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2. 역사
2.1.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의 역사2.2. 클럽의 창단과 초창기2.3. 제 1차 세계 대전 전후의 니더작센 축구 클럽2.4. VfL 오스나브뤼크와 VfL 볼프스부르크2.5. 가우리가 니더작센과 제 2차 세계 대전2.6. 오버리가 시기2.7. 분데스리가의 출범과 갈등의 시작2.8. 분데스리가 초창기와 니더작센 클럽2.9. 1980년대 이후의 니더작센 클럽과 1990년대의 VfL 볼프스부르크의 부상2.10. 2000년대 이후의 니더작센 클럽
3. 더비 및 라이벌리3.1.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vs 하노버 963.2. 하노버 96 vs VfL 볼프스부르크3.3. VfL 오스나브뤼크 vs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3.4. 하노버 96 vs VfL 오스나브뤼크
1. 개요
니더작센더비(Niedersachsenderby)는 독일 니더작센주를 대표하는 스포츠 클럽인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 96 두 클럽 간의 더비 매치를 뜻한다.현재의 니더작센(영어로는 Lower Saxony)은 독일 북동부에 위치한 작센주 보다도 작센이란 이름의 정통성이 더 큰데 그 이유는 원래 1180년 이전의 작센 공국은 독일 왕국의 가장 북쪽에 있었기에 발트해나 북해로의 진출입이 활발하였으며 번영을 누렸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작센이라는 명칭은 1180년대 본래의 영토였던 니더작센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현재의 폴란드와의 국경을 이루는 지역을 이르는 명칭이 되었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작센족이라고 불렸으며 잉글랜드 초기 역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앵글로-색슨족(anglo-saxons)이 작센족의 영어식 발음이며 머나먼 과거였던 5세기경에는 작센족(색슨족)이 브리타니아 섬을 침공하여 잉글랜드와 현재 영국의 근간을 이루게된다.
니더작센과 작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니더작센, 작센, 작센 선제후국과 작센 공국, 하인리히 사자공, 앵글로색슨족 등의 내용을 참고.
한편, 니더작센더비의 정의는 니더작센의 도시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를 연고로 하는 대표적인 스포츠 클럽인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 96간의 축구 경기에서의 라이벌리를 뜻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해당 문서에서는 같은 니더작센을 연고로 하는 저명한 다른 스포츠 클럽인 VfL 볼프스부르크와 VfL 오스나브뤼크와의 라이벌리 또한 언급한다.
이는 니더작센이라는 광역 명칭을 이루는 해당 지역은 47,709.82km²의 면적으로 독일 전체 영토의 약 13%에 이르며 VfL 볼프스부르크 와 VfL 오스나브뤼크 역시 해당 지역을 연고로 하는 동시에 일정한 흐름을 지니고 클럽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특정 클럽 간의 라이벌리의 명칭이 해당 광역 행정 구역의 명칭까지 독점하는 것은 불합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더비라는 영국의 도시에서 유래하였으며 라이벌의 의미를 가지는 더비라는 명칭이 반드시 축구 및 축구 클럽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며 앞서 언급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 96은 축구 뿐만 아니라 여러 종목의 스포츠 부서을 가진 종합 스포츠 클럽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문서에서는 익히 알려진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 96의 라이벌리를 주로 다루고 양 팀의 다른 스포츠 부서 및 니더작센의 다른 유명 축구 클럽인 VfL 볼프스부르크 및 VfL 오스나브뤼크에 대한 내용은 간략한 소개에 그친다.
1.1. 니더작센의 범위와 해당 지역
|
하노버와 브레멘을 중심으로 본 니더작센 지역 |
니더작센 지역을 세분화하면 중앙 상단의 브레멘(Bremen)을 니더작센이 둘러싸고 있는데 브레멘은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자유시로 독립하였으며 브레멘의 동남쪽으로 현재 니더작센주의 주도인 하노버(Hannover)가 위치하고 있다.
하노버에서 동남쪽으로 약 55km를 이동하면 브라운슈바이크가 나오며[1]브라운슈바이크의 북동쪽에 다른 연방주인 안셀안할트와 가까이 볼프스부르크가 있다. 니더작센의 최남단에는 괴팅겐이 있으며 아래로는 헤센주로 이어진다.
남서쪽으로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과 맞닿아있다. 남서쪽에는 오스나브뤼크가 있는데 지도에서 보듯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과 가깝기 때문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축구 클럽과도 관련이 깊다. 자세한 내용은 VfL 오스나브뤼크 단락에서 후술.
한편, 브레멘의 북서쪽으로 이동하면 VfL 올덴부르크의 연고 도시인 올덴부르크가 나오며 더 서쪽으로 이동하면 네덜란드와 매우 가까운 엠덴까지 이어진다. 니더작센의 북동쪽으로는 브레멘과 같이 자유시인 함부르크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과 맞닿아있다.
이러한 니더작센의 행적적, 지역적 테두리로 보아 해당 지역 근방에 위치하고 있으나 니더작센의 스포츠 및 축구 클럽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도시와 그 도시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 또는 스포츠 클럽은 다음과 같다.
뮌스터와 빌레펠트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뮌스터는 오스나브뤼크에서 남서쪽 5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빌레펠트는 오스나브뤼크에서 동남쪽 약 55km지점에 있다.
VfL 오스나브뤼크의 창단 초기인 1920년대에는 니더작센이 아닌 베스트팔렌의 축구 리그인 베지르크슬리가 베스트팔렌에서 경기하기도 하였으나 1933년 가우리가의 출범 이후 리그가 달라졌으며 오버기라 이후에도 이어진다. 따라서 전국 단위 리그가 아닌 3. 리가 이하의 리그에서는 오스나브뤼크 연고 클럽과 뮌스터 및 빌레펠트의 클럽은 만날 수 없으며 3. 리가 이상의 리그에서만 상대가 가능하다.
브레멘
= 한자 자유도시인 브레멘은 이후 독립적인 행정구역이 되었으나 1963년 출범한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에는 당연히 같은 리그 소속으로 경기하였다.
가우리가(1933 ~ 1945년)와 오버리가 노르트(1947/48 시즌 ~ 1962/63 시즌)등의 시기 니더작센의 축구 클럽들은 브레멘을 연고로 하는 클럽과 많은 경기를 가졌으며 현재에도 전국 단위 리그가 아닌 레기오날리가 이하의 단계의 리그에서는 브레멘의 클럽들과 경기한다.
단, 브레멘은 별도의 행정 구역이기에 니더작센더비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으며 페어반츠포칼도 니더작센 포칼과 브레머 포칼로 대회를 달리한다.
브레멘의 대표적인 축구 클럽은 SV 베르더 브레멘, FC 오버노일란트, 브레머 SV 등이 있다.
함부르크
=브레멘과 마찬가지로 한자 자유도시인 함부르크는 이후 독립적인 행정구역이 되었으나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에는 같은 리그 소속으로 경기하였다. 니더작센의 축구 클럽들은 함부르크를 연고로 하는 클럽과 많은 경기를 가졌으며 현재에도 전국 단위 리그가 아닌 레기오날리가 이하의 단계의 리그에서는 함부르크의 클럽들과 경기한다.
단, 함부르크은 별도의 행정 구역이기에 니더작센더비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으며 페어반츠포칼도 니더작센 포칼과 함부르거(함부르크) 포칼로 대회를 달리한다. 함부르크의 대표적인 축구 클럽은 함부르크 SV, FC 장크트파울리, SC 빅토리아 함부르크, 아인트라흐트 노르더슈테트 등이 있다.
1.2. 니더작센 주요 축구 클럽의 상대 경기 수
먼저 니더작센을 연고로 하는 주요 축구 클럽들간의 더비 매치 경기 수는 다음과 같다.(2024/25 시즌 각 리그 종료 기준)해당 기록은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1947/48 시즌의 오버리가-노르트 및 당시 2부 리그인 오버리가 니더작센-오스트, 오버리가 니더작센-오스트 및 이하의 리그부터 2024/25 시즌까지의 종료 기준 집계이며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vs 하노버 96의 통산 경기 수는 해당 문서에서 서술.
니더작센 클럽들의 상대 경기 수 | ||||||
클럽 | 아인트아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하노버 96 | VfL 오스나브뤼크 | VfL 볼프스부르크 | VfB 올덴부르크 | 아르미니아 하노버 |
아인트아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 | 81경기 | 89경기 | 24경기 | 41경기 | 34경기 |
하노버 96 | 81경기 | - | 76경기 | 59경기 | 29경기 | 33경기 |
VfL 오스나브뤼크 | 89경기 | 76경기 | - | 43경기 | 62경기 | 62경기 |
VfL 볼프스부르크 | 24경기 | 59경기 | 43경기 | - | 48경기 | 54경기 |
VfB 올덴부르크 | 41경기 | 29경기 | 62경기 | 48경기 | - | 67경기 |
SV 아르미니아 하노버 | 34경기 | 33경기 | 62경기 | 54경기 | 67경기 | - |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4px 4px; border-radius: 8px; background: #FFA500; font-size: 0.8em"
주황색 바탕}}}은 더비 문서가 작성되어 있는 매치.#. 2024/25 시즌까지의 각 리그 종료 기준 작성.
1.3.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시즌별 소속 리그와 경과 시즌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1963/64 ~ ) 니더작센 주요 축구 클럽의 시즌별 소속 리그는 다음과 같은 변천을 거쳤으며 각 클럽 리그 명칭의 바탕색은 리그 티어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다르다.하얀색 바탕은 분데스리가를 의미하며 분홍색 바탕은 레기오날리가(1964/65 ~ 1973/74 시즌) 및 2. 분데스리가 노르트와 2. 분데스리가 등 2부 리그를 의미한다. 초록색 바탕은 레기오날리가 및 3. 리가 등 3부 리그를 의미하며 피란색 바탕은 오버리가 및 레기오날리가 등 4부 리그를 의미한다.
