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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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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경력3. 근황4. 관련 문서

1. 개요

KTF 매직엔스 감독, 現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정책홍보국장. 1973년 12월 23일 생([age(1973-12-23)]세).

2. 경력

김철 감독은 감독을 맡기 전 KeSPA에서 심판 위원장 자리를 맡은 경력이 있고, 그 전에 지도자 경력이라곤 4~5년전에 해본 게 전부.[1] 그런데 그 당시에는 감독의 포지션이 명확하게 잡혀있지도 않았던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KeSPA에서 빽 믿고 내려온 낙하산이라는 소리까지 있다.

뭐 이건 유머긴 하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개막전에서는 전용준 캐스터와의 대화 때 한국어를 일본인 억양으로 발음해서 "재일교포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하여튼 경기 감각도 없어지고 팀에서 사실상 버려진 선수들에게 경기력 저하와 의욕 부진 등이 따랐고, 이로 인해서 MSL 우승자 출신이자 저그의 대부 급인 조용호는 은퇴했고[2], 변길섭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연습하면서도 절치부심하며 2년만에 개인리그 예선을 통과했으나 본선에서 탈락하고 결국 얼마 못 가서 은퇴하고 코치로 전향하였으며, 이병민은 부진을 이겨내지 못한 채 eSTRO로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하였다가 여기서도 얼마 못 가고 일찍이 은퇴하였다.[3] 김철이 감독을 맡고 있었던 시절에 방영된 리얼스토리 프로게이머 KTF 편을 보면 어째선지 변길섭과 이병민, 조용호는 1부에서만 잠깐 나오고 그 다음 회들부턴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KTF 매직엔스 내부에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파벌 싸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이 주장에 힘입어 김윤환(테란)의 잇단 기용도 김윤환이 김철 감독 편이라 나온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니...[4] 2007 전기리그 시즌의 경기들을 보면 선수들이 지고 나서도 실실 웃는 모습이 많이 보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제동이 얘기했듯이 '패배에 심각하게 연연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긴 하나, 연패 중에도 그렇게 실없이 웃는 것은 팀 케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다. 대체 팀에서 선수 관리를 어떻게 하며 내부 분위기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간 건지 대충 예상이 갈 것이다.

결국 2006 후기리그부터 서서히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리그 최하위였던 팬택 EX와 승패는 동일하고 승점에서 앞서 겨우 최하위를 면함.), 2007 전기 시즌에는 옛날의 팀 내의 프렌차이즈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리고(경기에 못 나오더니 결국 시즌 후반에 은퇴해 버렸다.), 그나마 있던 강민도 급속한 경기력 하락에 신인 육성조차 제대로 못해 당시 멤버들의 잇단 부진으로 헉헉대던 T1과 더불어서 모기업의 빵빵한 후원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때 안티 팬덤에게 붙은 별명이 먹텝 노인정스 혹은 꼴텝 노인정스. 고액 연봉을 받는 올드 선수들이 패배하고 실실대는 꼬라지가 양로원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5] 이때 스타팬들 사이에서 농담삼아 나돌던 이야기가 일단 전성기 때는 CJ 엔투스에서 보내다가[6] 기량 떨어질 때쯤 빨리 KTF랑 계약하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감독이라는 자리 자체가 어느 정도 권한이 있는 건 맞지만 선수를 반 강제 은퇴시키고 아무런 대접도 하지 않는 팀이라고 하면 누가 알아줄까?[7]

그러다가 2007 후기리그에 들어 정명호배병우[8]가 갑자기 성장하며 난데없이 김철 명장론을 내세우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는 중반부까지 미친듯한 호성적을 내면서 이와 함께 마침내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이후 4시즌만에 포스트시즌 진출도 기대된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정작 배병우는 블루스톰이 사라지자마자 묻혀버렸고[9], 정명호는 미친저그 빌드빨 테란전 말고는 딱히 볼 것도 없었다가 eSTRO로 이적했고, 거기서도 이렇다 할 좋은 모습을 못 보이다가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이 진행 중이던 2009년 12월에 은퇴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시즌에 들어서는 그나마 박카스 우승 직후 미친듯한 포스를 뿜어대는 이영호를 앞세워 괜찮은 성적을 거두면서 이제야말로 오랜만에 포스트시즌에 가는 것인가 하고 기대를 높였지만, 양대리그까지 뛰는 이영호를 에이스 결정전까지 출전시키면서 너무 과하게 혹사시킨 나머지 이영호의 전체적인 폼이 하락하자마자 바로 순위가 하락해 버렸다[10].

결국 KTF는 희망고문 끝에 포스트시즌의 마지노선인 5위[11]를 기록하며 또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숱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성적조차 내지 못한 김철 감독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시즌이 끝나자마자 경질되었고, 이지훈으로 감독이 교체되었다. 당시 KTF 팬들의 반응은 "드디어 잘 꺼져줬다."가 지배적. 그리고 후임으로 들어온 이지훈 감독은 부임 이후 이전까지 필패카드였던 우정호, 고강민 등을 발굴시키고 거기에 김대엽의 포텐까지 폭발시키면서 부임 후 2년 만에 KTF를 이영호 아니면 꿈도 희망도 없는 극한의 원맨팀에서 프로리그 정규시즌 우승팀으로 등극시키면서 더더욱 김철과 비교되는 행보를 보였다.

