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9 14:16:43

데린쿠유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 화이트.svg 튀르키예의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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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55aDERINKUYU_UNDERGROUND_CITY_-_panoramio_%282%29.jpg800px-DERINKUYU_UNDERGROUND_CITY_-_panoramio_%282%29.jpg.jpg
지하도시 내부

파일:데린쿠유 터키 지도.jpg

지하도시 구조도 (마치 개미굴처럼 여러 갈래로 얽혀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괴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바위 유적
영어 Göreme National Park and
the Rock Sites of Cappadocia
프랑스어 Parc national de Göreme et
sites rupestres de Cappadoce
국가·위치 튀르키예 네브셰히르 도
등재유형 복합유산
등재연도 1985년
등재기준 (i)[1], (iii)[2], (v)[3] (vii)[4]
지정번호 357

파일:데린쿠유 터키 2.jpg

건설의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환기구. 이를 중심으로 지하 도시가 형성되었다.

Derinkuyu

1. 개요2. 역사3. 기타4.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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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실제 존재했던 지하 도시이며, 튀르키예 중부 네브셰히르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져 있다. 1985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름은 튀르키예어로 '깊은 우물'이라는 뜻으로, 환기구 역할을 하는 직경 1m 규모의 구멍이 도시를 수직으로 관통하고 있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2천 년간 그리스계 주민들이 살던 곳으로, 그리스어 지명은 말라코피 (Μαλακοπή)였다. 1923년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으로 그리스계 원주민들이 떠난 후 버려졌다가 20세기 후반 관광지화되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함께 관광업이 활성화되자 인근 지역 주민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더니 현재는 인구 1만이 넘는 어엿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발견된 36개 지하 도시 중 최대 규모인 데린쿠유 지하도시의 최대 깊이는 85m 지하 7층 규모인데, 안전상의 문제로 지하 30m까지만 공개 중이다. 쉽게 오해할 수 있는 게 지하에만 유적이 있는 게 아니라 지상에도 성 테오도로 성당 등이 있다.

2. 역사

파일:터키 데린쿠유 테오도로.jpg

지상에 있는 몇 안되는 유적 중 하나인 성 테오도로 성당

아나톨리아 반도 중앙의 카파도키아 고원 아래에 부드러운 화산암을 깎아 만든 200개가 넘는 지하 도시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인데, 한 농부가 도망간 닭을 쫓아 들어갔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최초의 터널들은 4천 년 전에 파였다고 추정하는 설도 있으나, 튀르키예 문화부의 발표에 따르면 기원전 8~7세기 프리기아인들이 착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성기는 동로마 제국 시대로,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이 무슬림 아랍인, 튀르크족의 습격을 받자 피신처로 이용했다. 14세기 티무르가 공격할 때는 정교회 원주민들의 피신처로 이용되었다. 심지어 20세기까지도 카파도키아의 그리스인들이 오스만 제국의 탄압을 피해 피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튀르키예 전쟁 이후 1923년 그리스튀르키예의 주민 교환으로 버려졌다가 1963년 재발견되었다.

데린쿠유는 2만 명이 살 수 있는 크고 아름다운 규모이다. 방과 방은 통로로 연결됐는데, 총 11개 층이 있고 지하 85미터 깊이까지 이어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데린쿠유의 시설이다. 곡물창고, 포도주와 기름 착유기, 식당, 학교와 예배당, 심지어 농장과 가축농장은 물론 감옥도 있었다고 한다. 그 시대에 이런 규모로 지하에 도시를 건설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5] 지하 도시의 입구에는 작은 지상 마을도 존재했는데 겨우 수백 명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였다.

특히 의문스러운 점은 빛도 공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지하동굴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 수 있었는지였는데,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앙에 있는 수직 환기구와 주위의 보조 환기구들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파일:터키 데린쿠유.jpg

거대한 바위문을 이용해 도시를 성처럼 봉쇄할 수 있어서 티무르의 공격에도 도시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미닫이문처럼 방과 방 사이에 작은 틈새가 있고 그 안에 돌덩이를 끼워서 적군이 들어오면 그 돌덩이를 통로 중간으로 굴려서 막아버리는 방식이었다. 심지어는 하나의 방 양쪽 출입구에 모두 바위문을 만들어서 적군을 아예 포위시킬 수 있는 방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 공개되어 있는 데린쿠유 지하 도시의 입구 부분도 잘 보면 알 수 있지만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에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각개 격파하기 딱 좋은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이너마이트벙커버스터 폭발물 같은 걸로 입구부터 시작해 싹 날려버리거나 땅굴을 파지 않는 이상 재래식 방법으로는 침입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또한 가장 가까운 지하도시 카이막르(Kaymaklı)와도 길이 8 km 터널로 연결되었다.

3. 기타

2018년 7월 29일 tvN이타카로 가는 길 방송에서 소개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기독교 성지 여행단에서 보통 데린쿠유를 이슬람에게 탄압받아 기독교도가 숨어 살면서 지은 곳으로 가이드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위에 서술했듯이 기독교인들이 숨어 산 것은 맞지만 여기는 그 이전에 이미 만들어졌다.

자동차 전문 기자인 한상기 기자가 방문하였다.

4. 같이보기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4]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5] 사실 이 지방의 돌은 매우 부드러운 화산암 재질이라 그냥 손톱으로 긁어도 긁힐 정도로 무르다. 하지만 강도는 강하기 때문에 이런 구조물을 깎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