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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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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삼
金春三
파일:김춘삼.jpg
<colbgcolor=#000><colcolor=#fff> 별명 왕초
거지왕
출생 1928년 2월 1일
평안남도 덕천군
사망 2006년 11월 26일 (향년 78세)
서울특별시 강동구 둔촌동 중앙보훈병원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1묘역-138판-24747호
직업 군인건달
병역 대한민국 육군 상사 전역[1]
병과 보병
참전 6.25 전쟁
가족 배우자 남윤자, 슬하 2남 1녀

1. 개요2. 생애
2.1. 사망
3.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건달.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절에 활동한 깡패였으며 왕초거지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자신은 조직폭력배라 주장하지만 실상은 거지패의 우두머리다. 자기가 떠든 조폭들과의 일화도 교차검증이 안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2. 생애

본인이 미화한 생애하곤 정반대로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해방 직후인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대를 통틀어 최악의 깡패가 바로 김춘삼이었다. 서울 중부시장에서 상인들에게 금품갈취와 기물파손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아무런 죄없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휘둘러서 현상수배까지 되었던 놈이 바로 김춘삼이다. 특히 다른 악명높은 깡패들과 달리 김춘삼은 유일하게 여자를 상습적으로 때렸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강제로 앵벌이를 시키기도 했다.

본인이 김두한과 절친한 친구였다고 했지만 김두한은 1918년생으로, 정확히 김춘삼보다 열 살 형이었으며, 김두한의 자서전을 포함한 당대 주먹들의 자서전이나 일화에도 김춘삼에 관련된 내용이 없기에, 김춘삼의 자서전 내용은 죄다 거짓말이라 봐도 무방하며, 실제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김춘삼의 이름을 검색하면 깡패 김춘삼이 고아들을 폭행하거나 금품갈취로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다.

김춘삼은 애초에 김두한이나 이화룡, 이정재 같은 체계적인 조직이 있는 조직폭력배라기보다는 거지들을 착취하면서 거지패 우두머리로 깡패짓[2]을 하는 신흥 폭력배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 거지들을 상대로 자활개척단인가 뭔가를 운영했는데 자선사업을 위한 기부금을 빙자한 갈취, 횡령한 문제로 신문지상에 계속 오르내렸다.

어린시절 김춘삼의 측근에서 활동했다고 밝힌 조세형은 드라마 왕초나 김춘삼의 자서전은 다 거짓이라고 증언했다. 김춘삼의 측근이 그의 자서전은 모두 거짓이란 말을 했다는 것은 김춘삼은 그릇 이전에 인간성 자체에 큰 결함이 있었다는 사람임을 엿볼 수 있으며, 실제와는 다르게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좋게 포장이 됨으로써 역사 왜곡 및 허위사실 논란이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다만 조세형 역시 수 많은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이며 측근에서 활동했다는 증거, 김춘삼의 자서전이 거짓이라는 증거 역시도 없기 떄문에 이를 그대로 믿을수는 없다.

조세형의 인터뷰에 의하면 김춘삼은 거지 아이들의 보호를 빌미로 구호물자를 뜯어내 본인이 착복하였고, 아이들에게는 밀찌꺼기로 만든 수제비만 주었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을 수시로 폭행하였으며 김춘삼에게 맞아 죽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의 시체는 야산에 암매장하였다고 한다. 또한 김춘삼은 부하들을 시켜 아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하였으며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채 짐승같은 대우를 받아야 했다. 참고로 조세형은 김춘삼이 운영하던 고아원인 합심원 출신이다.

부인 남윤자와의 결혼도 납치에 의한 강제 결혼이나 다름없었는데, 당시 조선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남윤자는 미인대회에서 1등으로 뽑힐 만큼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신여성이었고 김춘삼보다 15살 연하였다. 조선대학교 앞에서 남윤자를 보고 반한 김춘삼은 그녀를 강제로 무등산 산장으로 데려가 범하는 납치혼을 한다. 훗날 남윤자는 김춘삼과의 결혼이 '납치 결혼'이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절시키지 않은 이상 강간은 아니다'라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애매모호하면서도 말도 안되는 대답을 하였다.

2.1. 사망

2006년 11월 26일 패혈증으로 투병하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둔촌동 중앙보훈병원 중환자실에서 향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2006년 11월 30일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1묘역에 안장되었다.