또한 시즌 셀의 노란색 바탕은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 96간의 매치가 리그 티어와 상관없이 열렸던 시즌을 의미한다.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니더작센 주요 클럽의 소속 리그 | ||||
시즌 | 아인트아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하노버 96 | VfL 오스나브뤼크 | VfL 볼프스부르크 |
1963/64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64/65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65/66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66/67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67/68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68/69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69/70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70/71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71/72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72/73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73/74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1974/75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1975/76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오버리가-노르트 |
1976/77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1977/78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오버리가-노르트 |
1978/79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오버리가-노르트 |
1979/80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오버리가-노르트 |
시즌 | 아인트아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하노버 96 | VfL 오스나브뤼크 | VfL 볼프스부르크 |
1980/81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오버리가-노르트 |
1981/82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1982/83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1983/84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1984/85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오버리가-노르트 |
1985/86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1986/87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1987/88 | 오버리가-노르트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1988/89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1989/90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1990/91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1991/92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오버리가-노르트 |
1992/93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1993/94 | 오버리가-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오버리가-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1994/95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1995/96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1996/97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1997/98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1998/99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1999/2000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시즌 | 아인트아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하노버 96 | VfL 오스나브뤼크 | VfL 볼프스부르크 |
2000/01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2001/02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2.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2002/03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2003/04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2004/05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2005/06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2006/07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2007/08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2008/09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2009/10 | 3. 리가 |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10/11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2011/12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12/13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13/14 |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14/15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15/16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16/17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17/18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18/19 | 3. 리가 |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19/20 | 3. 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시즌 | 아인트아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하노버 96 | VfL 오스나브뤼크 | VfL 볼프스부르크 |
2020/21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2021/22 | 3. 리가 | 2.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22/23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23/24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분데스리가 |
2024/25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2025/26 | 2. 분데스리가 | 2. 분데스리가 | 3. 리가 | 분데스리가 |
니더작센 클럽들의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리그 티어별 경과 시즌 | |||||||
리그 티어 | 리그 명칭 | 아인트아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하노버 96 | VfL 오스나브뤼크 | VfL 볼프스부르크 | VfB 올덴부르크 | SC 아르미니아 하노버 |
1 | 분데스리가[BL] | 22시즌 | 30시즌 | - | 29시즌 | - | - |
2 | 2. 분데스리가[2.BL] | 22시즌 | 31시즌 | 37시즌 | 18시즌 | 14시즌 | 17시즌 |
3 | 3. 리가[3.L] | 19시즌 | 2시즌 | 26시즌 | 16시즌 | 18시즌 | 14시즌 |
4 | 레기오날리가[REG] | - | - | - | - | 18시즌 | 10시즌 |
5 | 오버리가[OBE] | - | - | - | - | 8시즌 | 21시즌 |
6 | 페어반츠리가[Ver] | - | - | - | - | 5시즌 | 1시즌 |
위와 같이 본 문서에서 언급되는 니더작센의 주요 클럽들은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먼저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는 가장 먼저 니더작센을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으로 입지를 다졌으나 1980년대 이후의 전력은 하락세를 그려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참가하는 시즌이 드물어졌다.
이와 같은 흐름의 결과로 대표적인 라이벌인 하노버 96과의 경기 또한 열리지 못하는 시즌이 1980년대 이후 많아졌으며 2000년대 ~ 2020년대에는 단 2시즌만 니더작센더비가 열렸을 뿐이었다. 당연히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2000년대를 보낸 하노버가와 달리 2. 분데스리가 또는 3부 리그에 있었던 기간이 길었기 때문. 이러한 등락의 거급으로 BTSV는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하노버 96과의 경기보다 VfL 오스나브뤼크와 경기 수가 더 많다.
이와 달리 하노버 96은 분데스리가 2번째 시즌부터 줄곧 참가하였으며 1970년대 중반의 2. 분데스리가 강등 이후 줄곧 2. 분데스리가와 분데스리가를 오가는 클럽이 되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후반까지 분데스리가 소속 클럽으로 입지를 다지며 통산 분데스리가 소속 시즌에서 라이벌인 BTSV를 앞섰다.
BTSV와 달리 하노버 96은 3부 리그 소속 시즌이 단 2시즌에 불과하며 2000년의 분데스리가 소속 클럽으로 명성을 날렸으나 2010년대 중후반 2. 분데스리가로의 강등 이후 반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VfL 오스나브뤼크는 전형적인 2부 리그와 3부 리그를 오가는 클럽의 행보를 보였다.
1980년대 중반 첫 3부 리그로 추락하였으나 곧바로 2. 분데스리가로 돌아와 2부 리그에서 많은 시즌을 보였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3부 리그 소속인 시즌이 많아지는 흐름을 보인다. 다행인 것은 4부 리그인 레기오날리가 이하로의 강등은 없다는 점.
VfL 볼프스부르크는 BTSV 및 H96과 정반대의 역사를 거쳤다.
전력이 약하였던 1960년대는 물론 1970대 중반에는 당시 3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까지 떨어졌으며 1990년대 이전까지 존재감이 작았으나 1990년대 환골탈태하며 분데스리가로 승격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경기하고 있으며 통산 시즌에서 BTSV를 앞서고 하노버 96을 추격하고 있는 상태.
2. 역사
2.1.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의 역사
니더작센더비의 이해를 위해서는 양 팀이 연고로 삼고 있는 니더작센의 도시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의 축구 또는 스포츠와는 별도의 역사적 갈등과 감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16세기 초까지 한적한 어촌이었던 하노버는 라인강의 수운을 이용하면서 브레멘, 함부르크 등 한자 동맹 소속 도시 국가들의 무역을 독일 남부 지방과 이어주는 거점으로 이용되면서 도시로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후 니더작센 지역에서 나오는 풍부한 은과 철을 바탕으로 더욱 번성하였고 17세기 중반에는 결정적으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이 이 곳으로 천도하면서 절정기를 누렸다.
수도를 하노버로 옮긴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은 과거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였으나 몰락을 거듭하여 영토 분할을 거듭하며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으로 역사가 이어지며 일부의 역사는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으로 이어진다.
그러던 1636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공작 게오로크가 수도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하노버로 옮기면서 이때부터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가문은 하노버 공작 가문이 되었으며 이후 하노버 왕국으로 발전한다.
자세한 내용은 하노버, 브라운슈바이크의 역사 및 하노버 왕국,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하노버 선제후국 등의 내용 참고.
한편, 중세 시대 작센 공국의 일부였으며 벨프 가문의 하인리히 사자공에 의해 작센 공국의 수도까지 선정된 브라운슈바이크는 17세기 초반까지 니더작센의 중심지였으며 대표적인 도시였다. 그러던 와중 졸지에 수도가 하노버로 옮겨졌으며 공국의 명칭도 이제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이 아닌 하노버 공국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니 새로운 수도인 하노버에 대한 적대감과 경쟁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2.2. 클럽의 창단과 초창기
한편, 1860년대의 영국에서 축구라는 스포츠의 규칙과 제도가 정립되고 이후 1880년대를 거쳐 독일의 전역에도 본격적으로 축구가 도입되었다.1895년, 영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크리켓 위주의 클럽에서 축구를 병행하는 형태로 축구 및 크리켓 클럽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Fußball- und Cricket Club Eintracht Braunschweig)라는 스포츠 클럽이 창단되었으며 클럽의 명칭에서 보듯 크리켓 위주의 클럽이었다.
이후 1년 후에는 하노버 지방에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Hannoverscher Fußball Club 1896)이라는 이름의 축구 클럽이 창단되었는데 이것이 현재 하노버 96의 시작이었다. 여담으로 니더작센더비를 이루는 양 도시는 약 55km 떨어져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의 역사, 하노버 96의 역사 및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위키피디아, 하노버 96 위키피디아 참고.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이하 BTSV 또는 EBS)와 하노버 96(이하 H96 또는 하노버)은 창단 초기부터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으나 1900년대에는 리그가 달랐기에 당연히 양 팀 사이의 경기는 없었다. 두 팀의 첫 만남은 1904/05 시즌에서 였는데 당시에는 양 팀의 리그가 달랐기에 리그가 아닌 전국 단위 토너먼트인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의 만남이 첫 만남이었다.
먼저 EBS는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축구 협회(Fußballbund für das Herzogtum Braunschweig)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축구 협회 위키피디아 참고 소속이었으며(당시 클럽 명칭은 FuCC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해당 시즌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국 대회의 출전 자격을 얻었으며 하노버는 훗날 하노버 96이라는 이름으로 합병되는 하노버셔 FC 1896라는 클럽의 이름으로 당시 1. 하노버 베지르크슬리가(1. hannover Bezirksliga)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국 대회인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첫 참가한 상태였다.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는 당시 개별 리그의 우승 클럽이 모여 풀 리그가 아닌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단판제로 경기가 열렸다. 1905년 4월 9일(이하 독일 현지 일자 기준), 훗날 니더작센더비로 불리게 되는 FuCC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셔 FC 1896의 첫 맞대결은 연장 접전 끝에 FuCC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가 승리하였다.
이어 다음 시즌에도 리그 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한 두 팀은 새롭게 만들어진 북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북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위키피디아 참고.에서 상대하였으며 당시 좋은 전력을 지니고 있던 FuCC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의 승리로 끝이났다. 그러나 FuCC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은 당시 북부 독일에서 강한 전력을 지니고 있던 FC 빅토리아 함부르크(현재 SC 빅토리아 함부르크)에 밀려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진출에 실패한다.
이렇게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 축구에서 양 팀은 소속 리그가 달랐기에 양 팀은 당시 최고 영광의 자리인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관문인 북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주로 마주쳤다. 이를 간단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전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의 과정.
= 《1차》각 지역별 협회 리그(현재의 페어반츠리가에 해당)에서 우승.
= 《2차》각 지역별 축구 선수권 대회(북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로의 진출(이후 토너먼트)이후 우승.
= 《3차》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 진출(이후 토너먼트)이후 우승.
= 《1차》각 지역별 협회 리그(현재의 페어반츠리가에 해당)에서 우승.
= 《2차》각 지역별 축구 선수권 대회(북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로의 진출(이후 토너먼트)이후 우승.
= 《3차》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 진출(이후 토너먼트)이후 우승.
2.3. 제 1차 세계 대전 전후의 니더작센 축구 클럽
그러나 모든 상황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달라지기 시작한다.먼저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는 1905년, 클럽의 명칭을 FC 아인트라흐트 폰 1895 e. V.(FC Eintracht von 1895 e. V.)로 바꾼 상테였는데 전쟁 발발 첫 시즌인 1914/15 시즌이 완전히 취소되었고, 1915년부터 1918년까지는 매우 제한적인 형태로 브라운슈바이크 지역의 챔피언만들 가리기 위한 경기가 열렸을 뿐이었다.
또한 전쟁의 시작으로 기존의 리그였던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축구 협회 리그는 사라진 상태였으며 1916년과 1918년에는 북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는 개별 클럽간의 경기가 아닌 도시 연합의 형태로 바뀌어 BTSV는 다른 팀들과 연합하며 팀을 구성하여 경기에 나섰으나 1917년 북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준결승에서 SV 빌헬름스하펜에 패하며 탈락하였다.
