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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Gioconda, Monna Lisa | |
작가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국가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제작 연도 | 1503년-1506년경으로 추정 |
기법 | 유채(油彩) 패널화 |
크기 | 53 x 77 cm |
소장 | 루브르 박물관 (1797 -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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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작 중 하나로, 현재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가로 53cm, 세로 77cm짜리 유채(油彩) 패널화이며[1], 완성 시기는 1503 ~ 1506년경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미소가 특징인데, 입을 보면 웃고 있는데 눈만 보면 알 수 없다.[2]
2. 가치
모나리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3]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미술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유럽 문화의 황금기인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이다보니 작품의 값어치가 높은 것이 당연하다.프랑스 정부와 루브르 박물관의 소유이므로 프랑스 정부가 매각을 결정하기 전까진 경매의 대상은 아니지만, 가격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 있어왔다. 프랑스 정부는 대략적인 경제적 가치를 결정했는데, 최소 한화 약 2,300,000,000,000원(2조 3,000억원)에서 최대 약 40,000,000,000,000원(40조원) 내외라고 발표했다. 최대 40조라는 이런 엄청난 가격이 붙은 이유는 2018년 기준 연간 루브르 박물관의 방문객 수는 약 10,000,000명에 육박하는데,[4] 이 중 대부분이 이 모나리자를 보러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기 때문이다.[5]
그러나 경제적 가치가 아닌 작품의 순 가치로만 보면 2022년 기준 모나리자의 가격은 약 8억 7,000만 달러, 한화 약 1,114,905,000,000원(1조 1149억 500만원)에서부터 시작될 거라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밝혔다. 가장 큰 이유로는 모나리자가 그동안의 많은 사건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이에 의한 패러디와 여러가지 인식들이 크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3. 위상
기술적으로 대단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최후의 만찬 등 다른 역작들을 제치고 레오나르도의 대표 작품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레오나르도가 죽을 때까지 항상 가지고 있었던 그림이기 때문이다.도난당한 적도 있는데, 복제품이 너무 많아 진품을 찾지 못하다가 다 빈치의 지문이 묻은 것을 찾아 다시 전시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도시전설일 뿐이다. 실상은 아래에서도 설명하지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화상의 신고로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지문 대조를 이용한 예술품의 진위 감별 기법 따위는 전혀 없었다. 당장 지문을 이용한 수사가 정식으로 인정된 것이 1900년이다.
현존하는 다양한 모나리자 그림들 중 이 그림을 최고로 치는 이유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예술안에 들어 평생 모델이 되었던 여성의 원숙미가 절정에 달했을 때가 바로 저 그림 속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의 젊은 시절을 그린 것은 하술된 아일워스 모나리자이다. 그 같은 경우 서양화에 문외한일지라도 미인임을 쉽게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 전부를 통틀어 발견되는 특징은 자애로운 여성이 아닌 차갑고 지적인 이미지의 여성이자 그 눈빛이라는 점이, 바로 왜 그를 다 빈치가 아름답다고 여겼는지 짐작하게 하는 부분.
모나리자의 진가는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루브르에 직접 가서 봐야 드러난다. 모나리자를 보려면 같이 전시되고 있는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 작품들을 보고 난 다음 모나리자를 보면 확연히 실력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때 혼자서 CG를 다루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것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다양한 혁신적 기술들을 도입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정면이나 측면을 딱딱한 구도로 보고 있지 않은 자연스러운 구도의 초상화, 원근법을 적용하고 흐릿하게 그린 배경[6] 등,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요소들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반면에 모나리자가 미술 외적으로 과대평가되었다는 미술 비평가들도 상당수다. 오히려 미술계에서는 다 빈치의 다른 작품들[7]을 기술적•미술사적으로 고평가한다. 대중이 보기에도 모나리자가 왜 대단한지 이런저런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의문을 띄는 경우가 많다. 모나리자는 처음 루브르에 전시될 때만 하더라도 인기 없는 작품이었으며,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언론에서 일련의 도난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였다.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Famous for being famous)이 되어버린 것. 물론 도난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월터 패터 같은 근대 작가들의 극찬하는 에세이가 대표적이며 당시에도 모나리자의 웃음에 대한 논쟁이 미스테리 기록으로 남아있다.
