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前 축구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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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레옹 글로바츠키 Léon Glovacki | |
본명 | 레옹 글로바츠키 Léon Glowacki | |
출생 | 1928년 2월 19일 | |
프랑스 제3공화국 파드칼레주 카르뱅 | ||
사망 | 2009년 9월 9일 (향년 81세) | |
스위스 제네바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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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77cm|체중 미상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SC 두에 (1947~1949) AS 트루아 (1949~1952) 스타드 드 랭스 (1952~1957) AS 모나코 FC (1957~1959) AS 생테티엔 (1959~1960) 스타드 드 랭스 (1960~1962) |
감독 | 디종 FC (1962~1965) 올랭피크 아비뇽 (1965~1968) FC 안시 (1968~1969) | |
국가대표 | 11경기 3골 (프랑스 / 1953~1955) |
1. 개요
프랑스의 前 축구 선수 및 축구 감독. 폴란드계 프랑스인으로 선수 시절에는 공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주로 스타드 드 랭스에서 선수 경력을 쌓았다. 레몽 코파와 함께 1950년대 랭스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 선수 중 한 명이며,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5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여러 프랑스 클럽에서 감독으로 활동했다.2. 선수 경력
2.1. 초기 경력
레옹 글로바츠키는 1928년 파드칼레주 카르뱅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뱅말메종의 시테 코르노 지역에서 자랐으며, 14세에 에낭리에타르에서 조정공 견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축구는 에뱅말메종에서 시작했으며, 당시 같은 지역 출신의 스타니슬라스 골린스키, 펠릭스 비트코프스키, 장 마르예프스키 등과 함께 뛰었다.18세가 되어 튐리에의 정유공장에서 조정공으로 일하며 회사 팀에서 축구를 계속했다. 이후 당시 프로팀이었던 SC 두에에 영입되어 1947년부터 1949년까지 활약하며 39경기 14골을 기록했다.
1949년 AS 트루아로 이적한 글로바츠키는 3년간 68경기에 출전해 34골을 넣으며 뛰어난 득점력을 과시했다. 이 시기의 활약이 인정받아 프랑스 최고의 명문 클럽 중 하나인 스타드 드 랭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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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스타드 드 랭스에 입단한 글로바츠키는 레몽 코파, 브람 아펠과 함께 강력한 공격 라인을 구성했다. 랭스에서의 첫 번째 시절에는 186경기에 출전해 74골을 기록하며 클럽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53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 첫 소집되어 룩셈부르크와의 경기에서 데뷔했으며, 이 경기에서 프랑스는 6-1로 승리했다. 1954년 FIFA 월드컵에는 프랑스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하여 유고슬라비아전에 출전했지만, 이 경기에서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 다음 경기인 멕시코전에서는 제외되었다. 1955년에는 마드리드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프랑스의 승리에 기여했다.
클럽에서는 1953년, 1955년 프랑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1953년에는 라틴컵 우승도 달성했다. 1955년에는 라틴컵 준우승과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을 추가했다. 특히 1956년 유러피언컵에서는 팀을 결승까지 이끌며 대회 2위 득점왕에 오르는 개인적인 성과도 거두었다. 다만 결승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 CF에게 3-4로 패배하며 초대 대회 준우승이라는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1957년 AS 모나코 FC로 이적한 글로바츠키는 2년간 61경기에 출전해 16골을 기록했다. 이후 1959년 AS 생테티엔으로 이적했지만, 26경기 4골에 그치며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과를 보였다. 1960년에는 생테티엔과 함께 쿠프 드 프랑스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1960년 레몽 코파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스타드 드 랭스에 복귀한 글로바츠키는 37경기 12골을 기록하며 팀의 1962년 프랑스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이로써 그는 랭스 소속으로 총 3번의 리그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