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2px -12px" | 블라고에브그라드주 (블라고에브그라드) | 부르가스주 (부르가스) | 도브리치주 (도브리치) | 가브로보주 (가브로보) |
| 하스코보주 (하스코보) | 커르잘리주 (커르잘리) | 큐스텐딜주 (큐스텐딜) | 로베치주 (로베치) | |
| 몬타나주 (몬타나) | 파자르지크주 (파자르지크) | 페르니크주 (페르니크) | 플레벤주 (플레벤) | |
| 플로브디프주 (플로브디프) | 라즈그라드주 (라즈그라드) | 루세주 (루세) | 슈멘주 (슈멘) | |
| 실리스트라주 (실리스트라) | 슬리벤주 (슬리벤) | 스몰랸주 (스몰랸) | 소피아 | |
| 소피아주 (소피아) | 스타라자고라주 (스타라자고라) | 터르고비슈테주 (터르고비슈테) | 바르나주 (바르나) | |
| 벨리코터르노보주 (벨리코터르노보) | 비딘주 (비딘) | 브라차주 (브라차) | 얌볼주 (얌볼) | }}}}}}}}} |
| Pyce 루세 Ruse | |||||
| 국가 | | ||||
| 주 | 루세주 | ||||
| 해발 | 45m | ||||
| 인구 | 139,226명[1] | ||||
| 시간대 | UTC+03:00 | ||||
| 시장 | Pencho Milkov | ||||
1. 개요
| 루마니아어 | Русе |
| 루마니아어 | Ruse |
| 튀르키예어 | Rusçuk (루스추크) |
불가리아 북부에 위치한 루세주의 주도로 도나우강과 접하고 있는 불가리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오스만 제국 시절 부터 중요한 항구 도시로, 불가리아 최대의 하항 (河港)이다. 바르나와 이어져 있어서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19세기, 20세기 지어진 네오바로크와 네오로코코 양식의 건축물로 안해 도시의 별명은 작은 빈이다. 도나우강 건너편은 루마니아의 지우르지우로 국경 도시이기도 하다.
2. 역사
루세의 시작은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트라키아인들을 막는 요새를 쌓으면서 시작되었다. 이 요새는 과거 베오그라드인 신기두눔와 도나우 삼각주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교통의 요지였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쇠락하고 이민족들이 침입해 오면서 이 일대로 황폐화되었다. 하지만 중세 시대 이 일대가 안정화되면서 도나우강 북쪽에 있는 루마니아 도시 지우르지우와 하나의 도시를 형성하였고 중유럽과 발칸 지역을 잇는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오스만 제국시절 루세는 작은 루세라는 뜻의 루스추크로 불렸다.1595년 미하이 2세가 루세를 공격하자 오스만 당국은 도시를 파괴했다가 후일 재건했고, 18세기 들어 도나우강변의 주요 요새 도시 중 하나로 중시했다. 18세기 들어 도시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상인들이 왕래하는 무역 거점이 되었고 19세기 초엽에는 현지 예니체리 부대가 자립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864년 루세는 도나우강변에 신설된 투나 빌라예트의 치소가 되었고, 근대 문물이 들어와 우체국과 병원 및 요양원 등이 세워졌다. 특히 첫 불가리아어 신문인 두나브가 발행되는 등 플로브디프를 중심으로 한 불가리아 민족주의 운동의 거점이 되었다.1878년 불가리아 공국에 속하게 된 루세는 불가리아의 문화 및 경제 중심지로 불가리아 최초의 인쇄소, 기상 관측소, 상공회의소, 민간 보험 회사, 엘리베이터, 철도 노선 개통, 정유소, 양말 제조 공장, 설탕 공장 등 불가리아 최초란 타이틀이 붙은 것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불가리아 왕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도브루자는 루마니아 땅이 되었다. 그러자 루세는 급격하게 쇠락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 소피아와 바르나가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1940년 9월 나치 독일의 압력으로 남부 도브루자가 불가리아로 반환되었고, 이에 루세는 다시 중요한 경제, 교통,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또한 공학, 화학, 경공업이 확장되었고, 큰 항구가 건설되었다.
하지만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이 무너지면서 루세의 국영 공장들도 자유 시장 경쟁에 뒤쳐지면서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그러자 루세에는 대규모 실업과 이민 파동이 발생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3. 인구
원래 루세는 불가리아인의 인구와 튀르키예인의 인구가 비등비등하였다. 하지만 루세가 불가리아의 땅이 되고 튀르키예인들을 탄압하자 점차 감소해 현재 튀르키예계의 비율은 7.5%를 차지하고 있다.4. 관광
루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보존된 건물들이 많아 근대 시대 유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바사르보보 수도원 (Басарбовски манастир) : 불가리아 정교회의 동굴 수도원으로 불가리아 제2제국 시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 자유의 기념비 (Паметник на свободата) : 20세기 초 이탈리아인 조각가 아르놀도 조치가 세운 기념비로 시프카 고개 전투[2]를 기린다.
- 루세 TV 타워 (Телевизионна кула Русе) : 2001년까지 발칸 반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높이가 210m가 된다. 타워에는 107미터 높이의 전망대가 있어 도나우강, 카르파티아산맥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 국가 부흥 영웅들의 판테온(Пантеон на възрожденците) : 불가리아 독립 운동을 이끈 스테판 카라자(Стефан Караджа 1840~1868) 등이 잠들어있는 국가 영묘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