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Νεφέλη / Nephele그리스 로마 신화의 등장인물. 고전 그리스어로 구름이란 뜻으로, 실제로 구름의 님프. 트라키아의 왕 익시온과의 사이에서 야만적이고 난폭한 성향의 반인반마 종족인 켄타우로스들의 어머니이며 보이오티아의 왕 아타마스의 전처이자 프릭소스와 헬레 남매의 모후이다.
부모가 없고, 익시온이 자신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는 헤라의 말을 들은 제우스가 그를 시험해보기 위해 구름으로 빚어서 만든 클론 비슷한 존재라, 신들의 여왕이자 결혼과 가정의 여신 헤라를 빼다박은 아름다운 용모의 소유자다.
2. 일대기
당초 익시온이라는 사내가 있었는데 그가 감히 헤라에게 음욕을 품자, 제우스가 그를 시험하기 위해 구름으로 헤라의 형상을 빚어 익시온에게 보냈는데, 익시온은 정말로 이 가짜 헤라를 겁탈함으로써 자신의 흑심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당연히 타르타로스로 직행했다. 이 가짜 헤라는 구름의 요정이 되어 '네펠레'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으며, 익시온의 자식인 켄타우로스들을 낳는다. 나중에 아타마스[1]와 결혼하여 보이오티아의 왕비가 되었으며 왕세자 프릭소스와 헬레 공주를 낳아 행복을 꾸리고 금슬 좋은 부부 생활을 이어갔다.그러나 아타마스는 테베의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공주 이노에게 한눈에 반하면서 행복했던 네펠레의 삶에 먹구름이 낀다.[2] 완전히 이노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타마스는 결국 네펠레를 내쳤고, 아무 잘못도 없는데 쫓겨나간 네펠레는 분노와 슬픔에 잠긴 채 동굴로 도망쳐 절규의 나날을 보낸다.
이노는 자신과 피가 섞이지 않은 전처 소생의 아이들이자 장차 왕이 될 프릭소스와 헬레를 왕비로서 자기의 존립을 위협할 아이들이란 이유로 증오했고[3] 끝내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잔인한 음모를 꾸며 실행에 옮긴다. 네펠레는 이노가 자신의 아이들을 해칠 것을 알아차리고 제우스에게 아이들을 구해달라고 기도한다. 기도를 들어준 제우스는 즉시 헤르메스를 호출했고, 헤르메스는 거대한 몸체의 황금 숫양을 보내 두 남매를 구출한다.
안타깝게도 기껏 구한 아이들은 모두 어머니와 재회하지 못하고 저마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프릭소스와 헬레 남매는 양을 타고 대양을 힘껏 날아올랐지만, 높은 곳을 무서워한 헬레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져 익사했다.[4] 살아남은 프릭소스는 콜키스라는 먼 나라로 피신하여 아이에테스 국왕의 딸이자 메데이아의 자매인 칼키오페와 결혼하지만, 이방인에게 죽임당할 것이란 신탁을 두려워한 장인의 배신으로 뒤통수를 맞아 살해당하고 엄연히 헤르메스의 선물이자 본인의 소유인 황금 양털까지 빼앗긴다.[5][6] 네펠레의 신변은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3. 평가
오이노네와 더불어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불쌍한 조강지처[7]이자 온갖 무수한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안타깝고 슬픈 결말을 맞이한 여인 중 한 명이다.네펠레 본인의 탄생 이유부터가 비참하기 짝이 없는데, 헤라를 향한 익시온의 흑심을 시험하기 위해 제우스가 임의로 만들어낸 일종의 실험체였으며 자의와 무관하게 반인반마(馬)인 켄타우로스들을 낳아야 했다.
구름의 님프로서 생명을 얻고 인간계로 내려갔을 때도 아타마스와 결혼해 보이오티아의 왕비로서 인생이 새롭게 피나 싶었지만, 이마저도 무책임한 남편 아타마스의 변덕과 바람기에 의해 타당한 명분도 이유도 없이 폐위되면서 인생이 완전히 파탄나고 말았다. 눈에 띄는 죄나 악행이 없음에도 왕비의 지위를 이노에게 빼앗기고 쫓겨난 100% 가장 억울하고 순수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동굴로 도망쳐 나날이 슬픔과 분노로 절규하는 신세가 되었다. 제우스에게 계모에 의해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구해달라고 빌어 구출했지만, 끝내 아이들의 구출만 빼면 자신에게 돌아온 보상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기도로 구해낸 아이들과도 재회하지 못했고 그 아이들도 그리운 어머니와 재회하기는커녕 오래 살지 못하고 비참하게 요절했다. 남매 중 여동생이자 어린 딸인 헬레는 높은 곳을 무서워한 나머지 바다에 떨어져 익사했고,[8] 남매 중 오빠이자 아들인 프릭소스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사위가 되어 나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으나 외부인에 의해 죽을 거라는 아폴론의 예언을 두려워한 장인에게 배신당해 죽었다. 그리고 네펠레 본인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후일담의 형태로도 전해지지 않고 완전히 묻혔다.