그리고 1920년 2월 10일, 클럽은 다시 SV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Sportverein Eintracht Braunschweig)로 이름을 변경하였는데 이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내 독일 제국의 패망으로 끝이나며 독일의 축구 리그는 중단되었으며 종전 이후인 1919년에는 기존의 남성 고학력자 뿐만 아니라 여성도 각종 스포츠 클럽의 회원이 될 수 있었다.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스포츠가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1920년대 이후 몇 년 동안 순수한 축구 클럽에서 스포츠 클럽으로 변화하는 추세가 나타났는데 이는 당시 독일의 민족주의 체조 운동가들이 축구가 영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반독일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다녔기 때문인데 당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이었던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 영국이 주요 적국이었던 것도 중요한 맥락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제1차 세계 대전 및 체조의 역사 등 참고.또한 1920년대 이후 몇 년 동안 순수한 축구 클럽에서 스포츠 클럽으로 변화하는 추세가 나타났는데 이는 당시 독일의 민족주의 체조 운동가들이 축구가 영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반독일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다녔기 때문인데 당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이었던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 영국이 주요 적국이었던 것도 중요한 맥락이었다.
이렇게 단순 축구 클럽에서 종합 스포츠 클럽의 형태를 갖추게 된 BTSV는 현재까지 축구 이외 필드 하키, 농구 , 시각 장애인 축구, 피트니스 클럽, 핸드볼, 육상, 체스, 수영 및 수구, 노인 스포츠, 다트, 테니스, 체조, 배구, 동계 스포츠 등 여러 종목을 운영하는 종합 스포츠 클럽이 되었다.
이후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는 크라이슬리가 쥐트크라이(Kreisliga-Südkreis)소속으로 경기하였으며 1924년과 1925년 쥐트크라이 지구 우승을 차지하였고 1924년에는 북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다시 출전하였으나 준우승에 머무르며 다시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 출전이 좌절된다.
한편,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은 1913년, 구기 클럽 1898 하노베라와 합병하며 현재의 명칭인 하노버 96의 근간이 만들어진다. 또한 BTSV와 마찬가지로 1920년대를 지나며 종합 스포츠 클럽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05년 하노버 지역 클럽의 합병 및 명칭 변경
= 축구 클럽 하노베라(Fußballverein Hannovera) + 1898 하노버(1898 Hannover) + 하노버셰어 BV(Hannoverscher BV)
= 구기 클럽 1898 하노베라(Ballverein 1898 Hannovera)
1913년 합병 및 명칭 변경
=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 + 구기 클럽 1898 하노베라
= 하노버셰어 스포츠 클럽 1896(Hannoverscher Sportverein 1896)
이후 하노버셰어 스포츠 클럽 1896은 1920년대 당시 독일의 1부 리그였던 1. 베지르크슬리가 쥐트하노버-브라운슈바이크(1. Bezirksliga-Südhannover-Braunschweig)에서 경기하였으며 1933년, 나치 독일이 독일의 집권 세력으로 떠오르며 가우리가가 도입되며 가우리가 니더작센(Gauliga Niedersachsen)으로 편입된다.= 축구 클럽 하노베라(Fußballverein Hannovera) + 1898 하노버(1898 Hannover) + 하노버셰어 BV(Hannoverscher BV)
= 구기 클럽 1898 하노베라(Ballverein 1898 Hannovera)
1913년 합병 및 명칭 변경
=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 + 구기 클럽 1898 하노베라
= 하노버셰어 스포츠 클럽 1896(Hannoverscher Sportverein 1896)
2.4. VfL 오스나브뤼크와 VfL 볼프스부르크
한편, 니더작센의 중심도시였던 하노버에서 약 65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오스나브뤼크에서는 게르마니아(Germania)와 미네르바(Minerva) 및 안티포디아(Antipodia)라는 축구 클럽이 있었는데 1899년 4월 17일, 세 팀이 합병하여 FC 1899 오스나브뤼크(FC 1899 Osnabrück)라는 새로운 축구 클럽으로 발전한 상태였다.이후 FC 1899 오스나브뤼크는 1920년, 지역 라이벌이었던 오스나브뤼크 구기 클럽 05(Osnabrücker Ballspielverein 05)와 합병하였으며 1924년에는 다시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하고 있던 오스나브뤼크 스포츠(Osnabrück Spiel und Sport)와 합병하여 현재의 명칭인 VfL 오스나브뤼크 스포츠 클럽(Verein für Leibesübungen Osnabrück)이 탄생하였다.
1899년 4월 17일 오스나브뤼크 지역 클럽의 합병 및 명칭 변경
= 게르마니아(Germania) + 미네르바(Minerva) + 안티포디아(Antipodia)
= FC 1899 오스나브뤼크(FC 1899 Osnabrück)
1924년 합병 및 명칭 변경
= FC 1899 오스나브뤼크 + 오스나브뤼크 스포츠
= VfL 오스나브뤼크 스포츠 클럽(Verein für Leibesübungen Osnabrück)
한편, 오스나브뤼크는 현재 니더작센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오스나브뤼크는 베스트팔렌의 뮌스터와 빌레펠트와도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1920년대부터는 베스트팔렌의 1부 축구 리그인 1. 베지르크슬리가 베스트팔렌(1. Bezirksliga-Westfalen)에서 경기하였으며 당시에는 현재의 니더작센을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들과의 경기는 적었다. 당연히 리그가 달랐기 때문.= 게르마니아(Germania) + 미네르바(Minerva) + 안티포디아(Antipodia)
= FC 1899 오스나브뤼크(FC 1899 Osnabrück)
1924년 합병 및 명칭 변경
= FC 1899 오스나브뤼크 + 오스나브뤼크 스포츠
= VfL 오스나브뤼크 스포츠 클럽(Verein für Leibesübungen Osnabrück)
자세한 내용은 오스나브뤼크, 오스나브뤼크 위키피디아 및 레비어 더비의 베지르크슬리가와 크라이슬리가 시기 및 베지르크슬리가 베스트팔렌 베지르크슬리가 베스트팔렌 위키피디아 참고.
이러한 VfL 오스나브뤼크가 베스트팔렌이 아닌 니더작센의 축구 클럽의 범주에 포함된 것은 1933년 가우리가의 출범 시점부터였다.
1933년, 독일의 새로운 집권 세력으로 등장한 나치 독일은 독일의 축구 리그를 가우리가 이하의 리그로 재편성하였는데 이때부터 VfL 오스나브뤼크는 가우리가 니더작센(Gauliga Niedersachsen)에서 경기하며 현재의 지역인 니더작센의 축구 클럽으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다른 한편, 1930년대 후반에는 하노버 동쪽의 볼프스부르크에서 훗날 폭스바겐 비틀로 알려진 KdF-바겐(KdF-Wagen)을 생산하기 위해 새로 건설된 폭스바겐의 볼프스부르크 공장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팔러슬레벤(KdF -Wagens bei Fallersleben)이라는 마을이 건설되었으며 이는 공장 근로자에게 주거 환경과 여가 생활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생성된 마을에서 1938년 7월 1일, 당시 폭스바겐 공장에 일하는 근로자 위주로 축구 클럽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 VfL 볼프스부르크의 초창기의 모습이었다. 당시 축구 클럽의 명칭은 BSG 폭스바켄워크 슈타트 데스 KdF-Wagen(BSG Volkswagenwerk Stadt des KdF-Wagen)로 말 그대로 KdF-Wagen의 생산을 위한 폭스바겐 공장 마을의 클럽이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창단된 BSG 폭스바켄워크 슈타트 데스 KdF-Wagen는 창단 초기 하부 리그에서 경기하였으나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우리가 오스트하노버(Gauliga Osthannover)까지 진출하며 당시 독일 1부 리그였던 가우리가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이때가 제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인 1943/44 시즌의 일이었다.
2.5. 가우리가 니더작센과 제 2차 세계 대전
1933년, 나치 독일이 새로운 독일의 집권 세력으로 등장하며 독일의 축구 리그는 큰 변화를 맞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가우리가의 등장이었다.기존의 1부 리그였던 1. 베지르크슬리가 쥐트하노버-브라운슈바이크 시기 이미 지역의 강팀으로 SV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과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하노버 96)은 가우리가 니더작센에서 경쟁을 펼쳤다.
당시 가우리가 니더작센 가우리가 니더작센 위키피디아 참고은 두 팀 외에도 니더작센이 둘러싸고 있는 월경지이자 한자 자유시인 브레멘의 대표적인 축구 클럽인 SV 베르더 브레멘과 아르미니아 하노버, SV 알제르미센 11 알제르미센 11 위피키디아 참고 등이 강팀이었고 이 5팀이 치열하게 리그 우승과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출전을 위한 경쟁을 펼쳤다.
이 시기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는 첫 시즌이었던 1933/34 시즌 우승을 SV 베르더 브레멘에게 내주었으나 다음 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였으나 당시 독일 전체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던 FC 샬케 04에 밀려 조 2위에 그치며 준결승전 진출에 실패한다.
자세한 내용은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1934/35 시즌 위키피디아 참고.
비록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탈락하였으나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은 줄곧 가우리가 니더작센[8]에서 리그 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1937/38 시즌 가우리가 니더작센에서 2번째 우승을 차지하고 드디어 최초의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당시 최강자이던 FC 샬케 04를 꺽고 우승을 차지한다.
자세한 내용은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1937/38 시즌 위키피디아 참고.
이후에도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은 1939/40 시즌과 1940/41 시즌 가우리나 니더작센-노르트[9]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1942/43 시즌과 1943/44 시즌에는 가우리가 쥐트하노버-브라운슈바이크(Gauliga Südhannover-Braunschweig)지구에서는 5위를 차지하며 가우리가 시절을 마감한다.
한편, SV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는 가우리가 니더작센 시절에는 SV 베르더 브레멘과 하노버 96 및 아르미니아 하노버에 밀리며 우승에는 실패하였으며 1939/40 시즌과 1940/41 시즌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당시 우승 팀이 현재의 라이벌인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였다. 그러나 SV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는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2/43 시즌과 가우리가 시기 마지막 시즌은 1943/44 시즌 가우리가 쥐트하노버-브라운슈바이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였다.
이렇게 오랜만에 진출하였던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였으나 1942/43 시즌에는 가우리가 함부르크 소속의 SC 빅토리아 함부르크에게 패하며 초반 탈락하였으며 다음 시즌에는 빌헬름스하펜 05에 패하며 초반 탈락하고 말았다.
한편, 1920년대 베스트팔렌 지역의 클럽들과 경기하였던 VfL 오스나브뤼크는 가우리가 니더작센의 초기 시절인 1933/34 시즌과 1934/35 시즌 가우리가의 출범으로 2부 리그로 격하된 1. 베지르크슬리가 니더작센(Bezirksliga Niedersachsen)에서 경기하였으나 1935/36 시즌 가우리가로 승격한다.
이후 VfL 오스나브뤼크는 가우리가 니더작센에서 SV 베르더 브레멘과 아르미니아 하노버는 물론 훗날 니더작센의 대표적인 축구 클럽의 대표를 놓고 다투게 되는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 96을 상대하게 된다.