결론적으로 김철 감독 시절에 수훈이라고는 당시 해체 위기에 몰렸던 팬택에서 (당시 연습생이던) 이영호를 데려온 거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도 그나마 이준호 코치[12]가 한 거다. 사실상 이 인간이 한 거는 없다 보면 된다.[13] 조용호, 이병민 등을 그나마 코치로라도 썼다면 신인 육성과 이영호의 상승세가 일년은 더 빨랐을 거라 보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변길섭이 코치로 전향하자마자 이영호가 박카스 우승 및 미칠듯한 포스를 뿜어낸 바가 있었으니...

다만 이와는 다른 견해도 있다. # "김철 감독은 인격은 높았으며, 이영호를 데려온 것도 자신의 진심이 통해서였고, 박준우[14]/정명호 등을 영입한 것도 그 선수들의 나이 및 군 문제로 거취가 불분명한 선수들을 거둔 것."이라는 것. 이런 점들을 보면 덕장이라곤 볼 수 있으나... 정작 기존 선수들과 원만치 못한 관계+데려온 선수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팬들 입장에선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 아무리 사람이 좋다 한들 감독 자리는 성적 못 내면 말짱 허당인 자리다. 당장 야구의 김시진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종합하자면, 인격적으로는 덕장일지는 몰라도 감독으로서는 졸장인 것. 그리고 저런 감독이 다시는 e스포츠판에 절대로 나오지 말아야 하겠지만... 같은 팀에 김철 따위는 장난으로 보일 정도의 졸장이 또 나오고 말았다.

3. 근황

감독을 그만둔 이후 오랫동안 근황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2019년 3월, 뜬금없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정책홍보국장 직함을 달고 유치원 개학 무기한 연기 사태중심에 나타났다. PGR21에서는 대체적으로 당신이 왜 거기서 나오냐반응.

해당 글의 마지막에 본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덧글을 달았는데, 한유총으로 이직한지는 3개월 된 신입사원이라고 한다.[15]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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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규남 감독의 슈마 GO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이때 역할은 조규남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 겸 매니저 역할. 2005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GO의 코칭스태프로 참가하기도 했다.[2] 은퇴 1년 반 만에 조용호가 이 스타 vs 스타 스캔들에 밝히길 자의적인 은퇴가 아니었다고 폭로했다.[3] 물론 이병민의 경우에는 후에 사생활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으므로 전적으로 김철만의 책임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선수 멘탈의 문제는 감독이 컨트롤해야 하는 게 도리다.[4] 다만 이건 김윤환이 연습실에선 엄청 잘해서 기용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5] 물론 당시 스타판은 이전까지 공식전에서 평타는 쳐 주던 올드 게이머들이 단체로 퇴물화되던 대격변기라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6] 당시 CJ 엔투스는 우승하면 상금의 100%를 인센티브로 주었다(…).[7] 다만 변길섭 코치를 KTF가 내쳤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변길섭 코치는 오히려 KTF 측에서 잡아두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자진해서 나온 거다.[8] 원래는 CJ에서 먼저 데뷔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정우와 함께 KTF로 이적했다. 참고로 강정우는 KTF 이적 이후로도 단 한 경기도 출전이 없었다가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4라운드 도중 위메이드로 다시 이적했고, 위메이드로 이적하고 나서야 비로소 공식전을 치렀다.[9] 그래도 배병우는 나중에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 36강에 진출하였다.[10] 다만 시즌 당시 한동훈은 스타리그 테란 상대로 무패였고, 이영호는 한동안 개인리그에서 부진했다. 이때도 잘 했지만 개인리그에서는 박카스 스타리그 2008 우승 이후 EVER 스타리그 2008 8강,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8강, 바투 스타리그 16강, 박카스 스타리그 2009 16강과 같이 압도적인 패배 아니면 어이없는 패배도 많이 보여주며 뒤로 갈수록 성적이 하락했던 탓에 팀이 본격적으로 우승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 EVER 스타리그 2009 이전에는 양대리그에서는 최강자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별볼일없는 성적만 나왔을 뿐이다.[11] 08-09 시즌부터는 포스트시즌 순위권이 6위로까지 확대됐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까지는 5위 이하는 무조건 탈락이었다. 그러다가 팀이 8개로 줄어버린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부터는 다시 4강 체제로 돌아갔다.[12] 훗날 곰TV에서 해설을 맡기도 했으며, Prime 게임단을 창단하였다.[13] 이 기간에 똑같이 성적부진을 겪은 T1은 MBC GAME HERO의 코치였던 박용운을 감독 대행으로 데려왔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T1은 3위(정규시즌 2위) → 우승 → 준우승이라는 과거의 영광을 다시 되찾는데 성공하나, KT는 2007 때부터 08-09 때까지는 정말로 오로지 이영호 하나만 믿고 가다가 별볼일없이 끝나버리게 십상인 원맨팀의 절정을 보여주었다.[14] 이 선수는 팀플레이에서만 활동했으며, 이후 08-09 시즌부터 팀플레이가 폐지되면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시즌 도중 은퇴했다.[15] e스포츠 감독 경질 이후로, 김철 前 감독도 생계를 이어나가기는 해야하는지라 직장을 구했을텐데, 문제는 그 직장이 논란거리인 상황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