3.1. 유명한 눈썹이 없는 그림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눈썹이 없는 이유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데, 당시에는 이마가 넓은 여자가 미인으로 여겨져 눈썹을 밀거나 가늘게 하는 일이 유행이었다는 설이 있다.[8] 혹은 다빈치가 원래 눈썹을 그렸으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림이 변색되어 전체적으로 색상이 바뀌고, 눈썹 부분도 희미하게 사라졌다는 가설도 있다.[9]
조승연 작가가 루브르 박물관 부속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할 때 교수에게 들은 바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림 작업후 코팅 작업인 '바니시'를 (통상적인 방식인 그림 완성후 한번에 바니싱을 하는 것이 아닌) 그림의 일부를 그리고 한 번 바니시 칠하는 과정으로 반복하였다고 한다.[10] 통상적인 서양화 복원 과정상 먼지가 묻은 바니시를 벗기고 새로 칠하는 과정이 있는데, 모나리자의 바니시를 벗겼더니 맨 마지막에 칠한 눈썹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3.2. 모델
그림의 모델로는 피렌체의 유력자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인 리자를 지목하지만, 이 주장을 1550년에 최초로 내세운 조르조 바사리는 원본을 본 일도 없고, 조콘도 부인이나 다 빈치와 면담한 일도 없었기 때문에 20세기 들어서 다른 인물이 실제 모델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줄리오 데 메디치의 정부이자 나폴리 공비인 콘스탄차 다발로스, 밀라노 공비인 이사벨라 다라고나, 그리고 만토바 후작부인인 이사벨라 데스테가 거론되었고, 특히 레오나르도가 남긴 자료들 중 하나인 이사벨라 데스테의 측면 스케치는 모나리자의 여성과 매우 비슷하기까지 했다.그러다가 2008년에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도서관에서 1500년대 초 피렌체 관리가 다 빈치가 조콘도 부인의 초상화를 제작중이라는 발언을 남긴 문서를 발견하였고, 대부분은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순한 초상화라 하기에도 이상한 면이 많다. 일단 별 관계도 없는 의뢰자의 아내의 초상화를 레오나르도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다녔을 이유가 없다. 막말로 돈을 안 내서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자신의 화실에 고정까지 해서 걸어놓을 이유가 없다. 또, 당대에 여자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많이 늘어났어도, 보는 사람의 눈을 마주 보는 이런 자세는 금기였다.[11] 남에게 보여주려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그렸을 리가 없고, 보여줬다면 당대에 크게 논란이 되었을 텐데 그런 기록도 없다. 당시대에 정면을 봐도 되는 여성은 이브 아니면 성모 마리아뿐. 만약 이것이 그런 최초의 초상화라면, 19세기에 에두아르 마네가 파격적인 초상화를 선보여 크게 난리를 일으키기 400년 전에 이미 다빈치가 시대를 한참 앞선 것이다.
그리고 루브르의 모나리자의 모델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일워스의 모나리자가 진짜 모나리자이고, 루브르의 작품은 조콘다가 아니라 또 다른 모델, '아라곤의 이사벨라'를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사벨라는 나폴리왕의 손녀이자 밀라노 공작 지안갈레아노 스포르차와 결혼했다가 이 시기 남편과 사별한 인물로, 15세기 말경 다빈치와 함께 15세기 말을 밀라노 궁전에서 지냈다. 이사벨라는 아름다운 축도 아니었고 20대도 아니었다. 또한 스위스에 남아있는 이사벨라의 초상은 루브르의 그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나리자의 초록색 옷은 스포르차 공작가문을 상징하는 색이라는 것도 이의 증거로 제시된다.
또한 이 그림에 얽힌 충공깽한 가설이 있는데, 바로 이 그림이 다 빈치가 여장한 자신을 모델로 그렸다는 가설이다. TV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왔으며 다 빈치의 초상화와 모나리자를 과학적으로 비교해보면 생김새가 같다는 등의 근거를 제기했다.
3.3. 그림이 완성된 이후
레오나르도는 죽을 때까지의 여생을 프랑스 앙부아즈에서 보냈는데, 그를 앙부아즈로 초대한 프랑수아 1세의 아들 앙리 2세는 레오나르도가 죽은 뒤 모나리자를 욕실 벽면에 걸어 놨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유품을 계속 보고 싶어서 그랬다고.[13]문제는 욕실에 유화를 걸어놓으니 그림에 습기가 들 수밖에 없고, 결국은 그림 표면이 쩍쩍 갈라지게 되는 원인이 됐다.
굳이 갈라진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페이지의 맨 윗 그림을 확대해 보자.
4. 또 다른 모나리자
아일워스 모나리자 | 프라도 카피본 |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모나리자 이외에도 다빈치가 그린 또 다른 모나리자가 영국에 있다. 일명 아일워스 모나리자라고 부르는 것. 루브르에 있는 것과는 약간 더 젊고 눈썹도 그려져 있어서 달라 보이지만 이것은 다 빈치의 진품. 그리고 모나리자의 하늘은 하늘색이었으나 복원 작업으로 인해 색깔이 바뀌었다고 한다.