VfL 오스나브뤼크는 첫 승격 시즌 곧바로 강등되었으나 다시 승격에 성공하며 가우리가 소속 클럽이 되었으며 1938/39 시즌과 1939/40 시즌[10]을 차지하며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첫 진출하는 영광을 이루게 된다.
이와 달리 1938년 창단된 신생 구단인 BSG 폭스바켄워크 슈타트 데스 KdF-Wagen은 가우리가 중기 시절까지 1. 베지르크슬리가 니더작센에서 경기하였으나 후반부인 1943/44 시즌 가우리가 1. 베지르크슬리가 니더작센-오스트하노버로 승격하며 첫 1부 리그에 입성하는 경사를 맞이한다.
다음 시즌에도 다시 가우리가 오스트하노버에서 경기한 BSG 폭스바켄워크 슈타트 데스 KdF-Wagen였으나 1944/45 시즌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마무리되며 리그가 중단되었으며 이후의 역사로 넘어가게 된다.
2.6. 오버리가 시기
제 2차 세계 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마무리되며 니더작센에도 새로운 축구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니 바로 오버리가의 시작이었다.여전히 전국 단위의 단일 리그는 없었으나 이제는 오버리가가 가우리가를 대체하여 각 지역의 1부 리그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니더작센 지역은 오버리가 노르트(Oberliga-Nord)라는 이름의 최상위 리그를 갖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오버리가 노르트 오버리가 노르트 위키피디아 참고.
오버리가 노르트의 하부 리그는 니더작센 지역의 클럽 기준 오버리가 니더작센-오스트(Oberliga Niedersachsen-Ost) 오버리가 니더작센-오스트 위키피디아 참고 또는 오버리가 니더작센-베스트(Oberliga Niedersachsen-West)오버리가 니더작센-베스트 위키피디아 참고 였으며 여전히 연방 단위 리그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오버리가에서의 우승 클럽은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진출하여 다른 지역 우승 팀과 토머먼트 형식으로 독일 전체의 우승팀을 가렸다.
오버리가 노르트는 기존 니더작센 지역과 근방의 축구 클럽들이 속했던 리그인 가우리가 브라운슈바이크-쥐트하노버, 가우리가 함부르크, 가우리가 오스트하노버, 가우리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및 가우리가 베저-엠스까지 통합한 리그였으며 가까이는 함부르크와 브레멘, 멀리는 독일 북동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까지 단일 구역으로 묶인 광대한 영역의 리그였다.
또한 당시 강한 전력을 자랑하였던 함부르크를 연고로 하는 함부르크 SV와 브레멘을 연고로 하는 SV 베르더 브레멘은 다른 클럽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니더작센 인근의 축구 클럽 이외 홀슈타인 킬이나 VfB 뤼베크같은 다른 지역의 클럽과 대결은 벌인다는 것은 새로운 동기 부여의 시작이었다.
1947년부터 시작된 오버리가 노르트는 16클럽 체제로 진행되었으며 주인공은 단연 함부르크의 강자 함부르크 SV였다.
현재까지 노르트 더비로 묶이는 SV 베르더 브레멘조차 오버리가 시기의 함부르크 SV에는 밀려 단 한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였으며 1947/48 시즌부터 분데스리가 출범 직전 시즌인 1962/63 시즌까지 함부르크 SV는 총 16시즌 중 1시즌을 제외한 15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러한 함부르크 SV와 SV 베르더 브레멘 및 FC 장크트파울리에 밀리며 니더작센 클럽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였으며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현재의 명칭인 하노버 96(이하 하노버 또는 H96)으로 이름을 바꾼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이 1953/54 시즌 첫 오버리가 시기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하노버 96 역시 성적은 일정하지 않아 줄곧 리그 중위권에 머물렀으며 1960/61 시즌에는 리그 13위 및 다음 시즌에는 리그 9위까지 몰리는 지경에 이른다.
역시 클럽의 명칭을 SV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현재의 명칭인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이하 BTSV 또는 EBS)로 바꾼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도 고전을 면치 못하며 오버리가 초반 상위권인 3위(1947/48 시즌)와 4위(1948/49 시즌)로 초기 시즌을 마쳤으나 1950년대를 넘어서며 리그 중상위권과 리그 중하위권을 왕복하며 중위권 클럽으로 굳어진다. 가장 좋은 성적은 거둔 시점은 1957/58 시즌으로 함부르크 SV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한다.
이와는 달리 VfL 오스나브뤼크는 오버리가 초기 리그 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1953/54 시즌부터 1955/56 시즌까지 부진하였으나 다시 도약하여 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여전히 강한 전력을 지니고 있는 함부르크 SV와 SV 베르더 브레멘에 밀려 우승에는 실패한다.
한편 1945년 9월, VSK 볼프스부르크라는 이름으로 클럽 명칭을 바꾼 BSG 폭스바켄워크 슈타트 데스 KdF-Wagen은 다시 클럽의 명칭을 VfL 볼프스부르크로 바꾸는데 이는 현재 명칭의 시작점이 되었다.
VfL 볼프스부르크는 오버리가 초기에는 오버리가 노르트에 입성하지 못하였으며 줄곧 2부 리그인 오버리가 니더작센-베스트 소속으로 경기하였으며 1954/55 시즌이 되어서야 오버리가 노르트에 첫 진출한다. 그러나 성적은 좋지 않아 4시즌 후인 1957/58 시즌 리그 최하위를 차지하며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었으며 이후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로도 계속 하부 리그에 머무른다.
2.7. 분데스리가의 출범과 갈등의 시작
한편,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독일의 전국 단위 리그의 창설을 앞두고 원년 멤버로 참가할 클럽들의 기준과 클럽 수를 놓고 치열한 논의가 오갔으나 새로운 리그의 명칭은 비교적 단순한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연방 리그 즉, 분데스리가였다.당시 오버리가는 오버리가 노르트 이외 오버리가 베스트, 오버리가 서베를린, 오버리가 쥐트베스트, 오버리가 쥐트로 구성된 5개의 리그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오버리가 노르트에서는 새로운 전국 리그에 단 3클럽만 배분되었다.
이는 당시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오버리가 베스트 소속으로 전국 대회에 출전하였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1. FC 쾰른 및 FC 샬케 04 등에 밀리며 전국 대회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였으며 1. FC 뉘른베르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VfB 슈투트가르트 및 TSV 1860 뮌헨 등으로 구성된 오버리가 쥐트보다 상위권의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결과였다.
오버리가 노르트는 단 3클럽만이 분데스리가에 참가하게 되며 분데스리가에 입성할 클럽을 가리기 위한 기준과 계산 방법의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후 시간의 경과를 감안하며 초창기 시즌인 1947/48 시즌부터 1950/51 시즌까지의 전적은 제외하고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분데스리가에 참가할 클럽을 가렸다.
<원칙-1>
= 오버리가 노르트(16개 팀 참가)의 각 시즌 1위에게는 포인트 16점, 최하위인 16위에게는 포인트 1점이 부여.
<원칙-2>
=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토너먼트 진출 및 DFB-포칼 우승 및 준우승 클럽은 별도의 가산점 추가 부여.
<원칙-3>
= 시간의 경과를 감안하여 1951/52 시즌부터 1954/55 시즌까지는 포인트 획득시 x1의 가중치를 부여, 1955/56 시즌부터 1958/59 시즌까지는 x2의 가중치를, 1959/60 시즌부터 1962/63 시즌까지는 x3의 가중치를 부여.
<원칙-4>
= 클럽의 경기장 상태, 회원 숫자, 재정 능력 등을 고려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 단연 함부르크 SV가 오버리가 최상위 클럽으로 분데스리가 입성을 일찌감치 확정지었으며 SV 베르더 브레멘 또한 상당한 포인트를 쌓았기에 역시 분데스리가 참가가 확정되었다. = 오버리가 노르트(16개 팀 참가)의 각 시즌 1위에게는 포인트 16점, 최하위인 16위에게는 포인트 1점이 부여.
<원칙-2>
=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토너먼트 진출 및 DFB-포칼 우승 및 준우승 클럽은 별도의 가산점 추가 부여.
<원칙-3>
= 시간의 경과를 감안하여 1951/52 시즌부터 1954/55 시즌까지는 포인트 획득시 x1의 가중치를 부여, 1955/56 시즌부터 1958/59 시즌까지는 x2의 가중치를, 1959/60 시즌부터 1962/63 시즌까지는 x3의 가중치를 부여.
<원칙-4>
= 클럽의 경기장 상태, 회원 숫자, 재정 능력 등을 고려한다.
오버리가 노르트에 배분된 단 1장의 나머지 분데스리가 진출 클럽을 가리기 위해 우열을 가렸는데 당시의 계산에 의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오버리가 노르트 (1947/48 시즌 ~ 1962/63 시즌) 상위권 클럽의 명단과 획득 포인트 | ||||||||||||||
랭킹 | 클럽 | 1952/53 ~ 1963/63 시즌 획득 포인트 | 1962/63 시즌 리그 순위 | |||||||||||
1 | 함부르크 SV | 513 포인트[11] | 1위 | |||||||||||
2 | SV 베르더 브레멘 | 396 포인트[12] | 2위 | |||||||||||
3 | VfL 오스나브뤼크 | 313 포인트[13] | 7위 | |||||||||||
4 | 하노버 96 | 309 포인트[14] | 9위 | |||||||||||
5 | FC 장크트파울리 | 303 포인트[15] | 6위 | |||||||||||
6 | 홀슈타인 킬 | 294 포인트[16] | 5위 | |||||||||||
7 | 아인트아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294 포인트[17] | 3위 | |||||||||||
8 | 아르미니아 하노버 | 103 포인트[18] | 10위 |
또한 하노버 96은 당시 최신식 경기장이었던 하인츠 폰 하이덴 아레나가 경쟁 상대였던 VfL 오스나브뤼크와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의 경기장보다 더욱 좋았으며 평균 관중 수와 재정적 조건이 더 좋았기 때문에 하노버 96의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는 분데스리가에 입성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양 팀의 경기장인 하인츠 폰 하이덴 아레나와 아인트라흐트 슈타디온 참고.
그러나 이러한 하노버 측의 예상과는 달리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가 1963년 5월 6일, 분데스리가 원년 클럽으로의 참가가 확정되었다.
BTSV의 하노버에 대한 유일한 우위는 오버리가 노르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62/63 시즌에서 하노버보다 앞선 3위를 차지하였다는 것인데(하노버 96은 리그 9위에 그쳤다.) 하노버에서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곧바로 독일 축구 협회와 북독일 축구 협회북독일 축구 협회 위키피디아 참고에 항의하였다.
