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09:38:53

레이크플래시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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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3월 3일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표지에 실린 경기종료 직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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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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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브래드쇼
윌리 스타젤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 슈거 레이 레너드

1. 개요2. 1980년의 뒷배경3. 올림픽 본선경기4. 기적의 시작5. 여담

1. 개요

"여러분들은 기적을 믿습니까?! (Do you believe in Miracles?!)"
"믿습니다! (YES!)"
이 경기를 요약하는 단 한마디.
빙판 위의 기적 (Miracle on Ice)[1]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있었던 미국소련아이스하키경기. 이 지구상에서 맛볼 수 있는 그 어떤 경기보다 더 감동적이고 더 기적적인 경기라는 찬사와 함께 '다윗과 골리앗'의 진정한 승부였다는 점에서 값진 경기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스포츠사에서 감동으로 남을 경기에 반드시 들어가는 경기다.

2. 1980년의 뒷배경

미국에 있어서 1980년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해일 것이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이란의 팔레비 왕조의 몰락에 따른 친미 정권의 붕괴에 이은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에 대한 후속조치 실패로 인해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폭등하는 유가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인해 경기침체가 두드러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동계올림픽에 소련이 참여하는 것에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 다행히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이 모두 참가하면서 집단 보이콧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2]

당시 소련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요즘 유행하는 최고의 표현은 죄다 갖다붙여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킹왕짱넘사벽 팀이었다. 이미 올림픽 5연패를 달성했고 이전 년도에 있었던 NHL 올스타를 상대해서 6대 0이라는 점수차로 발라 버렸다. 이 당시 소련 아이스하키 국대의 전적이 무려 27승 1무 1패. 그 1패도 1960년대 대회에서 미국에게 진 것이 유일한 것이었다. 통산 경기에서 상대와의 골 차이가 175골 대 44골에 이르고 있었다.

미국 아이스하키 협회에서 국대감독으로 추대된 허브 브룩스(Herb Brooks)감독은 선수들을 선발하는 데 있어서 프로선수들을 일체 배격하고 대학교 출신 아마추어로 구성했다. 그 중에서 올림픽 경력이 있는 선수는 1976년 대회를 뛴 바 있는 버즈 슈나이더(Buzz Schneider)가 유일했다. 브룩스 감독은 자신이 감독으로 있었던 미네소타 대학교의 미네소타 골든 고퍼스 출신 9명에 보스턴 대학교 소속의 4명을[3] 주축으로 해서 선수단을 구성했는데 문제는 이들 대학이 미국 대학 아이스하키의 소문난 라이벌이었다는 점이었다. 선수들 간의 마찰이 우려되었지만 감독은 그대로 밀어붙였고 79년 9월부터 유럽 팀들과의 평가전을 가지기 시작했다. 소련과는 1980년 2월 9일 경기를 가졌는데 예상대로 소련이 미국을 10대 3으로 관광보냈다.

3. 올림픽 본선경기

올림픽 조별 경기가 시작되자 미국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체력싸움으로 스웨덴과 2대 2로 비겼다. 그 후 체코슬로바키아를 7대 3으로 제압하는 것을 시작으로 노르웨이에 5대 1, 루마니아에 7대 2, 그리고 서독에 4대 2로 연승하면서 4승 1무로 메달 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소련 역시 일본을 16대 0(...)으로 관광보낸 것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에 17대 4, 폴란드에 8대 1, 핀란드에 4대 2, 그리고 캐나다에 6대 4로 각각 승리하면서 5전 전승으로 메달 라운드로 진출했다.

메달 라운드에 진출한 두 팀은 서로 판이한 대비를 했는데 소련은 주전 모두에게 휴식을 주고 훈련 대신 비디오로 상대분석을 하는 것으로 대신한 반면 미국의 브룩스 감독은 체력훈련과 전술훈련을 되풀이하는 동시에 낙오하는 선수들에게는 비방도 서슴치 않았을 정도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소련의 전력이 너무나도 넘사벽인지라 칼럼니스트인 데이브 앤더슨은 뉴욕 타임스에 낸 기고를 통해 "얼음이 녹든지 아니면 미국팀이 기적을 연출하지 않는 한, 소련의 여섯번째 금메달 획득은 확실해 보인다"고 예상했다. 그리고 대망의 미국과 소련의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4. 기적의 시작

2월 22일, 8500명의 관중들로 꽉 찬 경기장은 그야말로 미국을 응원하는 함성으로 가득했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소련이 먼저 선취골을 얻었다. 블라디미르 크루토프의 선취골로 소련이 1대 0으로 앞섰으나 미국도 버즈 슈나이더가 동점골을 뽑으면서 1대 1의 균형을 맞추었다. 그러나 곧이어 세르게이 마카로프가 추가골을 터뜨려 2대 1로 소련이 다시 리드를 잡았다. 1피리어드 종반까지 소련이 리드해 나갔으나 1피리어드 막판 데이브 크리스천이 쏜 30m짜리 슬랩슛에 마크 존슨이 따라붙어 수비 두 명을 제치고 제지하는 소련의 골텐더 트레티아크의 옆을 스치는 골을 터뜨리며 미국은 2대 2의 동점으로 1피리어드를 마쳤다.