2012년 1월에는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모나리자 모작 한 점을 분석한 결과 다빈치가 직접 그린 밑그림 위에 제자가 색을 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프라도 카피본이라고 불리는 이 그림에는 눈썹이 분명히 그려져 있어서, 루브르의 모나리자에도 원래 눈썹이 있다가 지워진 것이라는 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루브르본, 아일워스본, 프라도본 외에도 여러 사적 콜렉션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5. 주의할 점
그 조그만한 그림을 보기 위해 그야말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그 앞에 밀집되어 있다. 셀 수 없이 수많은 작품이 전시된 루브르 박물관이지만 이곳만큼은 비집고 들어가야 겨우 볼까 말까한 수준으로 관광객이 많다. 설상가상으로 도난이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펜스를 둘러쳐 놓아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도 작품과 상당히 떨어져서 봐야한다.[14] 솔직히 제대로 감상하기조차 힘들다. 게다가 액자에 방탄 유리를 끼워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반사광으로 더 보기 어렵다. 너무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할 수도. 비수기때도 모나리자 앞은 인산인해다. 정말 사람이 없이 한산하게 보고 싶다면 미리 표를 예약한 다음 루브르 개장 2시간 전부터 기다려서 아주 빨리 들어가는 수밖엔 없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만큼, 그 중에 소매치기들도 상당히 섞여있다. 세계에서 소매치기 밀집도가 가장 높은 장소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니 혹시라도 보러간다면 짐 관리에 주의하자. 필요없는 짐은 미리 짐 보관소에 맡기는 것을 추천.
그리고 생각보다 되게 작다. 아마 당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한참은 작을 것이다(...).[15] 원래 원본은 레오나르도의 화실 벽에 창문처럼 벽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운반하기 위해 그냥 양옆을 잘라냈다. 양쪽 끝에 보면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2022년 코로나19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줄을 서서 관람하는 방식으로 질서있게 변경됐다. 벨트식 차단봉을 두고 관람하게 되어 있는데 거리두기 해제 등으로 대기열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6. 해외 전시
루브르 박물관을 떠난 공식적인 해외 순회 전시는 총 세 번 미국(1962년 뉴욕시와 워싱턴 D.C.)과 일본(1974년 도쿄), 소련(1974년 모스크바) 에서 진품이 전시된 바 있다.[16] 그림 한 점 갖다놓은 단독 전시였음에도 전시한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사회적 현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보여 새삼 모나리자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17]- 1962년 12월부터 1963년 3월까지 프랑스 정부가 미국 정부에 그림을 빌려주어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와 뉴욕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국외에서의 공식적인 첫 진품 전시였던만큼 뉴욕시에서만 전시 기간 동안 총 170만명이 관람했는데 불과 20초 보려고 전시일 내내 줄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당시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도 관람했다.
- 1973년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국 내각총리대신과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이 모나리자 일본 대여에 합의하여 일본에서의 전시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리하여 1974년 4월 20일부터 6월 10일까지 도쿄 우에노에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입장료는 당시 환율로 200엔 정도. 왜였는지는 몰라도 티켓 예매권 수량이 남아서 주최측인 문화청이 크게 당혹했다고 하나 첫날 현장 관람객 줄은 그칠 줄을 몰랐다고 한다. 그 후 관람객이 크게 늘어, 마지막날인 6월 10일 일요일에만 3만명이 넘게 들어왔다. 평균 한 사람 당 약 10초 정도밖에 그림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전시 기간이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최종 집계된 관람객은 총 150만 5239명. 전시가 끝난 후 파리로 돌아가기 전, 모스크바에 잠깐 들러 전시되기도 했다. 참조당시 영상
7. 사건사고
7.1. 도난 사고
도난 사건도 많았고 도난 전설은 더욱더 많다. 1911년 모나리자의 도난은 아르헨티나의 사기꾼 발피에르노의 사주를 받은 이탈리아인 빈첸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그는 그 전년에 도난을 막기 위해 그림 주위에 설치한 유리벽을 시공한 작업부이기도 했다. 프랑스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시인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고.[18] 발피에르노는 모나리자가 도난되었음을 전 세계에 알린 후 미국의 부호들에게 모사품 6점을 팔아치우기까지 했고, 이게 도난의 목적이었다.[19] 헌데 모사가 완료된 후 진품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실행범인 페루자가 작업비(...) 대신 가져가버린 후 자기 아파트에 묵혀두고 있다가, 2년 뒤에 돈이 곤궁해지자 피렌체의 화상에게 진본을 매각하려다가 경찰에게 검거되었다. 진본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전역을 순회 전시한 후 프랑스로 반환되었다.[20] 페루자는 열렬한 애국자로 이탈리아인이 그린 이탈리아인의 초상화가 프랑스에 있다는 데에 불만을 품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는 6개월의 옥살이 후 풀려났으며 조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나폴레옹이 훔쳤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건 도난범인 페루자가 정상 참작을 노리고 한 발언이 공식적인 시초이지만, 워낙 이탈리아 내에서는 유명한 전설인지라 누가 최초로 저 말을 했는지는 불명이다. 사실은 훨씬 이전, 다 빈치 생전에 다 빈치를 후원하던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물려받은 것이다.