그러나 하노버 측의 법원까지 가는 항의는 공식적으로 기각되었으며 하노버는 결국 분데스리가에 원년 멤버로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분데스리가의 창설로 2부 리그로 밀려난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소속으로 경기하게 된다.
어러한 하노버 96측의 당시 상황과 분데스리가 입성 좌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분데스리가 원년 클럽 선정을 위한 오버리가 니더작센의 후반기 12시즌 부분 참고.
2.8. 분데스리가 초창기와 니더작센 클럽
오버리가 노르트 소속으로 분데스리가로의 참가가 결정된 함부르크 SV와 SV 베르더 브레멘은 일찍이 한자 자유도시로 입지를 굳혀 별도의 행정 구역으로 인정받았기에 니더작센의 범주에 묶이지는 않는다.브레멘은 니더작센이 둘러싸고 있으며 브레멘은 월경지이지만 독립적인 자유시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니더작센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함부르크 역시 유서 깊은 한자 자유도시이며 별도의 행정 구역. 자세한 내용은 브레멘, 함부르크, 월경지, 한자동맹, 독립시 등 참고,
드디어 탄생한 독일의 전국 단위 단일 리그인 분데스리가는 말 그대로 연방 단위의 모든 클럽이 하나의 단위로 모여 경기를 진행하였으며 기존의 별도의 행정 구역이었던 브레멘과 함부르크 및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정도와의 경기가 고작이었던 니더작센의 클럽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의 리그였다.
분데스리가에서는 남부 독일의 강자인 1. FC 뉘른베르크와 카를스루어 SC 및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과도 상대하게 되었으며 헤센주의 대표적인 축구 클럽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베스트팔렌의 전통적 강자들인 1. FC 쾰른과 FC 샬케 04 및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도 경쟁을 벌였고 당시 서베를린을 연고로 하는 헤르타 BSC 등과도 경기를 펼쳤다. 모두 기존에는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면 만날 수 없었던 상대들 이었다.
비록 제 2차 세계 대전의 패전의 결과와 냉전의 시작으로 독일이 서독과 동독으로 분리되었고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가 없어졌다지만 전국 단위의 강호들과의 경기는 당시의 전력을 확인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으며 전국 단위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크나큰 기회의 장이었다.
분데스리가 첫 시즌인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로 진출한 16개의 원년 참가 클럽과 오버리가 당시 소속은 다음과 같았다.[19]
* 오버리가 노르트(북부) = 함부르크 SV, SV 베르더 브레멘,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이상 3클럽)
* 오버리가 베스트(서부) = 1. FC 쾰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FC 샬케 04, SC 프로이센 뮌스터, 마이데리허 SV(현재 MSV 뒤스부르크) (이상 5클럽)
* 오버리가 쥐트베스트(남서부)[20] =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 FC 자르브뤼켄 (이상 2클럽)
* 오버리가 쥐트(남부)[21] = 1. FC 뉘른베르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카를스루어 SC, VfB 슈투트가르트, TSV 1860 뮌헨 (이상 5클럽)
* 오버리가 베를린(수도 서베를린) = 헤르타 BSC (이상 1클럽)
* 오버리가 베스트(서부) = 1. FC 쾰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FC 샬케 04, SC 프로이센 뮌스터, 마이데리허 SV(현재 MSV 뒤스부르크) (이상 5클럽)
* 오버리가 쥐트베스트(남서부)[20] =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 FC 자르브뤼켄 (이상 2클럽)
* 오버리가 쥐트(남부)[21] = 1. FC 뉘른베르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카를스루어 SC, VfB 슈투트가르트, TSV 1860 뮌헨 (이상 5클럽)
* 오버리가 베를린(수도 서베를린) = 헤르타 BSC (이상 1클럽)
우여곡절 끝에 니더작센주 소속 첫 분데스리가에 참가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이하 BTSV 또는 EBS)는 헬무트 요한손 헬무트 요한손 위키피디아 참고 감독의 지도 아래 발트 슈미트 발터 슈미트 위키피디아 참고, 로타르 울자스 로타르 울자스 위키피디아 참고, 아이쿠트 운야지치 아이쿠트 운야지치 위키피디아 참고, 호르스트 볼터 호르스트 볼터 등이 당시 팀을 이끌었다.
BTSV는 니더작센 클럽으로 영광스러운 분데스리가 첫 시즌을 가졌으나 1963/64 시즌 11승 6무 13패로 리그 11위에 그치고 만다.
이어 다음 시즌에도 리그 중위권으로 시즌을 마쳤으며 분데스리가에서 맞이하는 3번째 시즌에도 리그 중위권인 10위로 시즌을 마쳤으나 1966/67 시즌, 남부 독일의 TSV 1860 뮌헨과 베스트팔렌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제치고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한다.
|
BTSV의 분데스리가 첫 우승 시즌이었던 1966/67 시즌 당시 니더작센더비(1967년 4월 29일, 브라운슈바이크) |
|
분데스리가 1970/71 시즌에서의 대결 (1971년 5월 8일) |
|
처음으로 유니폼에 광고를 부착한 경기에서 승리한 BTSV의 프리트헬름 하버만(왼쪽)과 볼프강 그지브(오른쪽) (1973년 5월 26일) |
이후 다음 시즌이었던 1974/75 시즌 당시 서독의 2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거둔 H96은 곧바로 다음 시즌 다시 분데스리가로 승격에 성공하였으나 다시 맞이한 분데스리가 1975/76 시즌 리그 16위를 차지한 끝에 2. 분데스리로 강등되어 1984/85 시즌까지 2.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지냈다. 분데스리가 원년 멤버로 참가하지 못한 하노버였으며 분데스리가 초기 경력에도 밀렸기에 어쩌면 니더작센의 대표 축구 클럽으로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을지도 모르는 일.
한편, 하노버 96과 같이 분데스리가에 참가하지 못한 VfL 오스나브뤼크는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에서 줄곧 중위권에 머물렀으나 1970/71 시즌, FC 장크트파울리와 VfB 뤼베크 등을 제치고 우승를 차지하며 드디어 분데스리가로의 승격의 기회가 찾아왔으나 분데스리가 승격 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다음 시즌이었던 1971/72 시즌과 다음 시즌에도 2위에 머무르며 분데스리가 승격에 연달아 실패한 VfL 오스나브뤼크는 1974/75 시즌 2. 분데스리가 노르트의 출범 멤버로 참가하여 1970년대 역시 2부 리그 소속으로 경기하였다.
한편, 위의 VfL 오스나브뤼크의 사례와 같이 당시에는 분데스리가가 유일한 연방 단위의 단일 리그로 출범하였으나 2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 이하의 리그는 지역 리그의 형태였으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었다.
레기오날리가 노르트(1963/64 시즌부터 1973/74 시즌까지)는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의 오버리가와 마찬가지로 5개의 각 리그가 경기을 벌였으며 분데스리가에서의 강등 클럽은 최대 3개 클럽만 발생하니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따라서 레기오날리가 각 지구에서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리그인 분데스리가에 직행할 수 없었으며 반드시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비로소 분데스리가로 승격할 수 있었으며 특정 지구 우승 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 자동 승격과 대조되는 다른 지구 우승 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부터 경기 및 특정 지구 2위 클럽의 분데스리가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도 여러 번 다툼이 벌어졌다.
당연히 이는 단일 리그가 아니기에 우열 비교를 하기 어려워서 나타났던 문제점인데 이는 1970/71 시즌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VfL 오스나브뤼크 뿐만 아니라 레기오날리가 각 지구의 상위 클럽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1974/75 시즌부터 새로운 전국 단위 2부 리그인 2. 분데스리가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2. 분데스리가 역시 북부와 남부로 나뉜 2개의 리그였으며 1980/81 시즌부터 비로소 전국 단위 단일 리그로 정착하게 된다.
1974/75 시즌 2. 분데스리가의 출범으로 VfL 오스나브뤼크는 이제는 2. 분데스리가 노르트 소속이 되었으며 리그 중위권의 성적을 기록하였으나 분데스리가 승격과는 인연이 없었다. VfL 오스나브뤼크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1시즌을 제외하고는 줄곧 2. 분데스리가 소속이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까지 이어진다.따라서 레기오날리가 각 지구에서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리그인 분데스리가에 직행할 수 없었으며 반드시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비로소 분데스리가로 승격할 수 있었으며 특정 지구 우승 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 자동 승격과 대조되는 다른 지구 우승 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부터 경기 및 특정 지구 2위 클럽의 분데스리가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도 여러 번 다툼이 벌어졌다.
당연히 이는 단일 리그가 아니기에 우열 비교를 하기 어려워서 나타났던 문제점인데 이는 1970/71 시즌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VfL 오스나브뤼크 뿐만 아니라 레기오날리가 각 지구의 상위 클럽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1974/75 시즌부터 새로운 전국 단위 2부 리그인 2. 분데스리가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2. 분데스리가 역시 북부와 남부로 나뉜 2개의 리그였으며 1980/81 시즌부터 비로소 전국 단위 단일 리그로 정착하게 된다.
하노버 96,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달리 분데스리가 승격과는 거리가 멀었던 VfL 볼프스부르크는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줄곧 2부 리그인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소속으로 경기하였으나 1976/77 시즌 2. 분데스리가 노르트에서 5승 6무 27패의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당시 3부 리그인 오버리가 노르트 지구로 강등되었으며 클럽의 재정 상황 문제로 라이선스 문제까지 겹치며 줄곧 당시 3부 리그였던 오버리가 노르트 소속으로 경기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지며 이미 여러 시즌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경기를 갖고 지역의 대표적인 축구 클럽으로 이미 자리를 잡은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 96은 물론 분데스리가 경험이 없던 VfL 오스나브뤼크에게까지 명성과 실력이 뒤처지는 처지였다.
