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13:45:58

김영

1. 골프 선수2. 법조인3. 코미디언4. 패션 모델5. 6.25 전쟁 시 북측 군인

1. 골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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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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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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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패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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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는 다섯 남자의 맛있는 파티 진행자를, 2012년에는 XY그녀 진행자를 맡았다.

5. 6.25 전쟁 시 북측 군인

6.25 전쟁 발발 직후, 의정부 축선으로 남침 중이던 조선인민군 9전차여단 소속의 소좌. 여단장은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 땅크사단으로 남측 밀덕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유경수였지만 실제 가장 큰 역할을 한 쪽은 김영 소좌다. 애초에 105사단이 저렇게 긴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게 하술하는 김영 소좌의 서울 점령 덕이다.

김영은 일제강점기 홋카이도대학(당시 제국대학) 농학부 출신의 엘리트였으며, 북한군에 소속된 후에는 북한이 소련으로 유학을 보냈다. 6.25 개전 당시 소련에서 탱크 연수를 받고 돌아온 유학파는 김영을 포함 북한군 내에서 단 두 명 뿐이었다.

개전 후 남침하던 북한군의 주공은 국군 7사단 등이 방어하던 동두천과 포천을 뚫고 의정부까지 남하해오던 상태였고, 축차투입을 하면서까지 결사 방어준이던 국군은 의정부의 백석천[1]에 1차 방어선을 쳤으나 이 또한 무너지고, 마침내 창동까지 후퇴하여 수유리에 최종 방어선을 치고 있었다.

김영 소좌는 T-34 전차를 몰고 홍릉 인근의 좁은 우마차로를 통해 국군의 후방에서 기습을 가했다. 정확히는 이 전차 2대는 그대로 서울로 내달려 중앙청 앞에 떡하니 나타나고 말았다. 이는 국군이 북한군 전차부대 조공에 완전히 포위된 것으로 오판하게 만들었다. 6월 27일 당시 북한군 서부전선 침공군은 이미 수색역 인근까지 남하하고 있었고 상술한 것처럼 동두천에서 남침한 병력은 의정부 회랑을 뚫고 수유리에서 국군을 압박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북한군 전차가 나타나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동부전선 6사단 김종오 대령 지휘 부대들이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한 것과 달리 서울 근교의 국군 방어병력은 제대로 된 저항을 못 하고 퇴각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강인도교 폭파가 일어나 1사단 예하연대 등 서울 외곽을 방어하기 위해 투입되어 있던 서부전선 전투력의 상당수가 한강 이북에 고립되었다가 각자도생으로 탈출해야 했다.

김영은 이후 오산 전투 등에서도 북한군의 선봉에 서서 국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낙동강 전투를 겪으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미군에 투항했다. 이후 국군으로 전향, 이름을 김홍으로 개명하고 특임대를 이끌며 북파 임무를 맡아 휴전 때까지 황해도 구월산 등에서 유격전을 펼치며 공훈을 세웠다.

6.25 전쟁 휴전 후에는 과거 자신이 탱크를 이끌고 돌파했던 서울 수유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냈는데, 2000년대까지도 생존해 있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주성하가 김영 소좌의 6.25 당시 활약상을 간단히 소개하며 대북방송을 한 적이 있다. 링크



[1] 이름만 보고 일산신도시의 백석으로 오인할 수 있으나, 송추고개 방면에서 흘러내려와 의정부역 남쪽을 흘러 중랑천으로 합류하는 개천이다. 교외선 의정부 구간, 의정부 경전철과 거의 같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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