프랑수아는 1515년에 이탈리아를 원정했는데,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0세는 프랑수아가 열렬한 르네상스 문화 애호가라는 점을 이용, 유명한 예술가란 사람들은 싹싹 긁어모아 프랑수아와 회담을 열었다. 그리고 레오의 작전은 완벽히 먹혀들어 프랑수아는 인기 연예인을 만난 열혈 팬처럼 흥분해버렸고, 군사적으로는 교황령을 압도하고 있었으면서도 교황의 우위를 인정한다는 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프랑수아 1세는 레오의 후원을 받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와는 달리 다 빈치에게는 후원자가 없다는 점을 알았고, 이에 다빈치에게 여생을 충분히 보낼 수 있는 저택을 하사할 테니 프랑스로 함께 가자고 설득했다. 다 빈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듬해에 프랑수아와 함게 프랑스로 향했다. 그리고 왕의 수석 건축가 겸 기술자라는 칭호를 받고 3년을 살다가 1519년에 죽었는데, 죽을 때 자신을 후원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의미로 모나리자를 비롯해 프랑스로 올 때 싸들고 왔던 작품들을 몽땅 프랑수아에게 바쳤다. 즉, 다 빈치가 프랑수아 1세에게 모나리자를 준 것이므로 현대에는 프랑스가 소유하는게 정당하다. 모나리자가 있는 루브르 박물관 등 각종 미술관, 박물관들에는 해외에서 약탈, 수집한 문화재들이 워낙 많아서 이런 루머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이다.
7.2. 훼손 시도
- 1956년, 프랑스 서남부의 한 미술관에서 작품이 전시되던 중 관람객으로 위장한 괴한이 염산을 뿌려 그림의 아래 부분이 훼손된 적 있으며, 같은 해 12월 30일 우고 웅가자 빌레가스(Ugo Ungaza Vilegas)라는 볼리비아 청년이 던진 돌에 왼쪽 팔꿈치 부분이 훼손당한 이후 유리에 덮인 채 전시하게 되었다. 박물관 측은 2005년부터 '모나리자'를 온도와 습도를 조정할 수 있는 강화유리 안에 넣어놨다.
- 1974년 4월에는 도쿄 국립 박물관에 공개된 모나리자를 향해 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박물관 측의 시설 배려가 부족한 데 화가 난 장애 여성이 빨간 페인트를 뿌린 사건도 있었다.[21] 유리 보호막 덕분에 모나리자에 닿지는 않았다.
- 2009년 8월 2일,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를 항해 프랑스 국적 취득이 거부된 러시아 여성이 홧김에 가방에 숨겨 가져온 도자기 컵을 투척한 적이 있다. 물론 던진 컵이 그림 앞 보호막에 막혀 작품이 손상되지는 않았다. 해당 여성은 바로 경찰에 체포된 후 훗날 풀려났지만, 별도로 루브르 측에 고소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 2022년 5월 29일, 휠체어를 탄 여성 노인으로 분장한 한 남성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 그림에 케이크를 던졌다. 목격자의 따르면 가발을 쓴 남자가 갑자기 휠체어에서 뛰어나와 그림에 케이크를 묻히고 장미꽃을 바닥에 던졌다고 한다. 물론, 보호 유리 덕분에 그림에는 직접적인 손상은 가해지지 않았다. 테러범은 사건 직후 보안대에 잡혀 끌려나갔으며 프랑스어로 “지구를 생각하라”고 외쳤다고 알려졌다. 파리 검찰청은 이 남성을 정신병원으로 옮겼으며, 문화재 훼손을 시도한 혐의로 수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고 AFP, AP 통신 등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 2024년 1월. 프랑스 농업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수프를 끼얹었다.#
8. 대중매체에서
- 워낙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작품이기에, 현대 대중매체에서 조차도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를 의미하는 대명사의 뜻으로 자주 쓰이는 단어다.
- 가면라이더 고스트의 극장판 가면라이더X가면라이더 고스트&드라이브 초 MOVIE 대전 제네시스라는 작품에서 다빈치 안마가 최종 보스로 등장하며, 모티브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점에 걸맞게 디자인에도 얼굴은 다빈치의 초상화, 몸통에는 모나리자, 팔과 다리에는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 모자에는 다 빈치가 고안한 헬리콥터인 공중 나사 등의 요소가 적용되어있다.