2.9. 1980년대 이후의 니더작센 클럽과 1990년대의 VfL 볼프스부르크의 부상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의 1980년대 이후의 역사는 시련의 역사로 정리된다.1979/80 시즌 첫 강등에 이어 다시 1984/85 시즌 분데스리가 최하위의 성적을 거둔 BTSV는 1987/88 시즌에는 2. 분데스리가에서 하위권의 성적을 기록하며 이제는 3부 리그인 오버리가 노르트까지 추락하였다.
|
이제는 2. 분데스리가에서 대결을 벌이게 되는 BTSV와 H96의 1980/81 시즌 |
이후 1990년대 후반부 시기는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의 역사는 촤악의 암흑기로 1993/94 시즌부터 무려 9시즌이나 3부 리그 소속으로 경기를 하였으며 이러한 부진은 2001/02 시즌 2. 분데스리가로 승격하면서야 끝이난다. 그러나 이미 분데스리가에서의 전국적 명성은 잃어버린지 오래였으며 분데스리가에서 강등된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
1986/87 시즌 이후 양 팀은 다른 길을 걷게된다. H96은 분데스리가로 승격하였으나 BTSV는 3부 리그인 오버리가 노르트로 강등되었다. (당시 하노버 주장인 바스티안 헬베르크(왼쪽)와 BTSV의 캡틴 베른트 고르스키(오른쪽)) |
|
3시즌만에 다시 열린 1989/90 시즌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열린 2. 분데스리가 경기 전 입장 |
한편, VfL 오스나브뤼크는 1990년대 초까지 줄곧 2. 분데스리가 소속이었으나 1992/93 시즌 2. 분데스리가에서 리그 19위에 머무르며 20위를 차지한 BTSV와 같은 시즌에 3부 리그인 오버리가-노르트로 강등되고 말았다. 해당 시즌은 공교롭게 VfL 볼프스부르크가 2. 분데스리가로 첫 승격한 시즌이기도 하였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오스나브뤼크는 최악의 암흑기를 걸어 줄곧 2부 리그였던 클럽이 3부 리그에 10년 넘게 머무르게 되었으며 1999/2000 시즌에는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2. 분데스라가로 승격하였으나 다시 강등되었고 2007/08 시즌 다시 2. 분데스리가로 승격하였으나 다시 강등되어 3부 리그 소속으로 경기하는 시즌이 많아지고 있다.
1970년대 중후반 3부 리그로 추락한 VfL 볼프스부르크는 1990년대 초반까지 계속 3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 소속으로 경기하였으나 독일의 재통일이 이루어지고 축구와 스포츠에 본격적인 자본이 도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상승세를 만든다.
먼저 독일이 재통일이 이루어지던 시점인 1991/92 시즌, 볼프스부르크는 오버리가 노르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2. 분데스리가로의 승격을 확정지었으며 FC 장크트파울리와 함부르크 SV를 지도하였던 빌리 라이만 빌리 라이만 위키피디아 참고 감독의 지도 아래 2. 분데스리가 재입성 5번째 시즌이었던 1996/97 시즌 2. 분데스리가 3위를 차지하며 첫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한다.
이후의 볼프스부르크는 볼프강 볼프볼프강 볼프 위키피디아 참고를 감독으로 임명하였으며 분데스리가에서 중위권의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1998/99 시즌에는 돌풍을 일으키며 리그 6위까지 차지하며 분데스리가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2.10. 2000년대 이후의 니더작센 클럽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 96이 대표적인 니더작센의 축구 클럽으로 명성을 날리던 1980년까지와 달리 독일의 재통일이 이루어지고 축구와 스포츠에 본격적인 자본이 도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니더작센의 축구 클럽들의 위상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VfL 볼프스부르크는 분데스리가에 첫 입성하였던 1997/98 시즌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시도하여 선수단의 수준을 높였으며 2003/04 시즌 당시 아르헨티나의 기대주였던 안드레스 달레산드로를 영입하는 등 모기업인 폭스바겐의 지원 아래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한다. 그러나 2005/06 시즌 리그 15위를 차지하는데 그치며 간신히 분데스리가에서 살아남았고 다음 시즌에도 리그 15위를 차지하는 등 분데스리가의 우승과는 거리가 먼 클럽일 뿐이었다.
그러던 2007/08 시즌을 맞이하며 FC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을 역임하였으나 보드진과의 불화로 경질된 펠릭스 마가트를 영입하며 분데스리가 우승에 다가서기 시작한다. 펠릭스 마가트 감독은 FC 바이에른 뮌헨을 맡기 전 VfB 슈투트가르트의 감독을 역임한 바 있는데 시즌 개막전 당시 그가 육성하였던 에딘 제코, 그라피테, 조수에, 마르셀 셰퍼, 자샤 리터, 디에고 베날리오 등을 영입하며 부임 첫 시즌 리그 5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어 2008/09 시즌에는 최고의 활약을 보인 에딘 제코와 그라피테의 활약으로 처음으로 분데스리가에서의 우승을 차지한다. 2위 FC 바이에른 뮌헨과는 승점 2점차, 3위 VfB 슈투트가르트와는 승점 5점차였다.
분데스리가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볼프스부르크였으며 2010년대를 접어들며 디터 헤킹의 지도 아래 2014/15 시즌 다시 우승에 근접하였으나 이번에는 FC 바이에른 뮌헨과 승점 10점차를 보이며 준우승에 머무른다. 이후 볼프스부르크는 분데스리가 클럽으로써의 입지를 다지며 현재까지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경기하고 있으나 좋은 성적의 이면에는 클럽 자체의 능력이 아닌 모기업의 재정적 지원이라는 그림자도 따라 다니는 상황.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50+1 규정 참고.
VfL 볼프스부르크의 반전과는 달리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는 2000년대 이후로도 여전한 시련을 겪고 있는 모습.
오버리가로 강등된 BTSV는 10년 가까이를 오버리가 소속으로 경기하였으며 2002/03 시즌에야 2. 분데스리가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2002/03 시즌 곧바로 다시 3부 리그로 강등되었으며 이후 2010/11 시즌, 이제는 3. 리가로 바뀐 3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다시 2년 후에는 토르스텐 리버크네히트의 지도 아래 분데스리가로의 승격을 이룬다. 자세한 내용은 토르스텐 리버크네히트 참고.
그러나 1984/85 시즌 이후 30년만에 맞이한 분데스리가에서 2013/14 시즌 최하위를 차지하며 다시 강등되었으며 이후에는 다시 2. 분데스리가와 3. 리가를 오가는 클럽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2020년대 이후에도 이어져 2022/23 시즌부터 2.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경기하고 있으나 분데스리가 승격을 위한 리그 상위권에 좀처럼 들지 못하고 있는 상태.
|
3부 리그인 레기오날리가 노르트까지 떨어진 양 팀의 1997/98 시즌 |
이후 SSV 울름과 VfB 슈투트가르트의 감독을 역임하였던 한 인물의 등장으로 반전을 이루어 2. 분데스리가로 승격하였으며 다시 2001/02 시즌 22승 9무 3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분데스리가로의 복귀에 성공한다. 이 인물이 바로 랄프 랑닉.
그러나 분데스리가로 승격한 2003/04 시즌, 하노버는 성적이 추락해 강등 위험에 빠지고 말았고 랄프 랑닉과 주전 선수들 간의 불화가 극에 달하는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결국 랄프 랑닉은 결국 랑닉은 2004년 3월 팀을 떠났다. 이후 하노버는 팀을 수습하며 리그 11위로 시즌을 마쳤고 이후 분데스리가 클럽으로 생존에 성공한다.
이후 하노버는 디터 헤킹과 미르코 슬롬카가 클럽을 이끌었으며 라이벌인 BTSV와 달리 분데스리가 클럽으로써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또한 2013/14 시즌은 라이벌인 BTSV가 오랜만에 분데스리가로의 승격에 성공하여 1975/76 시즌 이후 37시즌만에 니더작센더비가 분데스리가에서 열렸다.
그러나 H96은 2015/16 시즌 분데스리가 최하위를 차지하며 강등되었으며 다시 분데스리가로 복귀하여 2시즌을 가졌으나 토마스 돌 체제에서 2018/19 시즌 리그 최하위를 다시 차지하며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되었다.
|
37년만에 분데스리가에서 다시 열린 니더작센더비의 경기 결과 |
분데스리가로의 승격 경험이 없었으며 2. 분데스리가와 당시 3부 리그인 레기오날리가 노르트를 오갔던 VfL 오스나브뤼크는 2010년대의 상당 부분을 3. 리가 소속으로 경기하였다. 그러던 2018/19 시즌 다니엘 티오우네 다니엘 티오우네 위키피디아 참고 감독의 지도 아래 22승 10무 6패의 전적으로 3. 리가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고 다시 2. 분데스리가로의 승격에 성공한다.
그러나 2020/21 시즌 리그 16위를 차지하며 다시 3. 리가로 강등되었고 다시 2. 분데스리가로의 승격에 성공하였으나 2023/24 시즌 2. 분데스리가에서 최하위의 성적을 거두며 3. 리가로 강등되었다.
한편,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리그 티어에 따른 리그의 명칭은 다음과 같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렀으며 2008/09 시즌 출범한 3. 리가까지는 연방 단위 리그이며 4부 리그인 레기오날리가부터는 지역 리그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니더작센을 연고로 하는 클럽의 승격과 강등 시 리그를 기재하였으며 독일 전체 클럽의 리그 티어 및 변동 내용은 분데스리가/역사 의 표 참고 및 독일의 6부 리그 시스템에 관한 내용은 독일 축구 6부 리그 참고.)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시기별 리그 티어 및 명칭 구분 | ||||
<rowcolor=#fff> 연도 | 1963/64 ~ 1973/74 시즌 | 1974/75 ~ 1993/94 시즌 | 1993/94 ~ 2007/08 시즌 | 2008/09 시즌 이후 ~ |
리그 티어 | 리그 명칭 | |||
1 | (변동 없음) | |||
2 | (Regionalliga Nord) | (단,1974/75~1980/81 시즌은 2. 분데스리가 노르트) | ||
3 | 페어반츠리가 니더작센 (Verbandsliga Niedersachsen) | (Oberliga Nord) | (Regionalliga Nord) | (2008/09~) |
4 | 란데스리가 니더작센 (Landesliga Niedersachsen) | 페어반츠리가 니더작센 (Verbandsliga Niedersachsen) | (Oberliga Niedersachsen/Bremen) | (Regionalliga Nord) |
5 | 란데스리가 니더작센-2 (Landesliga Niedersachsen-2) | 란데스리가 니더작센 (Landesliga Niedersachsen) | 페어반츠리가 니더작센 (Verbandsliga Niedersachsen) | (Oberliga Niedersachsen) |
3. 더비 및 라이벌리
3.1.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vs 하노버 96
|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Eintracht Braunschweig | 하노버 96 Hannover 96 |
3.1.1. 역사
니더작센더비의 대부분의 정의를 이루는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 96간의 더비이다. 두 클럽이 연고로 하는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의 대략적인 역사는 상단 개요 참고. 두 도시의 상위 행정구역인 니더작센은 독일의 북서부의 연방주이며 하노버는 니더작센 남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55km 동쪽에는 브라운슈바이크가 위치하고 있다.두 클럽은 비슷한 시기에 창단되었다. 1895년, 축구 및 크리켓 클럽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Fußball- und Cricket Club Eintracht Braunschweig)라는 스포츠 클럽이 먼저 창단되었으며 1년 후에는 하노버 지방에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Hannoverscher Fußball Club 1896)이라는 이름의 축구 클럽이 창단되며 형태를 갖추었다. 이후의 두 클럽의 역사는 상단의 역사 부분 참고.
