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03 12:17:08

바셀리오스 클레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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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3대: 티루바난타푸람 대주교
제3-4대: 티루바난타푸람 상급대주교-카톨리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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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티루바난타푸람 상급대주교
<colbgcolor=#c9434b,#c9434b><colcolor=#fff,#fff> 제4대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수장
바셀리오스 클레미스
ബസേലിയോസ് കർദ്ദിനാൾ
사제급 추기경
파일:Cardinal_Baselios_Cleemis_Cardinal_Thottunkal.jpg
출생 1959년 6월 15일 ([age(1959-06-15)]세)
인도 공화국 케랄라주 티루발라 묵쿠르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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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국적)
사제 수품 1986년 6월 11일
주교 임명 2001년 6월 18일 북미-유럽 사도좌 순시관 겸 티루바난타푸람 상급대교구 보좌주교 선출[1][2]
2003년 9월 11일 티루발라교구장 선출
2007년 2월 8일 티루바난타푸람 상급대교구장 선출
재임기간 북미-유럽 사도좌 순시관 겸 티루바난타푸람 상급대교구 보좌주교
2001년 6월 18일 ~ 2003년 9월 11일
제6대 티루발라교구장
2003년 9월 11일 ~ 2006년 6월 10일
초대 티루발라대교구장[3]
2006년 6월 10일 ~ 2007년 2월 8일
제2대 티루바난타푸람 상급대교구장
2007년 2월 8일 ~ 현직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수장
2007년 2월 8일 ~ 현직
추기경
2012년 11월 24일 ~ 현직
파일:Coat_of_arms_of_Baselios_Cleemis.svg
TO UNITE IN LOVE
사랑으로 하나되어

1. 개요2. 생애
2.1. 초기 생애2.2. 주교 수품 이후
2.2.1. 사도좌 순시관 시기2.2.2. 티루발라교구장 시기
2.3. 상급대주교 선출 이후
2.3.1. 추기경 서임2.3.2. 2025년 콘클라베에서

1. 개요

바셀리오스 클레미스(ബസേലിയോസ് കർദ്ദിനാൾ)는 시로말랑카라 가톨릭의 네 번째 수장이며 제2대 티루바난타푸람 상급대주교이다. 또한 가톨릭교회의 추기경이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바셀리오스 클레미스는 이사악 토툼칼(Isaac Thottumkal)이라는 이름으로 1960년 6월 15일, 인도 케랄라주의 파타남티타(Pathanamthitta) 지구에 위치한 무쿠르(Mukkoor, 말라팔리(Mallappally) 근처)에서 태어났다. 토툼칼은 전통 깊은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토툼칼은 쿠난타남(Kunnanthanam)의 성 마리아 초등학교와 안니카드(Anickad)의 성 마리아 고등학교에서 초등 및 중등 교육을 받았다. 초중등 교육 이수 이후 1976년 6월에 티루발라(Tiruvalla)의 아기 마리아 소신학교(Infant Mary Minor Seminary)에 입학하였으며, 이후 알루바(Aluva)의 성 요셉 교황청립 철학학교(St. Joseph’s Pontifical Institute of Philosophy)에서 철학을, 푸네(Pune)의 교황청립 신학교(Papal Seminary)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986년 6월 11일 사제품을 받은 후, 토툼칼 신부는 벵갈루루(Bengaluru)의 다르마람 신학대학(Dharmaram College)에서 1989년까지 신학 석사 과정을 이수하였다. 이어 1997년에는 로마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청립 대학교(Pontifical University of St. Thomas Aquinas, Angelicum)로 유학하여 에큐메니칼 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나서 인도로 돌아온 토툼칼 신부는 바테리(Bathery) 교구에서 본당 주임신부와 신학교 영성지도 사제로 사목하였으며, 1997년부터는 교구 서기로, 1998년부터는 총대리로 임명되어 사목 행정과 성소 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2.2. 주교 수품 이후

2.2.1. 사도좌 순시관 시기

2001년 6월, 토툼칼 신부는 차이알룸(Chaialum)의 명의주교이자 티루바난타푸람(Thiruvananthapuram) 대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8월 15일 주교로 서품되었으며, 주교로서 '이사악 마르[4] 클레미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로 하였다. 더불어 그는 2003년까지 북미와 유럽 지역에 거주하는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사도좌 순시관으로도 봉사하였다.