- 롯데제과의 화이트-이 껌 광고: 1997년경 방송되었으며, 모나리자가 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입꼬리만 올리고 있는 이유는 치아가 하얗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추리했다(...). 결국 치아미백 효과가 있다는 그 껌을 씹어서 광고 끝부분에는 마침내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다.
나름 상큼하다.
- 겁쟁이 강아지 커리지: 뮤리엘은 모나리자와 닮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모나리자를 한 번 더 보겠다고 하다가 하필이면 초자연이 일어나서 살아 움직이는 모나리자에 의해 그림 속에 갇힌다. 모나리자는 생각하는 사람과 사귀지만 생각하는 사람은 모나리자의 말을 무시하고 생각밖에 할 줄 모른다.[22] 이제 모나리자는 생각하는 사람을 버리고 다른 남자 조각상과 사귀며, 에로스의 화살에 맞은 동상을 모나리자와 그림속에 가두고 뮤리엘을 구해낸다.
- 단편 애니메이션 The D in David에서는 다비드 상의 그곳을 보고 비웃는 모습으로 나온다(...).
- 닥터후: 스핀오프 사라제인 어드벤처에 등장하는데, 물감의 원료가 지각있는 유성의 조각이어서 같은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 "혐오"가 있는 영국의 국제 박물관[23]에 전시되는데, 그걸 계기로 그림에서 나온다. 그런데다가 성깔도 더러워서 클라이드 랭어가 그린 손타란의 총을 그림에서 꺼내 사람들을 협박한다. 모나리자는 "혐오"를 해방시키려고 하지만 루크와 친구들에 의해 저지당하고 자신도 그림으로 되돌아간다.
- 달인 미술의 달인 편: 김병만이 미술평론가로 등장해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 작품 제목들이 전부 잘못되었다면서 모나리자의 원래 이름은 생얼(...)이라고 설명했다. 여자들이 화장을 지우면 눈썹이 없어진다는 걸 강하게 표현한 작품이라 본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치우라고... 류담이 모나리자 아니냐고 재차 묻자 모나리자는 조용필 노래라고...
- 투명소년탐정 아키라: 차지맨 켄!으로 유명한 나크의 1970년대 괴작 투명소년탐정 아키라에서는 일본 전시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로 변장한 Z단의 단장이 모나리자를 훔쳐 달아난다.
-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 등장하는 직장인 키라 요시카게는 어렸을 무렵 이 모나리자의 손을 보고 발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또한 등장하는 만화가 키시베 로한을 닮았다고 하기도 한다.
- 응원단 시리즈: '도와줘! 리듬 히어로'에서 네 번째 의뢰인인 레오나르도가 한 눈에 반한 여인으로 나오며 외모만 다를 뿐 머리스타일이나 생김새는 모나리자 그 자체이나 무표정에 철벽녀이며 처음에는 레오나르도의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한다.[25] 하지만 레오의 끈질긴 구애 끝에 마침내 고백을 받아들이면서 미소를 짓고, 레오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주자 기뻐하며 고마워한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레오와 결혼한다.
- Fate/Grand Order: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등장했는데 본인이 멋대로 행한 영기개조로 자기 모습을 모나리자로 바꿨다. 해당 문서 참고.
- 영화 허드슨 호크: 다빈치의 연금술 발명품을 소재로 삼은 브루스 윌리스 주연으로 나온 '허드슨 호크'에서는 모나리자를 작업중인 다빈치가 나오는데, 모델이 된 여인의 치열이 엉망이라 웃음이 영 볼품이 없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고민한다.
- 패트와 매트: 에피소드 46 '비밀금고가 필요해'에서는 모나리자 그림이 소품으로 사용되는데, 지폐를 보관할 금고를 만들려 뻘짓하다 여느 때처럼 다 박살내고, 마지막에 모나리자 그림을 이용해 금고를 완성한다. 작품이 클로즈업 되면서 에피소드 종료.
-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 나치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세계를 그린 대체역사게임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모나리자를 그렸다고 왜곡했다. 모나리자는 훌륭한 그림인데 그린이가 비 아리아인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서 뛰어난 화가(?)인 히틀러 것이라고 날조하였다. 울펜슈타인 세계관에서 이탈리아는 나치의 주적인 미국, 영국, 소련이 멸망당하고 1~2년이 지난 1949년에 침공당해 제3제국에 합병되었다.