양 팀은 1905년 4월 9일(이하 독일 현지 일자 기준), 당시 FuCC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하노버셔 FC 1896이라는 당시의 클럽 명칭으로 첫 맞대결을 벌였으며 두 팀은 새롭게 만들어진 북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에서도 상대하며 훗날 니더작센더비로 불리는 역사의 초기를 이루었다.
이후 양 팀은 1933년 출범한 가우리가 시기에도 많은 경기를 벌였으나 당시 기록의 부재로 해당 문서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오버리가(1947/48 시즌 ~ 1962/63 시즌) 시기부터 집계하며 가우리가와 베지르크슬리가가 및 북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및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의 대결 기록은 하단에 첨부한다.
가우리가 이후 두 클럽은 1947/48 시즌부터 출범한 오버리가 노르트지구에서도 계속 마주쳤으며 니더작센의 대표 축구 클럽의 명성을 두고 라이벌리를 벌였다. 시간이 흘러 분데스리가의 출범과 원년 참가 클럽으로 운명은 갈렸으나 분데스리가 원년에 참가하지 못한 하노버 역시 분데스리가로의 입성에 성공하며 양 팀은 니더작센의 대표적인 축구클럽이라는 명성과 함께 현재 니더작센의 근간을 이루게된다.
|
1964년 9월 26일, 하노버에서 열린 분데스리가 첫 번째 니더작센더비 |
비슷한 맥락의 클럽의 성장과 하락을 겪었던 하노버 96은 2000년대 초반, 다시 분데스리가로의 승격 이후 분데스리가에서의 소속 시즌이 라이벌인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를 넘어서며 대표적인 분데스리가 소속의 니더작센 클럽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특히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의 리그 등락이 심하여 1975/76 시즌에서의 분데스리가에서의 매치 이후 1980/81 시즌에서야 다시 더비가 성사되었으며 이제는 무대가 2. 분데스리가로 변한 상태였다.
이후로도 양 팀은 1980년대와 1990대 초반 계속 2.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경기하였으나 하노버 96의 분데스리가 승격으로 한 동안 더비가 열리지 못하였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은 양 팀 모두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며 당시 3부 리그인 레기오날리가에서 상대하기도 하였다.
|
다음 분데스리가에서의 맞대결이 37년 후일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1976년 4월 17일의 니더작센더비 |
이러한 이유로 2000년대 초반부터 2020년까지 니더작센 더비는 단 2시즌만이 열렸으며 오히려 하노버 96은 새롭게 등장한 니더작센의 또다른 클럽인 VfL 볼프스부르크와 최상위 리그에서 자주 경기하였다.
그러던 2013/14 시즌에는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의 분데스리가 승격으로 다시 니더작센더비가 열리게 되었으니 무려 37시즌만의 일이었다. 당연히 이와 같은 드물어진 만남은 양 팀의 소속 리그가 달라서인데 이는 문서 상단 개요의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시즌별 소속 리그와 경과 시즌의 단락을 참고.
|
BTSV의 29시즌만의 분데스리가 복귀로 37시즌만에 다시 열린 분데스리가에서의 니더작센더비(2013년 11월 8일)[22] |
현재까지의 통산 전적은 가우리가와 오버리가 시절 앞선 전력을 보유하였던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가 약간 앞서 있으나 분데스리가에서의 대결은 하노버 96이 우위에 서고 있으며 2. 분데스리가 시기에도 하노버 96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3.1.2. 상대 전적
종합 전적[2024/25] |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Eintracht Braunschweig Win | 무승부 | 하노버 96 Hannover 96 Win |
31 | 21 | 29 |
리그 티어 | 대회 | 경기 | 승리 | 무승부 |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하노버 96 | ||||
1 | 분데스리가[BL] | 22 | 6 | 8 | 8 |
1 | 오버리가 노르트(북부)[Ober] | 28 | 13 | 10 | 5 |
2 | 2. 분데스리가[2.BL] | 22 | 6 | 9 | 7 |
3 | 3. 리가[3.L] | 4 | 1 | 2 | 1 |
- | DFB-포칼 | 1 | 1 | - | - |
- | 니더작센 포칼 | 2 | 2 | - | - |
- | DFB-리가포칼[28] | 2 | 2 | - | - |
합계 | - | 81 | 31 | 29 | 21 |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4px 4px; border-radius: 8px; background: #ff0000; font-size: 0.7em"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4px 4px; border-radius: 8px; background: #ff0000; font-size: 0.7em"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4px 4px; border-radius: 8px; background: #ff0000; font-size: 0.7em"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4px 4px; border-radius: 8px; background: #ff0000; font-size: 0.7em"
최근 5경기 전적 | |||
일시 | 장소 | 결과 | 대회 |
2025년 3월 9일 | 하인츠 폰 하이덴 아레나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1 - 1 하노버 96 | 2. 분데스리가 |
2024년 10월 6일 | 아인트라흐트 슈타디온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2[Derbysieger] - 0 하노버 96 | 2. 분데스리가 |
2024년 4월 14일 | 아인트라흐트 슈타디온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0 - 0 하노버 96 | 2. 분데스리가 |
2023년 11월 5일 | 하인츠 폰 하이덴 아레나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0 - 2 하노버 96[Derbysieger] | 2. 분데스리가 |
2023년 3월 19일 | 아인트라흐트 슈타디온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1[Derbysieger] - 0 하노버 96 | 2. 분데스리가 |
3.2. 하노버 96 vs VfL 볼프스부르크
|
|
| |
하노버 96 Hannover 96 | VfL 볼프스부르크 VfL Wolfsburg |
3.2.1. 역사
니더작센더비를 이루는 하노버 96과 VfL 볼프스부르크의 더비를 다룬 문서.하노버는 니더작센의 주도이며 대표적인 도시로 니더작센의 전통적인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 이와 달리 볼프스부르크는 하노버의 동쪽 약 70km 지점에 있으며 지명의 어원에서도 볼 수 있듯 Wolf 즉, 늑대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는 도시로 볼프스부르크는 니더작센 동부와 작센안할트는 잇는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였으며 현재는 폭스바겐그룹의 본사 소재지로 유명한 도시.
양 팀은 제 2차 세계 대전 후반기인 1943/44 시즌과 1944/45 시즌 당시 1부 리그이던 가우리가 오스트하노버(Gauliga Osthannover)에서 처음 조우하였으나 당시의 상세 전적은 남아있지 않으며 곧 나치 독일의 패망으로 이후의 역사는 1947/48 시즌의 오버리가 시기 이후로 넘어간다.
이후 최상위 리그인 오버리가-노르트에 속한 하노버 96과는 달리 VfL 볼프스부르크는 당시 2부 리그인 오버리가 니더작센-베스트 소속으로 경기하였으며 1954/55 시즌이 되어서야 오버리가 노르트에 첫 진출하며 가우리가 시기에 이어 다시 경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VfL 볼프스부르크의 성적이 좋지 않아 4시즌 후인 1957/58 시즌 리그 최하위를 차지하며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었으며 이후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로도 계속 경기는 열리지 못하였다.
이후 두 클럽의 진로는 분데스라가로 입성한 하노버 96과 당시 2부 리그이던 레기오날리가-노르트에서 경기한 VfL 볼프스부르크로 나뉘었으며 양 팀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1974/75 시즌 하노버 96이 2. 분데스리가-노르트로 강등된 이후 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VfL 볼프스부르크의 당시 3부 리그이던 오버리가-노르트로의 강등 이후 한동안 경기는 열리지 못하였으며 1992/93 시즌 다시 하노버 96이 분데스리가에서 강등되고 VfL 볼프스부르크가 2. 분데스리가로 승격하며 다시 더비가 열렸다.
이후 VfL 볼프스부르크가 모기업인 폭스바겐의 지원 아래 분데스리가로의 입지를 굳히고 하노버 96 역시 2000년대 초반 분데스리가로 다시 진출하며 양 팀은 2002/03 시즌부터 줄곧 분데스리가에서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이러한 결과로 니더작센을 연고로 하는 클럽 중 양 팀은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많은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하노버 96의 2. 분데스리가 강등이 확정된 2019/20 시즌 이후로는 경기가 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
양 팀은 오버리가-노르트와 2. 분데스리가 시기 하노버 96이 우세한 전적을 보였으나 분데스리가에의 대결은 VfL 볼프스부르크가 우위에 있으며 통산 전적은 상당히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DFB-포칼에서는 3번을 만나 모두 VfL 볼프스부르크가 승리하였다.
3.2.2. 상대 전적
종합 전적[2024/25] | ||
하노버 96 Hannover 96 Win | 무승부 | VfL 볼프스부르크 VfL Wolfsburg Win |
22 | 12 | 25 |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4px 4px; border-radius: 8px; background: #ff0000; font-size: 0.7em"
리그 티어 | 대회 | 경기 | 승리 | 무승부 | |
하노버 96 | VfL 볼프스부르크 | ||||
1 | 분데스리가[BL] | 32 | 10 | 16 | 6 |
1 | 오버리가 노르트(북부)[Ober] | 10 | 4 | 3 | 3 |
2 | 2. 분데스리가[2.BL] | 14 | 8 | 3 | 3 |
- | DFB-포칼 | 3 | - | 3 | - |
합계 | - | 59 | 22 | 25 | 12 |
3.3. VfL 오스나브뤼크 vs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
| |
VfL 오스나브뤼크 VfL Osnabrück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Eintracht Braunschweig |
3.3.1. 역사
VfL 오스나브뤼크는 하노버 남서쪽 약 95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오스나브뤼크에서 창단되었으며 1899년 4월 17일, 오스나브뤼크의 여러 축구 클럽들을 합병하며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추었다.이후 VfL 오스나브뤼크는 당시 행정 구역에 의해 창단 초기에는 베스트팔렌 소속 클럽들과 경기하였으나 1933년 가우리가의 출범과 함께 현재의 니더작센의 축구 클럽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VfL 오스나부뤼크는 이후 가우리가 초창기 하부 리그인 베지르크슬리가-니더작센에서 경기하였으나 1935/36 시즌 처음으로 가우리가-니더작센으로 승격하며 양 팀은 첫 만남을 가졌다. 양 클럽이 연고로 하고 있는 오스나브뤼크와 브라운슈바이크는 직선으로 약 190km는 떨어져 있다.
이후 양 팀은 가우리가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버리가-노르트(1947/48 시즌 ~ 1962/63 시즌) 소속으로 경기하였으며 분데스리가 이후의 행보는 상단의 내용 참고.
분데스리가의 출범으로 양 팀은 분데스리가 소속과 레기오날리가-노르트 및 2.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갈라졌으나 BTSV의 2. 분데스리가 강등 이후인 1985/86 시즌부터 매년 경기를 가졌다. 기막힌 인연은 1992/93 시즌 발생하여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가 2. 분데스리가 리그 19위를 차지하며 강등되었고 VfL 오스나브뤼크는 리그 20위를 차지하며 나란히 오버리가-노르트로 강등되어 계속 경기를 가졌다.