사도좌 순시관 재임 당시 클레미스 주교는 미국, 캐나다, 독일, 영국 등지에 흩어져 있던 시로말랑카라 신자들을 만나고, 공동체를 조직하며, 지속 가능한 교회적 삶을 위한 제도적·목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2001년 10월, 뉴욕주 록랜드 카운티(Rockland County)에 '마르 이바니오스 말랑카라 가톨릭 센터(Mar Ivanios Malankara Catholic Centre)'를 설립하여 북미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공동체의 신앙·교육·문화 중심지로 기능하게 했다. 센터는 주일 전례를 비롯해 신앙 강좌, 청소년 성소 육성, 전통 전례 교육, 인도계 이민자 가족 지원 프로그램 등 다방면의 사목 활동을 주관하였다. 이후 이 센터는 북미 지역 교회 조직의 핵심 거점으로 발전하였다.

클레미스 주교는 또한 북미 각지의 시로말랑카라 신자들을 조직화하고, 지역 공동체 간의 연대를 도모하는 데 힘썼다. 그는 토론토, 시카고, 휴스턴, 댈러스, 뉴저지, 런던 등지의 선교지 공동체를 방문하고, 정기적인 전례 집전과 함께 공동체의 필요를 청취하며 공동체 리더 양성에 나섰다. 당시 그는 시로말랑카라 전례를 영어로 부분적으로 번역하여 2세대 이민자들이 전례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실용적 조치도 취하였다.

또한 그는 인도계 기독교 단체 간의 연대 강화에도 주력하였다. 그는 '인디안 크리스천 포럼 오브 노스아메리카(Indian Christian Forum of North America)'와 '세인트 토마스 에큐메니컬 페더레이션(St. Thomas Ecumenical Federation of India in North America)' 등 다종교적 배경을 지닌 인도계 기독교 네트워크와 협력하여,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신자들의 정체성과 권리를 옹호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교파 간 협력을 기반으로 한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시민적 역량 강화와 종교 간 대화 기반 조성에도 기여하였다.

2.2.2. 티루발라교구장 시기

2003년, 클레미스 주교는 티루발라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2006년 5월 15일 이 교구가 대교구로 승격됨에 따라 같은 해 6월 10일 첫 티루발라대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 클레미스 주교는 티루발라교구 및 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며 교구의 제도적 기초를 확립하고, 교육, 사회복지, 종교 간 협력 등 다방면에 걸쳐 교회의 영역을 확대하였다.

클레미스 주교는 우선 티루발라교구의 조직적 재정비와 대교구 승격 준비 작업에 매진하였다. 그는 교구 내 본당 운영 체계를 통합하고, 신학교와 교구청 행정의 현대화를 추진하였다. 당시 교구청은 행정력 강화를 위해 전문 사무인력과 교구 기록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였으며, 성직자 인사 체계를 체계화하는 등 대교구 수준의 행정 운영을 준비하였다. 이로써 2006년 교황청에 의해 티루발라가 공식적으로 대교구로 승격될 수 있는 내적 요건이 갖추어져 최종적으로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또한 그는 성소자 양성과 신학 교육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집중하였다. 티루발라 소재의 교구 신학교는 그의 재임 중 교육 커리큘럼과 교수진 구성을 재편하였으며, 도서관과 기숙사 시설이 확장되었다. 이를 통해 교구 내 사제 양성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였고, 인접 교구 및 시로말랑카라 내 수도회 출신 사제 후보자들의 교육 수요도 일부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클레미스 주교는 사회복지 분야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는 교구 산하 '티루발라 사회봉사회(Thiruvalla Social Service Society)'를 통해 빈곤층 가정을 위한 주택 보수 사업, 식량 배급, 재난 구호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특히 2004년 인도양 쓰나미 이후 실시된 긴급 지원 활동에서는 신속한 물자 동원과 피해 지역 본당 연계 시스템을 통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시기 그는 국제 가톨릭 자선 단체인 CNEWA 및 미주 지역 시로말랑카라 신자들의 후원을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실질적인 지원을 끌어냈다.

클레미스 주교는 종교 간 대화와 교파 간 협력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티루발라 지역 내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말랑카라 정교회, 여러 개신교 공동체들과의 실무적 협의 구조를 형성하였고, 연합 성탄 찬양제, 청년 교류 캠프, 종교 간 포럼 등에 교구 차원의 참여를 조직하였다. 또한 그는 케랄라 주 내 가톨릭, 힌두교, 이슬람 지도자들과도 소통하며 지역 사회 내 갈등 완화 및 종교 공동체 간 연대 형성에 힘썼다. 더불어 이 시기에 인도천주교주교회의(CBCI)의 청년사목위원회, 보건위원회, 달리트 사목위원회 등에도 활발히 참여하였다.

