해서 쓸 단어가 필요할 때 원어를 음차한 것 뿐이다.
"처음 대회라서인지 수상작이라고 내세울만한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몇몇 작품은 기존학습지 만화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Hotel:Since 2079'를 수상작으로 뽑은 것은 작품을 준비한 작가를 격려하고 다음에는 더 뛰어난 작품을 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관심과 많은 응모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상작으로 선정한 'Hotel:Since 2079'는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그림체와 밋밋한 이야기 전개로 참신함과 재미를 반감시킨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 소재가 돋보였다."
실제로는 프로만화가가 만든 스토리인데 "밋밋한 이야기 전개로 참신함과 재미가 반감"되었다고 써있다. 공모전 출품 당시 박무직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증거다.[6] 한국, 일본 순정만화는 동양인 인물도 서양인처럼 그린다는 주장을 하며 깐 적이 있다. 그림체 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일본만화나 그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만화들의 머리색깔-흑발과 백발의 문제는 테제와 안티테제의 관계에서 시작해 발전한 부분으로, 이걸 '서양인 흉내'라는 개념으로 보는 건 잘못된 시각이다. 이런 식의 비판은 이원복 뿐만 아니라 탈망가를 주장하는 만화가들이나 독자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이다. 다만 서구적 미의 기준이 식민지배와 대중매체를 통해 세계적으로 퍼진 것은 사실이고, 일본 만화 역시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단순히 머리색의 문제가 아니라 외모의 문제인 것. 그런데 재미있게도 모에한 그림체가 유행하면서 과거의 서구적 외모의 요소가 대부분 사라졌다.[7] 여기에는 표절 논란도 많다. 벨기에 및 유럽 만화 장면을 그대로 베꼈기에 이원복 비판론자들은 일본 만화 표절을 그리도 비난하던 이원복은 정작 유럽 만화를 베끼냐고 까댔다. 이에 이원복은 영향을 인정하긴 했어도 표절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 말도 일본 만화에 대한 표절 논란에서 종종 보이던 것이라 내로남불이기에 더 까였다.[8]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지속적으로 참여한 현역작가. 발단이 된 글도 그렇지만 다른 작가들의 경우 본인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작품활동이 바빠서라도 적극적으로 독자들과 함께하는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 편이었다.[9] 이 주장은 <NEW 무일푼 만화교실>의 부록에도 등장한다. 우리나라 만화가 가진 특질은 서구권만화와 달라 그들처럼 comics로 번역할 수는 없고(근데 일본의 그 '망가'도 서양에서 manga로 부르기도 하지만 Japanese comics라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우리나라 만화의 직접적인 뿌리격인 일본만화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차라리 manga라고 부르는게 낫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골자였다.[10] 한국만화의 뿌리가 일본만화라는 주장 자체는 나올 수도 있다. 국내주류 만화계라는 조건을 붙인다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익숙한 만화의 페이지 연출, 컷 연출, 기호 표현, 내러티브 전개 방식의 대부분은 그 방식 자체의 기원은 어찌됐든 한국은 일본만화에서 직접적으로 영향 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주류를 이루는 만화잡지 연재-단행본 형태의 만화 시스템에 국한된 것으로 서양 만화나 흔히 말하는 카툰 쪽에 영향받은 영역을 싹 무시하는 형태다. 매체의 한계로 시장이 크지 않았을 뿐이지 개별 작품으로 따지면 사회적 영향은 무시못할 정도로 큰게 시사만화 같은 장르다. 이들은 피너츠나 신문삽화, 소설 삽화 등의 서양매체에서 영향받은 것이 더 많다. 또한 기존에도 일부는 영향받더라도 독자적이거나 기존에 내려오던 만화가 아닌 회화의 기법을 도입하는 등의 시도가 없던 것도 아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박무직은 이런 것들을 싸그리 무시한 셈. 그리고 무엇보다 설령 한국의 만화가 100% 일본만화의 계보였다고 하더라도 만화(애초에 망가의 직역이기도 하다)를 manga로 부를 이유는 없다. 미국을 국내에서 'United states'나 'America'로 고쳐 쓸 이유가 없듯이 말이다. 애초에 서양에서 manga란 단어를 쓰는 이유는 자국의 comics와 구분해서 쓸 단어가 필요할 때 원어를 음차한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