- 영화 이퀼리브리엄: 인간의 감정을 금지하는 정부군이 이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과거의 예술품을 파괴하는데, 이 모나리자 진품을 불에 태워 없애는 장면이 나온다. 은근 반전 요소인 게 영화 시작하자마자 왠 수염 난 집단이 여러 예술품들을 쌓아둔 채로 항전 끝에 제거당하는 상황인지라,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왠 도둑이나 강도 집단을 정부군이 때려잡고 이놈들이 훔쳐간 예술품을 회수하는 걸로 착각하기 딱 좋다. 허나, 그렇게 해서 찾아낸 그림을 전문가가 현장에서 "진품이 맞습니다."라고 하자마자 정부군 주인공이 하는 대사는 "태워버려(burn it)"(...)하지만 영화에서는 캔버스에 그린 그림으로 나오는게 고증 오류.[26]
- 미술을 소재로 하는 만화 갤러리 페이크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모나리자의 모조품을 다루고 있다. 다빈치 이후 여러 작가가 만든 모나리자들에 대한 설명이 나오며[27], 본편 시나리오에선 그중에서도 소유한 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저주받은 모나리자를 다루고 있다. 사라의 가문이 이 모나리자의 주인이었기에 이를 노리는 남자가 사라와 정략 결혼을 시도하고, 덕분에 후지타와 사라간의 연애 갈등이 클라이맥스에 달하는 이야기. 결국 둘은 화해하고 진정한 연인관계가 되지만, 저주받은 모나리자를 끝내 손에 넣은 남자는 모나리자를 가지고 도망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후지타도 이 모나리자의 정체를 끝내 밝혀내지 못하는 약간 섬뜩한 결말을 맞이 한다. 이 또 하나의 모나리자는 주인공 후지타 레이지가 만화 내내 찾아다니던 궁극의 미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나오지만 실제 다 빈치 작품이 아니라 만화가가 창작한 것이다보니 수준이 좀...
- 온라인 게임 테일즈위버: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모나텔로의 미소"라는 아티팩트가 있다.
- 동물의 숲 시리즈 내에서 수집할 수 있는 미술품 중 하나로 등장한다. 이름 역시 "유명한명화"로 그야말로 노골적. 가품도 존재하는데, 가품에는 눈썹이 그려져있다.
- 개그콘서트 2014년 7월 13일 752회에 방영된 코너 억수르에서는 억수르가 모나리자 그림을 1500억원에 낙찰해서 구매했는데[28] 전화도중 길을 설명하다가 모나리자 그림에 낙서를 하는 실수를 한다. 하지만 낙서한 사진에 셀카를 찍더니 "SNS에 올리면 사람들이 '좋아요' 겁나게 누르겠지."라고 말하며 웃으며 넘겨버린다.
- 만능감정사 Q의 사건수첩, 만능감정사 Q - 모나리자의 눈동자 : 시리즈 9권의 모나리자 편과 이를 실사영화로 만들었다.
무엇이든 감정할 수 있는 린다 리코가 루브르 박묵관측의 일본 현지인 디렉터로 선정된 후 진품과 가품을 선별하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런데, 모나리자의 눈동자에는 화가인 다빈치의 이니셜인 L 과 V가 그려저 있었고, 다빈치의 의도데로 이는 계속 본 린다 리코는 정신적으로 힘겨워 하다 감정사를 그만두고 낙향한다. 그사이 모나리자의 일본 전시가 결정되는데, 사실 이는 일본 전시중 모나리자를 가품으로 바꿔치기하려는 사기단의 작전이었다. 도쿄 국립미술관 큐레이터인 류센지 리사에게 접근하여 100년전 있었던 실제 모나리자 절도사건 당시 회수된 진품이 사실은 가짜이고, 자신은 그 절도범(유리공)의 후손으로 진품을 루브르에 돌려주려 한다고 속여 진품과 바꿔치기 하려고 한다. 이 사기를 간파한 후 무사히 회수 한다.
- 미토피아 보스로 등장한다.
- Warhammer 40,000에서는 제국 섭정인 말카도르의 개인 소장품으로 나온다.
- 배드 가이즈에서는 샤크가 모나리자로 변장해 감쪽같이 모두를 속여 훔쳐냈다.
-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에서 억만장자인 마일스 브론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휴장 중인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금을 들여 진품을 대여해 자신의 저택에 전시해 놓은 것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마일스 브론이 모나리자를 그대로 보고 싶은 욕심에 박물관 몰래 방호벽을 해제하는 장치를 설치했다가 영화 후반부에 결국 불에 타버리게 된다.