2.3. 상급대주교 선출 이후

2007년 2월 10일,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교회의 상급대주교이자 카톨리코스로 선출되어 교황의 인준을 받았으며, 상급대주교로서 '바셀리오스 클레미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상급대주교로서 그는 티루바난타푸람 상급대교구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의 시로말랑카라 공동체를 통합하고 사목 체계를 정비하였다. 청년사목, 수도회 조직, 전례 교육, 해외 교세 확장 등 다방면에서 제도적 기틀을 확립하였다.

클레미스 상급대주교는 동방 가톨릭 교회 간 연대 강화와 라틴 예법 가톨릭과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인도 내 종교 간 대화와 평화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강제 개종과 '재개종' 운동 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였고, 종교를 이유로 기본권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2.3.1. 추기경 서임

2012년 10월 24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세계주교시노드에 참석 중이던 클레미스 상급대주교를 추기경 서임 대상자로 발표하였다. 클레미스 상급대주교는 이를 두고 인도 가톨릭 교회의 '다양성 안의 일치'를 교황이 높이 평가한 결과라고 밝혔으며, 시로말랑카라 가톨릭의 대표자로서 보편 교회 안에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자리를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서임 발표 직전, 클레미스 상급대주교는 세계주교시노드 연설에서 복음의 실천적 증언과 전례의 영성 회복을 강조한 바 있었다. 그는 특히 콜카타의 성녀 테레사의 사명을 언급하며, 인도 인구의 3%도 되지 않는 그리스도교 소수자라는 현실 속에서도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 복음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은 인간 생명과 존엄, 인권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 사명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하였다.

같은 해 11월 24일, 클레미스 상급대주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어, 로마의 산 그레고리오 7세 성당(San Gregorio VII)의 명의사제가 되었다. 그는 시로말랑카라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첫 추기경이며, 당시 추기경단 내에서 가장 젊은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베네딕토 16세의 이례적인 사임으로 벌어진 2013년 콘클라베에 참여하여 교황 프란치스코의 선출에 기여하였다. 클레미스 추기경이 시로말랑카라 가톨릭의 첫 추기경이니만큼, 2013년 콘클라베는 당연하게도 시로말랑카라 가톨릭의 첫 번째 콘클라베 참여가 되었다.

클레미스 추기경은 추기경 서임 이후, 교황청 동방교회부(Dicastery for the Eastern Churches)와 종교간 대화 평의회(Pontifical Council for Interreligious Dialogue)의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케랄라천주교주교회의(KCBC) 의장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인도천주교주교회의(CBCI) 의장을 역임하며 전국 단위의 교회 행정과 교회법, 교육 제도 정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2.3.2. 2025년 콘클라베에서

클레미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 사후 열린 2025년 콘클라베에도 참여하여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에 기여하였다. 추기경은 콘클라베에 참여하기에 앞서 한 인터뷰에서 교회는 유엔의 대체물이 아니다라는 내용으로 발언하였다.

클레미스 추기경은 이번 콘클라베가 단지 새로운 교황을 뽑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후계자요 그리스도의 대리자, 그리고 형제들을 굳세게 하는 자로서의 소명을 이어갈 지도자를 식별하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동방 가톨릭 교회 수장으로서 보편 교회 안에서 가지는 정당한 자율성과 친교의 책임을 언급하며, 시로말랑카라 교회가 단지 케랄라에 국한된 지역 교회가 아니라, 전 세계에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사도적 공동체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차기 교황의 조건으로 대륙이나 국적이 아닌, 영적 식별 능력, 대화와 연대의 자세, 평화의 사도로서의 인격과 태도를 꼽으며, "나는 대륙을 보지 않는다. 사람을 본다"고 단언하였다.

클레미스 추기경은 또한 교회의 본질은 정치적 개입이 아니라 복음에 기반한 영적 권위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교회가 세상의 전쟁과 갈등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지만, 군사력이나 정치적 압력 대신 평화를 위한 영적 중재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자 지구 관련 평화 발언을 인용하며, "전쟁은 해답이 아니다. 평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교회가 유엔의 대체물이 아니라고 한 것이었다.

더불어 클레미스 추기경은 콘클라베를 위한 영적 준비에 있어 기도의 시간을 더욱 늘리고 있으며, 콘클라베에서 투표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일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응답하는 영적 행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나는 국가의 수장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교회, 나의 신앙의 아버지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동방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직을 바라보는 독자적이면서도 친교적 관점을 명확히 하였다.
[1] 시로말랑카라 가톨릭을 비롯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수장들은 교황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자체적인 시노드를 통해 선출된다.[2] 차이알룸 명의주교[3] 티루발라교구가 대교구로 승격하여 자동으로 대주교 승품[4] 동·서시리아 예법 교회들에서 주교의 존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