심지어 처음부터 순수한 피해자인 네펠레는 마지막까지 불행하고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고 네펠레의 가해자들은 모두 행복한 엔딩을 누렸다. 왕권을 남용해 자신을 잔혹하게 내쫓은 전 남편이라는 작자는 결국 네펠레를 내치고 이노를 새 왕비로 들인 업보로 헤르메스에 의해 이노의 외조카인 디오뉘소스의 양육권까지 떠맡게 되어, 이모부라는 이유로 헤라의 저주에 의해 아들 레아르코스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고 나라 밖으로 추방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타마스는 새 왕국 아타만티아의 시조로서 잘 먹고 잘 살게 됐다.
순수하게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죄 없는 프릭소스&헬레 남매를 죽이려 했고, 무고한 백성들까지 기근의 도탄에 빠트린 이노 역시 외할머니 아프로디테의 인맥 덕에 사후 바다의 여신으로 환생하고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를 돕는 등의 분수에도 안 맞는 과분한 행복을 누리게 됐다.[9] 명백한 죄인/악인이자 가해자임에도 분수에 안 맞는 과분한 행복을 누렸으니, 이 둘에게 가장 비참하게 당했으면서 사죄도 받지 못하고 끝내 어떤 형태의 보상도 얻을 수 없었던 네펠레는 땅을 치며 통탄할 노릇이다.
다만 황금양털을 가지러 온 이아손이 외조부 아이에테스에게 쫓겨난 프릭소스의 아들(즉 네펠레의 친손자) 4형제인 아르고스, 멜라스, 프론티스, 퀴티소를 발견해 구조했고, 4형제는 이아손이 이끄는 아르고 호 원정대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4형제는 이후 아버지 프릭소스와 고모 헬레의 고국이었던 보이오티아로 가서 조부 아타마스와 계조모 이노, 그 슬하의 자식들을 내쫓고 왕권을 차지했다고도 하니, 이 이야기대로라면 네펠레의 한이 조금은 풀렸을지도 모른다.
4. 대중매체
4.1.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 7권에서 익시온의 이야기를 다룰 때 등장한다. 구판에서는 금빛 단발을 한 수수한 미모를 가진 여인이었던 데 반해 여기서는 헤라의 모습을 본떠 만든 님프라는 설정에 걸맞게 헤라와 완벽히 닮은 꼴의 외모와 곱슬곱슬한 붉은 장발을 한 미녀로 등장한다. 익시온이 자기에게 고백했으니 벌을 내리라는 헤라의 증언을 믿을 수 없었던 제우스가 구름을 빚어 헤라와 똑같이 만든 뒤 익시온을 유혹하라고 명령한다.
네펠레의 유혹에 홀딱 넘어간 익시온이 기어이 올림포스의 신궁의 침대 위에서 동침을 벌이자[10] 이 광경을 보고 가증스러워한 헤라[11]는 "정말 불쾌해. 당장 저 놈을 타르타로스로 보내버려요."라고 간청하고, 이제야 헤라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은 제우스 역시 익시온의 막장 행각에 "저런저런, 저 놈은 정말 천벌을 받을 놈이군."이라고 학을 떼고는, 익시온에게 신벌을 집행해 타르타로스에 가두어버린다. 한번 입에 대면 신이 될 수 있는 양식인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섭취하고 불로불사가 된 익시온은 감히 신들의 여왕을 아내로 삼으려 한 죄로 타르타로스에 있는 지옥의 불타는 수레바퀴에 묶여 영원히 매달리는 형벌을 받았다. 익시온을 시험하려는 용도로 만들어진 네펠레는 단순히 헤라의 분신에서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로 거듭나 켄타우로스들을 낳는다.
비슷한 외모지만 엄연히 다른 존재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 차이가 나는데, 신들의 여왕답게 우아하고 기품 있는 당당한 느낌의 헤라와 달리 네펠레는 가련하고 부드러운 순수한 느낌을 자아낸다. 닮은 꼴의 캐릭터라도 마치 별개의 존재처럼 완벽하게 표현해내는 홍은영 작가의 뛰어난 그림 실력을 알 수 있는 부분.