- 진나이 토모노리 네타 그림일기 편: 진나이 토모노리가 학생들 그림 일기를 검사하는데 부잣집 딸 중 한 명이 자신의 집에 걸려있던 모나리자가 도난당했다고 글을 쓰자 진나이 토모노리가 걱정했는데 얼마나 부자인지 그 아이 아버지는 고작 12억엔 주고 사온 것이니 괜찮다며[29] 세계 3대 진미인 푸아그라를 먹으며 웃었다고(...) 그런데 다음 일기 주인인 집이 가난한 학생 일기 내용을 보면 엄마 아빠가 아들 생일이라고 몸에 커튼을 매달고 서커스를 보여주는 다소 안쓰러운(?) 내용이 그려져 있었는데 바로 옆에 도둑맞았던 모나리자가 있었다(!) 당장 원래대로 갖다 놓으라고 츳코미를 건다.
- 성별 모나리자인 너에게의 주제가 모나리자이다.
9. 여담
- 어느 방향에서 봐도 모나리자와 시선을 마주치게 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사실 이 건 모나리자에만 한정된 건 아니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2D 그림은 전부 그렇다.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자국인이 그린 것도 아닌데도 박물관의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는다 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프랑스에서는 조콘다의 부인이라는 뜻으로 라 조콩드(La Joconde)라고 부르며 이탈리아에서는 라 조콘다(La Gioconda)로 부른다. 그 밖에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대륙에서도 조콘드로 부른다. '모나리자'라고 부르는 곳은 영국과 미국 등 영어권인데, 영어권에서 Monna Lisa의 n 하나 뺀 Mona Lisa라고 부르는 것이며 한국 및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 '모나리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영어 표기 Mona Lisa의 유래인 Monna Lisa도 이탈리아어 표기지만 잘 안 쓰인다.
- 모나리자의 모델이 됐던 조콘다 부인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 자세히 보면 모델이 머리에 얇은 베일을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루브르의 미술 전문가 브뤼노 모탱(Bruno Mottin)은 이것이 임신하거나 갓 아이를 낳은 여인이 쓰던 '과르넬로(Guarnello)'라 추측했다. 즉, 저 그림을 그릴 당시에 모나리자는 애엄마일 수도 있다는 뜻.
- 오른손에 부은 듯이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갑상선 질환을 앓았다는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되기도 한다.다빈치도 똑같은 혹이 있다
- 일부 이탈리아 시민단체들이 모나리자를 돌려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빈치는 프랑스로 이주한 후 프란시스 1세 밑에서 일했고 이후 프랑스 정부가 합법적으로 모나리자를 취득했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탈리아 정부도 공식적으로 돌려달라고 한적은 없다.
- 2014년 10월 26일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모나리자의 모델이 레오나르도의 제자이자 동성연인인 안드레아 살라이(Andrea Salai)일 것이라는 가설을 다루었다.
- 아일워스 모나리자의 머리만 바꿔주면 꽤 귀여운 인상이 된다. 링크
L.H.O.O.Q
마르셀 뒤샹의 1919년 작품으로 모나리자에 수염만 붙인 그림이다. 불어로 Elle a chaud au cul(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라는 문장과 같은 발음이 된다.
-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의 뒤편에는 파올로 베로네제의 대작인 '가나의 혼인잔치'가 전시되어 있다.링크 한 벽면을 가득 매우는 그림이라 제대로 감상하려면 십몇 미터는 떨어져서 봐야하지만 모나리자에 몰린 인파 때문에 그러기 쉽지 않을 뿐더러, 종종 모나리자만 보고 지나치기 일쑤. 전시 위치 덕분에 피해를 보고 있다.