2000년대 이후 양 팀은 리가의 등락이 심해져 많은 경기가 열리지 못하였으며 해당 시기에는 주로 3부 리그에서 경기하였고 2020/21 시즌에는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와 VfL 오스나브뤼크의 2. 분데스리가에서의 대결이 다시 열렸다. 그러나 VfL 오스나부뤼크의 3. 리가 강등으로 더비가 열리지 못하는 시즌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
양 팀은 합산 90경기 가까이를 가졌으며 현재까지의 전적은 BTSV가 앞서 있으며 분데스리가에서의 대결은 VfL 오스나부뤼크의 분데스리가 진출이 없는 관계로 아직까지 열리지 못하였다.
3.3.2. 상대 전적
종합 전적[2024/25] | ||
VfL 오스나브뤼크 VfL Osnabrück Win | 무승부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Eintracht Braunschweig Win |
28 | 24 | 37 |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4px 4px; border-radius: 8px; background: #ff0000; font-size: 0.7em"
리그 티어 | 대회 | 경기 | 승리 | 무승부 | |
VfL 오스나브뤼크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
1 | 분데스리가[BL] | - | - | - | - |
1 | 오버리가 노르트(북부)[Ober] | 30 | 10 | 12 | 8 |
2 | 2. 분데스리가[2.BL] | 22 | 6 | 11 | 5 |
3 | 3. 리가[3.L] | 24 | 7 | 8 | 9 |
- | DFB-포칼 | 4 | 1 | 3 | - |
- | 북독일 포칼[41] | 6 | 2 | 2 | 2 |
- | 기타 경기 | 3 | 2 | 1 | - |
합계 | - | 89 | 28 | 37 | 24 |
3.4. 하노버 96 vs VfL 오스나브뤼크
|
|
| |
하노버 96 Hannover 96 | VfL 오스나브뤼크 VfL Osnabrück |
3.4.1. 역사
니더작센주의 주도인 하노버의 대표적인 축구 클럽인 하노버 96과 하노버의 남서쪽으로 약 95km 떨어진 오스나브뤼크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인 VfL 오스나브뤼크와의 라이벌리.1895년, 하노버셰어 축구 클럽 1896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하노버 96과 달리 오스나부뤼크에서 1899년 4월 17일, 당시 오스나브뤼크를 연고로 하는 세 팀이 합병하여 FC 1899 오스나브뤼크라는 축구 클럽으로 본격적으로 축구 클럽의 길에 들어선 VfL 오스나브뤼크는 1920년대에서는 베스트팔렌의 지역 클럽들과 경기하였기에 1933년 출범한 가우리가-니더작센에서야 본격적으로 니더작센의 축구 역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였다.
이후 양 팀은 1942/43 시즌 가우리가 쥐트하노버-브라운슈바이크와 가우리가 베저-엠스로 잠시 갈라섰으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 니더작센 지역의 1부 리그인 오버리가-노르트에서 다시 경기하게 된다.
분데스리가의 출범 이후 하노버 96과 달리 분데스리가로 승격에 실패한 VfL 오스나브뤼크였기에 하노버 96과의 대결은 H96이 2. 분데스리가 강등 이후인 1974/75 시즌 이후였으며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계속 더비가 이어졌다. 그러나 하노버 96의 1980년대 중반 분데스리가로의 재승격 시즌에는 당연히 더비가 열리지 못하였으며 1996/97 시즌에는 나란히 3부 리그에서 강등되어 이제는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에서 경기를 가졌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분데스리가로의 승격에 다시 성공한 하노버 96과 달리 VfL 오스나부뤼크는 다시 당시 3부 리그인 레기오날리가 노르트까지 추락하였기에 더비는 열리지 못하였다. 그러던 2019/20 시즌에는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된 하노버 96과 2. 분데스리가로 승격한 VfL 오스나부뤼크간의 경기가 다시 열렸으니 2001/02 시즌 이후 무려 19시즌만에 더비가 열렸다.
이후 주로 2. 분데스리가에 주로 머무르고 있는 하노버 96과 달리 VfL 오스나브뤼크는 2. 분데스리가 중위권과 3. 리가 중위권을 오가고 있기에 주로 VfL 오스나브뤼크의 성적에 따라 더비가 열리고 있는 상황.
3.4.2. 상대 전적
종합 전적[2024/25] | ||
하노버 96 Hannover 96 Win | 무승부 | VfL 오스나브뤼크 VfL Osnabrück Win |
34 | 14 | 28 |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4px 4px; border-radius: 8px; background: #ff0000; font-size: 0.7em"
리그 티어 | 대회 | 경기 | 승리 | 무승부 | |
하노버 96 | VfL 오스나브뤼크 | ||||
1 | 분데스리가[BL] | - | - | - | - |
1 | 오버리가 노르트(북부)[Ober] | 30 | 8 | 18 | 4 |
2 | 2. 분데스리가[2.BL] | 38 | 21 | 9 | 8 |
3 | 3. 리가[3.L] | 4 | 1 | 1 | 2 |
- | DFB-포칼 | 2 | 2 | - | - |
- | 기타 경기 | 2 | 2 | - | - |
합계 | - | 76 | 34 | 28 | 14 |
[1] 지도에는 영어식 표기인 Braunswick으로 표기되어 있음.[BL] 1963/64 시즌~[2.BL] 2.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 2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 노르트(1963/64 시즌 ~ 1973/74 시즌) 및 2. 분데스리가 노르트(1974/75 시즌 ~ 1980/81 시즌) 시기 포함[3.L] 3. 리가 창설 이전 3부 리그였던 오버리가 노르트(1974/75 시즌 ~ 1993/94 시즌) 및 레기오날리가 노르트(1994/95 시즌 ~ 2007/08 시즌) 시기 포함[REG] 레기오날리가 베스트 창설 이전 4부 리그였던 지역 협회 리그(1963/64 시즌 ~ 1993/94 시즌) 및 오버리가 노르트(1994/95 시즌 ~ 2007/08 시즌) 시기 포함[OBE] 2008/09 시즌 오버리가 창설 이전 이전 5부 리그였던 페어반츠리가-니더작센 등 포함.[Ver] 2008/09 시즌 오버리가 창설 이전 이전 6부 리그였던 페어반츠리가-2. 니더작센 등 포함.[8] 가우리가 니더작센은 1934/35 시즌 1935/36 시즌을 제외하고는 10팀이 경쟁하였다. 홈 & 어웨이로 경기하였으니 시즌 당 18경기 체제였다.[9] 가우리가 니더작센의 북부와 남부로의 분리[10] 1940/41 시즌은 가우리나 니더작센-쥐트(가우리가 니더작센의 북부와 남부로의 분리) 우승[11] 오버리가 노르트 소속 16시즌, 리그 총 승점은 784점으로 1위[12] 오버리가 노르트 소속 16시즌, 리그 총 승점은 586점으로 2위[13] 오버리가 노르트 소속 16시즌, 리그 총 승점은 532점으로 4위[14] 오버리가 노르트 소속 16시즌, 리그 총 승점은 476점으로 5위[15] 오버리가 노르트 소속 16시즌, 리그 총 승점은 566점으로 3위[16] 오버리가 노르트 소속 15시즌, 리그 총 승점은 470점으로 7위[17] 오버리가 노르트 소속 15시즌, 리그 총 승점은 474점으로 6위[18] 오버리가 노르트 소속 11시즌, 리그 총 승점은 287점으로 13위[19] 이하 당시 분데스리가 참가 클럽 결정을 위한 각 오버리가 지구의 포인트 순 기재.[20] 오버리가 쥐트에서 분리.[21] 오버리가 쥐트베스트(남서부) 지구의 분리.[22] 해당 경기는 0:0의 무승부로 막을 내렸으며 분데스리가 통산 1000번째 0:0 무승부 경기이기도 하였다.[2024/25] 시즌 종료까지 누적[BL] 1963/64 시즌~[Ober] 오버리가 베스트(1947/48 시즌 ~ 1962/63 시즌)까지 존속했던 리그로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 서독의 1부 리그[2.BL] 2.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 2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 베스트(1963/64 시즌 ~ 1973/74 시즌) 및 2. 분데스리가 노르트(1974/75 시즌 ~ 1980/81 시즌) 시기 포함[3.L] 3. 리가 창설 이전 3부 리그였던 오버리가 베스트(1974/75 시즌 ~ 1993/94 시즌) 및 레기오날리가 베스트(1994/95 시즌 ~ 2007/08 시즌) 시기 포함[28] 1972/73 시즌[Derbysieger] 더비 승리[Derbysieger] 더비 승리[Derbysieger] 더비 승리[2024/25] 시즌 종료까지 누적[BL] 1963/64 시즌~[Ober] 오버리가 베스트(1947/48 시즌 ~ 1962/63 시즌)까지 존속했던 리그로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 서독의 1부 리그[2.BL] 2.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 2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 베스트(1963/64 시즌 ~ 1973/74 시즌) 및 2. 분데스리가 노르트(1974/75 시즌 ~ 1980/81 시즌) 시기 포함[2024/25] 시즌 종료까지 누적[BL] 1963/64 시즌~[Ober] 오버리가 베스트(1947/48 시즌 ~ 1962/63 시즌)까지 존속했던 리그로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 서독의 1부 리그[2.BL] 2.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 2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 베스트(1963/64 시즌 ~ 1973/74 시즌) 및 2. 분데스리가 노르트(1974/75 시즌 ~ 1980/81 시즌) 시기 포함[3.L] 3. 리가 창설 이전 3부 리그였던 오버리가 노르트(1974/75 시즌 ~ 1993/94 시즌) 및 레기오날리가 노르트(1994/95 시즌 ~ 2007/08 시즌) 시기 포함[41] Norddeutscher-Pokal (- 1973/74까지 열렸던 북부 독일 클럽이 참가하는 컵 대회)[2024/25] 시즌 종료까지 누적[BL] 1963/64 시즌~[Ober] 오버리가 베스트(1947/48 시즌 ~ 1962/63 시즌)까지 존속했던 리그로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 서독의 1부 리그[2.BL] 2.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 2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 베스트(1963/64 시즌 ~ 1973/74 시즌) 및 2. 분데스리가 노르트(1974/75 시즌 ~ 1980/81 시즌) 시기 포함[3.L] 3. 리가 창설 이전 3부 리그였던 오버리가 노르트(1974/75 시즌 ~ 1993/94 시즌) 및 레기오날리가 노르트(1994/95 시즌 ~ 2007/08 시즌) 시기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