4.2. 올림포스 가디언
아동용 애니라 상대적으로 권선징악적으로 각색된 올림포스 가디언에서는 네펠레를 버린 아타마스와 이노는 업보에 맞게 반란을 일으킨 국민들에 의해 쫓겨난 거지 신세가 되고 아타마스는 예전에 자신이 네펠레를 버렸듯이 이노에게 버림받는다. 그리고 원전대로 동굴 속에서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살던 네펠레는 자신을 찾으러 온 프릭소스와 돌고래로 환생한 헬레와도 재회하고 프릭소스와 콜키스의 공주 칼키오페의 결혼식도 지켜보며 축복을 내리는 등 매우 통쾌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1] 아이올로스와 에나레테의 아들로, 살모네우스, 페리에레스, 크레테우스의 형제이자 시쉬포스의 형이다.[2] 이노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딸이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피를 1/4씩 물려받아 어지간한 인간들보다 훨씬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미녀다.[3] 이노 본인이 아타마스와 결혼해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이미 왕세자로서 입지를 다진 프릭소스의 존재로 인해 왕위 계승 서열에서 밀릴 것이 확실했다. 무엇보다 친모 네펠레를 그리워한 프릭소스가 성인이 되어 즉위하자마자 복수심에 자길 내쫓고 네펠레를 도로 성으로 데려와 보이오티아의 왕대비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을 가능성 또한 다분하다.[4] 다만 판본에 따라서는 포세이돈이 그녀를 거두어 본인이 빠져죽은 해협을 수호하는 바다의 여신으로 환생시켜서 포세이돈의 여자 중 하나가 되었다는 말도 있긴 하다.[5] 아폴론이 아이에테스에게 경고한 이방인의 정체는 프릭소스가 아닌 프릭소스의 부계 쪽 친척이자 오촌 조카인 이아손이었다(이아손은 크레테우스와 튀로의 손자이자 아이손과 알키메데의 아들이고, 프릭소스의 아버지 아타마스는 크레테우스와 형제지간이다. 즉, 아이손과 프릭소스는 사촌이다.). 이아손은 펠리아스의 꼬드김에 왕위 계승자로서의 자격을 증명하고자 50인의 아르고 호 원정대와 함께 아이에테스에게 황금 양털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고, 메데이아의 원호에 힘입어 황금 양털을 되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수의 딸인 메데이아가 의도치 않게 이아손을 도와 네펠레와 프릭소스 모자의 복수를 이룬 셈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이아손도 결국엔 복위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메데이아에게 버려져 쓸쓸하게 고독사했고, 아이에테스는 딸이 돌아올 때까지 페르세스에게 왕위를 빼앗긴 신세가 되었다가 조국에 돌아온 딸의 도움으로 복위에 성공하고 손자 메도스에게 물려주면서 천수를 누렸다. 아폴론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고 빗나간 몇 안 되는 사례.[6] 다만 국내의 어린이용 그리스 신화 책에서는 아이에테스의 손에 프릭소스가 살해당했다는 결말이 영 껄끄러운지 프릭소스가 자연사한 줄거리로 묘사하기도 한다.[7] 네펠레와 오이노네는 아프로디테와 악연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네펠레는 아프로디테의 외손녀 이노 때문에 남편한테 쫓겨나고, 오이노네는 아프로디테가 헬레네를 파리스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남편한테 버림받있다는 공통점이 있다.[8] 판본에 따라서는 포세이돈이 거두어 그의 여자 중 하나가 되었다고도 하지만.[9] 이노만 그런 게 아니라 격이 높은 신의 혈통을 이은 반신들은 운이 좋으면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부모의 인맥에 의해 죗값을 치르지 않고 신이 되거나 엘리시온에 입성하는 등의 행복한 결말을 누리는 일이 허다하다. 대표적인 예시가 헤라클레스와 메데이아, 레우킵포스의 딸들이자 이다스와 륀케우스의 약혼녀들인 힐라에이라와 포이베를 약탈 및 강간하는 명백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제우스에 의해 불로불사의 몸이 되고 쌍둥이자리가 된 레다의 쌍둥이 아들인 디오스쿠로이 형제가 있다.[10] 물론 수위 문제로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만 나왔다.[11] 거기다 익시온은 헤라의 증손자라 증조할머니인 헤라가 그의 고백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전무하고, 그걸 떠나서 익시온이 헤라에게 고백할 자격을 갖출 정도로 대단한 인간도 아니다. 이미 아내 디아의 아버지이자 장인어른 에이오네우스에게 지참금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불태워 죽인 희대의 악한이자 패륜아라 가정의 수호신 헤라가 가장 싫어하는 가정 파탄을 저지른 죄인이었다. 제우스에 의해 힘들게 구원받은 걸로 백번 절해야 할 상황에 자기 때문에 아버지를 여읜 불쌍한 아내이자 피해자인 디아를 냅두고 헤라에게 대놓고 구애하고 헤라의 클론인 네펠레와 동침하는 등 헤라를 향한 신성모독과 디아에 대한 불륜까지 쌍으로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