- 버질아블로의 패션브랜드인 오프 화이트에서 매 컬렉션마다 모나리자가 삽입된 후드와 스웨터를 내놓는다. 그냥 프린팅 셔츠와는 다르게 당연히
정식 라이센스를 받고 판매하는 상품이다보니 고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다빈치가 사망한지 70년이 지났기 때문에 저작권은 무효하다.)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며 루브르 박물관 트위터는 모나리자에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유니폼 '레 블뢰'를 합성해서 게재했는데, 이를 본 이탈리아는 분노하면서 '왜 이탈리아인을 모델로 이탈리아인이 그린 그림에 너희 유니폼을 합성하냐'며 맹 폭격을 펼쳤다. 안 그래도 60년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이탈리아의 분노에 불을 붙인 셈이라... 신문기사 루브르 트위터
[1] 목제 패널에 그린 그림이다. 캔버스화가 아니다. 모나 리자의 패널은 포플러 나무로 만들어졌다.[2] 참고로 이 애매한 미소는 스푸마토라는 기법이 적용된 것으로, 입가에 음영을 넣어서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만들어낸 것이다.[3] 2019년 CNN 선정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 10가지[4]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247419/yearly-visitors-to-the-louvre-in-paris/[5] 참고로 경매가 역사상 최고는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로 6400억원이다.[6] 여담으로 이 배경은 토스카나의 키아나 계곡(Val di Chiana)을 모델 삼아 그려낸 가공의 장소로 여겨지는데, 이는 가공의 장소를 배경으로 초상화를 그린 거의 최초의 사례이다.[7] 보통 최후의 만찬을 다빈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한다. 이는 모나리자 도난이전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에서도 나오는 내용.[8] 하지만 동시대의 다른 여인 초상화를 보면 모두들 눈썹이 있다.[9] 아래에 서술한 프라도 카피본의 확인으로, 이 가설이 현재는 가장 유력하다.[10] 포토샵의 레이어를 생각하면 된다. 통상적으로 서양화는 그림을 모두 칠하고 위에 코팅지를 입히는 느낌으로 바니시를 칠하지만 다 빈치 특유의 완벽주의 + 시간이 오래걸리는 특성 때문에..[11] 천재 괴짜 화가 반 아이크가 개인용으로 그린, 정면을 보는 자신의 부인의 초상화 외에는 예가 없다.[12] 화가들은 인물을 그릴 때 모델과 관계 없이 자신의 얼굴과 닮게 그리는 일이 많은데, 의도하지 않고도 그런 결과가 나오는 일이 많다. 이유는 가장 친숙한 것이 매일 거울에서 보는 자신의 얼굴 또는 유아기에 잠재 의식에 각인된 자기가 닮은 부모의 얼굴이기 때문일 것이다.[13] 이는 원작자인 레오나르도로부터 요청해서 허락을 받은 것이며, 사망 이전까지는 레오나르도가 절대 아무도 넘겨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특별히 맘에 들어하니 사망 이후 넘겨받을 것을 공약하면서 넘겨받았다.[14] 펜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긴 한데, 어린이만 된다. 어떤 여성이 그림에 머그잔을 던져 그림이 훼손될 뻔한 이후로 보안이 더 강화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림에는 손상이 없었다.[15] 77㎝×53㎝면 대략 A4용지 여섯 장 수준이다.[16] 미국과 소련의 경우 2차 대전 당시 연합국으로서의 인연이라는 명분으로 대여를 허락했는지는 모르지만 일본의 경우 이유가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17] 참고로 한국의 경우 2007년, 단독 전시가 아닌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이 석 달간 80만명의 관람객 수를 기록한 바 있다.[18] 웃기게도 아폴리네르가 자신이 용의자로 지목당하자 피카소를 덩달아 지목했다. 이게 친구냐고 한탄할수도 있겠지만 피카소 역시 혐의를 피하기 위해 절친한 친구였던 아폴리네르를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고 잡아뗐느니 참으로 유유상종이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며칠만에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19] 잭 리치(Jack Ritchie)가 쓴 미스터리 단편 "The Con Game"이 이 일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실제로 모나리자를 훔치지는 않고, 도난되어 모사품과 바꿔치기 된 것처럼 꾸민 다음, 모사화들을 진품으로 파는 트릭을 쓴다.[20] 당시에는 도난된 예술품을 원주인에게 반환한다는 국제 조약 따위는 전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결정은 매우 진보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이탈리아의 국채 대부분을 소화해주는 나라가 프랑스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정치적이기도 한 반환 결정일 듯하다.[21] 도쿄 전시회 때는 작품의 도난에 대비한 거액의 손해 보험, 무장 장갑차의 호위 후송 및 몰린 인파에 대한 3렬 종대로 1열 당 관람시간 16초 제한 등이 무색하게 이러한 상황이 터졌다.[22] 심지어 안아주라고 하지만 무시한다.[23] 가상의 미술관. 실제로는 영국에 실존하는 국립 박물관에서 촬영됐다. 닥터후에서 아셀스탄의 컵이 도난당한 곳.[24] 아이들이 미술 시간에 음식으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을 마개조시킨 듯.[25] 이때 레오의 얼굴을 제대로 때림과 동시에 그를 강에 빠뜨리게 된다. 큰 충격에 빠진 채 자신의 뺨을 만진 레오의 표정은 덤(...).[26] 다만 이것도 감독이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27] 누드 모나리자의 존재도 언급된다.[28] 물론 현실에서 모나리자의 가치가 40조원 이상이기 때문에 1500억원으로는 모나리자를 못산다. 애초에 프랑스 정부가 이걸 팔 리가 없잖아 억수르는 "중고라 싸게 샀나봐"는 멘트를 한다.[29] 그런데 맨 처음에 검사했던 일기가 학생의 아버지가 아이를 웃기겠다면서 진베이 상어와 같이 수족관을 헤엄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모나리자 옆에 그 그림이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