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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Heroine
모성영웅
이렇게 생겼다.
기념 우표
1. 개요
소비에트 연방 영웅과 사회주의노력영웅에 이은 소련의 3번째 영웅칭호이다. 1944년 7월 8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Президиум ВС СССР)의 법령에 따라 제정되어 가장 마지막에 제정된 영웅칭호이기도 하다. 소련에서는 이와 같이 다산을 장려하는 훈장이나 메달 등을 3가지 만들었는데 각각 모성영웅, 모성영예훈장, 모성메달이다.이 훈장이 제정되었던 1944년은 독소전쟁의 막바지로, 전쟁통에 인구가 크게 줄었던 때임을 감안하면 이해가 빠르다. 대조국전쟁 당시 깎여나간 인구 수는 3,000만명[1] 이상이었고 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연령대가 10대 후반의 청소년부터 40대의 중년이었다. 이로 인해 깎여나간 경제활동인구를 보충하기 위하여 출산 독려 및 치하 차원에서 제정되었다.[2]
2. 수훈 대상과 사유
아이의 수에 따라서 9명까지 모성영예훈장이 수여된다면, 10명 이상 낳아 기른 어머니에겐 모성영웅 칭호가 부여된다. 모성영웅 칭호를 받은 어머니의 가족에게는 공공서비스 비용 면제, 생필품이나 식료품 배급의 특전, 연금 등에서의 혜택이 존재했다.수훈 대상
* 10명 이상의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
* 10명 이상의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
10번째 아이가 만 1살이 되는 생일에 주었으며, 위의 9명의 아이들이 모두 생존해 있어야만 받을 수 있었다. 무턱대고 낳았다고 받을 수는 없는 것이었고 관리도 잘 했어야 한다는 말. 그러나 예외도 두었다. 위의 형제들 중에서 소비에트 연방을 수호하는 와중에 죽거나 실종됐으면, 혹은 다른 군대 관련 임무를 다하다가 죽었을 경우, 아니면 소련 시민의 생명을 구하다가 죽었을 경우, 혹은 산업재해로 사망했을 경우 잘 키웠다고 인정을 해줬다. 초기 수상자 중에는 아들 8명을 독소전쟁으로 잃은 여성도 있었다. 훈장을 받은 어머니의 가족에게는 공공서비스와 배급 면에서의 특전이 존재했다.
본래 여성에게 수여하기 위한 메달이었으나 입양도 인정했으므로, 수훈받은 남성이 존재한다. 바로 오렌부르크에서 12명의 아이를 입양하여 길러낸 베니아민 마카로프(Вениамин Макаров)라는 사람.
모성 상훈들은 다른 훈장들과 마찬가지로 왼쪽 가슴에 패용한다. 다만 약장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훈장들과 같이 패용될 경우에는 리본을 연결하지 않고 그 옆에 별도로 부착하며, 만약 다른 훈장들이 많은 경우에는 모성 상훈을 그 아래에 부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민간인의 경우에는 이렇게 뱃지형 메달을 받으면 옷깃에 부착하는 경우도 많았다. 모성영웅을 수훈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모성영예훈장을 수훈했으므로 같이 패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왼쪽 가슴에 훈장을 달고 있는 펠라게야 세키르키나(Пелагея Секиркина) 여사.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도 같이 받았기에 모성영웅 + 사회주의노력영웅 + 레닌훈장[3] + 모성영예훈장을 달고 있다.
1944년 10월 27일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최초로 수여되었으며, 1991년 11월 14일 소련 대통령령으로 마지막으로 수여될 때까지 대략 431,000명이 이 칭호를 받았다.
1980년대 초 일본 NHK 취재진이 <실크로드>를 촬영하면서 우즈베크 SSR 페르가나에서 11명의 자녀를 가진 모성영웅 가정을 인터뷰했는데, 소련 국내에서 교통요금(비행기, 기차, 버스 등) 일절 무료, 매년 1개월 휴양지 무상 이용 가능, 자동차 구입시 즉시 공급 보장[4] 등의 특전이 (단 가족 구성원은 제외하고 모성영웅 본인에게만) 주어졌다고 한다.
3. 형태
영웅칭호들이 다 그렇지만 훈장의 디자인은 간결함 그 자체이다. 훈장의 지름은 대략 28mm였고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가운데의 별은 순도 950‰의 금으로 제작되었으며 후광을 묘사한 배경은 은이었으므로 이 2가지의 부품을 조립하여 제작되었다. 뒷면에는 '조폐국(Монетный Двор)'이라는 인장을 제외하면 장식이 없었다.훈장의 리본은 붉은색 에나멜로 채색되어 있었으며 훈장명이 새겨져 있었다.
4. 소련 해체 이후
소련 해체 이후 자동으로 수훈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90년대의 혼란기 당시 출산율이 팍팍 줄어나가[5] 인구가 줄어든[6] CIS 공화국[7]들이 이 취지를 버리기 아까웠나본지 여러 훈장을 다시 제정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8], 타지키스탄[9] 등이 그 예. 아래는 2008년에 다시 제정된 러시아 연방의 어버이영예훈장 (Родительская слава).이렇게 생긴 훈장이다.
2022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연방의 모성영웅 훈장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소련 시절 부상으로 주던 특전은 주기가 어려웠는지(배급 우선권 등
5. 관련 문서
[1] 추산이므로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민간인과 군인 총 사상자 수는 5,000만이 넘는다.[2] 사실 국력증진에 인구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취지의 훈장은 나치 독일에도 있었으며 현대 프랑스에도 있다.#[3]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를 받으면 레닌훈장이 자동으로 수훈된다.[4] 보통은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5] 대표적으로 러시아 연방에서 1990년에 1.9명대였던 출산율이 1999년에는 1.1명대로 떨어졌다.[6] 1991년 소련 인구가 2억 9,304만명 가량이였는데, 2011년 소련에 속했던 국가들의 인구 총합이 2억 8,767만명 가량이다.[7] 참고로 국호에 스탄이 들어가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제외.[8] 카자흐스탄은 소련 붕괴 이후 저출산이 심했던 것은 아니지만 카자흐스탄에 살던 러시아계나 독일계 사람들이 러시아나 독일로 이주하여 1990년대 인구가 감소했다.[9] 타지키스탄은 사실 지금도 출산율이 3명대로 높고, 소련 붕괴 이전에는 5명대로 소련의 연방구성공화국 중 출산율이 1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