2피리어드가 시작되기 전 소련은 골텐더를 블라디슬라프 트레티아크에서 블라디미르 미쉬킨으로 교체했다. 1피리어드 실점에 대한 문책성이었는데 돌연한 교체가 양 팀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일단 2피리어드는 소련의 알렉산드르 말체프가 골을 성공시켜 3대 2로 소련이 리드한 채 마감했다.

3피리어드에 서로의 골문을 열기 위한 파상공세가 최고조에 이르렀고 소련의 파울로 얻어낸 파워 플레이에서 1피리어드에서 놀라운 골을 성공시킨 마크 존슨이 다시 한번 소련의 골문을 열어제쳐 3대 3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미국은 파상공세를 이어나갔고 3피리어드를 정확히 10분을 남겨두고 주장 마이크 에루지오니가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4대 3으로 앞서나갔다[4]. 소련의 주전 골텐더 트레티아크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당황한 소련은 총공세에 나섰지만 탄탄한 수비력과 골텐더 짐 크레이그의 선방으로 더 이상의 득점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날카로운 미국의 역습에 여러 차례 실점위기를 맞았다. 양팀의 공방에서 더이상 득점이 나오지 않았고 결국 미국이 4대 3으로 소련이란 거목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이틀 후 미국은 핀란드마저 4대 2로 꺾으며 대망의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렀다. 반면 미국에게 얻어터져 멘붕에 빠진 소련은 스웨덴을 9대 2로 대파하고 은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소련에게 깨진 스웨덴이 동메달을 차지했다. 소련에는 소식이 이틀이나 지나고서야 전해졌는데 당시 소련 인민들의 반응은 "대학생 애들한테 깨졌다고?"였다.

5. 여담

  • 시범경기에서 미국을 10대 3으로 대파한 뒤 소련의 감독이었던 빅토르 티호노프는 "이거 큰 문제가 될 것 같다"고 했는데 미국을 너무 과소평가해서 경기를 망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고...
  • 티호노프는 1피리어드 종료직전 골을 허용한 트레티아크을 미쉬킨과 교체한 것에 대해 "그 경기의 전환점이자 나의 최대의 실수"라고 회상했다. 당시 소련 국대로 참가한 슬라바 페티소브[5]도 "미친 감독"이라고 비난했다는 것.
  • 미국 대표팀 골텐더였던 짐 크레이그는 경기를 앞둔 일주일 전 어머니를 암으로 여의었다. 그래서 홀로 되신 아버지가 홀로 경기를 참관했고 경기가 끝나고 난 후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 미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던 에릭 하이든은 이 경기를 보고 흥분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하필이면 다음날이 올림픽 사상 초유의 전종목 석권이 걸려 있던 10,000m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늦게 일어난 하이든은 빵 몇조각으로 허겁지겁 대충 끼니를 때우고 경기에 나섰는데 세계신기록을 6초나 단축시키며 우승하여 스피드스케이팅에 걸려있던 5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하이든이 딴 금메달 5개와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금메달이 이 대회에서 미국의 금메달 전부였다.
  • 이 경기를 중계한 아나운서는 훗날 미국 최고의 스포츠아나운서로 꼽히는 ABC앨 마이클스(Al Michaels)[6]가 맡았다.
  • 영화화도 엄청나게 많이 되었는데 1981년 은반 위의 기적, 2004년 미라클이 대표적. 이 2개 외에도 더 있다.

[1] 항목 제목은 Lake Placid Miracle on Ice라고 써야하지만, 실제로는 빙판 위의 기적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검색도 더 많다.[2]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 미국은 불참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이후의 일이었다. 다만 그건 그때 불참을 확정한 거고,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할 조짐은 전부터 보였다.[3] 그 중의 한명이 바로 준결승전에서 미국에 결승골을 안겼던 주장 마이크 에루지오니였다.[4] 이와 똑같은 상황이 16년 후인 199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렸던 1회 월드컵 아이스하키에서 일어났다. 당시 캐나다와 결승전을 치렀던 미국 대표팀은 2대 2 동점인 상황에서 토니 아몬티가 결승골을 터뜨려 미국에 3대 2 리드를 선사한 것. 사실상의 결승골이었다는 것과 아몬티가 이탈리아계인 공통점이 있었다(게다가 아몬티의 모교 역시 에루지오니의 모교인 보스턴 대학교였다). 미국은 이후 2골을 더 추가해 5대 2로 캐나다를 제압하고 초대 대회 우승국이 되었다.[5] 훗날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했다.[6] 나무위키에서는 1989년 월드 시리즈 3차전의 샌프란시스코 지진 생중계로 알려진 아나운서다. 과거 ABC에서 존 매든과 함께 먼데이 나잇 풋볼을 중계했으며, 이후 NBC 선데이 나잇 풋볼을 거쳐 현재는 프라임 비디오써스데이 나잇 풋볼 캐스터로 활동하고 있다. 야구 게임 하드볼 시리즈의 일부 작품에서도 음성해설을 맡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