김춘삼이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1묘역에 안장된 이유는 6.25 전쟁 당시 부사관으로 복무해서 분대장으로 참전한 뒤 상사 진급과 동시에 전역했기 때문이다. 반면 김춘삼보다 더 좋은 군공이 있고 더 높은 계급으로 복무한 갑종장교 출신의 유지광은 국립대전현충원이 아닌 다른 곳에 묻혀 있다. 유지광의 경우 혁명재판으로 인해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힐 자격이 박탈된 것으로 생각된다.

3. 대중매체

3.1. 왕초

배역은 차인표. 침착한 성격과 배짱으로 염천교 거지 소굴의 우두머리이자 전국의 거지왕이 된 인물. 거지로서의 닉네임은 '멸치'이지만 아무래도 왕초라는 호칭이 있는 만큼 발가락 외에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3] 대구에서 거지 생활을 하는 동안 꿈에도 그리던 생모를 만났지만, 이미 거지 생활에 익숙해진 이후라 계부의 집에서 부잣집 도련님처럼 사는 답답한 생활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서울의 큰 거지가 되기로 결심한다.[4]

실제 나이는 김두한이 김춘삼보다 10살이나 연상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되려 김두한이 김춘삼보다 훨씬 어리게 나온다.

어린 시절 첫사랑인 연지를 다시 만난 후 장사치라고 구라를 펼치며 접근하다가 큰 동냥판에서 각설이 타령을 부르는 모습을 딱 걸리고 만다. 하지만 이미 연지도 춘삼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린 후였으니...

첫사랑에 대한 순정으로 온갖 모진 일들을 당하면서도 늘 대인배처럼 '또 만나자'고 말하며 일편단심의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죽은 줄 알고 다른 남자와 약혼한 연지의 부탁으로 그 남자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싸우기까지 한다.

친구에게 배신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고 친구라고 믿는 등의 우직한 면모도 있지만 동시에 단순 무식하기도 해 쉽게 버럭하는 면도 있다. 깡패는 아니지만 깡패들과 구역 다툼을 하기도 하는 전국 거지들의 대장이니만큼 거물급 깡패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등의 존재감이 있지만, 거지라는 이유로 모욕적이고 부당한 일들을 겪으며 점차 인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부하 거지들을 간척 사업에 투입시키고 전쟁을 겪으며 고아가 된 아이들을 거두어 키우는 고아원 '합심원'을 운영하는 등 사회 사업가로 성장한다.

강제 징용을 당했을 때나 6.25에 참전했을 때 모두 죽었다고 잘못 알려졌으나 비장하게 돌아오는 등 은근히 불사조 기믹도 가지고 있다.

명대사는 '주먹으로 할래, 깡으로 할래?' [5]

3.2. 천하제일상 거상

조선의 NPC 중 한 명으로 나온다. 여기서는 김귤의 퀘스트를 전부 완료하면 이후의 전투 관련 퀘스트를 주는 NPC로 등장.

3.3. SNL 코리아

GTA 경성에서 김두한, 이완용과 함께 플레이 가능한 3 캐릭 중 하나로 나온다. 김춘삼 캐릭터로 플레이는 하지 않았으나[6] 나중에 퀘스트 목표로 재출현하여 플레이어 캐릭터인 이완용의 낭심을 집중공략, 고자로 만들었다. 현실에서의 이완용(1926년 사망)은 김춘삼(1928년 출생)이 태어나기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고증오류에 해당한다.


[1] 군번 5101657[2] 김춘삼이 했던,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을 동냥아치라고 한다. 요즘 쓰이는 양아치의 어원이다.[3] 마치 베지터오공을 카카로트라고 부르는 것처럼[4]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경우로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가 부잣집에서 살다가 양가의 부모들이 서로 자식이 뒤바뀐걸 알아서 각자 원래 자식을 되찾았으나 가난한집에서 자라온 아이는 부잣집에서 적응을 잘한데 비해; 반대로 부잣집에서 자라온 아이는 가난한 본가에서 적응을 못해 결국 부잣집에서 두 아이를 모두 기르기로 한 경우랑 완전히 상반된다. 거지생활에 익숙해져서 부잣집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건 당연히 말 도 안 되는 지어낸 이야기.[5] 가끔 묘하게 깐죽대는 등의 대사를 하기도 하는데 차인표 특유의 말투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6] 플레이어와 게임캐릭터 모두 김민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